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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231화 (231/800)

# 231

<-- 44일차 -->

안드라스 스타킹을 방어구로 착용했어도 병력의 질에서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우리 군단의 오크들이 정예병이라고 하더라도, 38위가 보낸 병사들을 상대로 전사자가 상당하다는 건 치명적인 문제였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어떠냐. 적의 병력들이 본대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정찰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에일라는 고블린-미노타우루스-검은 스켈레톤의 무리가 본대가 아님을 확신했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고, 반론을 펼치는 이는 없었다.

"할파스가 병력들을 던졌다고 봐야지."

우리 군단의 전투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내가 상대를 이겨먹기 위한 확실한 전력을 초장부터 투입하여 적을 정면에서 때려부수는 타입이라면, 할파스는 병력을 버림패로 던져 간을 본 것이다.

'죽으면 부활시키면 된다는 마인드군. 부활을 시켜줄 지도 모르지만.'

사망한 고블린, 미노타우루스, 검은 스켈레톤의 수가 대략 50이었다. 교환비는 우리측에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교환비라고 표현을 하는 순간부터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을 죽으라고 던지다니. 이해할 수 없군."

정찰 부대를 이용해 진지를 구축하고 적 전력을 관찰하는 것도 아니고, 병사들을 축차투입하려는 것이다.

★로 안 돼? 그러면 ★★ 투입.

★★로도 안 돼? 그러면 ★★★ 투입.

★★★로 안 돼? 그러면 ★★★★ 투입.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부하들에 대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병사들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이 아닌 던전 주인으로서의 권위와 힘의 차이로 인한 공포로 다스리는게 틀림없다. 설령 아니어도 그게 없잖아 있을 것이다.

"이건 운명이군. 나는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게임도 아니고 살아있는 존재들을 이런 식으로 던지다니. 나는 절로 할파스의 병력 운용 방식에 화가 치밀었다. 꽉 말아쥔 주먹이 쓰라리다 싶더니,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인님, 진정하세요."

"진정은 한다.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 한 마리의 시체를 보니 꼭 포르네우스에게 굴려졌던 3년 동안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때도 어디 이상한 곳에 투입되면 살려고 아둥바둥 발버둥을 쳤었지.'

어찌할 수 없는 권위적인 존재에 의해 치여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들어야만 하는 부하. 저 고블린과 다른게 있다면 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고블린은 살아남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 중요한 문제도 있지. 저것들의 상태.'

그리고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라스군의 스타킹 아머 부대와 달리, 통일성없이 아무렇게나 챙겨입은 저 조잡한 선봉대의 상태였다.

"에일라. 네가 보기에 저 놈들은 어디의 부하들 같으냐?"

"......군단의 부하들이라는 의미는 아닐테지요. 주인님, 혹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구나."

전쟁에 있어서는 에일라의 안목이 가장 뛰어났고, 에일라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통일되지 않은 복장, 진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구성, 아무렇게나 던지듯이 보낸 선봉대."

"다른 세력에서 갓 영입한 놈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거지."

에일라와 나의 추측에 다른 부하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내가 플라우로스 던전을 점령한 이후, 다른 던전에 하극상을 벌일 때 화염 표범 수인들을 전부 다 투입한 격이나 다름없었다.

승리하고 돌아오면 살려는 드릴게.

패배하면 당연히 죽는다.

'콜로세움에 들어간 노예 검투사들이 이런 심정인가?'

그리고 우리 군단이 패배한다면 모든 부하들이 노예로 끌려갈 것이다. 과한 걱정이 아닐까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거의 정답에 가까웠다.

"젠장, 일단 할파스의 군단은 지하 1층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틀어막는다. 샤이탄, 그레모리 쪽은 어떻게 됐지?"

"한 차례 전면전을 펼친 이후 아미가 한 번 물러섰다고 합니다. 아미가 직접 넘어왔지만 그레모리가 직접 나서기에는 곤란하다고 합니다."

"왜? 목장 때문에?"

"예. 전면전이 발생하게 되면 목장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하여...."

"칫."

그레모리 쪽을 빠르게 정리하고 이쪽으로 전력을 집중하려고 했건만 그것도 무리가 있었다.

'그레모리 목장이 파괴되면 끝장이다.'

임진왜란에서 의병들이 전라 곡창지대만큼은 목숨을 걸고 사수했던 것처럼, 우리 라스군의 운영 근간이 그레모리 던전에 집중되어 있다.

