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던전은 주로 인간들이 공격을 들어오면 마물들이 공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험가들이 던전을 파괴하기 위해 공격해 들어오고, 마물들은 던전 주인의 명령에 따라 던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리고 마물들이 공세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면 던전 주인들 간의 쟁탈전이 있다. 마물들이 공세를 취하고, 반대쪽 마물들이 수비를 하는 경우가 무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솔로몬 던전 50위의 주인이자 할파스 군단의 '페일 라이더'부대의 우두머리인 푸르카스는 돌격을 하면서 보이는 상대 진영의 상태에 자신이 잘못 들어왔나 싶은 착각이 들었다.
"뭐지?"
이미 부하 페일 라이더들은 적진을 향해 낫을 휘두르려 달려가고 있었다. 적진에 있는 상대는 가죽갑옷을 갖춰 입은 인간 모험가들이 전부.
엘프 한 명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간혹 숲을 떠나 세계를 모험하는 엘프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인간 모험가 50여명 정도에 엘프 한 명 정도 있는 건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저들이 '쟁탈전의 던전'에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푸르카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했다.
제법 강한 노예병사들을 선두로 투입했지만 승전보는 없었다. 따라서 63위 던전을 상대하기에 걸맞게 군단의 간부급 던전 주인 중에서 가장 등위가 낮은 푸르카스가 부하들을 이끌고 던전을 달렸다.
적의 마물들을 죽이기 위해 왔더니, 마물은 없고 인간 모험가들만 있더라.
'혹시 안드라스가 모험가들에게 잡힌 건가?'
쟁탈전이 발생하기가 무섭게 위에서 안드라스가 인간들에게 잡혔다면 얘기는 너무나도 쉬워진다. 인간들을 때려잡고 안드라스를 구출, 할파스에게 진상하면 푸르카스는 적어도 40위대의 이름을 하사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차피 적은 인간이야.'
인간은 죽이는 것. 그건 마물들에게 있어 뼈에 각인된 본능이며, 자신의 페일 라이더들은 그런 죽음을 선사하는 사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다.
'한 번에 쓸어버리겠군'
성검을 사용하는 용사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인간도 페일 라이더들의 돌격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까아아아아아----!!
선두의 페일 라이더가 낫을 높이 치켜들며 휘두르려던 그 순간,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두 명이 튀어나왔다. 한 명은 찌그러진 전신갑옷의 2m 거인,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오크?!"
갈색 로브를 입은 배불뚝이 오크가 뛰쳐나와 쌍도끼를 들고 페일 라이더 부대와 정면에서 맞딱뜨렸다.
"오크가 왜 거기서 나와?"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오크가 튀어나오다니. 설마 그 소문으로만 듣던 사육된 노예 오크인가? 푸르카스가 인간들의 잔혹함에 치를 떨던 순간-
"""라스으으으!!"""
정체 불명의 함성과 함께, 오크와 거인이 페일 라이더들의 돌격을 몸으로 막아냈다. 검은 로브의 사신들이 탄 창백한 말들은 오크와 거인을 향해 정면으로 대가리를 들이받았다.
"우오오오!!"
콰아아앙!!
두 거구는 페일 라이더들의 진격을 힘으로 막아냈다. 전력으로 달리는 기병 돌격을 무식하게 몸으로 막아내는 오크와 거인은 스스로 바리게이트가 되어 페일 라이더들을 막아냈다.
히히힝!!
"미친?!"
막아냈다. 그들은 몸이 살짝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직진으로 달려오던 기병의 돌격을 힘으로 맞받아친 것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둘은 그것 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라스으으!!"
정체 불명의 기합과 함께, 얼굴의 붉은 문신을 반짝이는 오크는 오른손의 도끼를 휘둘러 말의 모가지를 그어버렸다.
푸우우웃!!
반듯하게 잘린 단면에서 푸른 피분수가 치솟아올랐고, 오크는 그 피를 그대로 뒤집어쓰며 다른 도끼를 휘둘렀다.
카앙!
페일 라이더의 낫이 오크의 도끼와 맞부딪혔다. 소름끼치는 금속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고, 페일 라이더는 낫을 수습해 수평으로 휘둘렀다. 오크의 몸통을 두동강 낼 기세였다.
서걱!
페일 라이더의 낫은 로브를 잘라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허리는 자르지 못했다. 오크는 씩 웃으며 페일 라이더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등골 브레이크!!"
서걱!
