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031일차 -------------------------
샤이탄은 서큐버스다.
서큐버스 종의 근원은 몽마(夢魔)로, 꿈을 통해 대상의 정기를 갈취하는 것이 서큐버스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샤이탄은 바닥부터 시작한 서큐버스로서, 각고의 노력끝에 4성-'마담'이라는 칭호를 칭할 수 있게 되었다.
- 서큐버스라는 종은 말이다, 상대의 꿈을 통해서만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 직접 하면 어떻게 되냐고? 효율이 몹시 낮아. 힘들게 뭐하러 그러니? 그냥 상대의 꿈에 들어가서 한 발 쪽, 하고 나오면 되는데.
부친이 샤이탄에게 붙여준 선배 서큐버스의 조언이었다. 그녀는 샤이탄에게 서큐버스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종술과 성마법을 가르쳐줬으나,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 선배님, 왜 직접 체험하지는 않고 꿈에서만 하는 겁니까?
- 그거야 모든 첫 실전은 나중에 네 주인님을 위한 거니까. 오호호! 얘, 남자든 여자든 처음이라는 건 중요한 거야. 비록 내가 상대의 처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 처음을 상대에게 주는 거라면 그건 또 달라진단다? 나 봐봐. 마왕님이 처녀 앗아간 뒤로 나 어디 밖에 안 돌리잖니. 오호호.
그녀는 깔깔거리며 샤이탄에게 남심을 홀리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샤이탄은 정말 온갖 테크닉을 꿈으로 연마했고, 꿈속에서만큼은 마왕에 버금가는 테크니션이었다.
- 이 정도면 하산해도 될 정도인데? 오호호.
샤이탄이 그녀의 꿈속에 들어가 그녀를 만족시켰을 때, 침대에서 그녀는 장난치듯이 샤이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과 똑같은 보라색 머리칼의 여인은 샤이탄을 꼭 끌어안으며 조언했다.
- 잊지마. 네 처음은 값싸게 넘길만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꼭 값어치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렴. 속궁합도 잘 맞으면 좋고. 그러니까 꿈을 통해 확인하는 거잖니? 오호호.
그녀는 샤이탄에게 있어서 선배이자 스승이며 어머니였다. 그녀는 비록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샤이탄의 인생관을 만들어준 은인이기도 했다.
"......."
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삶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의 오크 남자, 자신의 주인은 자신에게 음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지만 결코 취하지는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어.'
처음에는 서큐버스 종 자체에 대한 혐오감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크는 구멍만 있으면 나무 뿌리에도 박는 남자였고, 남들 눈만 신경쓰지 않았다면 유니콘과 듀라한을 한 침대에 놓고 쌍으로 박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성욕의 화신이, 색욕의 군단이라 평해도 다르지 않을, 색욕의 군단장이 라스군을 보고 이름을 당장 바쳐도 모자랄 주인이 왜 자신은 건드리지 않는 걸까.
'설마 내가 매력이 없는 걸까?'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샤이탄은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존재였다.
비록 군단장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이 쟁쟁한 미모를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자신이 결코 꿀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일단 배고프면 먹고 보는 오크인데, 설마 샤이탄을 먹으려 들지 않겠는가.
'그래. 그레모리에게도 박으시는 분인데 설마 나라고 안 박겠어.'
하지만 실제로는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샤이탄을 약올리는 것처럼 샤이탄을 대했고, 샤이탄이 직접 귀두에 입술을 맞추며 신호를 보냈지만 주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니 직접 이유를 알아내자. 샤이탄은 침대에 대자로 뻗은 주인의 옆에 반듯한 자세로 앉았다. 이미 벌써 침대에는 두 명의 엘프와 한 명의 마녀가 안겨있었다. 각각 흰색, 검은색, 붉은색의 특징적인 색깔이 있었고, 그들은 대번에 샤이탄의 접근을 눈치챘다.
"주인님 자요."
"깨우지마.... 지금 일어나면 내일 분량 떨어진다고."
"공주님이 드디어 다리를 벌릴 생각이 들었나봐? 오호호."
하나같이 자신을 견제하는 부루퉁한 말투에 샤이탄은 웃음이 나왔다. 손으로, 몸으로, 가슴으로 주인의 아랫도리를 보호하는 움직임에 샤이탄은 주인이 참 복받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배들로서 기강을 잡으려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늘 저는 주인님의 꿈속에 접속할 생각입니다."
샤이탄은 자고있는 주인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즉, 제 도움이 있으면 주인님과 꿈속에서 할 수 있다는 얘기죠."
"뭘 도와드릴까요?"
"어머나...."
"역시 공주님."
셋은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샤이탄은 순식간에 갑의 위치에 올랐고, 주인은 침대 위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제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셋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샤이탄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단정히 정돈하고, 주인의 손을 꼭 잡았다.
