# 237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사이단, 여기서 정한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선조치 후보고를 해도 된다. 네가 우리 군단의 지낭을 맡았다면, 그에 걸맞는 권한 또한 있어야지."
"감사합니다, 주인님. 절대로 심려끼치지 않겠습니다."
사이단은 꾸벅 내게 고개를 숙이며 테이블 위의 종이들을 모두 가지런히 정리했다.
보이는 건 종이요 써있는 건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도식이었지만, 그 내용은 할파스 군단과의 전쟁을 어떻게 치를 것인 가를 담고 있는 극비사항이었다.
"기억에 담아두어라."
"예. 물론입니다. 이 메뉴얼을 바탕으로 즉각적으로 대처하겠습니다."
우리가 정리한 종이는 할파스 군단과의 전쟁에서 벌어질 상황에 대한 모든 가정과 그에 대한 대처가 담긴 일종의 메뉴얼이었고, 설령 내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던전에는 무조건 남아있을 샤이탄이 메뉴얼을 통해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이제 자리를 비워도 크게 문제는 없겠어.'
할파스 군단이 만약 추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우리 던전에 공격을 하러 들어오게 된다면 샤이탄이 메뉴얼을 떠올려 요격하리라. 나나 샤이탄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시스템은 굴러가게 되도록 만들었다.
"흐아아.... 음료는 하나도 안 마셨군. 사이단, 커피 마신 적 있나?"
"주인님 기억으로 마시는 커피맛이 처음입니다. 정말...꿈 속에 주인님 커피마시러 오는 재미가 쏠쏠하군요."
"정액 마시러 오는게 아니고?"
"겸사겸사죠."
사이단과 나는 한 입도 데지 않은 음료를 이제서야 들이켰다. 사이단이 그냥 아메리카노부터 시작해서 메뉴를 하나하나 재패해나간다면, 나는 그냥 따뜻한 녹차였다. 꿈속이라 그런지 식지 않은게 참 다행이었다.
"10분만 한다는 게 회의가 조금 길어졌군. ...잠깐만."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 44분. 내가 침대에 강제로 눕혀진 이후로 벌써 10분은 커녕 1시간을 훌쩍 넘긴 순간이었다.
"이런 젠장."
설마 밖에서 안 깨운 건가? 내가 조급함에 절로 내 뺨을 쳐서 강제로 각성하기 직전, 사이단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훗. 걱정마십시오, 주인님. 꿈속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다르니까요. 적어도 일곱 배는 더 많을 겁니다."
"뭐야? 왜 그걸 지금 말해?"
"미리 말했으면 주인님께서는 그 시간 전부를 작전 회의에 사용하셨을테니까요. 이제 밖에서 시간이 그 정도 흘렀으니...여기서는 대략 10분 남았군요. 오랜만에 카페에서 편히 쉬시지요."
사이단은 손을 떼어 테이블을 노크하듯 두드렸고, 나는 사이단의 앙큼한 장난에 사이단의 옆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주, 주인님?"
"이단 씨, 주인을 상대로 그런 장난을 치고. 안 되겠어."
사이단은 당황했지만, 나는 10분간의 휴식을 마음껏 활용할 생각이었다.
"현실에서는 골아 떨어져서 루나한테 수면간당하고 있겠지. 그동안 나는 꿈속에서 장난질 좀 쳐볼까? 응? 장난에는 장난으로 받아쳐야 하는 거 아니겠냐."
나는 사이단의 허리를 끌어안는 척 팔을 휘감으며 사이단의 치마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보드라운 검은 스타킹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보, 보는 눈이 많습니다...!"
사이단은 카페의 다른 손님들을 가리키며 부끄러워했다. 그들은 꿈 속 NPC 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우리의 애정행각에 눈쌀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실제같아서 조금 나도 괜히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꿈인 이상 상관없었다.
"보라고 하지. 언제는 내가 남들 신경쓰고 이랬나."
"주, 주인님...."
사이단은 기대하는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나는 사이단의 엉덩이를 살짝 들어올려 내 허벅지 위에 앉혔다. 후면좌위도 대면좌위도 아닌, 옆으로 걸터앉아 상체만 돌리면 나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자세였다.
"그리고 저것들, 다 네가 설정한 놈들 아니냐. 사실 이런 거 현실에서도 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꽁냥대는거."
"......."
사이단은 고개를 돌리며 침묵했다. 하지만 찌걱거리는 하반신의 반응은 정확했다. 사이단은 직접 말을 하기 상당히 부끄러워했지만, 이렇게 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게 나름의 매력이었다.
륜과 루나가 적극적으로 나와의 관계를 어필하듯, 사이단도 다른 이들에게 과시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기특한 것."
