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225화 (225/800)

# 225

파후우가 새로운 전장을 노리고 있고, 남작이 꿈의 내용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던 그 시각.

"후훗, 좋았어?"

"예...."

청년은 천국을 맛보았다.

요정은 청년을 요정들이 사는 라스토피아에 데려다주었고, 청년은 그곳에서 모든 번뇌를 털어놓았다.

색욕은 곧 번뇌라고는 하지만, 고환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뽑아내니 번뇌 자체가 쌓일 일이 없었다. 그리고 신체에 남은 잔여 피로감도 요정의 손짓에 금방 풀려버렸다. 요정은 청년의 종아리 안쪽을 꾹꾹 누르며 웃었다.

"원래는 이렇게 안 해. 여기는 안마를 통해 피로를 풀어주는 곳이거든."

"그, 그러면 저랑 한 거는...?"

"내가 오랜만에 하고 싶어서? 오호호!"

요정의 웃음에 청년은 침이 꼴깍 넘어갔다.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요정은 본인 스스로 이곳에서 원해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기요!"

청년은 벌컥 몸을 일으켜 요정의 손을 붙잡았다.

"도망칩시다."

"와우, 영업 첫 날부터 이런 손님이 나올 줄은 몰랐는 걸."

요정은 예상했다는듯 하면서도 청년의 저돌적인 행동에 몹시 당황했다. 청년이 보이는 반응은 군단장이 직접 집필한 메뉴얼에도 있기야 했지만, 그 실제 상황을 설마 영업 첫 날 첫 손님부터 맞이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청년은 안경을 치켜올렸다.

"저는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어딘가로 도망친다면 분명 살 방법이 있을 겁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그거 없이는 못사는 몸이 되어버려서 말이야. 그리고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여기가 뭐 어때서? 내가 너랑 하고싶다고 끌고왔을 뿐이야. 한 번 동정딱지 뗐다고 자신만만한데,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요정은 서랍 안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내 입술에 붙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청년의 입술에 물렸다.

"쿠폰이라는 거야. 다음에 내려오면 그 때는 다른 요정 찾아. 나는 너랑 이제 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아...."

청년은 자신이 제대로 말실수 했음을 깨닫고 주눅들었다. 요정은 청년의 외투를 챙겨주며 밖으로 인도했고, 청년은 털레털레 걸어가며 밖으로 떠나갔다.

"에이, 모처럼 좋은 건수 올리나 싶었는데."

요정은 청년이 떠난 걸 확인한 이후, 잽싸게 문을 닫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꺄아악!"

요정은 환희의 비명을 지르며 침대위에서 몸을 굴렀다. 그에 침대 아래에서 머리에 뿔달린 여인이 시트를 걷어내고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레이디의 칭호를 가진 서큐버스로, 잠에 빠진 청년을 꿈속에서 정기를 빼먹겠다고 침대 아래에서 벼르고 있었다.

"이봐, 파트너. 실제로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안 돼?"

"안 될 거야 없지만."

서큐버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동정의 정기는 대단했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서큐버스는 청년의 정기를 뽑아내 배를 한가득 채웠다. 이제 군단의 던전으로 돌아가 마석으로 산란하는 일만 남았다.

"얼마 정도 모았어? 중급 정도 돼?"

"후후, 상급이야."

"꺄아악!"

요정과 서큐버스는 서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진상도는 동정남이 가장 높았지만, 그런 진상 정도는 받아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의 에너지였다.

"그럼 우리 이제 사흘 동안은 휴식할 수 있는 거네?"

"나야 그냥 여기서 놀면서 정기 빨면 되지만, 너는 어떻게 하려고?"

"음, 인간이랑 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다른 거 찾아봐야지. 음...그냥 알 낳을까? 그거 한 세 번만 하면 사흘 지나가겠는데. 히히."

"...인간이 나보다 더 무섭네."

꿈에서 몸을 험하게 굴리는 자와 현실에서 몸을 험하게 굴리는 자. 과연 누가 더 서큐버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서큐버스는 자신의 인간 파트너가 완전히 타락한 것에 기가 질렸다.

"그보다 얘. 너 도대체 저 인간에게 무슨 꿈을 보여준 거니? 왜 갑자기 도망치자고 하는 거야?"

"너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꿈."

"미친. 우리가 평범한 인간이랑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정은 침대에 다소곳이 앉은 서큐버스의 옆에 앉아 허리를 슬쩍 끌어안았다.

"언니가 고블린, 오크, 촉수, 새대가리, 낙타 등등 여러 마물이랑 해봤는데, 서큐버스랑은 못 해봤네?"

