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229일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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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72위 던전.
하루에도 세 번 가량 그 주인이 바뀔 정도로 가장 잦은 소유권 변동을 자랑하는 '안드로말리우스'의 던전은 실상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하급 마족들의 수라장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현재의 안드로말리우스는 상당히 오랜 기간-무려 3주에 걸친 기간 동안 온갖 어중이 떠중이 마족들과 모험가들로부터 자신의 던전을 지켜냈다. 3성 하나 없는 소규모 던전이었지만, 안드로말리우스는 있는 병력과 없는 병력을 총동원하여 몸비틀어 막아냈다.
그 수성의 원천은 재물.
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 덕분에 병사들이 죽는다 싶으면 새로운 용병을 고용하는 식으로 던전을 지켜냈다. 간혹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고용하여 던전을 빼앗길 위험도 있었지만, 안드로말리우스는 그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우는 것으로 생존했다.
- 당신처럼 강한 이는 50위권부터 시작해야지, 어찌 저같은 72위의 하찮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시나이까. 부디 강자의 아량을 베푸시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안드로말리우스는 살아남았다. 지금부터는 안드로말리우스가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한 단계씩 계단을 밟아나갈 때.
"스켈레톤 나이트야. 내가 어찌 이 자리까지 올라온 줄 아느냐."
안드로말리우스는 어제 처음으로 뽑은 3성짜리 스켈레톤 나이트를 옆에 두고 하소연을 했다.
"내가 던전 주인 생활을 3주 전부터 시작했다. 잘난 놈 후빨하고, 못난 놈 죽이고. 그렇게 악착같이 납작하게 버티고 버틴 결과, 드디어 인장 쟁탈전이 시작되었지. 흐흐."
열심히 찬양하고 칭찬한 고위 용병들이 적선하듯 전해준 정보들도 안드로말리우스의 좋은 자산이었다. 어느 누가 누구에게 쳐들어갔다더라, 어느 누가 인장을 가지고 있다더라. 그리고 정말로 다행히 안드로말리우스에게는 인장이 없었다.
'있었으면 좆됐지.'
안그래도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 같은 던전이건만, 인장을 부여받았으면 바로 빼앗겼을 가능성이 높다. 안드로말리우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던전을 살폈다. 이제 3성 스켈레톤 나이트와 함께 군단장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단탈리안 제끼고, 세에레 제끼고! 그래서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면.... 흐흐."
크르륵.
갑자기 스켈레톤 나이트가 검을 빼들었다. 안드로말리우스는 행여나 자신을 배신하여 털어먹으려 할까봐 전전긍긍했지만, 스켈레톤 나이트는 충성심 깊은 기사답게 주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던전에 나타난 '적'을 향해서. 안드로말리우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시스템의 안내를 살폈다.
"아니, 미친, 씨발, 이 또라이 새끼 뭐지?!!?"
안드로말리우스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왜 63위가 나한테 시비걸고 지랄이야, 지랄?!"
<알림> 63위 던전의 주인, ### ### #(★★★★☆) 이 기습적으로 포털을 설치하였습니다!
# 포털 : 일방향포털
# 방향 전환까지 남은 시간 : 71시간 59분.
선전포고도 없었고, 공략에 실패하면 기습 패널티까지 왕창 먹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자신을 공격하러 왔다.
"스켈레톤 나이트! 여기 있지 말고 요격하러 나가! 함정 넘어오는 순간 스켈레톤들 동원해서 다 죽여버려!"
안드로말리우스는 부하들에게 요격을 명령한 뒤, 높은 선배 던전 주인들에게 알랑방귀를 뀌어 얻어낸 정보들이 적힌 수첩을 꺼냈다. 꼬질꼬질한 손 때가 가득한 수첩은 안드로말리우스의 귀중한 보물이었다.
"63위.... 63위.... 안드라스? 미로형 던전? 공략하기 더럽게 귀찮음? 이름이 다르잖아?"
안드로말리우스가 이상을 인지한 순간, 길게 이어진 통로의 너머에서 소란이 울렸다.
스.... 스.... 스....
"뭐...? 라...스?"
메아리치는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안드로말리우스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에 집중했다. '라'로 시작하여 '스'로 끝나는 단어를 말하는 듯한 소리는 분명 상대의 정체를 짐작케하는 울림이었다.
"설마 안드라스 본인?!"
라스으으으으!!
