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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34화 (234/800)

# 234

기병은 전쟁에 있어서 몹시 까다로운 적이었다. 라스베가스 수성전을 할 때도 토벌군의 기마대는 상대하기 정말로 까다로운 존재였고, 강을 타고 내려오는 걸 예상하지 않았다면 시가지에서 말발굽에 채였을 것이다.

'야전에서 만나면 최악의 적이 되겠군. 페일 라이더.'

하지만 기병은 넓은 들판에서나 적절하지, 던전처럼 폭이 좁고 공간이 한정된 장소에서는 활약하기 애매한 존재들이었다.

'던전에 들어온 게 너희들의 패착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일 라이더들은 기동성은 좋을 지 몰라도 던전 쟁탈전에 있어서는 최악의 전력이었다. 개개인의 전력은 질적으로 뛰어날 지 몰라도, 그들의 본질이 기병인 이상 전술적 한계가 명확했다.

'피지컬과 레벨로 그런 한계를 씹어먹었겠지만 나한테는 안 통해.'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동성을 제거해야했다. 그리고 적의 발을 묶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함정이었다.

'빅슬라임들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슬라임 드래곤으로 합성되지 못하고 아직 빅슬라임으로 남아있는 라임의 슬라임 분대. 그들은 1층의 천장에서 던전 주인인 내게 시야를 제공해주고 있었지만, 엄연히 35레벨에 이른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슬라임들을 싹다 긁어모아 그럭저럭 함정을 파냈다.

'구덩이를 파고, 천장에 숨어있었지.'

부정형이라 페일 라이더들을 상대하기에 적당하다 싶었지만, 페일 라이더의 낫은 슬라임들을 아주 손쉽게 두동강 낼 수 있었다. 하서스조차도 견뎌내지 못하는데, 슬라임이라고 오죽하겠는가.

'애초에 슬라임들을 전력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어.'

따라서 나는 슬라임들을 철저히 함정을 파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시간상 제2 요격실에 함정을 덕지덕지 바르는 셈이었지만, 단순히 아래로 파고들어내려가기만 하면 끝이라 별다른 지시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각, 사각, 사각!

땅 곳곳에 스펀지 마냥 슬라임 구덩이가 송송 뚫렸다. 그리고 모험가들은 구덩이를 덮을만한 방법을 생각하며 지혜를 짜냈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덮으면 되는데 모을 시간이 있나?"

"없지. 옷으로 덮어야 해."

"옷은 어디서 구하는데? 흙으로 덮으려면 나무덤불 정도만큼 질겨야 하잖아. 시체마들이 밟았을 때 구덩이로 빠져야하기도 하고."

"초입에서 빠지는 게 아니라 중간에 빠지는 거라면 질기기도 해야지. 새 잡이 함정처럼 모종의 수단을 사용해서 함정이 발동되게."

"그런 편리한 물건이 지금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

스타킹이 있었다.

"샤이탄! 올라가서 스타킹 다 가져와! 라스베가스 보내려했던 안드라스 깃털들까지 싹 다!"

"예!"

상대적으로 검어 제대로 흙을 덮으면 제대로 보이지도 못할 스타킹을 구덩이 위에 덮으면 되지 않겠느냐. 고간 부위는 쉽게 찢어지고, 또 마냥 아예 안찢어지는 물건도 아니다. 질기고 단단함은 합격점이었고, 슬라임 구덩이를 덮을 만큼의 면적도 충분했다.

'그렇다면 양은?'

그마저도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스타킹은 인간 세상에 악성 재고를 떨이로 판매해야했을 정도로 넘쳐났다. 거기에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조달할 수 있었다.

"전부 다 스타킹 벗는다, 실시!!"

오크들, 그리고 모험가들. 모두가 방어구마냥 신고있던 스타킹을 벗어 구덩이 위에 한두겹 씩 겹쳐 구덩이 위를 덮었다. 그냥 두면 헐거워져서 구덩이 밑으로 빠지게 되니, 페일 라이더들의 뼈를 이용해 스타킹에 구멍을 만들어 구덩이 옆에 박아넣었다.

륜의 말에 따르면 페일 라이더들이 두 번째 돌격을 하기까지 30분.

그 30분 동안 급하게 만든 함정은 의외로 조잡하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함정 최대한 많이 설치해야해!"

"너, 스타킹 벗어! 애초에 스타킹 신어도 잘려나간다고!"

"고간부는 펼쳐놔! 말발굽이 거길 디디면 바로 구덩이에 빠지게!"

페일 라이더들이 휘두르는 낫의 절삭력을 직접 목격한 모험가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함정을 설치했고, 릴리를 비롯한 사냥꾼 출신 모험가들의 도움에 힘입어 상당히 그럴듯한 구덩이 함정을 만들어냈다.

'역시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역시 도구를 다룸에 있어서, 강한 적을 상대로 승리를 위한 지혜를 짜냄에 있어서 정점은 다른 종족도 아닌 인간인 듯 했다. 실제로 지구의 인류와 이곳의 인류는 다른 종이겠지만, 아무튼 도구를 사용하고 지혜를 이용하는 건 대단했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구덩이 함정.

