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434일차 -------------------------
안드라스.
하피 시절부터 다른 남자를 받아들여 알을 낳았고, 이어 내 정을 받아들여 하르퓨이어를 낳았던 존재.
나의 것이기는 하지만, 5성으로 진화하여 그 맛이 상당히 독특하기는 하지만, 자유 라스 신봉자인 나는 안드라스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 없었다.
"잘생긴 인간 남자랑 백년가약을 맺고싶다더니. 흐흐, 남자 보는 눈은 있군."
기사 그에이는 안드라스에게 붙잡혀 허공에서 발을 차고 있었다. 아마도 이제 어디 2층 집에 떨어져 그대로 안드라스에게 먹히지 않을까.
"주인님, 안드라스가 다른 남자랑 하는데 괜찮으세요?"
"백년가약 한다고 내가 안 먹을 것도 아니고, 냅둬."
이미 다른 남자의 손을 타기도 했고, 굳이 안드라스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다. 그저 한낱 1성 하피에 불과했던 녀석이 5성이 되어 저렇게 기사를 납치해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동했다.
"꼭 제자를 키워서 대학 보낸 느낌이구나. 흐흐."
"그 제자 드셨잖아요."
"...아니, 뭐, 과외비라 이거지. 그보다 륜아."
나는 달려드는 모험가의 얼굴을 붙잡았다. 륜은 로브 사이로 화살을 세 번 날렸고, 모험가의 배에는 세 개의 바람 구멍이 뚫렸다.
"이것들 다 잡아다가 어떻게 처리하지?"
"이 노오옴!!"
"어디서 놈이야, 대머리가."
나는 반백으로 벗겨진 사제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조용히 하여라!"
"크헉!"
찰진 소리와 함께 사제의 이마에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 나는 아직 문신의 기운이 남은 손을 높이 치켜올려, 다시 사제의 이마를 향해 내려쳤다.
"오크신장!"
짜---악!!
사제의 이마에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진하게 남았고, 나는 그를 멀리 걷어찼다. 륜의 화살이 사제의 복부를 꿰뚫었다.
"아, 쉽구나. 이제 전부 해치웠나?"
"주인님!"
륜이 비명을 지르며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바람 화살은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했고, 젊은 사제 여인은 메이스로 바람 화살을 쳐내며 나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여신이시여---!!"
앙칼진 목소리로 여사제는 높이 뛰어올랐다. 내려찍는 무게까지 더하여 나를 신성력으로 후려치려고 했고, 륜의 화살 공격은 소용이 없었다. 피하기에는 늦었고, 막기에는 아플 것 같았다.
"륜!"
나는 륜을 옆으로 밀친 뒤, 메이스가 떨어지는 위치를 향해 정확히 배를 들이밀었다. 허리를 뒤로 꺾고, 때리기 쉽게 배를 들이미니 여사제는 당황한 듯 자세가 흔들렸다.
퍼--억!
여사제의 철퇴는 튕겨나갔다. 신성력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배가 쓰렸지만 그 고통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금 확인해봤는데, 아무래도 여신의 신성력으로도 내 배는 다져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쯥, 어떻게 복부 마사지 좀 받는가 싶었더니."
"주인님!"
"걱정마라, 륜아. 이것은 복근 가드라고 하는 것이다."
가슴에 화살이 박힐지는 몰라도 배에는 박히지 않으리라. 나중에 판금 갑옷을 입으면 배는 내놓고 다녀도 되겠다는 시덥잖은 생각을 뒤로 한 채, 나는 튕겨나간 여사제의 목을 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선택해라. 빨강, 녹색, 검정, 금색, 살구색."
"무, 무슨...!"
"여사제 능욕을 하긴 할 건데, 능욕할 수 있는 대상이 워낙에 많아서 말이지."
"퉷!"
여사제는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
"포상 감사. 그런데 기분은 좀 더럽구나. 기껏 신사답게 기회를 주려고 했더니."
"간악한 마물아, 여신께서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 여신의 신성력으로도 내 지방을 뚫지 못했지. 아무래도 너는 안 되겠다. 암두시아스!!"
뿔로 남자를 들이받던 암두시아스가 다그닥거리며 내게 달려왔다. 눈을 좌우로 굴리던 암두시아스는 내가 목을 잡은 여사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고, 노란색 뿔을 빛내며 킁킁거렸다.
"처녀!"
"뚫어라!"
"히히힝!!"
암두시아스는 내가 던진 여사제를 등에 태웠다. 등?
"너 지금 뭐하냐?"
"고자 표범 갖다줘도 되나요?!"
"...플라우로스 말하는 거냐?"
"네!"
암두시아스는 아무래도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미안함을 느낀 모양이다. 물론 갖다준다고 해서 고자가 된 플라우로스가 어떻게 포로를 대할 수 있을지는 본인의 몫이지만, 나는 전황 파악 겸 원군을 보냈다.
"그럼 유니콘들을 인솔하여 원군으로 가라. 샤이탄이 너를 인도해줄 것이다."
"히히힝!!"
