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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73화 (173/800)

0017331일차 -------------------------

"중급 마석 900개. 나는 포기 못한다."

"그럼 어떻게 방법 있어? 얘들 지금 키우자는 거야? 갤러해드는 그렇다 쳐. 기네비어는 완전히 아군이 아니잖아."

"하지만 중급 마석이 900개라고! 그거면 우리 오크들 싹다 워울프 타고 다닐 수 있단 말이다! ★★★짜리로!"

지하 1층에서 빤스런을 한 이후.

나는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막고 다시 부하들과 지하 1층 공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00마리 가량의 슬라임 드래곤을 전부 다 잡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남은 건 900마리 뿐이었다.

"최소 절반 이상은 벌어야지. 이것도 그나마 내가 직접 손을 집어넣어서 뽑아낸 것들이라고. 마석, 단 12개!!"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일일이 때려잡을 방법이 없는데. 애들 갈아 넣을 것도 아니잖아. 애들 투입해서 마석 못 캐면 죽게하고, 얻은 마석으로 다시 부활시키거나 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

"주인님. 그건 솔로몬 님께서 던전 주인들에게 지양하라고 하신 주의 사항입니다."

"나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 배우고 간다. 역시 마족들이야."

축차투입. 제법 그럴듯한 제안이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부하들 사지로 밀어넣어서 슬라임 드래곤들에게 먹히도록 하는 건 사양이다. 뭣보다 그런 식으로 마석 낭비하는 건 아깝다."

"사족만 아니었으면 정말 인자한 군단장일 텐데 말이야."

"새삼스레 뭘 그러냐. 그런 식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매일매일 때려잡는다 이거지. 내가 잡아서 경험치 손실은 있겠지만, 적어도 마석은 챙기지 않냐."

현재 슬라임 드래곤을 완벽히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우리 군단에서 셋 뿐이었다.

첫 번째, 그레모리.

원소술사인 그레모리는 광역으로 화염마법을 사용하면 모조리 태워버릴 수 있겠지만, 까딱 잘못하다가는 던전 전체가 불난리가 날 수 있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다.

두 번째, 륜.

어느덧 레벨이 50은 커녕 3성 만렙인 55를 훌쩍 넘긴 륜은 화살 서너발을 연달아서 쏘면 한 마리를 죽일 수 있었다. 레벨적으로 적당하여 경험치 손실은 없었지만, 문제는 원거리에서 잡다보니 사체와 마석을 슬라임 드래곤들에 의해 동족상잔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나.

슬라임 드래곤보다 더 난이도가 높았던 슬라홀 조차도 내가 두 손으로 찢어버렸는데, 슬라임 드래곤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안에 손을 집어넣어 마석을 뜯다보니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했다.

마석을 얻고 경험치를 잃을 것인가.

경험치를 얻는 대신 마석을 버릴 것인가.

"나는 무조건 전자다. 일단 현물을 쌓아놔야 할 거 아냐. 마석 다 썼는데 재고는 충분히 마련해둬야지. 스톤골렘 상위개체 뽑아서 성벽 쌓고, 오크 한 마리마다 워울프 하나씩 뽑고, 남는 마석 있으면 갈아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하루에 얼마나 얻을 수 있겠던데?"

"...하루 종일해서 한 50개?"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었다. 그리고 내 계획은 시작부터 집단 반발에 봉착했다.

"안 돼요. 주인님, 저한테 매일매일 한 번씩 부어주셔야 해요."

"그래. 네 물건이 얼마나 바쁜데 그런데 시간을 쓰려고 하니?"

"주인님. 저 아직...."

"너 나랑 떡치기 싫니?"

"그렇다면 인정이지. 철회하마. 하루에 10개씩만 파밍하자."

이 던전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내 몸보다 내 좆이 더 바빠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나는 부하들의 진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왜 아주 당당하게 있냐?"

"왜, 싫어?"

"아니. 뜬금없어서."

나는 우리 던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다크엘프, 루나의 방문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루나는 너무나도 당당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우쭐댔다.

"하고 싶어서 왔다!"

"오우, 화끈한 걸."

역시 한 번 발정 스위치가 들어가면 음란해지는게 엘프들의 기본 사양이 아닐까 싶었다. 오랫동안 금기라는 이유로 해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나를 통해 깨우치게 되었으니 그 반향이 오죽할까. 나는 루나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건 나중에 하자. 너 지금 나와도 되는 거냐?"

"응? 왜?"

"내가 배 부르면 오라고 했잖아."

루나에게 씨를 뿌린지도 어느덧 약 25일째. 루나는 이제 나흘 정도 뒤면 완전히 배가 불러있을 것이다. 숲의 수호자 엘프로서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될 금기-마물의 씨를 가진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하여 낳으려고 하니, 나로서는 그게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호자 일 때문에 나오기도 힘들다며. 너 지금 나와서 자고 갔다가 며칠 뒤에 바로 나올 수 있냐?"