기괴한 울림이 던전 끝까지 울렸다. 안드로말리우스는 공포에 질려 수정구를 살폈다. 솔로몬의 시스템 덕분에 스켈레톤의 눈으로 던전에 침입한 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구의 포털에서부터 나온 그들은....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라스!
까마귀 병사들이 라스를 외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상체를 숙이고, 팔은 이상하게 뒤로 넘긴 채, 눈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돌진에 함정은 박살나고 스켈레톤들도 박살났다.
"......좆됐다."
고작 30명 채 안 되는 던전에 백여명에 이르는 적이 쳐들어왔다. 안드로말리우스는 현기증이 나서 자신이 겪는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저, 저 새끼는 명예도 없나?!"
아무리 쟁탈전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찌 ★★★★☆이라는 존재가 고작 ★★이 주인인 던전을 상대로 이렇게 대대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인가.
'설마.'
자신이 인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안드로말리우스는 스켈레톤들이 까마귀 병사들의 손톱에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보며 결단을 내렸다. 상대는 혀를 교묘히 사용하여 이겨야 하는 적, 자신보다 월등한 강자였다.
라스, 라스, 라스!!
라스라고 외치는 저 까마귀 군대에도 대장은 있을 터. 안드로말리우스는 차려입은 예복을 허겁지겁 벗고, 허름하고 낡은 차림으로 환복하여 던전을 달렸다. 까마귀 병사들은 자신을 보고 진격을 멈추었고, 안드로말리우스는 미끄러지듯 무릎을 꿇으며 오체투지했다.
"기다려주십시오!!"
한 마리 한 마리와 싸우면 간신히 이길 수 있겠지만, 상대에도 분명 병력을 이끄는 대장이 있을 터. 그와 싸우면 무조건 목이 달아날 것을 알기에, 안드로말리우스는 세치 혀로 살아남고자 했다.
"......네가 이 던전의 주인이야?"
생전 처음 듣는 미성에 안드로말리우스는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탐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검은 깃털 드레스를 입은 흑발의 미인이 자신을 깔보고 있었다.
"아...."
"한 번 더 안 물어. 네가 던전 주인이야?"
"아....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 제가 바로 안드로말리우스. 보잘 것 없고 하찮으나 감히 말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안드라스."
안드라스는 안드로말리우스의 앞에 쪼그려 앉아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의 목을 들어올렸다.
"주인님의 전언이야."
"주인님....? 안드라스라고 하신 거 아니셨...?"
순간. 안드로말리우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스템을 통해 알려진 상대 던전 주인의 이름은 안드라스가 아니었던 것을 상기해냈다. 눈앞의 존재-안드라스는 던전의 주인이 아니다. 선봉대일 뿐. 안드라스는 피처럼 붉은 입술을 활짝 들어올리며 속삭였다.
"'아아, 이건 양학이라고 하는 것이다'라스."
"예?"
서걱.
세계가 여섯 등분으로 쪼개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안드로말리우스의 앞에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올려준 시스템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알림> 당신은 쟁탈전에서 패배하였습니다.
# 패배 : 던전 주인의 사망.
아. 나는 죽었구나. 안드로말리우스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3주간 악착같이 지켜온 72위의 던전은 하극상도 아닌, 자신보다 9계단은 높은 존재의 학살로 빼앗기고 말았다.
* * *
<알림> 당신은 쟁탈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 승리 : 던전 주인의 사망
# 승리 보상 : 차원석-스켈레톤(★).
"확실히 72위 던전을 털어먹어서 보상이 짜구만. 어디 뭐 모아둔 마석도 최하급이랑 하급 마석 뿐이고. 그냥 슬라임 서브던전만 하루 돌면 나올 양이잖아? 쳇, 텃군."
모처럼 72위의 던전을 향해 야심차게 포털을 열었고, 안드라스를 대장으로 하는 안드라스 군을 편성하여 적진에 침투시켰다. 여전히 쟁탈전의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어 포털의 방향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안드라스들은 불과 세 시간만에 던전을 털어버렸다.
"......."
샤이탄은 입술을 댓발 내민 채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약한 놈 괴롭혀서 실망했냐?"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명예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 죽어서 이름을 날리면 무슨 소용이야. 살아있을 때 잘 해야지."
나는 안드로말리우스가 남기고 간 차원석을 우리 던전에 박아넣었다. 언데드는 이미 구울로 충분했고, 메어리에게 맡기기에는 던전의 크기가 너무 초라했다. 결국 안드로말리우스의 던전은 우리 던전의 서브 던전이 되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좀 그렇네. 양학? 어린애 괴롭히는 수준을 넘어섰잖아. 이건."