암두시아스는 유니콘 부대를 이끌고 전장을 떠났다. 그리고 유니콘 부대가 떠나자 워울프 부대들이 아쉬워했다.
"크르르."
로보 2호가 그르렁거리며 바닥을 발로 찼다. 유니콘 부대와 달리, 워울프들은 모두 수컷이었다.
"왜? 너희들 라스할 유니콘들이 다른 곳 가서 그렇냐?"
"크르륵."
로보 2호기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콘 모두가 암컷이라 종마 역할은 조카멜이 맡아야 했지만, 조카멜은 굳이 늘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그러면 우선 적을 먼저 다 쓰러뜨리자꾸나."
기사를 제압하고, 사제들을 모조리 죽였다. 모험가들은 고작 100명도 채 되지 않는 마물들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는 나와 륜이 있었다.
"미친 유니콘들이 물러선다! 이제 승산이 있어!"
"엘프, 엘프부터 죽여! 저 년이 제일 위험해!!"
"여신이시여!!"
아직까지 죽지 않은 것들이 많다. 한 번 쭉 훑어본 결과 그에이만한 인재는 없어보였고, 전부 다 마석으로 치환되면 딱 좋겠다 싶은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들어라, 이 작은 인간들아----!!"
나는 모험가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나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험가들은 여전히 무기를 든 채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왜 항상 투항하라고 얘기만 하면 더 분노하면서 달려들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 뒤지고 싶어서 작정한 건지.... 쯧, 라스베가스 주민들을 구울로 채우고 싶지는 않으니 어쩔 수 없군."
나는 륜의 치마 끝을 살짝 걷어올렸다. 검은 팬티 스타킹이 서서히 드러났고, 륜은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고간 부위의 치마를 붙잡았다.
"주인님?!"
"이 좋은 문명을 체험할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안타깝구나. ...륜아, 내가 설마 저것들한테 너를 보이겠느냐?"
물론 내가 륜과 한 흔적은 슬쩍 보였겠지만, 륜은 입술을 삐쭉거리며 툴툴거렸다.
"갑자기 그러셔셔 놀랬잖아요."
"놀라기는 했어도 스릴 있잖냐. 흐흐."
나와 륜은 장난을 치며 무기를 다시 잡았다. 모험가들은 나와 륜의 장난에 상당히 분노한 것 같았지만, 내가 진지함을 조금 내려놓아도 될 정도로 전황은 유리했다.
"모험가들아, 미안하다."
쿵, 쿵쿵!
울타리 사이에 숨어 목책으로 위장하던 스톤골렘.
대장은 잠시 용무를 보러갔지만 하르퓨이어가 이끄는 하피 엔젤 부대.
그리고 지상에 자리잡은 오크, 안드라스 부대.
그 수가 족히 300을 훌쩍 넘었고, 모험가들의 수도 300가량으로 줄어있었다.
"지금부터 최후 통첩이다, 모험가들아!!"
나는 마지막으로 소리를 질렀다.
"쭉쭉빵빵 서큐버스 누님들 대기중! 근육질 오크 오빠들 대기중! 이상성욕자를 위한 촉수, 슬라임 완비!! 지금 항복하면 서비스로 평생 공짜! 행복하게 보내주도록 하마! 3, 2, 1!!"
아무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럼 다 뒤져야지. 라스으으으으으!!"
내 포효와 함께, 마물들이 모험가들에게 진격했다.
속전속결.
빨리 싹다 죽이고, 플라우로스 멀티도 지킨 다음, 라스하러 가야하니까.
* * *
푸부북!
물로 이루어진 화살이 플라우로스의 허벅지에 박히고, 물로 이루어진 창이 불타는 머리칼을 갈랐다. 플라우로스는 1:2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상성 차이로 패배하여 무릎을 꿇었다.
"허억, 흐억, 허어억...!"
"이미 전투를 치뤘던 건가? 하체의 움직임이 상당히 굼뜨더군."
벨리알은 무릎을 꿇은 플라우로스의 앞에 쪼그려앉았다. 금발의 미청년이 된 그는 플라우로스를 대놓고 비웃고 있었고, 플라우로스는 패배의 굴욕에 이를 갈고 있었다.
"64위도 별 거 아니구만. 이럴 줄 알았으면 아래에서 한 계단씩 천천히 밟아나갈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네, 이 놈...! 내가 몸 상태만 온전했으면...!"
"그럼 온전한 상태에서 싸우셨어야지. 그게 변명인가? 추하군. 그대의 이름과 얼굴은 가져가겠지만, 그대와 그대의 부하들은 도무지 거둘 가치가 없어 보인다네."
벨리알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완벽하게 제압당한 플라우로스의 부하들을 한 번 쭉 가리킨 뒤, 빰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플라우로스가 분통을 터뜨리며 입을 쩍 벌렸지만,
따깍!
벨리알의 옆 나가가 물의 트라이던트로 머리를 후려치니, 플라우로스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나가는 트라이던트의 사이에 플라우로스의 목을 꽂았다.
