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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71화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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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

그레모리가 지나가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성검은 전부 12자루이다. 그 성검의 사용자로 밝혀진 이들은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성검을 사용하는 자를 알고있다.

"아버님이 사용하시는 성검은 <아스칼론>. 먼 옛날, 여신의 세례를 받은 용사가 블랙 드래곤의 목을 베었던 검입니다. 저희 아리에스 백작가는 그 용사의 핏줄을 이어받은 정통 후계자로서, 아리에스 검법은 아스칼론을 사용하기 위해 특화되어있습니다."

"마족, 마물 중에서도 드래곤, 용인족, 리자드맨 등을 상대로 발군의 힘을 자랑하는 무구죠. 백작님께서는 그...트랄 이라는 오크를 상대로 아스칼론을 꺼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검빨로 트랄을 이겼다는 거군."

드래곤을 죽인 성검에 패배했다면 어쩔 수 없다. 트랄이 바보같이 내 무기가 망가지는 것을 신경쓴게 가장 중요한 패착이기는 했으나, 나나 트랄에게 제대로 된 장비를 챙겨주지 않은 포르네우스가 원흉이며 나쁜 년이다. 트랄은 착한 죄밖에 없다.

"...무기의 힘으로 이겼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백작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시어 트랄을 살려준 것으로 알고있으니까요."

"그래. 아리에스 영지를 털어먹을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거지."

성검 아스칼론을 빼앗아 갤러해드에게 쥐여주자. 그리고 그 성검을 이용해서 적을 쓸어버리는 것이다. 진정으로 성검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리고 비르고 남작령도 털어먹을 이유도 하나 늘었고. 분명 남작령 어딘가에 성검이 있다고 했지?"

"...예. 그,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남작령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모처럼 부른 릴리는 갑작스레 생긴 5성 손자에 당황하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 근처의 화전촌 주민들 중 일부는 뜬소문이나마 비르고 남작령의 성검을 찾으려고 온 것입니다. 그...현 남작이 작위를 물려받으면서 성검을 분실했다는 소문이 돌아서요."

"그게 말이 돼?"

"남작이 작위수여식에서 성검을 증명하기는 했지만, 교묘히 제작된 가짜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뜬소문이구만."

불확실한 정보에 탐색대를 파견할 수 없다. 그 탐색대가 괜히 어디 엘프의 숲이라도 들어갔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다른 성검들은 어디로 갔다더냐."

"마왕군과 인류 연합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용사들의 성검을 제외하고는 모두 왕국 밖으로 유출되거나 분실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 왕국 내에서 온전히 성검을 사용하고 있는 이는 아리에스 변경백, 아버님 뿐입니다."

"...성검 정도 되면 국보 아니냐? 왜 이렇게 관리가 허술해?"

"성검이 주인을 정하니까요.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주인을 정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객사를 하기도 하고, 이전 주인에게 실망해서 다른 주인을 찾기도 합니다. 아버님의 말씀에 따르면...아스칼론은 아리에스의 피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오직 혈육만이 성검을 사용할 수 있죠."

에일라는 고개를 치켜들며 우쭐댔다. 자신이 성검을 사용할 수 있는 자라고 자랑하는 듯 했다.

"자아를 가지고 있으면 충성 맹세도 깨질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럼 의미 없네. 됐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갤러해드가 성검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갤러해드가 활약할 전장을 정했다.

"갤러해드는 당분간 이 던전 내에서 힘을 기른다. 마석먹으면서 성장하고, 서브던전 돌면서 경험을 쌓아. 신성력은...마음껏 사용해라."

내 말에 마족계 부하들이 반대 의사를 펼치려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배신자 소리를 듣는 것 때문에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이 걱정된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결국에는 마왕님 눈에만 안 벗어나면 돼. 그리고 만약에 솔로몬이 갤러해드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더라도 괜찮다. 여신의 힘을 이용해 당신이 여신을 범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솔로몬도 수긍할 걸. 문제는 여신이야. 기네비어."

"예...."

"여신님께서 신성력을 인간들에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실까?"

"......그저 사제에 불과한 제가 신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만은, 여신께서는 한 번 신성력을 부여하신 존재에게 그 힘을 거두어가시지 않습니다."

짝, 짝, 짝.

나는 여신의 관대함에 박수를 쳤다.

"인간도 마왕군의 수족이 될 수 있는데, 마족이라고 해서 여신의 신도가 안 될게 무엇 있겠느냐. 마왕도 여신도 뭐라하지 않는다. 뭐라고 한다면 그때는 생각을 달리 해야하겠지만, 지존의 뜻도 헤아리지 못하는 아랫놈들이 떠드는 소리를 신경쓸 필요는 없다."

