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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51화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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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하늘높이 타오르는 검은 재에 그에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간밤에 자신과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걸어놓은 공작은 아직까지 들키지 않았고, 모험가들의 기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 교두보가 되었다.

'이제 이쪽의 차례다.'

과연 적 병력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미친 짓을 계속 한다면 속절없이 당할 터. 그에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적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끼이익, 쿵.

하지만 처음 선언을 한 오크 하나가 아래로 뛰어내린 것 말고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오히려 사정을 한 이후에 기절한 인간들이 하나 둘 하피 엔젤들에 의해 내려갔을 뿐이며, 오크들은 몸을 한 번 크게 털어내고 하나 둘 발판에서 내려갔다.

"흐어, 흐어억."

하피 엔젤 네 명에게 연속으로 뽑힌 남자가 기둥에서 풀려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성벽 위에서 토벌군을 조롱하는 듯한 행위는 모두 끝이 났다. 토벌군 병사들은 아쉬움과 허탈함에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 사기가 바닥을 찍은 이 타이밍이야말로 다시 사기를 끌어올리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에이는 하늘 높이 자신의 검을 치켜올렸다.

"비르고 남작령의 용자들이여! 지금이야말로 목책을 넘어 자비야바를 탈환할 때!"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선언을 하는 그에이에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그에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언을 이어나갔다.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지어다! 그대들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자식, 연인을 생각하라! 그들이 그대들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병사들은 뜨끔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홀로 살고 있는 장정들이야 몰라도, 동원된 병사들의 대부분은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이 있었다. 과연 그들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그대들은 인간이다! 마물이 아니야! 간악한 마물들의 도발에 현혹되지 말아라! 저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일 뿐! 그렇다, 괴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더냐!"

그에이가 검을 들어 목책을 향해 겨눴다.

"그러니 우리는 저 괴물로부터 구속된 포로들을 구출해야한다! 그들이 진짜로 인간들을 잡아먹기 전에, 우리의 가족들이 잡아먹혀 또다시 저런 능욕을 당하기 전에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르고의 건아들이여, 검을 들어라! 그리고 잊지 마라! 성욕에 패배하여 여신께서 정하신 법도와 윤리를 저버린 자가 되지 말지어다! 전군, 돌격준비!"

그에이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병사들은 검을 들고 그에이를 따라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돌겨-----억!!"

그에이와 병사들은 목책을 향해 앞으로 달렸다. 숲에서 만들어낸 사다리를 들고, 방패를 머리를 위로 들어 화살을 막고, 후방의 궁병들은 망루 위의 오크들을 견제하기 위해 활을 들었다.

"우오오오오오!!"

오직 그에이만이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병사들은 우물쭈물하며 어쩔 수 없이 그에이의 뒤를 따랐다.

그에이가 아무리 소리를 내질렀어도, 그들의 의욕은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만이 가득차있었다.

- 나도 하고 싶다.

- 하지 못하게 되면 차라리 한 발이라도 빼고 싸우고 싶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병사들은 결국 포기한 채, 그에이를 따라 사다리를 걸고 오르기 시작했다. 마물들이 인간들과 정사를 나눈 발판을 해체되지 않았고, 토벌군은 너무나도 쉽게 사다리를 발판에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쿵!

그에이가 발판 위에 올랐다. 그리고 각 발판마다 2층, 3층 집들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두꺼운 널판지가 걸려있었다. 그에이는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맞은편에서 무기를 들고 기다리는 오크들의 모습에 안도했다.

"""라스!!"""

오크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에이의 뒤를 따르던 병사들이 널빤지를 보고 잠시 주춤거렸다. 떨어지면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칠 만큼의 높이. 하지만 오크들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오히려 널빤지 위로 걸어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 놈들!"

선두에 대검을 들고 선 오크가 그에이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탄탄한 근육질의 오크는 대검을 토벌군에게 겨누며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싹다 잡아서 하피들과 라스하게 해주마!!"

"""우오오오!!!"""

오크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떨어지면 다리 하나는 족히 분질러질 높이였지만,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구름다리같은 널빤지 위에서의 정면 승부. 그에이는 검을 들고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죽어라 이 괴물들아!"

그에이의 뒤를 따라 병사들이 달렸다. 둘이 맞부딪히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오크들은 갑자기 옆으로 뛰어내렸다. 대검을 든 오크는 널빤지를 박차고 뒤로 크게 공중제비를 돌며 건물 옥상으로 돌아갔다. 그에이는 숨이 턱 막혔다.

