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쳇, 루나포로도 다 쓸어버릴 수 없다니. 바퓰라 녀석 도대체 얼마나 세력을 많이 모은 거지?"
루나의 신성력이 모두 다 닳아버렸다. 내가 라마즈 호흡법으로 힙-힙-후-의 박자로 루나포를 짧게 끊어서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마물들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거 무조건 그런게 있다. 그거."
"그게 뭔데?"
"어디서 이런 거북이랑 지네가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스폰이 있는 거지."
콰득!
나는 바닥에서 튀어나온 거북 마물의 대가리를 걷어찼다. 그 형태가 워낙 귀두같아서 나는 괜히 소름이 끼쳤다. 원래 귀두가 거북이 대가리에서 따온 말이기는 했지만, 저 마물들의 머리는 진짜로 귀두 같았다.
"이 놈들, 진짜 미쳐버리겠네. 물량전인 줄 알았으면 너 집에서 쉬게 하고 나머지 부하들 싹다 끌고오는 건데."
"그러게나 말이야."
거북과 지네는 정말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 수가 한 번 웨이브를 치울 때마다 몇십 마리씩 튀어나왔다.
'빨리 끝내고 가려고 했더니 낭패군.'
루나의 신성력 레이져가 있으면 금방 전투가 끝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루나가 한 번 호흡을 할 때마다 적들은 일거에 쓸려나갔다.
"주인님, 전방에 적 출현이에요."
"나 조금 회복된 것 같은데 쏠까?"
"아니. 지금 간보는 거야. 제법 머리 돌아가는 놈이군."
하지만 적도 마냥 멍청이는 아닌 듯, 아주 효율적으로 병력을 우리들에게 꼴아박고 있었다.
"여차하면 루나포를 쏜다.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손으로 대처해."
다른 부하들 만으로 대처하기에는 수가 조금 많지만, 루나의 신성포를 사용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양의 병사들을 연이어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중간중간 뒤에서 습격을 해대니, 마냥 루나포를 쏘기에도 난감했다.
"빨리 적 대장 놈을 잡아다가 뚝배기를 깨야하는데."
"길의 형태가 미로는 아니고 계속 이런 식인 것 같아요."
"내 구역이랑 되게 비슷하네. 지하 1층도 딱 이런 구조 아니야."
꼬불꼬불 돌아가는 길이 계속 이어지고 연이어 나타나 길을 막는 병력들. 우리는 그냥 다크엘프들이 시간을 버는 용도로 싸우는게 어떻겠느냐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 땅밑에서 튀어오르는 적들이 넘쳐나니 귀찮기는 하지만 재미가 있었다.
"우리도 나중에 돌아가면 이런 식으로 병력들 배치하면 되겠군."
"얘네들 영입하려고? 나 그건 좀 그런데."
"슬라임 드래곤들 있잖냐. 발을 헛디뎌서 구멍에 빠지면 바로 슬라임 드래곤 입속으로 들어가서 납치당하는 거지."
역시 다른 던전들을 보니 우리 던전을 어떻게 꾸며야 할 지 아이디어가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바퓰라는 적어도 내게 이런 구조의 던전에서 어떻게 하면 적을 빡치게 만들 수 있는지 몸으로 철저히 알려주고 있었다.
"주인님, 슬슬 다 와가는 것 같아요."
륜은 귀를 쫑긋 세우고 적진을 주시했다. 우리는 제법 많은 양의 거북, 지네를 때려잡았고, 길의 끝에는 내 예상대로 마물들을 뿜어내는 하이브가 있었다.
"어우."
겉이 꾸멀꾸멀 거리며 피막처럼 감싸여진 산봉오리에는 두 종류의 알들이 산등성이에 마구잡이로 붙어있었다. 알의 개수만 적어도 수백은 넘어보였고, 알은 끊임없이 정상의 분화구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갤러해드."
"예."
"지져."
내 지시에 따라 갤러해드는 검을 들어올려 신성력을 은은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은빛의 신성력은 알들을 향해 퍼져나갔고, 신성력이 닿은 알들은 금방 껍질이 파괴되어 알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군단장님, 저도 돕겠습니다."
"오냐."
기네비어는 철퇴를 들고 알들을 향해 크게 내리쳤다. 신성력이 담긴 파장이 퍼져나가며 알들을 전부 터뜨려버렸다.
'경험치 파밍은 제대로 되겠네.'
아무리 적은 양이라고 해도 저렇게 수천 마리는 되어보이는 양을 때려잡으면 오르지 않을까. 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오르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파삭, 파사삭, 파삭!
날치알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알들은 빠르게 제거되었다. 갤러해드가 검을 좌우로 휘두를 때마다 알들은 수십 개씩 사라졌고, 기네비어가 철퇴를 내리칠 때마다 한 구역이 사라졌다.