오크는 페일 라이더의 척추뼈를 도끼를 휘둘러 잘라버렸다. 서로 허리를 두동강 내려고했으나, 오크만이 페일 라이더의 허리를 가로로 잘라버렸다.
퍼어억!
옆에있던 풀플레이트의 거인 또한 페일 라이더의 골반을 잡고 척추뼈를 뽑아버렸다. 낫에 의해 잘려나간 건틀릿의 아래에는 얇고 검은 토시같은 것이 눈에 보였다.
"젠장! 후속은 좌우로 회피, 진격!"
선두의 두 기수가 삽시간에 당한 걸 확인한 푸르카스는 목청껏 소리쳐 부하들을 산개시켰다. 오크와 거인이 가운데에서 틀어막음으로써 뒤따르던 페일 라이더들은 좌우로 기수를 돌려야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들의 일제 사격을 몸으로 받아내야했다.
"사격, 개시!"
파바바박!
볼트와 화살이 사정없이 난사되며 페일 라이더들을 덮쳤다. 인간들은 간교하게도 페일 라이더들이 탄 말들을 집중적으로 저격하며 바닥에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히히힝!!
안그래도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던 말들은 화살에 벌집이 되어 땅에 곤두박질 쳤다. 위에 타고 있던 기수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우오오오!!"
오크는 무식한 힘을 이용해, 거인은 기형적으로 긴 두 팔을 이용해 말에서 떨어지려던 기수들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오크에게 잡힌 기수는 뼈째 으스러지며 힘없이 떨어졌지만, 거인에게 잡힌 기수는 낫을 휘둘러 거인의 투구를 후려쳤다.
서--걱!!
투구가 사선으로 잘려나갔다. 푸르카스는 금방 하나를 죽인 것에 약간이나마 만족했다. 이제 하나 둘 죽여나가면-
"구울?"
크르르!
머리에 단면이 생길 정도로 살짝 잘려나간 거인은 갑옷을 입은 구울이었다. 그 광경은 푸르카스가 정신이 살짝 나가게 만들었다.
오크와 구울이 인간들의 앞에 서서 방패병이 되고, 인간들은 그 뒤에서 엘프와 함께 그들이 맞지 않도록 조준사격을 한다?
"내가 지금 쟁탈전으로 공격 들어온 거 맞나...?"
모험가 집단이 오크와 구울을 노예로 삼았거나, 아니면 적 던전의 주인이 인간들을 전력으로 써먹는 변태거나. 어느쪽이든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퇴각!"
푸르카스의 명령에 따라 페일 라이더들은 기수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 * *
"페일 라이더? 그거 스켈레톤 ★★★계열인데. 와, 미친. 그럼 푸르카스 새끼 할파스에게 붙은 거네."
그레모리는 샤이탄으로부터 전해진 정보에 기가 찼다. 던전 주인들끼리 서로 알음알음 알고 지내는 사이이기는 했다만, 푸르카스는 누군가의 아래에 들어가 선봉에 설만한 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게 틀림없었다. 파후우와 샤이탄이 같은 추측을 내리고 있듯이, 그레모리 또한 확신에 가깝게 추측하고 있었다.
"적은 군단이야."
사실상 타 군단과의 첫 전투나 다름없었다. 자신에게는 아미가 포털을 열었지만, 파후우의 던전은 할파스가 직접 포털을 열었다.
'사흘간 공세가 계속 이어지고, 하루 휴식. 그리고 그 뒤에는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겠지.'
분노의 군단은 과연 할파스의 군단을 상대로 이겨낼 수 있을까. 그레모리는 상대의 전력을 어느정도 알고있기에 절로 불안했지만,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살아남는게 이기는 거야.'
파후우는 부하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던전의 주인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 정도 의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그레모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후후, 집 털리고 오면 내가 받아줘야겠는걸. 후후후."
"무엇으로 받아주시겠다는 말씀이신지."
"아래로 흘리는 눈물 받아주겠다는 거지. 잘 왔어, 얘. 볼 때 마다 참 아빠랑 엄마랑 할아버지랑 안 닮았구나."
"칭찬이십니까?"
"물론이지."
정장의 성기사, 갤러해드는 바닥에 팔딱거리던 불타는 뱀을 짓밟으며 원군으로 도착했다. 구두에 아른거리는 신성력의 잔향에 그레모리는 아찔함을 느꼈다.
이 전투, 자신의 승리다.
"빨리 정리하고 본진 지원을 가야해."
