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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52화 (152/800)

0015228일차 -------------------------

약 한 달 전.

그러니까 포르네우스의 던전을 탈출하던 그 날.

나는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끼던 애병, 드워프들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철퇴의 도움을 받았다. 정확히는 내 무기를 들고 날뛰던 트랄의 도움을 받았다.

한 손에는 자신의 도끼를, 한 손에는 나의 철퇴를. 나를 죽이려던 포르네우스의 대가리를 철퇴로 깨뜨리며 보인 그 등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철퇴가 지금 내 손에 들려져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말은 단 하나.

'이 인간 새끼, 트랄의 소재를 알고 있다.'

노예가 되어 있더라도 살아있기를, 설령 죽었더라면 나의 던전에 무덤이라도 만들어 주겠다. 트랄은 내 생명의 은인이었고, 트랄을 위해 최소한의 도리는 다 해야했다.

그러니 저 인간 놈은 반드시 생포한다. 생포해서 이 철퇴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아내야겠다. 그냥 주웠으면 어디서 주웠는지, 경매로 산 물건이면 어느 경매장에서 구한 건지, 살아있는 본인에게서 빼앗았다면 그 당사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만약 죽여서 빼앗은 것이라면, 당연히 내가 할 행동은 하나.

복수.

"우오오오!!"

나는 사제를 향해 철퇴를 투척했다. 사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철퇴를 피해 바닥을 굴렀다. 나는 달려가며 허리춤에 걸어둔 도끼를 쌍으로 들었다. 바닥을 구른 사제는 아직 몸을 피하지 못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를 잘라주마!"

"으아악!"

사제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옆으로 굴렀다. 하지만 내 도끼는 사제의 로브 아래를 정확히 노렸다.

푸--욱!

"쳇!"

헛발이었다. 로브 끝자락이 잘려나갔고, 사제의 발목이 훤하게 드러났다. 뽀얀 다리에 도끼자국이 스친 실혈이 났다. 깊게 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사제의 로브가 방어구 역할을 해준 모양이었다.

"흐흐, 잘도 도망치는군.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나는 도끼를 수평으로 잡고 부메랑처럼 날렸다. 호선을 그리는 궤적은 사제의 배를 향해 날아갔다. 사제는 내가 무기를 두 번이나 던질 지 몰랐는지, 미처 피하지 못했다.

퍽.

"크으윽!"

사제가 몸을 겨우 비틀어 도끼의 날을 피했다. 대신 팔꿈치 부분에 자루를 얻어맞았고, 도끼의 날이 로브 소매 자락을 스쳤다. 사제의 눈에는 진심으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게 무슨...?!"

"야."

나는 다시 철퇴를 들었다. 한손에 들고있던 손도끼를 다시 사제의 다리를 향해 날렸다. 사제는 자신의 옆 땅에 박힌 도끼를 잡고 투척했다.

카앙--!

허공에서 두 개의 도끼가 부딪혔다. 힘없이 제자리에 떨어지고, 나는 그 파편 위를 달려 철퇴를 높이 들어올렸다. 사제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뭐, 뭐야...?!"

"흐흐. 무기에다가 독을 바라는 건 기본이지."

내 말에 사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미처 다리에 생긴 상처를 확인할 새는 없을테지만, 아까전보다 훨씬 더 두근거리고 신경이 곤두서며 몸에 열이 달아오르는게 분명 독의 반응이었다.

뻥이다. 미약이다. 슬라홀의 체액을 도끼날에 발라놓았을 뿐이다. 사제는 고통이 아닌 쾌감으로 달아올라,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단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 한쪽부터 뭉개고 시작할까!"

나는 철퇴를 높이 치켜들었다. 수백의 인간들을 때려잡던 그 철퇴가 이제 내 손에 들어와, 인간 사제의 다리를 으깨버리게 되었다. 이 놈을 잡아 족쳐 트랄의 행방을 알아내리라. 사제는 두려움에 눈이 돌아가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돌아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콰---앙!!

갑자기, 내 어깨 뒤가 화끈거렸다. 나는 내 등 뒤에서 느껴진 폭발의 여파로 바닥을 굴렀다. 상처는 없었지만 공격은 실패했다. 뒤를 돌아보니 모험가 중 마법사 한 놈이 나를 향해 파이어볼을 날린 듯 했다.

"사제 님을 지켜!"

"저 새끼 잡아!! 10골드는 족히 나올 놈이다!!"

와아아아아아!!

모험가들이 나를 향해 창칼을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사제는 왠 여성 모험가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금전에 눈이 뒤집혀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모험가들을 상대해야 했다.

"크흐흐, 크릅."

