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220화 (220/800)

# 220

파후우가 한창 기존 제품의 향상과 신제품 테스트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 시각.

스피카 성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잡화점은 입소문에 힘입어 성황리에 물건을 판매하고 영업을 종료했다.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은 뭐니뭐니해도 스타킹.

바니걸들이 보인 충격과 공포에 홀린 이들도 많이 구매하기는 했지만, 1인당 살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 기간이 지나면 더이상 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고작 '하급 마석'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을 금방금방 구매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린 만큼, 잠시 동안 소란도 있었다.

- 우리 집에 하급 마석이 수백개는 있는데, 그걸로 전부 다 사고 싶다!!

- 규정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손님.

- 이것들이!!

짜악.

혼자서 싹쓸이를 하겠다고 하던 모험가 여인은 점원에게 손찌검을 했고, 점원은 볼이 벌게진 상태로 웃으며 손을 풀었다.

- 진상 손님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응하라. 그게 저희 요정들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 이 년이 얼굴 좀 반반하다고-

퍼---억.

점원 요정은 여인의 복부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모험가 여인이 대처를 하지 못할 정도로 빛처럼 빠른 공격은 평범한 점원이 낼 수 있는 힘과 스피드가 아니었다.

- 방금 그거 뭐야?

- 때린...건가?

- 못 봤는데?

그 누구도 점원 요정이 주먹을 내지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점원 요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 저도 예전에는 당신처럼 모험가였죠. 하지만 아래에 상처를 입는 바람에 그만. 후훗. 그거 아세요?

점원 요정들이 하나 둘 주먹을 말아쥐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웃으며 접대하던 이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 경험 많은 전사들의 모습을 보이니, 모험가 여인을 비롯한 손님들이 모두 긴장했다.

- 저희들은 말이죠, 전부 은퇴한 모험가들이랍니다. 호호, 한 번만 더 저희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시면....

점원 요정은 잡화점 밖에 순찰을 나온 경비를 가리켰다.

- 직접 잡아다가 경비분들에게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무슨 일입니까?

자신을 부르는 것을 귀신같이 들었는지, 경비는 한걸음에 달려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저 아줌마가 요정님 때렸어요!

- 뭐요? 그건 폭행 아닙니까! 세상에, 얼굴에 손자국이 이렇게!

- 저, 저 년이 더 세게 때렸....

- 애초에 당신이 억지를 부려서 난리가 난 것 아니오! 안 되겠군, 소란을 일으킨 죄질이 무거우니 당장 일어나시오!

- 저 년은요?!

- ...아무도 점원 분이 당신 때렸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 뭐? 야, 너! 저 년이랑 어젯밤에 달달 볶았지?! 그러니까 편드는 거 아니야?!

- 못하는 말이 없군!

사정을 바로 주변이들에게 전해들은 경비는 배를 얻어맞은 모험가를 바로 데려가버렸고, 이후로는 얼마 남지 않은 물건을 자신이 구매하겠다고 열과 성을 내는 이들 정도가 소란의 전부였다.

- 죄송합니다. '오늘 판매하기로 예정된 분량'은 모두 판매가 끝났습니다.

분홍 머리 점장의 안내 멘트와 함께 잡화점의 문은 굳게 닫혔다. 사람들은 그녀가 얘기한 것을 곰곰이 곱씹었고,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

'고작 하루팔고 끝내려는게 아니구나!'

그제서야 사람들은 조급증을 버리고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루종일 나간 영수증만 거의 200장에 이를 정도로 사람들은 정말로 많은 물건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건물 자체를 빌린 것이 아니라 구매했다는 소식이 경비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사람들은 사고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안정적으로 스타킹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에이, 그럴 거면 첫날부터 그냥 싹 다 팔아버리면 그만인 것을....

- 예끼, 이 놈아. 저분들도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

불평을 내뱉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상단을 두둔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수는 몹시 적었다.

-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봤는데 어쩌지? ...오, 입을 수 있다! 조금 많이 뻑뻑하기는 한데...못 입을 정도는 아닌 걸! 아오, 근데 앞부분이...으아악! 찢어졌다!

호기심에 구매했다가 직접 스타킹을 신게 된 청년이 있는가 하면.

- 아이고, 이 화상아! 내가 겨울에 입을 옷 사오라고 했더니, 이런 천쪼가리를 사와가지고! 너 내가 입었을 때 추우면 죽을 줄...따뜻하네?!