의. 깃털을 뽑아낼 수 있는 안드라스와 하피들의 대부대가 그레모리 던전에 등록되어 있으며,

식. 그들이 낳는 알들은 우리 군단의 인간이나 비조류 계열 마물들의 주요 식량이었으며,

주. 우리 군단의 수용 인원 중 70% 가량이 그레모리 던전에 등록되어있었다.

'이 던전이 점령당하더라도 그레모리 던전으로 도망치려고까지 계획했었지.'

그레모리 던전에 포털이 열린 것은 상당히 뼈가 아팠지만, 그렇다고 내 던전에 열린 할파스의 세력에 꽁지빠지게 도망칠 수는 없었다.

"암두시아스가 돌아오는대로 그레모리에게 전갈을 날려라. 뒷 일은 신경쓰지말고 아미를 죽여버려도 된다고. 처녀든 뭐든 상관없다. 일단 그레모리와 던전이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갤러해드까지 지원을 보냈으니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레모리가 무사히 적 병력들을 물리친다는 전제하에, 나는 이제 할파스 군대의 제 2파를 막아낼 준비를 해야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역한 죽음의 기운이 벽 너머에서 울려퍼지는 것만 같았다.

"샤이탄."

"예, 왔습니다. ...할파스 본인은 아닌 듯 하지만."

"그럼 군단의 하수인이겠지. 할파스의 부하이거나, 아니면 한 때는 던전의 주인이었다가 할파스의 아래에 들어갔다거나."

할파스가 믿고 맡기는 놈들을 투입했다는 걱정도 들었지만, 결국에는 어떤 놈이 되었든 죽여야 했다.

"에일라, 부활한 오크들이 다시 싸울 수 있도록 재정비를 갖추도록 하여라. 샤이탄, 있는 마석들 다 긁어모아서 오크들 부활시켜.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주인님, 이미 마석은 다 사용했습니다."

"구하면 되잖냐. ...조금 힘들겠지만, 부탁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상황이 힘들기는 했지만 아직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 하루가 지났다. 자정이 되자마자 적이 2번째 웨이브를 보냈듯, 우리 또한 날짜가 넘어가며 기회를 얻었다.

서브 던전에서 마석을 파밍할 기회를.

"퍼시발, 랜슬롯, 아그라베인은 부대를 이끌고 각각 안드라스, 슬라임, 스켈레톤 서브 던전에서 마석들 다 긁어와! 세 번씩 횟수 채우기 전까지는 내려오지 마라! 아그라베인은 스켈레톤 던전 뺑뺑이 끝나면 퍼시발분대와 합류! 마석만 챙겨!"

마물들을 잡아서 나오는 슬라임 점액이나 깃털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샤이탄, 오크들이 마석을 긁어모아오면 죽은 부하들을 부활시켜라! 최우선 부활 대상은 라스투자드! 라스투자드가 부활하면 적 병력들을 구울로 활용하겠다! 시간을 벌테니 우리 군단의 전사자들을 부활시켜! 지금 당장 이동해라!"

"""예!!"""

세 오크 분대장들은 신속히 자신의 분대를 이끌고 자리를 이탈했다. 랜슬롯마저도 상황의 중대함을 인지하고 1층으로 올라갔다.

"주인님, 올라가기 전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샤이탄은 계단을 올라가기 직전 몸을 돌려 내게 물었다.

"혹시 직접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물론."

"...그렇다면."

샤이탄은 날개를 펼쳐 내게 날아왔다. 무슨 짓을 하려는가 싶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쥬니어가 있는 바지 앞섶의 위에 짧게 키스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내 입에다가 키스하고 '무운을 빕니다'라고 하지 않냐?"

"예. 하지만 저는 그런 건 싫습니다. 대신 이렇게 하죠. 이 싸움이 끝나면...꿈과 현실 더블 펠라를 해드리겠습니다."

샤이탄은 선수를 치고 1층으로 달아났다. 샤이탄의 앙큼한 짓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타킹 아머의 착용을 마친 륜도 샤이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가 내게 몸을 돌렸다.

"참고로 현실의 펠라는 제가 할 거예요."

"무조건 살아남아야겠구나. 흐흐흐."

죽을 생각도 없지만 전투에 대한 긴장감이 다소 해갈되는 듯 했다. 꿈 속의 사이단과 현실의 륜이 동시에 하는 봉사를 받으려면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면 가자. 에일라, 검술 연습은 충분히 해뒀느냐?"