"모험가들을 본진이 지원 보내셨지 않습니까?"
"그걸로 부족해. 페일 라이더 놈들이라면 최소 3~4성은 기본이란 말이야."
그레모리는 짧게 언데드 마물들의 특징을 언급했다. 2성까지는 평범하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3성부터 개별 종족의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더라.
"말과 스켈레톤이 한 세트지. 혹시 검은 스켈레톤 봣니? 할파스는 부하들을 자기 고유 색깔인 검은색으로 칠하게 만드는 변태같은 새끼야. 검은 개체가 나올 때까지 파종을 선별하고 선별했지."
"그럼 안드라스에게 발정났다고 하는 건 안드라스가 검기 때문입니까?"
"아니. 원래 하피였던 애를 강간하고 안에 씨를 집어넣었어. 저주까지 내렸지. 그 어떤 정자를 받아도 자기 씨만 낳을 수 있도록. ...군단장께서 안드라스를 죽이는 걸로 친히 할파스를 엿먹여버렸지만! 깔깔."
"......안드라스 님, 그러니까 지금의 안드라스 님이 위험하지는 않겠습니까?"
갤러해드는 불안감에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전혀. 할파스가 전 안드라스를 그냥 가지려 한 줄 아니? 이복동생이었어. 다들 모른 채 쉬쉬하기는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군요."
"그치? 다들 발정난 새새끼라고 온갖 쌍욕을 해댔다니까. ...덕분에 우리 군단이 지금 엄청 피해를 입게 되었지만."
안드라스 던전 덕분에 파후우의 군단은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지만, 모든 일에는 항상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분노의 군단은 안드라스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 대신, 할파스의 일방적인 기습 선포를 사흘간 얻어맞아야 했다.
"장기전이 될 거야. 행여나 인간 놈들이 라스베가스를 습격하기라도 한다면, 어딘가 하나는 포기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최대한 여기를 빠르게 정리해야 해. 갤러해드, 아미 놈 보이면 바로 죽여버려."
"......그레모리 님. 제게 하나 꾀가 있습니다."
갤러해드는 뽑아든 검에 신성력을 흩뿌리며 사납게 웃었다.
"꼭 아미를 죽일 필요...없지 않습니까?"
"......."
그레모리의 표정은 굳었다.
* * *
사각, 사각.
빛 한 점 없는 공장에 베 짜는 기계 하나가 덜그럭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달빛에 모든 시야를 의지하며 실을 뽑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노인은 검은 비단을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에는 땀이 흐르고 눈에는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왔지만,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어르신!"
공장의 문이 발칵 열리고, 한 여인이 성큼성큼 노인을 향해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오크들이 다 빠졌습니다! 남은 오크 경비는 고작 열이 안 되어요!"
여인은 두 팔을 벌리며 환희했다.
"이제 저희도 도망칠 수 있어요! 오늘 밤이 기회라고요!"
"......."
자비야바를 탈출하지 못하고 떠나기를 포기했던 이들. 오크와 온갖 마물들의 비호 아래에 지내왔으나 그들 중 일부는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제 더이상 지나가다가 인간과 마물이 떡치는 걸 보지 않아도 된다고요! 어르신, 오늘밖에 기회가 없어요!"
"나는 가지 않는다."
"어르신!!"
"갈 거면 너와 네 무리가 떠나라. 나는 이제 이곳에서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노인, 조합장은 양초에 불을 붙였다. 붉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며 주변을 밝혔고, 노인의 주변에는 온갖 도안들이 바닥에 즐비하게 깔려있었다. 여인은 도안 하나를 집어들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가 중요해요!"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하다. 내 평생 40년의 인생을 옷감 만드는 일에 바쳐왔어. 그 40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은 모두 오늘 이 날들을 위함이었던 게지."
"어르신!!"
"나는 왜 이런 옷을 생각해내지 못했는가. 얘야, 나는 금기에 손을 대고 말았단다. 이제 더이상 그가, 그 오크가 주는 금단의 지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조합장은 바닥에 고이 놓인 양피지를 꺼내들었다. 오크가 깃털펜을 이용해 그린 그림에는 인간의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옷이 스케치되어 있었다.
"이걸 보아라. 내가 어찌 이걸 두고 갈 수 있겠느냐."
"도대체 이게, 이딴게 뭐길래!"
"아아."
노인은 광기에 가득찬 얼굴로 도안을 집어들었다.
"이것은 '스쿨미즈'라고 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래쉬가드 하려다가 그냥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