"...흥, 인간 주제에 서큐버스를 상대로 침대에서 이길, 으읍?!"

"닥치고 벌려."

파후우의 요정 부대는 서큐버스들과 서로만의 방식으로 친목을 다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아주 수월하게 인간들의 정기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나 그쪽은 약, 흐아앙!"

"하아, 하아. 꼬리로 박으니까 되잖아...!"

인간과 마물의 화합이라는 아발론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정작 그 프로젝트의 입안자는 지금 새로운 던전을 공략하러 갔지만.

* * *

솔로몬 60위던전의 주인, 바퓰라는 지난 며칠간의 전투에서 입은 피해를 간신히 복구했다.

61위 자간의 습격. 그리고 이어진 62위 발라크의 하극상. 거기에 하필이면 인간들에게 던전의 위치를 발각당하는 바람에 모험가와 토벌대는 끊임없이 바퓰라의 던전을 방문했다.

그리고 바퓰라는 자신의 지혜와 부하들의 힘을 합쳐 그들을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는 상당했고, 기존에 키우고 있던 부하들 중 대부분을 잃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발라크의 파충류 부대를 영입할 수 있었다는 것. 주인인 발라크가 바퓰라에게 손도 못 쓰고 죽어버리자, 그들은 발라크에게 금방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이 없었다면 바퓰라는 아마 지금쯤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간 아무도 던전을 찾지 않았기에, 그는 살아남을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림〉 63위 던전의 주인 안드라스가 승부를 걸어왔다!

"이런 젠장."

"왜, 왜 그러십니까? 혹시 상처가 곪으셨습니까?"

"전쟁이다."

안드라스. 호전적이기는 커녕 단 한 번도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은 존재라고 알려져 있으며, 지구전에 있어서 최강이라고 불리기에 그 누구도 공격하기를 꺼려하던 존재.

그런 자가 어째서인지 자신에게 하극상을 일으켰다.

'설마 이제는 공세를 갖춰도 좋을 만큼 힘을 비축한 건가?'

그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만 생각하던 자로 알았건만, 안드라스는 이제 공세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나보다. 바퓰라는 스스로의 안일함을 자책했다.

'그래. 저것도 마왕님의 부하이며 던전의 주인인데 언제까지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어.'

바퓰라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던전은 뱀처럼 꼬불꼬불한 구조는 1자형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고, 최전방의 함정부터 최심부의 공터까지 부하들로 빼곡히 차있었다.

'여차하면 도망칠 수도 있다.'

도망칠 일이 없는게 가장 좋겠지만, 행여나 적 부하 마물들이 너무 강하다면 후퇴도 생각해볼 일이다. 일단 살아남는게 중요하므로.

그러나.

으하하하!!

동굴 안까지 메아리치는 울림에 바퓰라는 입이 바싹 말랐다. 적의 목소리에 왠지 시작부터 주눅이 드는 것만 같았다.

'안드라스가 그런데 남자던가?'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분명 할파스에게 범해질까봐 무서워서 아래에서 올라가지 않고있던 하피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퓰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살폈다.

갈짝, 갈짝.

거북, 전갈 등 수많은 파충류 마물이 전장에서 바퓰라의 눈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다크엘...프?"

오크에게 백허그를 당한 상태로, 하복부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는 거유의 다크엘프를. 그리고 그들은 다크엘프를 보자마자 눈이 멀었다.

"이거 뭐야?"

너무 아름다워서 파충류들도 눈이 멀어버렸나? 바퓰라는 마지막 순간에 본 다크엘프의 모습에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갈색의 탄 피부와 대조되는 하얀 드레스는 마치 자신을 위해 신부가 직접 찾아 온 것만 같았다.

'이거 무조건 이긴다.'

안그래도 얻은 부하라고 해봐야 날개달린 미노타우르스와 파충류 부대가 전부였건만, 드디어 자신의 던전에도 빛이 드리우나 싶었다.

"잡으면...내 씨로...흐흐흐."

가라, 루나데스빔!

"뭐야?"

막대한 신성력의 빛이 던전 내부를 감싸기 시작했다.

* * *

"주인님, 전방에 적이에요!"

"그래? 루나관살포!"

나는 루나의 뒤에서 아랫배를 동그랗게 모았다. 반짝거리던 신성력은 전방으로 빠르게 날아갔고, 내가 손으로 모은 덕분에 그 반경이 몹시 좁아들어 일렬로 나아갔다.

끼아아아악!!

