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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59화 (159/800)

0015929일차 -------------------------

인간들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동력 너무 없지 않아?'

그레모리 던전을 공략할 때도, 토벌군을 두 번이나 마주할 때도 나는 힘과 힘이 부딪히는 전투를 해야했다.

'언제까지 내가 땅굴망 파서 난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레모리 던전 공략 당시, 망치와 모루로써 기병대의 역할을 나와 슬라임 드래곤이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던전을 공략할 때의 이야기고, 토벌군을 상대로는 야전이나 공성전이 기본이었다.

'행군한다 치면 너무 신경 쓸 게 많아져.'

오직 인간으로만 편성되어 있는 인간들의 군대와는 달리 마왕군은 사정이 다르다. 오크들이야 그냥 달려가면 그만이지만, 거기에 안드라스, 하피, 구울이 섞이면 행군 속도를 가장 느린 종족으로 맞춰서 진군해야 한다.

크르르.

그러므로 기동력이 필요했다. 기병대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도 필요했고, 마침 나온 워울프는 그 역할을 해주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존재였다.

"만나서 반갑다, 워울프. 나는 이 군단의 수장인 파후우라고 한다. 혹시 말은 가능하냐?"

크르르.

워울프는 나를 지긋이 노려봤다. 나와 덩치가 거의 비슷한 녀석은 내게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하하, 이 녀석."

역시 마왕군에서 파견된 존재답게 충성심이 약하구나. 샤이탄이 손에 마력을 일으키며 뭔가 하려고 하길래 손을 들어 제지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부화가 아니라 포획한 마물인 듯 합니다."

"그래? 날짐승 잡아다가 보냈구만."

물량은 맞춰야하는데 마석과 정자에는 한계가 있으니 들판의 짐승들을 타락시키거나 마물로 바꾼 듯 했다. 나는 워울프의 앞에 당당히 섰다.

크르르....

워울프는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 부딪히더니,

크아아아아!!!

입을 쩍 벌리며 내게 포효했다. 피부가 따끔거렸고, 워울프는 포효가 끝나자마자 나를 씹어삼키려했다.

"주인님!"

륜과 샤이탄이 가장 먼저 나서서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하, 이 녀석."

나는 살짝 한발자국 물러서며 배를 앞으로 내밀었다. 로브를 일부러 옆으로 풀어헤쳤고, 앞으로 내민 배에 워울프의 이빨이 박혔다.

으득, 으득, 으드득.

"귀여운 짓 하고는."

워울프는 내 배를 이빨로 씹어댔다. 하지만 이빨을 박으면 박을 수록 점점더 혼란스러워지는 눈치였다.

"내 배가 좀 튼튼하거든."

내 뱃살은 가죽으로 되어있지만 강철보다도 더 단단하여, 예리하게 달군 칼날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집채만한 늑대의 턱힘이라고 하더라도.

"거 지방 절제 수술 한 번 받아보려 했더니 안 되겠네. 야, 네 이름은 앞으로 '로보'다, 로보."

던전의 주인이고 나발이고 일단 공격하고 보는 야성의 주인. 우리 군단의 최전방에 서서 적을 물어뜯을 맹수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로보야. 내가 하나 진리를 가르쳐주마."

나는 로보의 윗턱을 들어올렸다. 로보는 내 힘에 맥없이 배에 박아넣으려던 이빨이 들렸다. 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사람을 무는 미친 개새끼는 자고로 몽둥이가 약이지. 안 그러냐? 아, 늑대지. 그러면 더 거리낌이 없네? 내가 개고기는 안 좋아해도 너는 개가 아니잖냐. 그치? 흐흐."

워울프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워울프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샤이탄! 워울프도 마석으로 소환 가능하지?"

"물론입니다. 시스템에 한 번 등록된 존재는 마석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소환 가능합니다. 마왕님께서는 그걸 두고 복제라고 표현하셨습니다만...."

"아, 그 이상은 말 안해도 돼. 소환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샤이탄, 일단 환영회를 하려고 하는데 괜찮지?"

"...저기, 혹시."

"그래."

나는 주먹을 높이 들어올렸다.

"된장 바르자."

쿠웅.

* * *

보글보글.

푹 고아낸 뼈에서 사골국물이 우려나오고, 나는 거기에 라스 베가스에서 가져온 온갖 향신료를 때려넣어 잡내를 제거했다.

"주인님, 이건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아, 이것은 보신탕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용물은 다르지만."

개 대신에 늑대가 들어간 것이 원본과는 다르기는 했지만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로보의 덩치가 워낙에 커서 다리만 쓴 게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푹 고아지니 점점 구수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어?"