"접속."
샤이탄의 의식이 주인의 꿈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세계가 뒤바뀌고, 샤이탄은 눈 깜짝할 새에 눈을 떴다.
"여기는...?"
주인의 무의식 세계.
그곳은 생전 처음 보는 회색 고층 건물들의 정글이었고, 마왕의 던전에서도 보기 힘든 매끈한 거울이 샤이탄을 비추고 있었다.
"어라...?"
샤이탄은 에스투와도 같은, 흑발에 정장을 입은 OL차림이었다. 오직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의 색깔만이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건...대체?"
"너 여기서 뭐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샤이탄은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생전 처음보는 '인간'남자가 정장 차림으로 서있었다.
"지각한다?"
"저, 저기, 주인...님?"
"너 어제 술마셨냐? 발음이 왜 그래? 그리고 나 주임아니다. 이제 '대리'라고. 대리. 흐흐."
낮은 웃음소리마저도 똑같았다. 하지만 피부는 오크 특유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고, 육체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는 건물의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씩 웃었다.
"출근해야지?"
"네...."
샤이탄. 서큐버스 74세.
분노의 군단 군단장의 꿈속에서, 첫 출근길에 올랐다.
* * *
"우리 ..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로 시작하여 개새끼야로 끝나는 회식은 어느덧 3차까지 이르렀다. 날짜는 벌써 다음 날로 넘어갔고, 다들 고주망태가 되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이 망할 놈의 회식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으허허, 나 때는 말이야! 새벽 네 시까지 달리고 회사 앞 국밥집에서 든든-하게 먹고 출근하고 그랬어!"
깡소주만 몇 병을 처마셨는지 모를 부장이 눈치없이 3차까지 남아서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다. 부장을 커버해야할 과장은 2차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라인을 잘 타는 능력 하나는 발군이라 간을 버려가면서까지 술을 마셔댔지만, 젊은 여자에 눈이 돌아간 부장의 음습한 의지력에는 이겨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우리 두 사원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요! 저거, 이 새끼 사원 시절 때랑은 확연히 다르네!! 으허허, 안 그래?!"
부장은 솥뚜껑만한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며 껄껄 웃었다. 이 새끼 아까 호프집에서 치킨 손으로 뜯고 손 안 씻었지 않았던가? 절로 화가 끓었지만, 내 앞에 마주앉아 태연한 얼굴로 난처하게 웃는 여사원을 보고 화를 달랬다.
"하, 하하. 그렇죠. 부장님, 문어숙회 좋아하시죠?"
"으허허, 이 새끼, 그걸 다 기억하고 있네! 시켜! 소주도 두 병 더!"
'낙하산 신입이들도 참는데 내가 터지면 안 되지.'
부장이 옆에서 진상을 떨고 있어서 그럴까, 오늘따라 얌전한 신입들이 예뻐보였다. 원래 미인상이기는 하지만,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예뻐보이기는 했다.
"자, 우리 이사님 따님께는 제가 드려야지요!"
"아, 아니에요. 호호...."
저 쌍년 빼고. 키는 짜리몽땅하고 화장은 덕지덕지 처바른게, 이사 딸이라는 뒷배를 이용해 아닌척하면서도 부장을 제 아랫것처럼 대하고 있다. 하필이면 부장이 그 이사의 라인을 타고 있는 중이라 괜히 나섰다가는 내가 깨질 판이었다.
"우리 이단 사원도 한 잔 받고! 오늘 아주 큰일을 하셨어!"
"아닙니다."
아침에 유리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사원-사이단은 옅게 웃으며 잔을 받았다. 전날 진탕 마시기라도 한 건지 한 시간 정도는 처음 온 사람마냥 어리버리하더니, 어느새 시간이 지날수록 일처리가 똑부러져서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다.
"자네 덕분에 우리 프로젝트가 그대로 살 수 있었다고. 으허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
이사의 딸은 인상을 찌푸리며 궁시렁거렸다. 저년이 기밀 문서를 파쇄도 안하고 쓰레기통에 쑤셔넣은 바람에, 내가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일일이 파쇄를 했던게 몇 번이던가. 차장이든 과장이든 '네가 더 신경 썼어야지!'하는 식으로 나를 꼽주던게 일상이었건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흐허허, 좋구만, 좋아! 너 이 새끼, 복 받은 줄 알아!"
"...예."
이미 술에 취할대로 취한 부장은 적당히 말을 받기만 해도 혼자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사원시절부터 있었던 무용담이 다시 반복되기 전, 잠시 옆으로 빠져나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후우."
벌써 주량은 한참 넘긴 것 같은데, 하필 부장이 남아있느라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지난 번에 골프장에서 캐디와 바람났다가 마누라에게 걸렸다고 하더니, 오늘은 아무래도 만만한 미모의 여사원을 건드리려는게 틀림없었다.