"주인님, 만약에 걔들이 뭐라고 하면요?"

"뭐라고 지랄 못하게 들이박아버려야지."

방침은 정해졌다. 결국 내 의사가 우리 군단 전체의 의사가 될 것이며, 갤러해드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확정 사안이었다. 물론 신성력을 사용하면 주변 아군들에게는 피해가 갈 수 있기에, 그건 세심하게 신경써야했다.

"갤러해드, 아군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신성력을 사용하라. 메어리, 당분간 갤러해드를 잘 이끌어다오."

"마족은 신성력의 힘을 받으면 데미지를 입게 되더라도, 인간은 신성력에 아무런 해가 없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아더 때도 그랬지만, 언제나 라스단의 간부급 전사를 키우는 건 메어리의 몫이었다.

"이참에 분명히 말한다. 갤러해드가 신성력을 쓸 수 있다고 한들 나의 혈육이다. 너희들도 마찬가지. 언젠가 나의 자식을 낳게 된다면, 그 어떤 존재가 태어날 지 모르지. 하지만 잊지 마라."

나는 목소리를 깔고 나의 의지를 천명했다.

"우리의 피가 이어진 존재라면, 라스로 태어난 존재라면, 우리는 그 어떤 편견으로도 차별하지 않는다. 나이, 종족, 외형, 등급, 사용하는 힘. 그 모든 것을 통틀어서."

적어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만큼, 내 혈육이라면 최대한 챙기자고 마음먹었다.

"라스가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다."

포르네우스 빼고.

* * *

파후우가 메어리, 갤러해드를 데리고 서브 던전으로 가버린 뒤, 공동에 남은 부하들은 그제서야 할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뭐라고 해야하나. 확실히 다르네. 마족이면 기본적으로 신성력에 반감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치? 어떻게 생각해? 마왕의 따님?"

"......주인님께서는 효율을 추구하시는 겁니다. 신성력을 가진 5성 성기사 오크.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상당히 다양한 장점이 있으며, 신성력을 사용한다고 하는 단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마족의 생각이잖아요."

"륜, 주인님도 마족이시다. 오크야."

여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파후우에게는 마족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신성력에 대한 적개심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의 씨를 받아 태어난 모든 존재들이 똑같았다.

"랜슬롯, 인간에 대해서 죽이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전혀요. 라스베가스 전투에서는 전쟁이니까 싸웠던 거지만, 딱히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인간을 왜 죽여요? 인간이랑 라스하는게 얼마자 짜릿하고 즐거운데."

랜슬롯은 기네비어를 꽉 끌어안으며 경계태세를 보였다. 마족이 인간을 아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심지어 마족이 인간과 떡을 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레모리와 샤이탄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겪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내가 진짜 온갖 마물이랑은 다 해봤거든? 근데 인간이랑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단 말이야. …...정말 희안해. 보면. 인간도 신성력도 전혀 거부감이 없잖아."

"......바라보는 세계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건, 필시 저 분의 안목을 보고 깨우치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레모리와 샤이탄은 개안했다. 그저 륜만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주인님은 그냥 종족에 상관없이 여자만 보면 눈 돌아가는 분이라서 그런 건데요?"

신랄하기까지 한 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륜에게 박혔다. 륜은 전혀 악의없는 순수한 목소리로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마왕군와 인류 연합 사이의 유구한 대립, 마족이 가진 인간에 대한 증오, 여신의 힘인 신성력, 그외 기타 등등…. 그 모든 것은 주인님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주인님께서 신경쓰시는 건 단 하나."

륜은 제 아랫배를 두 손으로 가리켰다. 노골적인 손가락 위치에 서큐버스인 샤이탄이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맛있냐, 맛없냐."

"뭐야, 그게."

"과연…."

륜의 디스 아닌 디스에 따라, 부하들은 제각기 생각에 잠겼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에일라는 그저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확실히 다르군.'

에일라는 인간과 마족은 같은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는게 이리도 다를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조금은 마족과, 그리고 주인에 대해 이해가 갔다.

-섹스에 미쳐있지만 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없이 챙기는 존재.

엘프, 마녀, 오크, 슬라임, 서큐버스와 달리 인간인 에일라의 평이었다.

* * *

"어우씨, 신성력 존나 쎄네. 쟤는 마물들이랑 같이 편성하면 안되겠다."

"다 아시고 하신 말씀 아니셨어요?"

"루나가 쓰던 거만 봐서 저정도인지 몰랐지."