"후후, 걱정마라. 그래서 내가 미리 다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지."

루나는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장기 임무를 자처하고 뛰쳐나왔다!"

"얘 진짜 답 없네?"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며!"

"그거야 그렇지. 그래, 환영하긴 한다."

라스군에 라스하고 싶어서 왔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당장 우리 군단 내에서 1:1로 루나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있어서 샤이탄과 그레모리랑은 통성명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여기 또 인간이 있거든? 여기는 내 잠재적 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위이자 사제 기네비어. 그리고 이쪽은 내 손자인 오크 성기사 갤러해드."

"사제? 성기사? ...여신교도?"

루나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두 존재에 대해 박수를 치며 반색했다.

"여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여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저, 저기."

"다크엘프 분이신데도 여신님을 따르시다니. 정말 진귀한 경험을 했군요."

던전 내부. 루나는 현재 초코맛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루나는 확실히 밝혔다.

"나 메론맛이거든!"

"예?"

"아, 미안. 쟤한테 좀 옮았어. 나 그냥 엘프야. 던전 내에서만 다크엘프."

"?????"

부자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잠시 던전 밖으로 가서 메론초코우유를 증명하고 나서야 부하들은 루나의 이상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성이 루나가 부담없이 우리 던전을 드나들 수 있는 이유기도 했다.

"흐흥. 덕분에 떡치고 가도 전혀 걸리지 않지롱."

"마을에서 쫓겨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원."

"마을에서 쫓겨나면 네가 책임져 줄 거잖아?"

"그거야 그렇지."

라임에 필적하는 모성의 소유자를 어찌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말이야, 너 그냥 장기 임무라고 해놓고 여기서 낳을 때까지 지낼 생각이지?"

"응. 겸사겸사 좀 쉬러 왔어. 요즘 우리 쪽도 난리라서."

"난리?"

"응. 인간연합에서 자꾸 연합에 참가하라고 극성이거든. 지금은 1장로가 좋게좋게 타일러서 내보내고 있는데, 요즘 계속 숲을 나와서 마왕군과 맞서 달라고 극성이거든."

"...이유야 대충 알겠네. 너 나중에 변명할 수 있도록 건수 만들어 주마."

나는 루나가 장기 임무로 위장할 적절한 정보를 제공했다.

엘프의 숲 인근에 만들어진 마왕군 63위의 던전.

해당 던전의 오크들은 아주 손쉽게 인간들의 도시를 점령함.

그들은 엘프의 숲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며, 인류 연합을 제외하고는 먼저 싸울 생각이 없음.

"이 정도면 장기 임무로 얻어낸 정보 수집치고 제법 쏠쏠하지 않냐?"

"...차고 넘치는 걸. 그런데 괜찮겠어? 이렇게 퍼줘도. 위험할 것 같은데."

"위험하면 어떠냐. 나는 말이야, 손님은 몰라도 침입자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오크다. 만약에 엘프들이 우리 던전을 침입하잖아? 으흐흐흐흐."

내 손길에 루나가 치를 떨었다. 이제 루나에게도 이런 식의 언행을 일삼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지경이었다. 루나 또한 내가 다른 엘프들을 건드리는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 뭐 여차하면 쳐들어가도 상관없고. 나도 이제 우리 숲에 정 떨어졌으니까."

"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

루나는 아차싶었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루나에게 박혔고, 그 눈빛은 호기심과 추궁을 담고 있었다. 도대체 엘프가, 수호자의 직위를 가진 루나가 무엇에 정이 떨어졌다는 것인가. 루나는 모두의 시선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으휴. 내가 진짜 입이 방정이지. ...딱히 알려줘도 상관없나? 흠흠. 좋아. 내가 정이 떨어졌다는게 다른 게 아냐. 지금 엘프의 숲은 두 개의 파로 갈렸거든."

"파가 갈린다고? 엘프들이?"

"장로들의 명령만 믿는 엘프들이 파가 갈릴 일이 있습니까?"

"어."

루나는 양 손을 들어올렸다. 한 손에는 손가락 하나를, 다른 한 손에는 손가락 둘.

"신수님이 '누군가'를 차기 여왕으로 점지하신 것에 대해 반대하는 1장로파, 그리고 신수님의 의견을 지지하는 2장로파가 있어. 내가 여기 장기 임무랍시고 나온 이유는 다름 아닌 너 때문이야, 륜."

"...이 흐름이면 설마."

"그래. 맞아."

루나는 륜을 가리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신수님이 점지하셨어. 엘프의 숲 차기 여왕은 제발로 숲을 나간 어린 엘프가 될 것이다."

* * *

부우욱!!

나무 줄기가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방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1장로는 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구석에는 1장로의 딸인 솔라가 쪼그려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후후, 후후후. 솔라야.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아, 아닙니다...."