"나는 지금 그대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는 승자이니라. 시건방지게 굴지 말도록."
"......흐흐, 네놈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플라우로스는 바닥에 피가 고인 침을 뱉으며 눈을 희번득 떴다.
"나로 끝인 줄 아느냐? 흐흐,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이야?"
"뒤에 누가 있든 지금은 네가 내게 패배한 건 마찬가지지. 가령 내가 플라우로스의 이름을 가지고 네 뒷배경에게 간다고 치자. 그러면 한 번 패배한 너를 다시 중용하겠느냐, 아니면 너를 쓰러뜨린 나를 중용하겠느냐?"
"뭐...? 네, 네놈...!"
"흐흐, 멍청한 놈. 나한테도 눈이 달려있다."
벨리알은 허공을 두드렸다. 플라우로스는 그가 시스템을 건드리고 있음을 단번에 깨달았다.
"<분노의 군단>? 아무래도 너는 그 군단에 소속된 던전 주인 같은데.... 후후, 마침 잘 됐군. 소속될 군단을 찾고 있던 중이었거든."
"너, 도대체 무슨...?"
벨리알은 고개를 숙여 플라우로스에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군단에 소속되어, 인장을 강탈한다. 간단한 이치지."
"......네 이놈! 마족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크흐, 흐흐흐."
벨리알은 플라우로스와 정확히 시선을 맞췄다. 그는 얼굴을 손으로 훑었고, 플라우로스는 그가 보인 얼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벨리알, 그는 마족과는 사뭇 다른 인간 여인의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마족 출신이 아니라서 말이야."
"너, 너 도대체-"
"뭐, 이런 존재도 있다 이거지. 후후."
벨리알은 다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미청년의 얼굴이 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어디 너를 인질로 잡고 군단에 인사를 드리러 가볼까."
[그럴 필요는 없네요.]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에 벨리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운 미성은 자신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족의 날카롭고 찢어진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인간의 목소리였다.
"...누구신가?"
벨리알은 황급히 목소리부터 바꾸었다.
[그쪽부터 먼저 설명하시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후두둑!
천장에서 수십의 촉수 다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벨리알은 남근과도 같은 촉수 끝의 모양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남자고 여자고 하나도 빠짐없이 촉수에 꿰뚫리게 될 거니까.]
"......상황 참 좆같군."
벨리알은 속으로 짧게 읊조린 뒤.
"소인은 솔로몬의 72 던전 중 68위. 벨리알이라고 하외다."
[힘의 차이를 느끼시라도 한 건가요? 앞마당 지키는 개한테 하던 말과는 다르게 상당히 공손하시네요.]
"...과연."
벨리알은 빠르게 여인의 말을 파악하고 상황을 읽어냈다.
"플라우로스를 그저 하극상을 막는 완충제로 사용하신 겁니까?"
[...머리가 상당히 뛰어나네요. 그분께서 좋아하시겠어요.]
여인의 말에 벨리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마족은 약육강식. 당장 플라우로스를 쓰러뜨린 벨리알의 세력은 '합격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새로운 플라우로스가 된다면, 우리 군단의 일원이 되시겠어요? 당신의 모든 세력을 바쳐서라도?]
"군단에 들어갈 수 있다면."
벨리알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세력 모두가 무릎을 꿇었고, 무릎이 없는 나가 둘은 고개를 조아렸다. 복종의 표시였다.
[좋아요. 완전히 쓸모가 없어진 존재는 폐기처분하는게 맞기는 하죠. ...하지만 인장을 강탈한다라. 이건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네요.]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디 한 번 말해보세요.]
벨리알은 혀로 마르기 시작하는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군단의 주인, 인장의 주인이라면 응당 그럴 자격이 있는 존재가 가져야만 가치가 있는 것. 만약 제가 진정으로 모시고 따를 수 있을 주인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분께 충성을 맹세할 겁니다. 하지만 그럴 자격도 없는 자라면...."
[인장을 강탈하겠다?]
"물론입니다."
[당당하시네요. ...좋아요. 그분께서 돌아올 때까지 살아남아 보세요. 이 공격을 받아넘길 수 있다면.]
"......후우."
벨리알은 몸을 일으켰다. 통로 반대편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는게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있는 촉수들은 자신과 수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촉수 형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군.'
혐오감과 불쾌감을 일으켜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벨리알은 두터운 책을 펼쳐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군, 우리의 존재 가치를 증명-"
"히히힝!!"
반대편에서 머리의 뿔에 사제복의 여인을 끼운 유니콘이 달려오고 있었다. 검은 천같은 것으로 머리띠처럼 묵은 유니콘은 여인을 머리의 뿔마냥 달고 통로를 질주해왔다.
"히힝, 히히잉!!"
"아흐, 흐아악! 조, 조금만 천천, 히이이잇!!"
여인은 다그닥 소리를 낼 때마다 교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전군 수비."
이마에 처녀를 끼운 유니콘의 등장에 벨리알은 전의를 살짝 상실했다.
"씨발 진짜 좆같이 싸우네."
"히히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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