"어?"
륜은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온 알 하나를 가리켰다. 제법 색이 영롱한게 부화시키면 3성 이상은 넘어보였다.
"주인님, 이거 들고가면 저희 던전에서도 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거북이랑 지네 괴수 데리고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 거북이는 용봉탕 정도로는 쓸 수 있겠다."
물론 대가리는 자르고 끓여야 먹는데 아무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병력으로 활용하자면 지하 1층에서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적당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도 그렇고 루나도 그렇고 둘 다 별로였다.
"군단장님!"
오른쪽을 때려부수던 기네비어가 안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안에 누가 있습니다!"
"오호."
"여자입니다!"
"우효오!"
나는 바로 앞으로 달려가 피막 사이로 손을 찔러넣었다. 자세히 달려와 안쪽을 보니, 산이라기 보다는 피막으로 이루어진 천막이나 다름 없었다.
"실례합니다-!"
찌짖, 찌지직.
나는 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우."
천사날개가 달린 금발의 여인이 나신이 된 채 지네 마물들의 사슬에 묶여있었다. 천사 여인의 배는 파종이라도 된 것 마냥 부풀어있었고, 여인은 몽롱한 얼굴로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보지마! 제발!"
"낳냐?"
"아, 안 돼, 응기이익!!"
천사 여인은 눈을 까뒤집으며 침을 질질 흘렸다. 동시에 볼록 튀어나온 배가 부글부글 끓더니, 아래로 수십 개의 작은 알들을 후두둑 쏟아냈다.
"흐아, 하아, 하아아...."
여인은 풀린 눈으로 기절했다. 여인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네들은 그 알들을 하나 둘 물고 우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래도 잡혀서 강제로 당하고 있던 모양인데. ...그것도 지네한테."
"마정석이라는게 들어간 걸수도 있어요. 어느쪽이든...강제로 낳는 건 마찬가지지만."
"...좀 그렇군."
나는 지네의 틈바구니에 파묻힌 천사 여인을 보며 한 번 더 반성했다. 행복라스 원칙이 따라 우리 군단은 포로들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강제로 알 낳는 기계마냥 만들지는 않았다.
"루나야."
"응."
루나는 천사 여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사 여인은 다크엘프가 자신의 앞에 앉은 것에 공포에 질렸지만, 아랫배에 떠오르는 은은한 성흔에 입을 서서히 벌렸다.
"아, 아아...."
"여신이시여."
파사사삭!
하복부에서 퍼져나간 신성력이 루나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지네 마물들은 알을 입에 문 채 바로 찌그러졌고, 천사 여인은 지네로 이어진 쇠사슬에서 떨어지자 마자 엎드려 절했다.
"아, 아아아!"
"당신의 아이에게, 신의 은총을."
파아아앗!
루나의 온몸에서 뿜어진 신성력이 하이브 전체를 덮쳤다. 나는 륜을 데리고 잽싸게 밖으로 빠져나왔고, 루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넓게 퍼진 신성력은 하이브와 근처의 알, 그리고 바닥의 지네 마물들을 모두 소멸시켜버렸다.
우우웅.
잠시 빛무리가 사그라들고, 나는 간신히 시야를 회복하고 앞을 쳐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바닥에 꿇어앉아 기도하는 루나와 엎드린 천사 여인만이 존재했다.
"이름이 뭐냐?"
"......."
천사 여인은 내 질문에 우물쭈물하며 답을 하지 않았다. 나와 루나 사이의 관계를 추측하는 듯한 눈빛이었고, 나는 루나의 뒤로 다가가 볼에 키스를 하고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냐?"
"...발라크라고 하옵니다."
"62위군. 반갑다. 나는 분노의 군단 주인이니라. 이 다크엘프는 우리 군단의 엘프 여왕이니라."
"아...."
군단의 주인. 비록 인장은 지금 본진에 두고왔지만, 감히 그 누구도 군단의 주인을 사칭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발라크는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부,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발라크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부디 바퓰라를...죽여주세요!"
털썩. 발라크는 기절했다. 긴장의 끈이 놓여서 그런지 몰라도 도저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야, 정신차려. 정신 차리라니까?"
"주인님, 완전히 마음 놓고 기절한 것 같아요. 일어날 것 같지 않은데요?"
"잡혀서 강제로 알을 낳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네가 구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안심하는 거 아냐?"
"음...."
구해줄 생각이 있었다기 보다는 우연찮게 발견한 거나 다름 없었지만, 어쨌든 구하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첫 발견자인 기네비어에게 발라크를 맡겼다.