1장로는 어찌나 분노하고 있는지, 장로로서의 근엄한 말투조차 내던지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솔라는 그저 그 분노가 자신에게 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래. 말이 안 되지. 말이 될 리가 없고 말고. 신수님께서 정한 금기야. 나도 금기를 어기지 않고 살아온 지 벌써 어언 700년이 되었고, 너도 그 어떤 금기 하나 범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지. 그래, 왜 그랬겠어. 차기 엘프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함 아니니. 여왕, 여왕! 신수님이 지키는 성검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

1장로의 눈에는 광기마저 엿보였다. 눈에 핏발이 선 1장로의 눈은 금방이라도 원수를 눈빛만으로 찢어발길 것처럼 매서웠다. 당연히 같은 공간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솔라로서는 쥐죽은 듯 처박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실패했어! 신수님께서는 내게 장로라는 자리를 부여하셨지! 아아, 솔라 너는 모를 거다. 더이상 장로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게된 나의 한계를! 하지만 너는 다르다, 솔라야. 너는 네 이름인 태양처럼, 저 하늘 높이 오연히 걸려있는 유일무이의 존재가 될 수 있단다! 엘프들의 여왕! 엘프들의 빛이 되어 줄 존재!!"

솔라의 어깨를 붙잡는 1장로의 미소에 솔라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히익!!"

"내 딸이 여왕이 아니라, 제멋대로 금기를 범한 어린 년을 여왕으로 삼느냔 말이다!! 어디서 굴러먹은지도 모를 개잡년의 몸에서 태어난 년을!!"

"죄송해요, 죄송해요!!"

솔라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두 손을 비비며 사과했다. 그제서야 1장로는 자신이 정신이 나가있었음을 깨닫고 솔라를 꼭 끌어안았다.

"아가.... 미안하다, 미안해. 절대로 네게 화를 낸 것이 아니야. 응당 네 자리여야 할 여왕의 자리를 빼앗은, 그 망할 년의 딸이 잘못된 거지. 그래."

1장로는 솔라를 끌어안으며 차갑게 읊조렸다.

"마족에게 범해진 년의 딸이, 어딜...!"

"......!!"

* * *

"제가요? 여왕? 싫은데요."

륜은 딱 잘라서 거절했다. 루나 또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너도 정이 떨어졌으면 진작에 떨어졌지. 하여튼 지금 1장로랑 2장로님이랑 엄청 싸워대고 있어. 너 솔라 아니? 걔가 여왕이 안 됐다고 1장로가 엘프들 앞에서 엄청 히스테리 부렸거든."

"아...."

"솔라가 뭐 1장로 딸이라도 되냐?"

"네."

"그럼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왜 신수는 여왕을 뽑겠다고 난리야?"

륜과 루나에게 기존에 전해듣기로, 엘프들은 장로들에 의해 모든것이 결정되지 따로 '왕'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없다고 들었다. 존재하되 군림하지 않는 여왕도 아니고, 진짜 여왕이라는 것은 명목만 있을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야 진짜로 전쟁을 치르게 생겼으니까."

"여왕만이 엘프들을 전쟁에 동원 할 수 있거든요. 인간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그게 규율이에요."

"그렇구만. 그런데 륜아, 그래도 왕하면 좋지 않겠냐?"

"저는 왕 같은 거 관심없어요. 지금이 좋은 걸요."

"하긴 그렇지. 그리고 륜이 꼭 여왕이라는 법도 없고."

제 발로 숲을 나간 어린 엘프. 마지막은 륜일지 몰라도, 어디 그런 엘프가 한둘이겠는가. 적어도 륜은 아닐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제 발로 나온 건 아니지.'

륜이 신수가 내린 신탁의 대상인지 아닌지는 관심도 없다. 어차피 나는 륜을 보내줄 생각도 없고, 륜도 이 던전을 떠날 생각도 없다.

"...륜아,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어?"

"음...주인님 거야 맨날 먹으니까...아!"

륜은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저도 워울프 타고 싶어요! 나중에 하나 생기면 암컷으로 저 타고 다녀도 될까요?"

"......중급 마석 겁나게 모아야겠구만."

륜이 한 마리 타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뽑아줘야지. 나는 건더기 가득한 로보(2호)탕을 그릇에 떠서 루나에게 내밀었다.

"그럼 루나야. 네 여왕님께서 워울프를 타고싶다고 하시는 구나. 이거 든든하게 먹고 작업치러 가자."

"작업?"

"어. 왔으니까 일해야지? 마석 오지게 한번 뽑아보자."

여기, 신성력을 쓸 수 있는 다크 엘프가 있다.

"중급 마석 200개당 안에 푸짐하게 한 발 싸드림."

"이 미친 새끼가?"

"꼬우면 저거 쓰던가. 얼마전에 새로 딜도나무 하나 장만했는데 한 번 해볼래? 야, 그레모리! 시범 좀 보여봐라!"

"야! 밥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리는, 우우웁?!?!"

"......."

결국 150개로 타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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