- 거 솜옷보다 따뜻하다고 했잖아! 안 그러면 그 아가씨들이 이 날씨에 그거 한 장만 걸치고 어떻게 다녔겠어?! 흐흐, 잘 샀지? 그거 두 박스 사는데 2골드도 안 들었어. 레오 후작령가서 겨울옷 사려면 10골드는 넘게 들 거 아니야. 하하.

- 여보, 나 잠깐만 씻고 올게.

- 뭐? 왜 씻...아니, 옷을 입었으면서 왜 씻냐고!!

스타킹이 가진 의복으로서의 기능과 경제성에 놀라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 이들도 있는가 하면.

- 오빠, 이건 뭐야? 다리털도 가리고...엄청 좋네. 호호.

- 아아, 그것은 '스타킹'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 생활을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도구지.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이렇게.

- 꺄악! 왜 거길 찢어!

- 찢으려고 산 거니까!

어떤 젊은 부부는 판매자의 원래 계획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렇게 비르고 남작령 전체가 스타킹으로 열광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비르고 남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한 벌의 스타킹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음...."

아직 그녀는 스타킹을 직접 입고 있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입었다가 벗었다.

'확실히 예쁘기는 했지.'

가솔들을 전부 물리고 스타킹만 착용하고 본 전신거울 속의 자신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반할 것처럼 아름다웠다. 남작의 앞 가지런히 개어진 스타킹은 바로 자신이 착용했다 벗은 물건이었다.

"오늘이 생일인 아이들이 늘어나겠군. 감사합니다, 여신이시여."

남작은 신생아가 늘어나는 것에 여신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당신께서 보내주신 분홍 머리 천사님의 덕분에, 저희 영지가 다시 일어설 발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이가 늘어나면 여신의 신도도 늘어날테고, 자연히 영지민도 들어나 세수 또한 늘어날테고, 영지민들도 자식이 생긴 만큼 어딘가로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당장 내가 생각하는 것만 해도 그런데 이게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어.'

사교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스타킹의 파괴력은 무궁무진했다. 남작은 스타킹을 아래에 신은 자신이라면 그에이 칸세르를 유혹하여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삼켰다.

"영주님, 계십니까?"

"흠흠, 들어오시게."

문이 열리자 밖에서는 남작을 유일하게 믿고 따른다고 할 수 있는 노기사가 들어왔다. 남작은 그의 등장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벗은 스타킹은 다시 예쁘게 상자 안으로 밀어넣었다.

"어서오시게, 남스타크 경."

"실례합니다. ...용무를 보시던 중이셨습니까?"

"음? 아닐세. 그냥 이걸 가지고 생각하고 있었지."

"아아, 스타킹 말씀이시군요. 시착은...?"

"해봤네. 제품에 하자가 있는지 하나씩 입어보았지. 그래서 무슨 일인가?"

"영주님께서 말씀하신 잡화점에서 소란을 일으킨 자들에게 모두 조치를 내렸습니다. 오늘 밤 동안은 경비초소의 감옥에 수감될 것이며, 다들 내일 아침에 영주님의 특별 지시로 훈방으로 나갈 것입니다."

"좋네. 영지를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 되지. ...그나저나 남스타크 경."

남작은 노기사의 바지 밑단 아래, 살짝 삐져나온 발목이 검은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자네 혹시 하나 입었나?"

"예."

노기사 남스타크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목소리에 남작은 긴가민가해졌다.

"...스타킹은 여성용으로 나온 것이 아닌지?"

"제가 직접 구매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 손녀딸이 살 때는 남자들이 입어도 딱히 문제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 아이,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면서 이걸 사오더군요. 껄껄."

노기사 남스타크는 편안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손녀딸이 하도 입으라고 하니 입지 않을 수는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한 번 입어봤는데...생각보다 괜찮지 않겠습니까. 철갑 안에 받쳐입어보니 실제로 살이 쓸리는 일도 없구요."

"...그것은 전략물자로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그게 그렇게 됩니까?"

남작도 노기사도 스타킹의 또다른 가능성을 깨달았다. 모험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렸지만, 우연찮게라도 스타킹의 가능성을 깨달은 것은 분명 웃어넘길 일은 아니었다.

"이보게, 남스타크 경. 한 벌에 얼마라고?"

"제가 듣기로는 분명...."

남작은 남스타크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영지를 운영하는 입장으로서, 효율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영지가 제대로 굴러가게 할 수가 없었다.

"...남스타크 경. 미안하지만 내 하나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남작은 자신이 입었던 스타킹을 들어올렸다.

