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바니걸들이 펍의 여급이라는 것은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이 열리는 시간만을 기다렸고,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줄까지 서서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들어간 남작이 코피를 터뜨리며 메어리의 품에 기절하는 것을 시작으로, 몇몇 내성이 약한 이들은 하나 둘 코피를 터뜨리거나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의 준비를 최대한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19금, 아니 29금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색정적인 광경이 펍 안에는 펼쳐져 있었다. 바니걸들은 처음 들어올 때는 약과였다는 듯, 각자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으로 자신의 육체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세상에."
청년은 대체로 노출된 면적이 더 넓은 옷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술을 나르던 점원 요정은 그물망이 적당하게 펼쳐진 허벅지에 실핏줄까지 보일 정도로 복장이 대담했다. 맥주를 홀짝이는 청년의 시선은 다소 노골적이었고, 당연히 점원 요정은 그 시선을 느끼고 웃으며 스스로 찢은 구멍을 가렸다.
"어머, 어딜 보세요?"
"아...예뻐서 그만."
"푸흡, 솔직하니까 이번에는 넘어가줄게요. ...어머, 잡화점 첫 손님?"
점원 요정은 청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청년 또한 점원 요정을 보고 정체를 깨달았다. 스타킹을 판매하던 위치에서 자신에게 스타킹 구매에 관한 안내를 했던 바로 그 요정이었다.
"인연이 이렇게 또 되네요. 스타킹은 결국 제대로 선물하셨나요?"
"예, 그, 아니.... 허어."
청년은 입이 바싹 말랐다. 낮에는 정숙한 복장을 하고 있던 여인이 밤이 되니 이런 파렴치한 복장으로 술을 나르고 있다니, 무언가 보는 것 만으로도 배덕감이 느껴졌다.
"후후, 혼자 오다니 대단하시네요. 물론 혼자 오신 분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운데로 오실래요?"
요정은 청년을 가게 주인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혔다. ㄷ자형으로 된 테이블에는 자신처럼 혼자서 용감하게 온 이들이 하나 둘 요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년은 용기를 내어 먼저 화두를 던졌다.
"그...스타킹은 잘 사용하겠습니다."
"네, 분명 좋은 곳에 쓰일 거예요. 환불하실 때는 영수증 챙겨오시고."
점원 요정은 청년의 옆자리에 앉았다. 1인석이기에 옆자리가 비어있기는 했지만, 그 어떤 바니걸도 이런식으로 합석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 어머, 어머. 저 언니 벌써부터 하나 물었네.
- 무슨 얘기야?
- 무슨 얘기겠어? 라스야, 라스!
"......."
바니걸들은 모두 청년을 향해 쿡쿡 웃기 시작했고, 점원 요정의 손이 청년의 허벅지 위에 올라갔다. 청년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옆의 바니걸이 뭔가를 적기 시작하는 사이, 청년은 펍 내부를 슬쩍 훑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얼추 눈에 보이는 요정의 수만 10명이 넘었다. 그들 중 일부는 테이블을 오다니며 음식을 날랐고, 일부는 방문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어올렸다.
"야, 넨시! 너 이런데서 이러고 있었냐?! 으하하!"
"이게 아주 대단하거든. 어떻게 너도 같이 일해볼래?"
"나보고 그걸 입으라고? 으하하, 던전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여신교의 사제들에게 잡혀가서 설교부터 듣겠다!"
바니걸 한 명이 우락부락한 청년과 티격태격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년은 귀를 열고 다양한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략하게 바니걸들의 정보를 종합할 수 있었다.
- 다들 은퇴한 모험가들이네.
시기는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 은퇴하고 새롭게 상단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급료는 어지간한 수도의 상단에 준할 정도로 대단했다.
"너 도대체 뭘 먹고 다니길래 이렇게 때깔이 번지르르하냐?"
"남자들의 사랑? 후후, 농담이야.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받으니까 피부도 좋지."
"...급료 얘기를 하는 거지? 내가 머리가 이상한 건가?"
"글쎄? 후훗."
청년은 요정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던 추측이 거의 확신에 가깝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 그렇고 그런 곳이다.'
남작의 허가는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리도 퇴폐적이라면, 분명 이곳 어딘가에는 그런 곳으로 가는 비밀 통로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요정들과 하룻밤 보내는 것이 이 펍의 진짜 실체이리라.
"죄송해요. 잠깐 확인할게. 그래서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실까?"
"......여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곳이란 말이죠."