입안에 마른 침을 꿀떡 삼켰다. 강인해보이는 근육 전사부터 시작해 제법 반반해보이는 여자 모험가도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 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눈에 들어오는 자는 저기 뒤에서 도망치는 예쁘장한 청년 사제.

"순순히 잡혔으면 그냥 다리만 분지르고 정보만 캐내려고 했건만."

나는 철퇴의 그립감을 다시금 확인하고 숨을 골랐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냉정을 유지한 채 싸워야 했다.

"아무래도 청년막을 뚫어놓아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

나를 향해 달려드던 남자 모험가들이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는 모험가들을 향해 철퇴를 들고 달려나갔다.

"비켜--!! 비키지 않으면---!!"

나는 철퇴를 높이 치켜들었다. 모험가들은 나의 돌진에 당황하면서도 방패를 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 돌진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비키지 않으면 내가 비켜가면 될 뿐.

"우오오오!!"

나는 기합과 함께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선두에 있던 모험가의 방패 윗부분을 발로 디뎌 도움닫기를 하고, 모험가들의 인간 벽 위로 뛰어올랐다. 모험가들이 당황하는게 눈에 훤했고, 내가 다리를 모으며 착지하려하니 식겁하며 옆으로 물러났다.

"이, 이 놈!"

중장갑의 모험가가 카이트 실드를 들어올리며 검으로 나를 위협했다. 그대로 떨어지면 칼에 찔릴 위치였고, 나는 몸을 살짝 옆으로 돌리며 내 발을 찌르려던 검을 피했다.

"공중 더블 악셀!"

피겨 스케이터가 빙판 위에서 춤을 추듯,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나는 아깝지만 중장갑 모험가의 어깨를 발로 디뎠다. 내 무게에 그의 자세가 무너졌고, 어깨의 갑주는 내 신발 모양으로 움푹 패였다.

"오크 점프!"

나는 모험가를 도움닫기 하여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내 무게를 버티지 못한 모험가의 몸은 그대로 아래로 무너져내렸고, 나는 다음 타깃을 찾아 다리를 모았다. 모험가들이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흩어졌다.

"그래!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나는 빈 공간으로 낙법을 취해 몸을 굴렸다. 앞구르기의 반동마저 이용해 나는 앞으로 튀어나갔고, 활짝 열린 길의 끝에는 당연히 도망치는 사제가 있었다.

"거기 꼼짝말고 서있어! 지금 멈추면 다리 두 개로 끝내줄테니까!!"

내 회유에도 모험가는 사제를 부축하여 도주했다. 아예 등에 업고 도망갔다. 사제는 모험가의 등에 업힌 채 기절해있었다. 아무래도 도끼날에 먹여놓은 라임의 점액이 미약 효과를 일으켜 쇼크가 일어난 듯 했다.

나는 그 뒤를 쫓아 달려나가며 호흡을 골랐다.

'말 할 힘까지 아껴서 전력으로 쫓는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들판을 달렸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지금 이곳이 전쟁터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 * *

"셋, 둘, 하나---!!"

우지끈!

도끼를 든 병사들이 단번에 목책의 아래를 내리찍었다. 이미 깊게 도끼자국으로 패여져 있던 곳에 마지막으로 도끼질을 가하니, 목책의 기둥이 자비야바의 바깥으로 갸우뚱하고 넘어갔다.

"피해!"

기사 파이즈의 외침에 따라 공병들이 옆으로 잽싸게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기울어진 목책은 아주 서서히 밖으로 넘어갔고, 병사들은 목책이 무너지는 반경을 피해 호흡을 골랐다.

쿠-웅!!

나무 기둥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아직 바닥에는 잘려나같 밑둥이 땅에 박혀있지만, 무릎 높이 정도의 나무 기둥 정도는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다. 파이즈는 병사들을 이끌고 자비야바의 안으로 돌입했다.

"그에이 경!!"

"오오!!"

기사 그에이는 홀로 고군분투하며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오크들 중에서도 제법 강해보이는 셋을 상대로 차륜전을 펼치고 있던 그에이는 파이즈와 병사들의 등장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리를 크게 다친 이들이 있, 크윽!"

그에이는 몸을 젖혀 대검을 피했다. 파이즈는 한 눈에 상황을 파악하고 다리를 절고있는 병사들을 직접 들어옮겼다.

"너, 너, 너! 너희 부대는 이들을 후방으로 이송하라! 나머지는 앞을 가로막아!"

"예!"

파이즈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파이즈는 그에이의 옆으로 달려가 길을 가로막는 오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라마티오 경의 원수!!"

"크윽!"

목책을 도끼질로 무너뜨리고 들어온 원군에 오크들은 점차 수세로 몰렸다. 앞에서 열심히 무기를 휘두르는 간부급 오크들도 점점 몸에 상처가 늘어갔고, 쌩쌩한 병사들과 오크들은 서로 창칼을 맞부딪혔다.