"하아."
나는 사이단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루나와 비교하면 훨씬 작기야 하지만, 그래도 존재감은 충분했다. 컵수로 따지면 적어도 C나 D 정도는 되리라. 사이단은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주인님, 이러시면 진짜 곤란합니다. ...다음 꿈에서 카페 진상 손님이라고 SNS에 떠돌아다닐 수 있어요."
"여기서 떡치면 뭐 공공외설죄로 잡혀가냐?"
"...거기까지는 설정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니냐. 얘 완전 내 꿈에서 현대문물에 맛들렸네. 너 혹시 꿈에서 인별 같은 거 하니?"
"......훗."
사이단은 조그맣게 V자를 그렸다. 나는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거기다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런 짓이요."
사이단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인별이 아니라 트윗이었고, 그 안에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와오...."
사이단은 무언가 검붉은 스틱을 입에 문 채 눈만 가리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사이단의 머리칼 너머로 작은 동산이 보이는 건 분명 봉긋한 엉덩이일 것이다. 엉덩이 사이로 검은 머리칼이 보이는 것이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69 셀카...?"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주인님과의 사랑을 과시하는 건. 후훗."
"......이거 나냐?"
"네."
사이단은 사진에 리트윗 된 글들을 내리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꼴린다, 나눔하자, 쪽지 남깁니다 등등 사이단에 대한 음습한 욕망을 내뱉는 글밖에 없었다.
사이단이 꼴리는 건 몰라도, 꿈속에서까지 줄을 서본다는 건 조금 기분이 언짢아졌다. 다른 부하들이라면 몰라도, 사이단을 상대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뭐냐?"
"제가 주인님의 것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거지요. 걱정마세요, 그냥 주인님의 꿈을 참고해서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주인님께서 원하시면 다음 꿈에는 이 상황을 누락할 수도 있죠."
"......참 대단하구만. 어, 잠깐만."
나는 리트윗된 글 중 하나 눈에 띄는 글을 가리켰다. 수많은 글 중에서도 유독 내 눈에 쏙 들어오는 글이 하나 보였다.
"야. 너 말고 나 먹고 싶다는 애도 있는데? 흐흐, 어디보자. 아이디가 RYUN...."
코 아래만 얼굴을 나타낸 여인은 몸에 큼지막한 복숭아를 들고 있었다.
"이거 그냥 설정이지? 너 일부러 이렇게 한 거냐?"
"......주인님의 꿈을 각색한 것이니 주인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겠죠. 주인님이 RYUN에 대해 그렇게 인식을 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잡아먹히실 까봐 두려우십니까?"
"아니. 나야 고맙지."
륜이 와서 나를 잡아먹어 주겠다는데 뭐가 불만이 있겠는가. 물론 그 정도가 과해 어느정도 조절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나는 오는 여자 가리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처럼 막 선 넘으려고는 못하게 조절은 시켜야겠지.'
까딱 잘못하다가는 엘프 여왕'들'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게 분명했다. 루나 여왕의 젖무덤도 훌륭했지만, 륜도 분명 4성 시절의 루나만큼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째깍, 째깍.
카페의 괘종시계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약속된 70분-현실의 10분에 해당하는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고, 우리 주변의 세계는 하나 둘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사이단은 미안한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그만 주인님의 귀중한 휴식 시간을 빼앗았습니다."
"아니다. 덕분에 재미있었다. 육체라도 쉬는 게 낫지. ...쉬는 게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휴식은 나중에 취해도 돼. 전시 아니냐. 잠깐 숨 돌렸다 생각하고 만족할란다. 고맙다."
잠깐 쪽잠을 자는 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다시 100% 컨디션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정도 통조림은 아무것도 아니지.'
새벽달을 보고 출근하고 퇴근하지 못하던 시절이나, 과거 포르네우스의 아래에서 굴려지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 피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이단과의 달콤한 시간이 끝나는 건 아쉬웠지만,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했다.
"다음에 제대로 즐기자꾸나. 그 때는...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나는 거기에 맞춰서 즐겨주겠다."
"...야외에서 하는 건 어떠신가요? 후훗. 아, 그럼 주인님. 가시기 전에."
사이단은 자연스레 내 얼굴을 붙잡았고, 나 또한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굿나잇, 그리고 굿모닝 키스입니다."
사이단의 키스는 커피맛이었다.
"...왜 안 깨지? 루나 녀석, 설마 10분이 지났는데 안 깨우는 건가?"
"......주인님, 그렇다면 그걸 하죠! 낑낑!"
"좋아! 루나가 나를 깨울 때 까지 라스다!"
