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935일차 -------------------------
벨리알을 종마 부대의 부대장으로 만들어버린 이후, 나는 태업을 선언했다.
"오늘 할만큼 했다. 이제 안 해."
"앗, 그러면?!"
"그래."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일과 이후의 시간은 즐거운 휴식 시간을 가질 차례. 마침 시간도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고, 나는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오우."
"...완전 달라졌는데요?"
불과 반나절 사이. 내가 공사를 맡긴게 오늘 아침이었건만, 던전은 속된말로 삐까뻔쩍하게 변해있었다.
대리석과도 같은 재질로 온 벽이 다져진 것은 기본이고, 바닥에 비슷하지만 다른 색으로 이어진 정사각형의 타일들은 내 마음을 울리는 디자인이었다.
"함정깔기 딱 좋은 지형이네."
"주인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침 인테리어 업자, 샤이탄이 구두굽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타일을 밟는 덕분에 '또각또각'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발을 디디는 순간 연동된 함정이 발동하도록 세팅이 되어있습니다. 이 공동을 넘어선 순간부터 함정이 연이어 이어집니다. 주인님, 이쪽으로 오시길."
샤이탄은 나와 륜을 안내하며 지하 1층의 내부 구조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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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완벽하게 적의 침입을 막기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미로 형식으로 이루어진 지하 1층은 적을 엿먹이고 요격하는데에 최적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에 포털이 열려서 적이 들어오고 ◁로 1층으로 올라오는 건가. 과연."
"포털로 적이 들어와도 출구까지 최대한 시간이 걸리도록 설계했습니다. 1자형 미로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봤으나, 루나 여왕님께서 너무 길게 만들어두면 기다리다 지친다고."
"그렇긴 하지."
입구 부분이 다소 난잡해보이기는 했지만, 루나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하 1층을 설계했는지 그 의도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서북쪽에서는 다크엘프들의 기동성을 활용한 게릴라전. 이후에는 1자형 통로에서 적을 요격. 마지막에는 3개의 공동에서 적을 요격하는 건가."
"예. 초전에 적의 전력을 최대한 깎고, 후에 상대를 정면에서 요격하기를 바랐습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나야 괜찮지. 역시 전문가에게 맡기기를 잘했다."
루나는 엘프 수호자로서 숲을 지키는 입장이었으니 수비의 묘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테고, 샤이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솔로몬 던전에서 지냈으니 던전의 구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해박할 것이다.
'옛날 안드라스 던전처럼 만들면 어떨까 싶었는데.'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지만, 크게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던전의 구조도에 보이는 저 의미심장한 표시.
"잘 만들었구나."
"...주인님, 모른 척 하실 겁니까?"
"......아니, 하트의 색이 미묘하잖냐."
가운데가 비어있는 하트(♡)도 아니고 속이 꽉 찬 하트(♥)라니, 누가봐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네 개나 된다?
'영 좋지 않은데.'
괜히 저쪽으로 갔다가 무슨 사단이라도 일어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샤이탄을 보고 있자니 보러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바로 여기입니다."
샤이탄은 공동의 한켠에 마련된 벽을 가리켰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빈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샤이탄이 벽의 어딘가를 누르니 벽이 옆으로 밀려났다.
"던전에 이런 기믹은 있어야지. 고맙다. 그런데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느냐?"
"여왕의 침소입니다."
"와. 주인님, 엄청 넓어요."
륜이 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방을 살피며 입을 벌렸다. 내 던전의 공동보다 훨씬 넓은 공간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 이루어져 있었다.
"언제 이런 걸 마련했다냐."
"시스템을 통해 바로 공수했습니다. 던전 내부는 길만 만들어져있고, 사실상 모든 기자재가 여기에 투입되었습니다."
비밀 공간 안은 조금 더 세련된 라스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통나무집만 거의 열 채 가까이 이루어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다른 통나무집의 두 세 배는 되어보이는 2층 통나무집이 천장과 맞닿아 있었다.
"뭐지? 자기 가슴이 다른 엘프보다 2~3배는 크다고 하는 과시인가?"
"주인님, 괘씸한데요. 어서 빨아서 우유통을 비워버려야겠어요."
"동감이다. 방을 만들랬더니 집을 만들어버렸군. 어쩐지 목재 소비되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더라."