"으아악!"

"끄어억!"

인간 병사와 오크 병사가 동시에 서로의 급소를 찔렀다. 인간에게는 치명상이었고, 오크는 상처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과다출혈로 죽을 중상이었다.

"뒤로 물러서-!!"

"하아압!"

그에이와 맞서 싸우던 오크가 피를 토하며 외쳤지만, 주변 병사들이 무자비하게 창을 내질렀다. 오크는 어깨부터 배, 다리까지 창에 찔려 왈칵 피를 토했다. 하지만 오크는 시뻘게진 눈으로 검을 들어 창 자루를 전부 베어버렸다.

"라스으으으으!!"

오크는 괴성을 지르며 병사들에게 돌진했다. 자신을 창으로 찌른 병사에게 달려들어 팔의 힘으로 목을 비틀고, 창날을 뽑아 다른 병사의 목에 꽂았다. 마지막 병사가 단검을 들어 등 뒤를 찌르지 않았다면 오크는 셋을 모두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오오오!"

"크아아아!"

인간 병사들과 오크 병사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사상자는 늘어났고, 몸으로 수비벽을 갖춘 오크들은 점점 대로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뚫어라!!"

"막아라!!"

좁은 골목을 돌파하기만 하면 대로로 나가서 오크들을 포위할 수 있다. 그 선두에는 그에이와 파이즈가 쌍두마차처럼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면 대로로 빠져나가 숫적 이점을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승기를 거의 잡은 순간, 후방에서 괴상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미친 돼지다!!"

"뭐야?!"

그에이는 대검의 오크를 발로 걷어차고 거리를 벌렸다. 무너진 목책 너머, 자비야바 안으로 들어왔어야 할 병사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들은 동쪽을 향해 검과 방패를 들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에이 경, 그 로브의 오크가...!"

"칫, 너희는 계속 골목을 뚫어!"

부하 병사들에게 공세를 맡긴 그에이는 병사들을 밀치고 목책 밖으로 나왔다. 동쪽에서부터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고, 그에이는 눈앞의 광경에 잠시 혼이 나갈 뻔 했다.

"뭐...라고...?"

그곳에는 목숨을 건 추격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 모험가 한 명이 얼굴이 잔뜩 붉어진 프란시스 사제를 업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 뒤에는 프란시스의 철퇴를 빼앗은 로브의 오크가 얼굴에 붉은 문신을 시뻘겋게 빛내며 쫓고 있었다.

"잡 히 면 죽 는 다 아 아 아 ! !"

오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도시 전체를 울렸다. 성벽 위에서 포로 여자를 범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성난 목소리였다.

"쫓아! 사제님을 지켜---!!"

그리고 그 뒤에는 모험가들이 오크를 쫓아오고 있고, 그 뒤에는 모험가들 수를 훌쩍 넘는 대량의 구울 무리와 새대가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새대가리?

"저런 마물...듣도 보도 못했는데...?"

"""라스으으으!!"""

구울들은 사족 보행으로 달려오고 있고, 새대가리 괴물들은 두 팔을 뒤로 넘긴 채 부리를 부라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에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적들의 구성이나 저 새대가리 병사들의 정체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만약 뒤를 급습한다면, 오히려 앞뒤로 포위당하는 건 자신들이었다.

그에이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오크들을 뚫어서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목책 밖에서 재정비를 할 것인가.

"쳇...! 우선 사제님을 보호해!"

지상 과제는 적의 독에 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제를 구하는 일이었다. 모험가는 병사들의 한 가운데로 도망쳐 들어왔고, 철퇴를 든 오크는 금방 병사들과 모험가들 사이에 포위되었다.

"쒸익, 쒸익."

로브의 오크는 사방을 둘러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완벽하게 원형을 그리는 포위였고, 병사들은 밧줄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졸지에 전황은 그에이의 주군과 프란시스의 모험가 별동대가 합류한 가운데, 마물들이 남쪽과 동쪽에서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한가운데에는 마물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가 포위되어 있었다.

"흐흐, 저 미친 돼지 새끼만 잡으면 된다!"

"후우, 내가 다시는 미친 짓을 하지 않으려 했건만...!"

오크는 이를 갈며 허공을 향해 소리질렀다.

"무차별 사격 개시--!! 표적은 내 쪽으로!!"

"뭣?!"

화르륵.

망루 위에서 숨죽이고 대기하고 있던 오크 궁수들이, 일제히 인간 병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장으로 추정되는 오크의 주변을 향해.

"으하하! 알아서 피해라, 인간 놈들아!!"

"이, 이런 미친 새끼들!!"

그리고 그에이가 욕설을 내지르기가 무섭게, 포위망의 위로 화살비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표적이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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