"뭣-"

널빤지 위의 오크들이 모두 빠져나가기 무섭게, 대검의 오크를 비롯하여 다른 오크들보다 훨씬 더 차려입은 오크들이 나타나 거대한 무기를 들어올렸다. 이미 널빤지 위에는 많게는 스무 명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이런-"

"군단장 님의 전언이다."

오크는 널빤지를 향해 대검의 날을 늘어뜨리며 인간들을 비웃었다.

"설마 병신같이 판자를 넘어서 오려고 하면, 오크와 인간의 기본 스펙 차이를 보여주라고.'

서걱, 쿠웅.

널빤지가 잘려나갔고, 병사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에이는 자세를 바로 잡고 낙법을 취했다. 발목이 살짝 시큰거렸지만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겁하다! 맞서 싸울 것 처럼 해놓고 이런 개수작을 부리다니!"

"군단장님의 전언이다. 비겁하다고 징징댈 경우, 이렇게 말씀하라 하셨지."

오크는 대검을 들고 번쩍 뛰어내렸다. 입꼬리를 비틀며 착지한 오크는 넓은 검날을 손바닥에 턱턱 올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꼬우면 이기던가."

"이, 이 망할 쓰레기같은 괴물 놈들!!"

그에이가 오크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하늘 높이 수직으로 들어올린 검에는 푸른 마력이 실려있었다. 실력있는 기사의 상징과도 같은 '오러'였다.

"그리고 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대검의 오크는 검을 어깨 너머로 넘겼다.

"네놈은 나보다 강할지 몰라도, 나의 아버지같은 자가 아니다."

"뭐?"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들려오기 무섭게, 어깨에 화끈한 감각이 튀었다. 그에이는 순간적으로 빠진 힘에 검을 놓칠 뻔 했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어깨 갑주가 꿰뚫린 흔적이 있었고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어깨에 구멍이 꿰뚫릴 뻔 했다.

"이건-"

"혼자서 힘들면 둘이서, 둘이서 힘들면 셋이서."

오크는 발을 내딛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곳은 전장! 우리가 하는 것은 대결이 아니라 전투다, 이 머저리야!"

오크는 그에이를 향해 사선으로 대검을 그어내렸다.

* * *

"어우, 병신들. 진짜로 그걸 넘어오네."

나는 골목을 따라 달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피들의 전갈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랫도리에 분노가 가득 차올랐기로서니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다니. 여러모로 글러먹은 놈들이었다.

'차라리 목책을 부수고 넘어온 모험가 놈들이 훨씬 쓸만하겠네.'

과연 백여명으로 목책을 뚫은 방법이 무엇일까. 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광장을 돌아나왔다. 이미 광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울 부대는 모험가들을 요격하러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광장에는 최종 수비병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라스들이 창을 들고 내게 경례를 했다.

"안드라스들은 목숨과 바꿔서라도 무조건 포털 지켜!"

"""알겠라스!!"""

안드라스들이 반말을 했는지 존대를 했는지 따질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공중에 날아가는 하피 엔젤을 따라, 하서스와 라스투자드의 언데드 부대가 막고 있을 곳으로 향했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검에 살이 박히는 소리,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화염구가 피어오르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울리는 전장은 어느덧 두 골목만 넘어가면 될 정도.

"우오오!"

나는 양손에 든 쇠파이프를 들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미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하서스와 하이구울, 그리고 라스투자드의 구울들이 두터운 방어선을 펼친 채 시간을 벌고 있었다.

으어어어!

라스투자드가 부리는 구울들이 흐느적거리며 모험가들을 위협했다. 모험가들은 너무나도 쉽게 구울들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하서스와 하이구울들은 제각기 실력자들을 맡아 상대하고 있었다.

[일어나라, 분노의 하수인이여!!]

라스투자드가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목이 날아간 모험가가 삐거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라스투자드는 구울들이 쓰러뜨린 모험가를 실시간으로 자신의 구울로 부려 전력을 충원했다.

하지만 그 수가 어느덧 30선을 무너졌다. 라스투자드가 구울을 충원하는 속도보다 구울이 소모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모험가들은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걸 파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초. 나는 라스투자드의 지척까지 닿은 순간, 두 다리를 도움닫기하듯 발을 굴러 높이 뛰어올랐다.

"정문으로 들어와라, 새끼들아!!"

높이 뛰어올라 소리치는 내게로 모험가들의 시선이 모였다. 나는 하서스가 상대하던 젊은 청년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내리쳤다.

"수리비 내 놔, 쓰레기들아!!"