"씨발...."
하지만 어떻게 힘이 없었다. 나는 그저 갓 대리를 단 찌끄레기일 뿐이고, 학자금 대출도 다달이 나가고 있는 중이라 합의금을 물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조금 빡치는 일을 제외하면 월급은 남들보다 평균 이상으로 버니, 그것만 생각하며 화를 달랠 뿐이었다.
"하-아."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니 그래도 정신이 어느정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월세 입금일, 대출금, 차량 할부금을 생각하니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드 한 장 달랑 들어있던 텅 빈 지갑에는 토를 세 번이나 하고 부장이 쫓아낸 차장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대리비 10만원만이 꼬깃꼬깃 접혀있었다.
"에휴,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가게로 돌아왔다. 술집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부장은-
"와, 씨발?"
사이단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어깨동무를 하며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이단은 굳은 얼굴로 술잔을 받기는 하고 있었고, 옆에 앉은 동기년은 꼬시다는 얼굴로 휴대폰이나 만지고 있었다.
"......."
나는 왠지 모르게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당장에라도 부장 놈의 뒷통수를 쳐버리고 경찰에 성희롱으로 신고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부장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나만 짤리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쟤는 무슨 죄가 있겠는가.
"어우, 저거 어떡해...?"
계산대에 선 알바생도 부장의 추태를 눈치챘다. 나는 계산대 옆의 CCTV 모니터를 흘깃 확인하고, 취한 척 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남자와 부딪히고, 테이블 사이 기둥에 부딪히며 우리 테이블로 걸어갔다.
"흐흐, 그럼 사사원. 사사원? 으허허!"
부장은 뭐가 그리 웃긴지 혼자 껄껄 웃으며, 손을 사이단의 허리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갈지자로 걷던 내 다리를 스스로 헛디뎠다. 마침 바닥에는 부장 쪽에서 흩뿌려진 것같은 물기가 가득했다.
"으어억?!"
구두가 미끄러지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냥 엎어지는 척 하려고 했는데, 예상외로 더 미끄러워져서 나는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덥썩.
내 손이 무언가 보드라운 털같은 것을 붙잡았다. 원래 계획은 이걸 흐트려버리는 것이었지만, 사이단의 허리에 닿은 손을 보니 화딱지가 치밀었다.
'시발, 짜를 거면 짜르라지.'
나는 내가 잡은 인조모발-가발을 확 잡아뜯었다.
부우우욱!!
"으아아악!!"
무언가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부장은 분노어린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분노의 대상인 나는 이미 바닥을 향해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쿵!
나는 어깨부터 떨어지며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절한 척하며 실눈을 떴다.
"......."
머리가 벗겨진 부장이 내 손에서 가발을 빼앗을까 말까 전전긍긍하던 옆, 사이단이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왜일까, 사이단의 등 뒤로 박쥐같은 날개가 들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녹화중.]
'와.'
괜히 그랬나. 나는 사이단의 손에 잡힌 스마트폰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부터 혼신의 연기를 할 차례.
"......아오오."
나는 누가 응급차를 부르기 전,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나를 부축하는 덕분에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나는 손에든 물건을 확인하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부장에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 * *
"짤리겠네."
나는 편의점 옆 골목의 벽에 등을 대고 섰다. 부장은 길길이 화를 내며 떠났고, 죽은 척하던 과장은 그제서야 일어나 나를 꾸짖으며 부장을 모시며 떠났고, 상황을 전해들은 차장은 시체같은 얼굴로 돌아와 법인 카드로 계산을 하고 내 등을 토닥이며 떠났다.
"에이, 씨발."
"주인님?"
"아니, 나 글쎄 주임 아니라는...."
톡. 나는 내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오한이 들었다. 사이단은 특유의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게 초코우유를 내밀고 있었다.
"뭐야?"
"숙취에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냐.... 뭐 내일 출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저도 안 나갈겁니다."
사이단은 목에 건 사원증을 벗었다. 그리고 그걸 한손으로 우그러뜨려 휙 던져버렸다.
"......화끈한데?"
"꿈속이지만 저도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은지라."
"......?"
이름도 특이하더니 정신도 사차원이구나. 나는 사이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취해서 그런가? 취해서 그런게 분명하다. 아니면 사원증을 저렇게 쉽게 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주인님, 쉬실 거면 저기서 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글쎄 주임 아니라는-"
사이단이 가리킨 곳은 으슥한 골목 너머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모텔이었다.
"......저기요?"
"풋."
사이단은 웃으며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나는 사이단에게 붙잡혀 끌려가다시피 뒤따라갔다.
"어, 어어, 어어어?"
나는 눈 깜짝할 새, 침대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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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이스 사이단 양.
물론 농담이고, 그 서큐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