남은 것은 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순간 스타킹이 찢어지는 기믹을 구현하는 것 정도였고, 해답은 간단했다.

"슬라임들아, 잘 들어라."

가라 공사의 대명사인 라임의 아래에서 보고 배운 놈들이다. 다들 레벨이 어느정도 찬 만큼, 잔머리 하나는 기깔나게 돌아가는 놈들이었다.

"적이 오면 적의 대가리에다가 침을 뱉어라. 알겠느냐?"

슬라임들은 대번에 내 말뜻을 이해했다. 천장으로 숨어든 슬라임들은 천장에 또다른 구멍을 만들었고, 나와 일부 모험가들은 천장의 구멍에 숨어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후의 결과는 퍼펙트.

화르르륵!

곳곳에 뿌려진 점액은 스타킹을 녹이기 시작했고, 조직이 약해지고 불타기 시작한 스타킹 덮개 위에 발을 약간이라도 걸치고 있던 페일 라이더들은 하나 둘 발을 헛디디기 시작했다.

"간다!!"

나는 구덩이에 빠진 페일 라이더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을 향해 천장 구멍을 부수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네 놈이 대장이구나!"

캬아아아아아!!

뾰족한 투구를 한 놈-푸르카스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괴성을 내지르며 낫을 황급히 휘두르려 했다. 아까부터 꽥꽥 소리를 지르며 륜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 한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투구는 벗겨서 하서스에게 주도록 하마!"

나와 푸르카스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바로 위에서 낙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낫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최대한 거리를 좁혀야 했다.

히히힝---!!

시체마가 뒷발을 뒤로 물리며 앞발을 휘둘렀다. 내 접근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엿보였고, 나는 문신을 활성화하고 도끼를 강하게 휘둘렀다.

"흐아아!"

카--앙!!

시체마의 말발굽과 도끼의 쇠날이 부딪혔다.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불똥이 튀었고, 시체마의 등에 올라탄 푸르카스 놈의 투구 아래 안면이 보였다.

"와!"

검은 투구 아래 흰 해골바가지에서 푸른 안광이 튀었다. 그리고 그 안광에 홀린 나머지, 나는 도끼를 회수하는게 살짝 늦었다.

새애애액!!

푸르카스가 손잡이를 짧게 잡고 낫을 근거리로 휘둘렀다. 정확히 내 목을 두동강 내려는 횡베기에 나는 급히 도끼날을 세웠다.

"크윽?!"

생각보다 빠르다. 죽음이라는게 실체화 된 것 마냥 기운이 퍼져나와 내 목을 날려버릴 듯 했다. 달빛처럼 휘어지는 낫의 궤적은 정확히 내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닿으면 뎅겅. 하지만 목에는 닿지 않을 것이다.

"흥!"

나는 발을 앞으로 오히려 내딛으며 거리를 좁혔다. 푸르카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푸르카스의 시체마는 지금 스타킹을 두 겹이나 겹쳐놓은 구덩이에 뒷발을 디디고 있었다.

"어딜!"

나는 다리를 살짝 벌렸다. 그리고 내 가랑이 아래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새애액---!

륜이 날린 바람화살이 정확히 스타킹에 구멍을 만들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며 스타킹 덮개를 디디고 있던 푸르카스의 시체마는 자세가 무너졌고, 낫의 궤적 또한 흔들렸다.

키이이익!!

푸르카스는 억지로 나를 베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날의 궤적은 목덜미를 벗어났지만, 내 어깨에 낫을 박아넣으려는 듯 어떻게든 궤도를 조정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잠깐이나마 자세를 바꿀 수 있었다.

낫을 주먹으로 쳐올리기 위한 각도로,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비틀었다.

"우오오오!"

카---앙!!

붉은 빛이 터져나가는 내 주먹이 낫의 아랫면을 때렸다. 검날을 박살내던 것처럼 낫을 깨뜨리지는 못했지만, 낫은 내 주먹질에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흐하하!"

공격이 빗나가자 푸르카스의 푸른 안광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나는 한손에 든 도끼에 남은 전력을 쥐어짜내 높이 휘둘렀다.

"자비는, 없다!"

서걱!

내 도끼는 시체마의 목덜미 아래를 베었다. 도끼날이 10cm는 족히 파고들었고, 푸르고 차가운 피가 내 전신을 향해 터져나왔다.

푸우우우우---!!

"우욱!"

역한 냄새가 절로 몸에 진동했다. 짐승의 혈향이라도 느껴지면 그러려니 하는데, 시체의 썩은내만이 역하게 내 코를 찔렀다. 나는 구역질이 나서 급히 뒤로 물러섰다.

키아아악!

푸르카스는 시체마가 피해를 입었음에도 마치 본인이 당한 것 마냥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낫을 거꾸로 잡고 휘두르려는 기색이 보여, 나는 도끼를 전방으로 집어던지며 허겁지겁 물러났다.

카앙--!!