"이걸로 모든 경비병들과 영지군의 아래를 무장한다면 예산이 어느정도 들겠는가? 아니,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야."

남작은 스타킹을 테이블에 놓고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내가 당장 메어리 양과 만나보도록 하겠네. 스타킹이 아니라 웃옷이라면...이건 사실상 전신 가죽 갑옷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야!"

남작은 헐레벌떡 집무실을 떠났다.

"......음."

노기사, 남스타크 인페트에이시는 영주를 위해 선물로 가져온 스타킹 상자를 조용히 남작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집무실을 달려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던 그 뒷태를 생각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정말 예쁘게 잘 성장하셨어...!"

"허억, 허억."

"남작님?"

남작은 숨을 헐떡이며 집무실로 돌아왔다. 남스타크는 괜히 회한을 느끼던게 이상하게 비칠까봐 순간 겁을 먹었다.

"그, 그냥은 가면 안 되겠지...!"

남작은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와 벗어놓았던 스타킹을 챙겼다.

"입고가겠다. 기다리시게!"

남작은 스타킹 상자를 들고 집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남스타크는 남작이 들고간 스타킹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누군가가 얘기하던 것이 기억이 났다.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고.

"흠, 흠흠."

남스타크는 집무실 책상 아래로 들어간 스타킹 박스를 들고 조용히 자신의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 * *

"위에 입는 스타킹...? 그런 건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로브 차림의 메어리는 단언했다. 메어리는 잡화점을 뒷정리하고 어딘가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스타킹은 하의로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웃옷까지는 상정하지 않았어요."

"그, 그럼 혹시 웃옷을 만들 생각은 있는가?"

"글쎄요...."

메어리는 뒷말을 흘렸다.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느정도 듣기는 했어도, 그걸 직접적으로 들은게 아닌 만큼 메어리는 상의에 해당하는 것들을 그저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성용 속옷이 필요하다면 당장은 수도의 것을 구매하시는게...?"

"자네들, 혹시 이 물건을 다른 쪽으로 활용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정녕 하의나 속옷 정도로만 생각한 건가?"

"그럼요. 혹시 그 외에 다른 기능도 생각하셨나요?"

"......아닐세."

남작은 간신히 진정함으로써 정신을 차렸다. 상대를 기만하여 소위 '뽕'을 뽑아야 하는 입장으로서, 남작은 괜히 약점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속옷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메어리 양. 혹시 우리 영지에서 대량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요번 겨울이 다가온다면,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스타킹이라도 신겨주고 싶네만."

"저런.... 영주님의 하해와도 같은 인정에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무상으로 드리기에는...."

"물론 대금은 지불하겠네. ...다소 지불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기는 하네만."

"대량으로 구매하시는데 당연히 할인해드려야죠. 걱정마세요, 말씀하시는 물량이 있다면 기일 내에 제대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남작과 메어리는 빠르게 스타킹 보급에 관한 계약을 주고받았다. 서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었고, 어느덧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잘 부탁하네, 메어리 양.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혹시 영주성으로 초대해도 되겠는가?"

"어머.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모처럼 오셨는데 저희쪽에서 한 잔 하시는 건 어떠셔요?"

메어리는 불이 꺼진 옆 건물을 가리켰다. 아마도 창고라고 생각했던 곳은 진정으로 여관과 술집을 겸하려는 듯 했다.

"이제 제가 들어가면 영업 시작입니다. 첫번째 손님으로 맞이해도 되겠습니까?"

"흠흠, 물론."

남작은 근엄한 얼굴로 메어리의 뒤를 따라 건물을 나왔다. 빙빙 돌아와 건물의 정문 앞에 선 남작은 문고리를 잡은 메어리의 얼굴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고 놀라지 마십시오."

끼이익.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펍 〈아발론〉의 식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판자가 바닥에 깔려있고 모든 가구들이 목재로 되어있는건 여타 다른 펍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펍에 돌아다니고 있는 점원들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저, 저런...?!"

"...촘촘한 스타킹을 계속 신고 있으면 땀이 빨리 차서 말입니다."

메어리는 로브를 슬쩍 들췄다. 메어리 또한 점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압도적인 마음씨의 상냥함에 남작은 기가 죽을 정도였다.

"원가절감을 위해 원단 부분을 최대한 줄여봤습니다. 예, '망사 스타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떠신지요?"

압도적인 살색의 폭격에, 남작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메어리의 검은 망사 줄무늬 사이로 있는 두 개의 거대한 언덕에 얼굴을 처박은 것은, 결코 남작이 일부러 한 짓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망사 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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