"갤러해드와 너는 이 여인을 지키고 있거라. 나는 륜과 루나를 데리고 바퓰라의 대가리를 으깨고 올테니."
"저희가요?"
"그래. 설마 이런 상황에 놓여있던 여인을 강제로 취하거나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물론입니다. 안심하고 맡겨주십시오."
갤러해드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 발라크에게 입혔다. 기네비어 또한 자신의 사제복을 벗어 발라크가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바닥에 깔았다. 역시 갤러해드의 신사 유전자는 기네비어에게서 내려온 게 분명했다.
"그럼 가자."
나는 동굴 벽에 손을 올렸다. 문신까지 활성화하여 전신이 붉게 달아올랐고, 발라크가 가리켰던 동굴 벽을 손으로 꾹 눌렀다.
구구구.
동굴 벽이 스르르 좌우로 열렸다. 쟁탈전이 아니었다면, 아마 일반 침입자들은 방금 전의 하이브가 던전의 끝이라고 착각했을 게 분명했다.
"악취미군. 바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니 말이야."
"크흐흐, 군단의 주인이여. 너는 스스로를 과신했구나."
공동의 맞은편에는 집 채 만한 크기의 사자가 나를 향해 이빨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등에는 아이보리색 날개가 달려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작은 사자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수는 고작 20. 나는 적-바퓰라 군을 확인하고 발라크가 왜 알공장으로 쓰였는지 깨달았다.
"너, 발라크의 군대를 그대로 흡수했군. 그리고 네 던전의 방패막이로 사용했구나."
"그렇다. 약자라면 응당 강자의 룰에 따라야하는 법. 감히 우리의 영역을 침입한 자이거늘 어찌 우리가 동정을 베풀 수 있단 말인가?"
"하극상을 일으켰다고? 그럼 그럴 수 있지."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손을 풀었다.
"죽이든 능지처참을 하든 아니면 노예로 부리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 감히 내 영역에 침입한 자들인데, 응당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나는 뒤에 기절한 발라크를 가리켰다.
"행복이 없는 라스를 하는 자,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행위도, 쾌락도 없이 낳기만 해야하는 기계로 만들다니! 네놈은 던전 주인 실격이다!"
까드득. 바퓰라는 내 지적에 이빨을 갈았다. 하지만 나는 저 놈을 용서할 수 없다.
"네 놈, 천사라고 박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 외도다! 사도야! 마물이 천사를 잡았다면 취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걸 하지도 않고 그냥 놔둔 채로 알만 낳게 하는 공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라스의 주인으로서 용서할 수 없도다!"
"...그러니까 발라크랑 교미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건가?"
"당연하지!"
"미친 놈."
바퓰라는 고개를 오연히 치켜들며 나를 내려다봤다.
"왕이란 자고로 정점에 서있는 자! 그렇다면 그 왕의 곁에는 그 격에 어울리는 품격을 가진 존재가 있어야 하는 법! 어찌 여신을 따르는 천사 주제에 던전의 주인이 되어 벌레들을 부리는 자를 나의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자여! 천사가 던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마족이 되기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타락 천사라니, 그 얼마나 꼴리는 단어인가! 너는 저 여인의 의기를 모르겠느냐!"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더 크게 소리쳤다.
"스스로 타락하여, 네가 말하는 벌레들을 수하로 부려야했을 정도로 저 여인은 절박했다! 그런 절박한 여인을 이기고 나서 나의 하수인으로 만든 다음, 생존을 약속하며 취하는 것으로 온전히 나만 바라보게 하는 여인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던전 주인의 품격임을 왜 모르냐 이 말이다! 그리하여 씨를 뿌리고 새로운 부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던전 주인이니라!"
"미친 놈이군. 그렇다면 너는 저 년의 아래에 네 것을 박을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하지!"
"크하하하!"
바퓰라는 건방지게도 나를 향해 폭소했다.
"전직 천사였던 년이다! 아직까지 그 안에 신성력이 한가득 남아있단 말이지! 그런데 넣는다고? 미친 놈!"
"신성력이 두려워서 넣지 못한다고? 어리석은 놈!"
나는 루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루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보란듯이 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루나가 바퓰라를 등지는 자세였다.
"보아라! 신성력에도 굴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자, 그것이 진정한 던전 주인일 것이니!"
"뭐, 뭐 하는 거냐!!"
"라스다!"
붉게 물든 내 자지가 루나를 꿰뚫는 것과 동시에, 루나의 몸에서 신성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따갑기 시작하고, 바퓰라 무리들은 눈을 깔며 물러섰지만, 내 자지는 뜨겁게 달아오른 루나의 안을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괄목하라! 이것이 던전 주인의 품격, 군단의 주인의 품격이니라!"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것.
고작 신성력 따위로, 나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