청년은 요정을 상대로 떠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허벅지 위에 다시 올려진 여인의 손을 맞잡았고, 여인은 정답이라는 듯 씩 웃었다.
"그런데 아까 돈 내고 한 번 해보자고 하던 아저씨는 때려잡아서 경비대에 넣은 걸 보면, 뭔가 돈을 내고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이런 술이나 음료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 같지는 않고. 도대체 당신들 정체가 뭡니까?"
"참 이상한 걸로 정체를 묻는 구나. 음, 좋아? 그렇게 알고 싶어?"
요정은 상체를 쭉 앞으로 들이밀었다. 바니걸 특유의 가슴 가리개 너머로 보이는 뽀얀 살결에 청년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숫기 없게. 혹시 동정이야?"
"......구, 굳이 말해 줄 필요가?"
"중요한 문제여서 그렇거든. 동정이라...."
요정은 청년의 손을 꽉 잡으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가리켰다.
"잘 됐네. 그럼 오빠, 오늘 나랑 즐겁게 해서 남자가 되는 거야. 어때?"
"...역시 그런 곳이군. 돈은 얼마나 내야 하는 거지?"
"돈?"
요정이 정색을 하며 청년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에이, 우리 그렇지는 않아. 굳이 내야 한다면 오빠가 주문한 음식값 정도지. 그렇다고 그게 막 엄청 비싸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전혀."
한 끼 식사 정도로는 충분히 낼 수 있을만큼의 식비였다. 그리고 그런 푼돈으로는 여인에게서 꽃을 살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빠가 처음인 것 같으니 얘기해줄게. 여기는 말이야, 하고 싶으면 하는 곳이야."
"...세상에."
청년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 이런 내부 공사를 마친 건지, 사람의 눈이 타지 않은 지하 1층은 감옥같으면서도 통로가 잘 꾸며져 있었다.
"그럼 오빠, 방에 들어와. 그리고 잠깐 쉬었다 가는 거야."
청년은 요정에 의해 홀린듯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그러니까 여기가 아발론과 바로 연계되도록 구성된 곳이다?"
나는 그레모리가 새롭게 개조한 던전의 구조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때는 함정의 방이나 다름없었던 공터가 아발론의 지하처럼 개조되었고, 포털이 완전히 갖춰지면 인간들은 아발론에서 바로 서큐버스들이 있는 그레모리 던전으로 직접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 반대로 서큐버스들 바로 원정 나갈 수 있도록 되어있어. 실시간으로 확인도 가능하지. 한 번 봐봐."
그레모리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수정구를 가리켰다. 침대의 맞은편 선반 위에 올려진 수정구는 어딘가의 영상을, 아발론의 곳곳을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마법 대단하지?"
"그래. 그리고 이런 마법을 쓰는 너도 대단하다."
나는 그레모리의 볼에 키스했고, 그레모리는 웃으며 내 몸에 볼을 비볐다. 나와 그레모리는 아발론의 지하로 연결된 원격 수정구를 통해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CCTV로 보는 것 마냥 상당히 화질은 조잡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이거대로 보는 맛이 있었다.
"오, 들어간다."
아발론의 첫 손님이 드디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레모리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며 청년의 모습을 예의주시했다.
"동정이네? 적어도 중급 마석은 뽑아낼 수 있겠다."
"그게 눈으로 보면 보이냐?"
"동정이니까. 저기 지금 기대감에 부풀어서 자신감 넘치는 거 보이지?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서워가지고 쫄아있는 거. 흐흐, 척보면 안다니까."
그레모리는 스타킹 판매를 통해 얻은 하급 마석 하나를 집어들었다. 대량의 하급 마석을 얻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걸 직접 사용하지는 않고 쌓아두기만 했다.
"인간들은 알고나 있을까? 자기들이 성욕에 이끌려서 뽑혀나간 정기가 마석이 되어, 우리 군단의 힘으로 사용될 거라는 걸."
"알았으면 내려오지 못하겠지 당연히. ...어떤 미친 놈들은 알아도 내려올 수 있겠지만."
어떠한 상황이든 남성의 성욕이라는 것은 판단을 그르치게 만들었고, 청년 뿐만 아니라 바니걸들은 제 취향의 남자들을 하나 둘 물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간 청년은 좁은 모텔방처럼 꾸며진 방의 침대에서 다소곳이 앉아있었고, 바니걸이 샤워실에서 옷을 조정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방 안의 모든 상황은 원견(遠見)의 마법에 의해 훤히 보였다. 샤워실에서 거울을 향해 OK 신호를 보내는 바니걸에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 슬슬 서큐버스들 투입해볼까. 오늘은 미안하지만 애들 직접 땅으로 날아가게 해야겠어."