현재, 우리는 진작에 스켈레톤 서브 던전과 슬라임 서브 던전을 박살내고 안드라스 서브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보스야 당연히 나와 메어리가 잡았지만, 갤러해드는 신성력을 정말 마음껏 발산하며 달려드는 '마물'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따흐흑!"

은은한 은빛이 서린 철검이 안드라스의 목을 베었다. 갤러해드는 제 몸에 피 한 방울 튀지 않게 우아한 동작으로 안드라스를 검으로 제압했다. 스켈레톤, 슬라임, 빅슬라임. 그 모든 마물들이 신성력 담긴 검이 스치니 원 샷 원 킬이었다.

"스켈레톤들은 신성력 빛만 쬐니까 바로 골다공증이 걸렸지. 저거 완전 대 마물 방사능인데?"

"원래 신성력이 저정도예요. 그걸 몸으로 맞받아 친 아빠가 이상한 거죠."

"...혹시."

나는 지시에 따라 안드라스의 깃털을 뽑은 갤러해드에게 내 배를 가리켰다.

"갤러해드야. 한 번 찔러볼래?"

"군단장님?"

"아빠, 무슨?!"

하극상을 종용하는 내 지시에 둘 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반드시 확인해야하는 문제였다.

"그냥 상처가 나는지 안나는지 확인해보려고. 명령이다. 그냥 살짝만 그어봐라."

"......지시대로."

갤러해드는 굳은 얼굴로 검을 내 배에 겨눴다. 벌벌 떠는 손과 일그러진 눈은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메어리는 말리려고 지팡이를 들었지만, 내가 지팡이를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니라."

푹.

갤러해드의 검이 내 배를 찔렀다. 나는 한숨이 푹 나왔다.

"역시 무리구만. 되었다. 이제 그만, 으악!"

검을 치우려던 내 손이 종이에 베인 것 마냥 화끈했다. 메어리는 반사적으로 내 손에 회복마법을 걸면서도, 눈은 긁힌 자국만 있는 내 배를 흘겼다.

"아오, 씨, 지방절제수술 각이었는데...."

"신성력으로도 안 잘리는 배는 도대체 뭘까요?"

"낸들 알겠냐. 아 씨...."

운동으로 뺄 수 없는데 수술도 못한다니. 이 얼마나 저주받은 몸뚱아리란 말인가. 갤러해드는 자신의 신성력이 먹히지 않는 내 배에 몹시 당황했다.

"죄, 죄송합니다. 군단장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응? 아냐, 기대에 부응하면 그게 더 웃기니까. 신경쓰지마라. 덕분에 신성력 있는 놈들이랑 싸울 때 아무 걱정도 안 할 수 있게 되었잖느냐."

기네비어가 말한 신성기사단.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전면에 주력으로 선 이들인만큼, 사제를 납치한 우리 군단을 처치하러 올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었다.

"흐흐, 그 놈들 타락시켜서 갤러해드 네 부하로 만들면 되겠군."

"타락이요? 어떤 방법으로요?"

"라스지. 메어리, 인간이 다섯이 있으면 그 중에 한 명은 쓰레기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여신에게 충성을 바친 놈들이어도 이거에 정신 못차리는 놈들이 수두룩하거든."

나는 손가락으로 내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메어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물학적으로 딸이기는 했지만, 메어리는 이제 이 정도 섹드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요. 갤러해드한테 다 박게 만들 생각이에요?"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신성기사단 여자 비율이 9할이거든요."

"그럼 당연히 갤러해드 몫이지. 물론 나도 좀 건드려보고. 꼭 쳐들어왔으면 좋겠군."

들어오기만 한다면 다 잡아서 갤러해드의 부대로 편성하리라. 갤러해드는 이런 나와 메어리의 음담패설에 관심도 없는지, 이미 다음 안드라스를 향해 신성력이 담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센데. 애들이 왜 기겁을 했는지 알겠다."

"아빠, 이제와서 갤러해드 무섭다고 막 어디 뭐 있지도 않은 물건 찾아오라고 시키시면 안 되요. 막 성검 찾아오라거나."

"나는 생각도 안했는데 네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구나."

메어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헐레벌떡 가로저었다. 그래도 나름 조카라고 신경을 써주는게 참 기특했다. 이미 갤러해드는 신성력을 이용해 안드라스의 부리를 잘라버렸다.

레벨이 고작 8임에도 불구하고.

"...신성력이 저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그곳도 공략이 가능하겠군."

"그곳이라면...아빠?"

"그래."

저 은빛의 힘이라면, 분명 돌파가 가능할 것이다.

"내일 저녁, 지하 1층 뚫는다."

저 힘이라면 그 암흑을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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