"물론입니다. 주인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에일라는 검을 치켜올렸다. 믿음직스럽고 용맹스럽기는 했지만, 에일라는 후방에서 지휘를 할 때 가장 아름답고 멋진 존재였다.

"에일라, 네게 나의 지휘를 맡기마."

"예?"

"나를 네가 부리는 병사라 생각하거라. 네가 적의 2파를 막는 수비대의 분대장이다. 라스가 있는 곳이 곧 라스베가스라고 하지 않았느냐? 라스베가스의 수비대장은 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에일라는 잠시 뜸을 들였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나나 에일라나 전략적 식견은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적을 찌르는게 내 전문이라면, 에일라는 공격을 받아내는게 전문이었다.

"현재 저희 수비대의 핵심 전력은 주인님, 륜, 그리고 하서스."

크르륵.

하서스는 찌그러진 풀플레이트에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우리 군단 전체가 스타킹으로 무장했고, 우리의 방어력은 한층 올라갔다.

"가용 병사들은...마물 사냥꾼 50."

"원군입니다."

지하 1층으로 내려오는 모험가들의 선두에는 가죽갑옷을 차려입은 릴리가 있었다. 석궁을 손에 든 릴리는 가죽갑옷 아래 스타킹 아머를 받쳐 입고 있었다. 다른 라스촌 사냥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희가 어떻게?"

하지만 그 뒤에 선 모험가들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정의 길을 택하지 않은 여성 모험가들, 그리고 후에 있었던 라스베가스 수성전에서 포로로 붙잡았던 모험가들. 그들이 릴리의 뒤에 무기를 든 채 서있었다.

"제가 모았습니다."

에일라는 릴리의 옆에 서며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기 위해 함께 싸우자. 인간과 마물이라는 종의 차이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리를 죽이려고 드는 저 간악한 마물들을 토벌하자. ......모두는 설득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간신히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군단장."

모험가들 중 가장 강해보이는 두 남녀가 앞으로 다가왔다. 남자쪽은 모르겠어도 여자 쪽은 지나가다가 내가 가슴이 착해서 기절시켰던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모험가입니다. 보수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자들이요.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그에 합당한 보수를 하사하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자유?"

"...크흠."

남자는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그에 여자쪽이 고개를 치켜들며 당당히 소리쳤다.

"거 왜 말을 못 해? 군단장! 우리 승리하면 거기 잘생긴 오크 하나만 나한테 한 번 빌려주세요!"

"어째서?!"

"라스하게!"

"좋다, 고용한다! 한 번이 대수냐! 하루 전세 대절도 해주마!"

그런 보수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었다. 뒤에 있는 모험가들도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능글맞은 얼굴로 나를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슬라임, 오크, 고블린, 안드라스, 하피, 서큐버스 등등 뭐든지 말만 해라! 선만 안 넘으면 얼마든지 하게 해주마! 물론 상대의 허락을 받아야겠지만!"

내 선언에 몇몇 모험가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나는 그 아련한 눈빛을 보고 잽싸게 말을 덧붙였다.

"이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는 자들은 포로가 아닌 우리 군단의 일원으로 정식으로 영입하겠다! 아니, 너희들은 이미 우리 군단의 일원이다! 적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이상 부하든 포로든 상관없어! 나를 따르라! 공주 기사의 지시에 따르라! 내가 너희들의 선두에 서겠다!"

다그닥, 다그닥.

기나긴 통로의 너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에일라가 가져온 양날도끼 두 자루를 각각 손에 쥐고 적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마! 너희들은 부하가 아니기에 부활하지 못한다! 그러니 죽을 것 같으면 도망쳐라! 살아라!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나는 문신을 활성화하며 소리쳤다.

"라스베가스에 집 한 채씩 내어주마! 군단의 안에서 마음에 드는 짝이 있으면 결혼하든지! 인간끼리도 좋다!"

환호는 없고 동요만 있었다. 하지만 그 동요는 혼란의 동요가 아닌, 기쁨으로 인한 당황이었다. 나는 모험가들에게 승리에 대한 수당으로 군단의 일원으로서의 '자유'를 약간의 보상과 함께 제시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은 시점.

다그닥, 다그닥!!

"에일라-----!!"

"전 궁수, 전방을 향해 일제사격!"

"""라스으으으!!!"""

수많은 화살과 볼트들이 달려오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검은 죽음의 사신들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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