샤이탄에게 맡겨놓으니 일일이 신경은 안써도 좋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촌락을 만들어버렸을 줄이야. 나는 중앙의 대저택을 들어가는 대신, 주변을 살폈다. 벽은 당연히 던전의 타일로 계속 이어져있었지만, 벽에 붙은 일부 공간에는 출입 금지를 알리는 듯한 줄이 쳐져 있었다.
"이건 뭐지?"
"지하 1층에 설치할 감옥 위치를 두고 저와 루나가 이견이 있었습니다. 루나님께서는 여기에 설치하면 어떻겠느냐 하셨고, 저는 그래도 밖에 설치하는 게 어떻겠느냐 엇갈렸습니다."
"여기 안에 감옥 두 개 깔고, 밖에다가 두 개 깔면 되겠네."
나는 빠르게 절충안을 내렸다. 샤이탄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정리해버린 갈등 사안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루나가 감옥에 집어넣을 애들이 누구있겠냐. 다 엘프들이지. 네가 감옥에 집어넣을 애들? 우리 던전에 포털깔고 덤벼드는 놈들. 그럼 반반씩 나눠서 쓰면 되잖아. 그치?"
"...과연, 그러면 감옥에 가둘 때마다 굳이 비밀통로를 여닫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혹시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냐?"
"아뇨, 가능합니다. 추후 바로 조치해두겠습니다."
모든 기반을 닦아놓은 샤이탄은 던전 내의 시설 위치에 대해서는 내게 의견을 구했다. 나는 다크엘프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막사 네 곳을 지정하는 걸로 상황을 정리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샤이탄이 알아서 막사를 늘리고 레벨을 올려둘 것이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보좌관이 있으니 몹시 편리했다.
'덕분에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단 말이지.'
일일이 하나하나 명령을 내리던 시대는 이제 끝이다. 나는 륜을 어깨에 태운 채, 샤이탄의 안내에 따라 다크엘프 촌 전체를 둘러봤다. 이제 남은 건 중앙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여왕을 알현하는 일 뿐.
"이리오너라---!!"
나는 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주 지가 상전이야, 상전."
"여왕님이잖아요. 히힛."
"누구 덕에 여왕이 되었는데 벌써부터 갑질이야, 갑질은. 아무래도 오늘 기강 단단히 잡아야겠어."
스파링을 하든 레슬링을 하든 후배위를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나와 다른 체위로 침대 위에서 싸워보겠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다면, 이쪽에서 여는 수밖에.
덜컥.
나무로 된 문이 열리자, 저택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형태였다. 나는 바로 샤이탄에게로 눈이 돌아갔다.
"너."
"...후훗."
저택은 현대의 건물 디자인을 그대로 답습해있었다. 현관, 거실, 부엌이 연결되어있고, 크고 작은 방이 따로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와, 저 이런 거 처음봐요. 마왕군은 원래 이렇게 집을 지어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루나 님께서 제게 저택 구조까지 일임을 하셨기에, 이런 구조로 한 번 재미있게 만들어봤습니다."
"......."
구조가 워낙 현대 주택과 비슷해서 왠지 모르게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딱히 상관은 없었다.
'뭐 여신이 '현대 문명 갱장해여엇!'하는 놈들 뚝배기 깨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현대 문명이 적용된다고 해서 그게 널리 퍼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던전 내의 다크엘프들 집으로만 적용된다면. 애초에 집 구조가 널리 퍼져나가봐야 아무 쓸모 없었다. 진짜로 퍼져나가야하는 것은 스타킹이었다. 스타킹을 솔로몬에게 진상하면 솔로몬은 분명 여신에게 스타킹을 입히고 찢을 것이다. 장담한다.
"주인님, 여기 방 안에 루나 언니 있는 것 같은데요?"
륜은 부부 침실로 보이는 문을 가리켰다. 노골적인 위치 선정에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갔고, 륜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빠바바밤, 빰. 빠바바밤. 루나의 라스하우스, 개봉박두!"
나는 문고리를 열어젖혔다. 아직 방 구조만 갖춰져있고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지만, 그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는 나를 보고 은은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어서와."
"......그건 또 어디서 구했냐."
"하나 받았지. 후훗."
루나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았다. 갈색 피부와는 확연히 다른 흰 스타킹이 루나의 탄탄한 허벅지까지 이르러있었다. 안드라스 깃털과는 달리 하피에게서 뽑아낸 하얀 순백의 깃털로 만들어진 흰 스타킹이었다.