그레모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워울프가 별미기는 한데 이렇게 먹는 건 또 처음보네."

"워울프 먹어?"

"그럼 먹을려고 잡은 거 아니였어?"

"......나를 뭘로보고. 이래봬도 나 애견인이다."

내 말에 그레모리은 얼척이 없다는 듯 비웃었다.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애완견은 사람을 물지 않아. 그리고 저건 늑대 아니냐. 주인도 몰라보고 물어제끼는 놈."

공터에 앉은 로보였던 것은 현재 털과 가죽만 남긴 채 라스베가스로 옮겨졌다.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을 완벽히 마쳤으니 굽든 삶든 찌든 바로 섭취가 가능할 터.

"히힛, 주인님, 어때요?"

륜은 로보의 두개골을 머리에 쓰고 나를 위협했다. 라임이 뼈만 남긴 채 깔끔하게 먹어치운 덕분에 로보의 두개골은 박제한 것 마냥 깨끗했다.

"무섭구나. 새벽만 되면 나를 잡아먹으려 들 것 같아서."

"히힛."

륜은 싱글벙글 웃으며 두개골을 원래의 장소로 돌려놓았다. 크기가 워낙 커서 좋은 장식이 될 것 같았다.

"라스투자드, 이거 써볼래?"

[......뼈 위에 뼈를 쓰라는 건 대체.]

"라스투자드 머리털 없으니까 이걸로 대신하는 건 어때요?"

[               ]

륜과 그레모리가 로보의 뼈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이, 나는 거대한 솥같은 냄비에 국자를 휘휘 저으며 기름을 걷어냈다. 샤이탄이 슬쩍 내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뭘?"

"설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샤이탄은 자신에게 놓인 로보의 털가죽에 면목이 없는 듯 했다. 마왕군에서 파견을 나온 입장으로서, 본사의 실수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뭘 노여워해.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거지."

"마왕군으로 돌아가는 날이 있으면 오늘 일을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때는 장인어른 앞에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하는 날일 걸?"

"......."

샤이탄은 늑대 가죽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웃는 건지 아니면 비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내 눈은 기름을 걷어내느라 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슬쩍 봤을 뿐.

"주인님께서는 정말 색을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연하지. ...너랑 있으니까 하는 얘기인데."

나는 륜과 그레모리가 들리지 않게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에스투."

"......."

"나도 먹고 싶거든."

"풋."

샤이탄은 낮게 웃었다. 털가죽에 고개를 묻고 부들부들 떠는게, 빵 터지는 걸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

"왜?"

"......드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인님."

샤이탄은 손으로 아랫배를 쓸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저도 주인님의 것을 먹고 싶습니다만. 하얗고, 걸쭉한 거...."

"흐흐, 역시 서큐버스라서 말이 통하는 구나."

그렇다면 배를 빵빵하게 채워줘야지. 나는 그릇을 들어 푹 고아진 로보탕을 그릇 한 가득 푸짐하게 담았다.

"든든하게 먹어둬. 앞으로 자주 먹게 될 테니."

"......."

쌀이 없는게 아쉬웠다.

* * *

다들 하얗고 걸쭉한 로보탕을 야참으로 먹은 뒤.

나는 마지막 가챠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남은 연차는 고작 10연차. 여기서 끝나면 나의 원대한 계획은 로보탕과 스톤골렘으로 끝나는 셈이었다.

"륜아. 새삼스럽지만 나는 성평등 주의자다."

"성별에 상관없이 전부다 죽인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것도 있지만,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하여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40연차.

여자.

단 한 명.

그것도 확정이라고 할 수 있는 샤이탄, 단 한 명!

"남녀차별 반대한다! 마왕군은 각성하라!"

"네 욕망을 눈치채고 일부러 마물만 보내는 거 아니야?"

"아니면 샤이탄 한 명으로 만족하라거나요. 주인님, 여기서 더 원하시는 건가요?"

"시스템은 공정합니다. 그저 등급 이외의 확률만 다를 뿐, 특정 누군가를 상대로 저격이라도 하듯 슬라임만 보낸다거나 구울만 보낸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제각기 다른 대답에 나는 침묵했다. 40명 중 39명을 무성이나 남성만 파견 받았는데, 그래도 나머지 11명 정도는 샤이탄의 친구들이나 샤이탄과 같은 성별로 보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역시 인디언 식 기우제를 지내야겠군."

"인디언 식 기우제요?"

"그래.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성공 확률이 100%란다. 왜 그런지 아니?"