그레모리 또한 나를 비난했다. 본인 말대로 자학을 하는 셈이었지만, 그레모리나 샤이탄은 내가 안드로말리우스 이후의 행보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단탈리안, 세에레, 데카라비아, 벨리알, 암두시아스.
각각 71위부터 67위까지 아래에서부터 위로 한 계단씩 올라가는 던전들이었다. 나는 그 모든 던전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밟아나갈 생각이었다. 그에 따른 불명예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약한 놈들이나 때리고 다니는 무뢰배라는 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님."
"그래. 네가 나를 개무시했던 것처럼, 남들도 너를 개무시 할 거라고. 와, 쟤는 자기보다 낮은 등급의 던전이나 털어먹는 양아치래!"
"그리고 상위 던전의 주인들...아니 마족 전체가 그런 자들에 대해 선호하지 않습니다. 힘의 증명은 자신보다 강자를 이겨냄으로써 증명해내는 것. 주인님께서 당신보다 몇 단계는 높은 56위의 던전의 공세를 이겨내고 오히려 점령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자. 사람이 살다가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 이미 우리가 72위 던전을 잡아먹은 건 금방 알려질 거야. 그런데 아래에서부터 전부 다 점령해나가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진정해. 너희 둘의 걱정은 잘 알고 있다."
이미 안드로말리우스의 던전에 포털을 설치하기 전부터 둘은 완강하게 반대의사를 펼쳤다.
"이번 전투를 통해 상당한 어그로를 끌테고, 나보다 윗놈들도 나를 상당히 고깝게 여기겠지. 저 오크 놈, 명예도 모르고 약자나 괴롭히는 쓰레기라고. 그러면 언젠가 나를 공격하러 오는 놈도 있을 거야. 명분 좋잖아? 뉴비들 괴롭히는 찌질이를 고인물들이 제거하러 오는 거지."
인류 연합과의 전투를 방폐한 고인물들의 컨텐츠가 무엇이 있겠는가. 멋모르고 덤벼드는 뉴비들을 둥기둥기 하면서 키워줬다가 나중에 하극상을 일으키면 짓밟는 것. 그것이 현재 던전 쟁탈전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판이 바뀌었다. 그 판 전체를 뒤집은 건 다름 아닌 시스템을 지원하는 운영측, 마왕님이지. 애초에 이 쟁탈전은 마왕님의 주도하에 벌어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명예고 나발이고 살아남는 일곱 명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배틀로얄이지. 샤이탄, 네가 바로 그 증거다."
"...인장으로서의 기능 말고 제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왕님은 샤이탄이라는 인장을 1위부터 7위까지가 아닌 나같은 63위에도 주셨어. 그러면 무슨 의미겠니? 어느 누가 가지고 있을지 모른단 얘기야. 1위부터 6위까지 여섯 명이 가지고 63위가 인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상하잖아? 혹시 아냐. 안드로말리우스에게 보내주셨을지. 물론 잡아먹어보니 아니지만."
"그건 그렇네."
"마족들이 오해를 하는 동안, 나는 승냥이처럼 아래부터 위로 치고올라가는 거지. 그리고 만약에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다가 인장의 주인과 만나는 날이 있다면...."
나는 손날을 세워 목을 그었다.
"인장을 빼앗고, 그 세력 전체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점점 몸집을 불려나간 끝에 몇 개의 군단이 합쳐진 세력을 만드는 거지. 일곱 개 군단이 꼭 던전 주인 일곱 명이 될 필요는 없잖냐. 마왕님이 힌트 주셨잖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마왕님께서 여신님을...한다는 걸 의미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 의도도 있겠지. 그런데 생각해봐라. 이거 얼마나 듣기 좋냐."
나는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나, 라임, 륜, 에일라, 그레모리, 안드라스, 메어리. 당장 이렇게만으로도 일곱 명이 구성되는 구만. 우리 군단 내의 존재들로 일곱 군단장 해버리면 게임 끝 아니냐? 마왕군 군단장으로 꼭 마족이 되라는 법 있어? 결국에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덤벼드는 놈 약자든 강자든 모두 다 때려잡으면 그만 아니냐."
"......주인님께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그림을 그리시고 계신 겁니까?"
샤이탄은 질린듯한, 그러면서도 황홀에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쩍 벌리며 씩 웃었다.
"이 세계 전체가 내 도화지요, 캔버스니라. 그래. 나는 세계를 나의 분노로 물들일 것이다."
라스(Wrath)로.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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