"이게 왜 흰스지?"
"...지금 그걸 따지는 거야?"
"검스가 방어력이 더 탄탄하잖냐."
실제로 그랬다. 하피보다는 안드라스 깃털이 더 강했다. 루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자신의 상체와 하복부를 가리고 있는 하얀 이불을 흩날렸다. 저건 라스베가스에서 가져온 듯 했다.
"부우우. 하얀색 좋잖아. 여왕이 검은 드레스 입는 거 봤어? 하얀 드레스 입고 있지."
"그래서 그 이불이 드레스다 이거냐?"
"...히힛, 짜잔!"
펄럭. 루나가 이불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 나는 루나가 이불로 숨겨둔 상의에 넋이 나갔다.
"이러면 좀 여왕같아?"
루나는 이불을 망토처럼 등에 두른 채, 상의로는 륜이 입고있는 것과 비슷한 흰색 하이레그 레오타드를 입고있었다. 바니걸 요정들을 위해 제작된 검은 옷과는 달리, 흰색은 나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벌써 며칠도 전에 조합장이랑 거래를 했지. 네가 말하는 그 흰스를 신는 대신, 이걸 입어서 한 번 보여주기로. 제법 대화가 잘 통하는 인간이었어. 뭐...여왕이 아니었어도 언젠가 이거 입고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지. 어때, 괜찮아?"
루나는 이불을 뒤로 넘기며 육체미를 과시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 가슴이 터져나올 것처럼 부풀어있었고, 아래쪽에는 도끼자국이 깊게 패여있었다. 상당히 선정적이었지만, 루나는 그걸 내게 오히려 과시하며 침대를 향해 팡팡 두드렸다.
"그러면 여왕 맛 좀 보시겠어요? 후후."
"......참을 수 없군."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루나가 나를 생각하여 이런 이벤트를 마련한 건 좋았지만, 루나가 자기 뜻대로 리드하는 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리드를 하고 싶었고, 루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다.
"루나, 잠시만."
나는 루나에게 다가가 루나를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들었다. 루나의 가슴과 허벅지가 자연스레 손에 잡혔고, 루나는 팔을 내 머리에 걸며 활짝 웃었다.
"어머, 침대에다가 내던지려고?"
"어. 근데 이 침대가 아니다."
나는 발로 문을 다시 열었다. 루나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뭐하는 거야...?"
"인생은 말이다,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있지. 네가 5성으로서의 처녀를 내게 주기로 선택한 것처럼 말이야."
"또 무슨 이상한 헛소리를 하려고 하는 거야...?"
루나는 내 목 뒤를 꼬집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침대에 던져서 개처럼 박지 못해?!"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고. 아, 힘쓰면 안 해줄 거다."
"너, 지금 그게 나한테 협박이 될 거라고 생각해? 누가 아쉬워?"
"너지. 어디가서 나같이 잘생기고 좆 커서 너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자가 있을 것 같으냐?"
사실 허풍이고 허세다. 행여나 루나가 삐져서 다른 남자랑 붕가붕가한다면 미칠 것처럼 후회하고 또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루나의 콧대를 단단히 꺾어보겠다는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루나야, 나랑 하고 싶으면 말이다."
나는 루나의 우유통을 우악스럽게 쥐어뜯었다. 레오타드의 흉부 부분이 길게 늘어졌고, 루나의 한쪽 가슴이 '포잉'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튀어나왔다. 루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조용히 입닥치고 내가 박아주는 대로 박혀라. 알겠냐?"
"......."
루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듯 입만 뻥긋거렸다. 정말로 다행스럽게, 루나가 보기에는 자신보다 훨씬 약한 내가 강하게 나가니 얼척이 없으면서도 몸이 달아오르는 듯 고간 부위의 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루나는 방금 살짝 지렸다.
"그리고 말이다."
나는 루나를 들고 문으로 다가가 밖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지금 수박 먹고 싶다."
"뭐...?"
"라스베가스가서 수박에이드 한 잔?"
"자, 잠깐만. 너 설마...?"
루나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자! 향락의 천국, 라스베가스로!!"
오늘 밤. 나는 진정으로 루나를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신수가 앗아간 루나의 처음을 내 녹색으로 덮어버림으로써.
"흰스! 흰수영복! 그렇다면 당연히 하얀피부지!"
나는 순백의 삼위일체를 맞추기 위해, 라스베가스를 향해 달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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