바닥에 있던 거북, 거북의 등을 타고 오르던 지네 등이 루나관살포에 모두 휩쓸려나갔다. 나는 불에 데인 것 같은 손을 잽싸게 털고 손을 식히기 위해 루나의 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하아, 하아. 살 것 같다."

"살 것 같은게 아니라 쌀 것 같은 거겠지."

루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내 손을 쳐냈다. 나는 괜히 겸연쩍어 뒤로 슬쩍 물러섰다. 루나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한기에 나뿐만 아니라 륜, 에일라도 함께 당황했다.

"너무 장난이 심했나?"

"네.'

륜은 단언했고, 에일라는 내게서 거리를 떨어뜨렸다. 나는 몸을 돌린 루나의 가슴을 향해 잽싸게 고개를 파묻었다.

"때릴거냐?"

"...진짜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어, 때린다."

찰싹. 루나는 자신의 몸을 좌우로 살짝 흔들어, 가슴으로 내 뺨을 때렸다. 아픈 걸로 따지면 따귀도 아니고 그냥 터치 수준이었지만, 나는 내 입에 튄 루나의 초콜릿맛 우유에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아아, 이것이 놀부 아내에게 밥주걱으로 맞은 흥부의 기분인가."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루나는 등 뒤의 마물들을 가리켰다. 온갖 파충류 부대가 길을 막고 있는 바람에 우리는 길을 전부 뚫어야했고, 돌파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빨리 잡고 돌아가자고."

"에이, 왜 그렇게 성을 내?"

"너같으면 지금 성을 안내고 베겨?"

루나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따지고 들었다.

"모처럼 돌아와서 침대로 오는 줄 알았더니 뭐?! 던전을 공격하러 와? 지금 장난해?"

"공략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화를 내?"

"그치만!"

루나는 자신의 치마를 번쩍 들어올렸다. 가슴쪽과 달리, 깊고 향긋한 초콜릿향이 물씬 풍겼다.

"나 너 돌아온다고 했을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발정나서 도저히 못 기다리겠는데 던전 공략하느라 늦춰져서 미쳐버리겠다?"

"그래!"

루나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삐가 풀린 루나의 성욕은 때때로 이렇게 감당하기 어렵다 싶을 정도였다. 적진에서 침대 운운을 하는 건 그만큼 루나가 강한 존재이기도 해서 그런 거겠지만, 둘이 있을 때라면 몰라도 이렇게 다른 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그러는 건 곤란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나는 루나의 귀에 해답을 속삭였고, 루나는 얼굴을 붉히며 내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아프지는 않았다. 마음이 아파서 그렇지.

"미쳤어?! 지, 지금 쟤들 앞에서 하자고?!"

"뭐가 문제야?"

나는 내 뒤를 따라온 신성력 면역의 두 부자-기네비어와 갤러해드를 가리켰다. 인간이자 사제인 기네비어와 오크지만 성기사인 갤러해드는 루나가 내뿜는 신성력에 대해 충분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기 싫은 모양이네. 륜, 에일라. 가는 동안 할래?"

"제가 하겠습니다."

에일라는 바로 갑옷을 벗어던질 기세였다. 루나는 입술을 깨물며 부들부들 떨었고, 기네비어와 갤러해드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여전히 진지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 안 돼! 내가 할 거야!"

"에에이, 비켜라! 주인님과 못한지 벌써 사흘이 지났단 말이다! 루나는 어제 했잖나!"

"그건 륜이랑 같이 한 거지, 나 혼자 한 게 아니거든?!"

"거 닷새전에 침대에서 함께 언니동생 하던 사람들은 어디로갔나."

나는 둘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려 주변을 경계하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일으킨 소란에 다시 거북과 지네 마물들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걱정마라. 사이좋게 한 번씩 박아줄테니까."

"전공에 대한 포상이 라스.... 하아."

"기네비어, 너는 내가 몰래 랜슬롯을 장기 임무 보내도록 하겠다."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네비어는 의지를 다잡았고, 갤러해드는 쓰게 웃으며 검을 전방으로 늘어뜨렸다. 나 또한 새로이 마련한 무기를 손에 붙잡았다.

"충전은 30%? 그 정도면 충분하군."

"또, 또! 내 배가 장난감이야?!"

"아주 효과적인 무기지! 가라!"

나는 루나의 배를 손으로 붙잡아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사랑과 라스의 이름으로! 가라, 루나! 라스터캐논!"

"아, 진짜!"

루나는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발사!!"

쿠오아아아아아앙!!!

하트 모양의 신성력 레이저포가 마물들을 휩쓸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성녀님! 엘프 여왕의 반응이 대륙 반대쪽에 나타났습니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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