아직 포털이 설치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서큐버스들이 라임과 슬라임드래곤들이 파놓은 지하 통로로 날아가야만 했다.
"애들 거기 지나가면 먼지 뒤집어 쓸텐데 괜찮을까?"
"걱정마. 지금 인간들 정기 털어먹겠다고 굶주린 애들이 장난 아니거든. 당장 날아가겠다고 하고 있을 걸? 그렇지, 공주님?"
[물론입니다.]
샤이탄의 모습이 시스템창을 통해 나타났다. 정장이 아닌 진정한 서큐버스 마담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보라색 드레스 차림을 한 샤이탄은 등 뒤에 대기하고 있는 서큐버스들을 부채로 가리켰다.
[레이디, 지금 당신의 마음은?]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보란듯이 꿈속에서 따먹고 오겠습니다. 정기는...츄릅.]
서큐버스들은 하나같이 음험한 눈빛으로 인간들의 꿈에 다이빙을 할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특히 첫 손님이 동정이라는 것을 들은 이후, 그들의 임무 수행 의지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동정을 먹는게 그렇게 좋은가?"
"서큐버스들 입장에서는 너 처녀 먹는다고 하는 거랑 별반 다를게 없는데."
"그럼 인정."
서큐버스들은 다행히 인간과 하는 것에 대해 별로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걸 알고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막상 하려고 나서는 순간 두려워하면 어쩌나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명령으로 하라고 하면 행복라스가 아니니까.'
라스라는 것은 자고로 행복을 위한 것이지, 결코 누군가의 행복을 짓밟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당장 아발론의 지하로 내려오는 청년과 남정네들 모두가 토끼 요정들과 하고 싶어서 내려오는 것 아닌가.
"그래. 샤이탄, 바로 투입하라. 지금 상황 봐서는 거의 전부 다 내려올 것 같은데, 일단 다 보내. 그리고 여차하면 다시 지하 통로로 살아서 돌아와라. 알겠지?"
[물론입니다. 여차할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진 한가운데에 잠입하는 작전이라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제법 많은 인원이, 그리고 우리 라스군의 핵심 멤버들이 직접 투입된 만큼, 작전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된다.
"이번 건이 잘만 성사되면...이제 서브 던전도 굳이 안 돌아도 돼. 그리고 잘하면 양질의 마석도 뽑아낼 수 있지."
"인류 연합의 전력 약화까지.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약해지게 될 거야. 오호호, 너 진짜 머리 잘쓰는 구나. 아니, 이럴 때는 좆대가리 잘 굴린다고 해야하나?"
"...거 표현을 해도."
그레모리는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면서 킥킥거렸다. 인간의 성욕을 이용해 우리 군단의 전력을 강화한다는 작전에 가장 걱정을 많이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레모리였다.
"하, 정말 이해가 안 돼. 왜 고작 토끼처럼 분장을 했을 뿐인데, 조금 하고싶다고 앙큼한 냄새를 살짝 풍겼을 뿐인데 저렇게 헤벌레 하고 있는 걸까?"
"그거야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잠깐만."
거울을 통해 토끼 요정이 무언가 신호를 보냈다. 바니걸의 아래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방 안을 턱짓하는게, 분명 그 신호가 확실했다.
"...요정들은 직접 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왜? 아하하, 쟤들이 라스하기를 바라고 있잖아. 그럼 라스하게 해주셔야지, 군단장님?"
"...하이고. 저 놈들은 좋겠어. 현실에서는 인간이랑 하고, 꿈에서는 서큐버스랑 하고."
요정에 의해 잠 재워진 사이 현실이든 꿈이든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는 꼴이 되겠지만. 나는 청년을 향해 미리 애도를 표했다.
"너의 동정은 우리 군단이 잘 사용하도록 하마."
"그렇게 표현하니까 뭔가 좀 더러운데. 그보다 야, 남자들만 저렇게 있으면 좀 그런데. 여자들은 어떻게 할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레즈비언도 아니고 여자가 저런데 들어올 리가 없잖냐."
"있는데?"
그레모리는 수정구 너머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여인을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시작부터 거물이 물렸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사장님?"
"......저 아가씨, 그런 취향이었던가?"
영상의 너머에는 메어리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비르고 남작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