나는 41번째 소환권을 들고 소환진의 앞에 섰다.

"비가 내릴 때 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소환> 하이 구울 ★★ 이 소환되었습니다.

소환한 하이 구울은 라스투자드가 맛있게 먹었다. 나는 42번째 소환권을 찢었다.

"한 구울 인디언, 두 요정 인디언!"

<소환> 고블린 ★ 이 소환되었습니다.

"으아아악! 이 요정이 아니야아아!! 페어리! 정령! 엄지공주 사이즈라도 좋으니까 제발! 으아악!"

새롭게 목록에 등록되기는 했지만 고블린은 그레모리의 소환 목록에 이미 등재되어있는 존재였다. 손재주는 좋지만 녹색에 쭈글쭈글하고 못난 존재. 나는 답답함에 목이 메였다.

"등급이라도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

"주인님. 저거 고블린이에요?"

륜은 땅딸보같은 고블린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히 보니까 조금...."

"고블린? ......아."

나는 절로 손뼉이 쳐졌다. 여러 곳을 흐리멍텅하게 바라보던 고블린은 멀뚱멀뚱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고블린에게 화사하게 웃어주며 제물의 관에 올렸다.

"바이 바이, 고블린!"

키에엑!

슬라임 드래곤의 레벨이 또 올랐다. 나는 불편했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기분에 속이 다 시원했다.

"뭐야. 별 하나 짜리라고 그렇게 막 갈아도 돼? 물감은 많을 수록 좋다며?"

"녹색 물감은 많다. 고블린 없어도 인간들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블린들은 싫다."

"약해서 그러세요?"

"아니. 저 새끼 태어나자마자 바로 너, 그레모리, 샤이탄 눈으로 훑고 표정 바꾸더라."

나는 알지. 누구보다도 그 음흉한 눈빛으로 시선을 내리던 것을.

"어째 소환하는 것들 마다 주인의 것을 탐하려 들어서 원."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다. 마왕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니. 다 마왕님을 조급하게 만드는 바보같은 놈들 때문이지."

나는 마음을 비웠다. 누가 나오든 전부다 갈아버리자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스톤 골렘과 워울프 만으로도 다양한 전술을 짤 수 있으니까.

'그래도 끝까지 하나 안 나오는 건 아쉬운데.'

"주인님. 제가 기운 불어넣어 드릴까요?"

"기운?"

륜은 싱긋 웃으며 귀를 쫑긋 내밀었다. 그제서야 나는 지금까지 해오던 의식을 치르지 않은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아...! 이런, 너무 오랜만에 소환해서 잊고 있었네. 륜!"

"네!"

륜은 박력있게 치맛자락을 들어올렸다. 나는 바로 륜의 아래에 손을 집어넣었다. 한손으로는 륜의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꿀을 긁어냈고,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륜의 귀를 붙잡아 꿀이 터져나오도록 스위치를 눌렀다.

찌걱, 찌걱.

뜬금없이 손장난을 치는 내 행동에 그레모리와 샤이탄이 경악하는 가운데, 나는 충분히 손을 륜의 꿀로 적셨다. 륜은 이제 이 정도의 간단한 자극으로는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다.

"너, 너희 지금 무슨...!"

"잘 봐봐. 이게 륜의 힘이다."

나는 륜의 꿀이 흐르는 손으로 소환권을 붙잡았다.

"륜의 사랑이 듬뿍 담긴, 소환이라 이 말이다!!"

소환진에서 보랏빛 안개가 터져나왔다. 마법진 전체가 빛나기 시작했고, 무지개가 빙그르르 돌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건 언제나처럼 3성, 4성에 해당하는 마물이 튀어나올 때의 이펙트였다.

"이건 말도 안 돼!"

"......맙소사."

"흐하하, 하하하, 하! 이것이 바로 분노의 군단에서의 소환 의식! 오라, 나의 새로운 종...뭐야?!"

우우웅!

영롱하게 반짝이던 무지개빛이 점점 하얗게 물들었다. 심지어 그 백열은 주변 공기를 뜨겁게 데우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금. 금!

"우오오오오오!! 류, 륜아! 사랑한다! 역시 네가 최고다!!"

나는 옆에있던 륜을 와락 끌어안았다. 시야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었고, 나는 금빛의 세상에서 또렷하게 떠오른 시스템의 문구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소환> 텐타클 드라실 ★★★★이 소환되었습니다.

"...예?"

소환 시설에는 금빛의 거목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꿈틀.

꿈틀.

============================ 작품 후기 ============================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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