사제로 보이는 청년은 은빛의 오오라를 내뿜으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빛무리를 보아하니 여신의 사제로 보였고, 나는 짜릿한 손발목을 두 어번 털어낸 뒤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

"흐흐, 이게 감옥에서 뽑아온-"

나는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붉어졌던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색을 되찾은 세계에서 나는 분명히 '저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놈이 대장이냐?"

"너 이 새끼 씨발 뭐하는 새끼야?"

입에서 절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청년의 표정이 굳건 말건, 나는 쇠파이프의 끝을 청년이 들고있는 철퇴를 가리켰다.

"씨발 그거 어디서 났어?"

"...알려줄 이유는 없다!"

"허, 존만이 같은게 대답 안 하는 거 봐라. 그래, 오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는 양손의 손가락을 교차하며 쓸었다. 다시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전신에 피로감이 살짝 들었지만, 당장은 저 사제 놈을 잡아다가 철퇴의 출처를 묻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대답할 때 까지 쥐어 패면 그만이지."

"이 괴물 놈이!"

사제는 철퇴를 높이 치켜들었다. 나름 두껍지만 철퇴보다는 훨씬 얇은 쇠파이프로는 막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일단 공격은 피하자. 나는 몸을 옆으로 비틀어 굴렀다.

콰--앙!!

사제는 바닥을 철퇴로 내리찍었다. 흙이 얼굴에 튀었지만, 나는 빠르게 구르며 파이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굴러가는 힘을 그대로 이용해 쇠파이프로 사제의 종아리를 내리쳤다.

퍼--억!!

보호막을 펼처두기라도 했는지, 내 전력을 담은 몽둥이질에도 사제는 자세가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낙법을 취해 몸을 일으켰다. 쇠파이프의 끝이 동그랗게 휘어져있었다.

"여신의 천벌을 받으라!!"

사제는 나를 향해 마구잡이로 철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뒷걸음질치고, 머리를 숙이고, 몸을 비스듬히 눕히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사제는 약이 제대로 올랐고, 나는 기회를 엿보았다.

"죽어라--!!"

지금.

나는 사선으로 휘두르는 철퇴를 향해 쇠파이프를 맞부딪혔다. 뭉툭한 끝이 쇠파이프의 휘어진 부분에 정확히 부딪혔고, 쇠파이프는 90도 이상으로 꺾여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철퇴는 힘을 잃지 않았다.

"뭣-?!"

"크큭."

당연했다. 나는 쇠파이프를 철퇴에 집어던졌다. 애초에 저 철퇴를 상대로 싸구려 쇠창살은 견뎌낼 수가 없을게 분명했다. 아무리 끝이 무뎌져 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30위의 던전에서 정성들여 만들어진 장인의 물건이었으니.

퍼-억.

나는 철퇴의 끝을 럭비공처럼 붙잡았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생각보다 힘이 강해 가슴에 조금 세게 얻어맞았다. 로브의 방어력과 문신을 통해 강화된 신체의 단단함을 뚫고 들어오는 철퇴의 충격은 눈앞이 순간 새하얗게 될 정도였다.

"놔, 놔!"

하지만 나는 철퇴를 놓지 않았다. 사제가 자루를 잡아당기며 악다구니를 썼고, 내 손바닥의 피부를 다 긁어버리겠다는 듯 자루를 회전시켰다. 나는 그럴수록 더 강하게 철퇴를 붙잡았다. 철퇴에는 손바닥을 긁은 내 핏방울이 뚝뚝 맺혔다.

"흐흐흐, 절대로 못 놓지. 너 이제 곱게는 못 죽을 거다."

나는 전력을 다해 다리를 들어올렸다. 사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했지만, 끝까지 철퇴를 손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만약 진작에 놓았다면 내 공격을 피하고 역공을 펼칠 수도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기에는 늦었다.

"커흑!"

나는 사제의 옆구리를 옆차기로 걷어찼다. 정확히 갈비뼈를 노리는 발길질에 사제는 피섞인 침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사제로부터 빼앗은 철퇴의 손잡이를 빙그르르 돌렸다. 절로 씩 웃음이 나왔다.

"야. 너 지금부터 말 잘해라. 안그러면 내가 진짜 빡돌아서 너 때려죽일 수 있거든."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철퇴를 어깨에 걸치고 피범벅이 된 손으로 사제에게 까딱거렸다. 한 때, 에일라가 이끌던 군대를 때려죽이던 그 감촉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거 어디서 얻었냐?"

내 목소리는 나조차도 흠칫 놀랄 정도로 흥분해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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