...나는 루나가 나를 잠에서 깨우기까지 걸린 현실의 1시간 동안, 꿈속에서 사이단과 무수히 많은 교감을 나누었다.
작전 회의보다 사이단과 뒹구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은 결코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10분 정도 쪽잠을 자는 정도로 피곤이 가시지 않았기에, 예정보다 조금 더 잠들었을 뿐이다.
* * *
"개 운 하 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건 사기야! 나는 고작 한 시간밖에 못했는데, 너는 어떻게 일곱 시간이나 할 수 있어! 야, 다시 자! 내가 지금까지 채워진 걸로라도 자궁빔을 날리든 뭐든 해서 다 쓸어버릴 테니까!"
"풉. 꼬우면 엘프 여왕이 아니라 서큐버스로 태어나셨어야죠."
"뭐? 이게 못하는 말이 없어! 야! 너 나랑 한 판 뜰래?"
"침대 위에서라면 싸워드리죠. 당신, 서큐버스의 테크닉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샤이탄은 도도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며 루나를 비웃었다. 루나가 기승위로 자고 있는 나를 상대로 했던 한 시간에 비하면, 비록 꿈속이라 몽정같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온갖 체위를 바꿔가며 일곱 시간-실제로는 약 여섯 시간-가량 행위를 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운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씨, 씨이. 쟤가 나 괴롭혀!"
"너는 나 자는 사이에 내 쥬니어를 괴롭혔고."
결국 한 번 싸기는 쌌다. 언제든지 성이 나있는 나의 쥬니어는 내가 자고 있으니 수도꼭지가 잠긴 것 마냥 쿠퍼액만 아주 미약하게 흘러나왔다고 했고, 루나는 한 시간 동안 나를 진짜 딜도삼아 마음껏 위에서 기승위를 즐겼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진짜 죽을 것 같구만.'
개운하기는 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쉬었을 때 느끼는 요통이나 피로감 같은 것이 몰려왔다. 나는 의식을 차림과 동시에 루나와의 한 시간, 그리고 사이단과의 여섯 시간동안 했던 플레이의 쾌감이 전신에 폭발했었다.
'심전도 자극이 아니라 색전도 자극이라. 좋군.'
그야말로 엑스터시. 나는 복상사를 하는게 이런 감각인가 싶을 정도로 전신을 찌르는 강한 쾌감을 루나의 안에 터뜨렸다.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지고 다시 재생된 것만 같은 짜릿한 감각은 나를 강제로 각성시켜주기에는 충분했다.
"얘들아, 나중에 내가 의식이 불명이거든 떡을 쳐서 깨워다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의식 불명되면 기승위밖에 못하잖아? 그런데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건 안 되지. 크흑, 샤이탄. 다음부터는 듀얼 스크린으로 부탁한다."
"...니들끼리 알아듣는 소리 하지 말고 좀 나도 이해시켜줄래?"
루나는 입술을 깨물며 짜증을 부렸다. 나는 루나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루나가 화를 풀게 만들었다. 루나는 자신의 가슴에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내가 루나의 가슴을 상대로 어화둥둥하는 걸 좋아했다.
"나중에 꿈속으로 다 초대해주마. 샤이탄, 혹시 문제될 건 없지?"
"파종이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노콘질싸 가능이라는 얘기 아니냐. 좋군."
할파스 군단과의 전투가 끝나면, 모두와 함께 손을 잡고 한 침대에서 잠드리라. 현실보다 일곱 배는 더 많이 할 수 있으니, 파종 불가라는 디메리트가 있더라도 꿈 속 세상은 시간적으로 충분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슬슬 내려가자. 륜이 기다리고 있겠다. 루나, 회복은?"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한참 멀었어."
"그렇겠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통로에서 나온 오크 여인-랜슬롯이 짊어진 짐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랜슬롯, 수고했다. 다른 아이들은?"
"오빠들은 지금 휴식중이에요. 안드라스 마지막 페어가 남자 둘이 나와서."
"그거라면 어쩔 수 없군."
나는 랜슬롯이 가져온 봇짐을 짊어졌다. 단단한 돌덩어리나 다름없지만, 이제 생명의 무게만큼 무거워지리라.
"루나, 잘 보거라. 우리 군단의 오크들이 네가 살 터전을 어떻게 지키는 지."
부활의 때가 도래했나니.
"시스템, 발동!"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의 자식들이 가져온 마석을 소환진의 위에 쏟아부었다.
"씨쌰쏘쎄!"
〈인연 소환〉 마석을 이용하여 사망한 부하들을 되살립니다.
무수히 많은 오크들이 묘지를 박차고 소환진에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