투척한 도끼가 낫과 부딪혀 천장에 박혔다. 나는 바닥을 굴러 썩은 피를 뒤집어쓴 로브를 벗어던졌다.

"진심으로 역겨운 새끼!!"

다른 페일라이더와 다르게 푸르카스의 혈향은 역겹기 그지 없었다. 나는 속에서 신물이 나오는 걸 침과 함께 뱉어냈다.

"퉷!"

입안이 비리고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로브를 바닥에 집어던지니 한 결 나았다. 4성 진화 이후 수많은 놈들의 피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푸르카스의 피에 절여지니 절로 로브를 입기 싫어졌다.

"세탁비, 아니 새 옷 값은 받아야겠다!"

우웨에엑!!

갑자기 푸르카스의 시체마가 피를 입으로 토하기 시작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피가 식도로 역류했나 싶었더니, 푸르카스는 투구의 눈을 가리고 나를 향해 낫을 겨누고 있었다.

키가가브바자기가라!!

"미친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주인님 그러고 계신 거 더러워서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대요."

푸르카스에게 활을 겨누며 달려온 륜이 나를 보좌하며 푸르카스의 괴성을 통역했다. 나는 푸르카스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뭐?"

키기기기씨발칸카그가가각

"뭐야?!"

륜은 역정을 내며 바람 화살을 쏘아댔다. 내 가랑이 사이로 저격하여 정확히 스타킹 덮개의 정중앙을 맞췄듯, 륜은 정확히 두 발씩 각각 시체마의 뒷 굽에 저격했다.

히히힝!!

푸르카스의 시체마는 다시 피를 토하며 구덩이로 하반신이 쑥 빠져버렸다. 제법 깊기는 해도 시체마의 덩치도 크니 두 다리가 미끄러지듯 빠져도 허벅지에서 걸리고 말았다. 륜은 활을 거두고 푸르카스를 삿대질하며 성질을 냈다.

"더럽게 어디서 배만 내놓고 싸우냐는데요? 이건 저도 화나네요. 주인님 배가 얼마나 포동포동하고 귀여운데!"

"륜아, 나 방금 거는 확실히 들은 것 같은데?"

"주인님, 저거 죽이죠!"

"물론 당연하지. ...잠깐."

절그럭, 절그럭.

푸르카스는 시체마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낫을 들고 시체마를 지키려는 듯 두 발로 섰다.

"과연. 일심동체라 이거지?"

시체가 불타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전장 전체를 쓱 훑었다. 푸르카스를 제외한 여덟 페일 라이더들은 시체마가 모두 구덩이에 다리가 빠져 움직이지 못했고, 기수들은 다들 시체마의 등허리 위에서 낫을 휘두르며 모험가 부하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크흐흐, 륜아! 그리고 부하들아, 잘 들어라!"

나는 주먹을 말아쥐고 힘차게 소리질렀다.

"이 새끼들, 말이 뒤지면 기수도 같이 뒤지는 것 같구나! 원거리에서 말을 노려!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구덩이에 그걸 던져라!"

"투척부대, 이동!!"

에일라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최종 요격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험가들이 잽싸게 나무컵을 각자 두 개씩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동굴 벽에 붙어 움직이며 페일 라이더들을 원형으로 포위했다.

"전위는 후퇴! 궁수들은 '지옥구덩이'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위협사격 개시!"

"궁수들, 말들을 집중적으로 노려! 그러면 이 새끼들 움직이지 못한다!"

에일라의 지휘에 나의 추가 지시가 곁들여지니 모험가들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며 임무를 수행했다. 하서스와 근접전사들은 금방 전열에서 이탈했고, 궁수들이 시체마들을 쏘느라 페일 라이더들은 자리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화륵.

투척병들은 나무컵 안에 불씨를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전장에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륜을 번쩍 안아들고 푸르카스에게 중지를 들어올렸다.

"오물은 소각이지. 흐흐흐."

파바박!

륜은 내게 안긴 상태에서도 푸르카스를 견제하며 바람 화살을 날렸다. 시체마를 구덩이에서 빼내려던 푸르카스의 등에 륜의 바람화살이 꽂혔다.

푹, 푹푹!

칠흑의 로브에 바람구멍이 송송 뚫렸다. 하지만 푸르카스는 시체마를 꺼내 등 위에 올라탔다. 다른 페일 라이더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그닥, 다그닥!

푸르카스는 기수를 돌려 제1 요격실-자신들이 침입해 온 포털 방향으로 달렸다.

"주인님! 저거 도망가려고 해요!"

"큭!"

작정하고 도주하는 푸르카스는 내가 문신을 켜고 전력으로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륜이 저격을 날렸지만 푸르카스의 낫에 튕겨나갈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 한 마리 놓친 건 아쉽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어!"

"투척병을 제외하고 모두 최종 요격실로 이동!!!"

에일라는 모험가들을 데리고 후퇴했다. 그리고 투척병들은 불타는 나무컵-화염병을 구덩이 속에 집어던졌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턴 언데드!"

바닥에 연결되어 있던 구덩이를 통해 무수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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