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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48화 (148/800)

0014827일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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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차 토벌군은 병력을 일부 나누었다.

진지에 주둔하고 있는 본대, 그리고 어둠을 틈타 야습을 감행하려던 별동대. 마왕군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만큼, 철저히 훈련받은 이들로 뽑다보니 대부분 영지의 직업군인들로 구성되었다. 베테랑으로 구성된 그 수는 고작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모두 대기."

그들을 이끄는 별동대의 대장, 기사 그에이는 갑주까지 벗고 어둠을 틈타 목책 근처까지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오크들은 망루를 더 높이 만들었지만 그 높아진 망루 때문에 목책 바로 아래를 확인하지 못했다.

별동대는 어둠이 짙어진 틈을 타 신속히 망루의 경계 사각지대로 파고들었고, 벽에 딱 달라붙는데 성공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보면 절벽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한 기책이었고, 다행히 그 기책은 먹혀들었다. 오크들은 멍청했다.

'이상한데.'

그에이는 너무나도 조용한 적의 움직임에 소름이 돋았다. 망루 위의 오크들을 보면 전방주시만 할 뿐 다른 곳은 눈여겨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경계를 제대로 못하는 구나 싶었다.

'너무 조용해.'

하지만 그러기에는 안쪽의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했다. 촘촘히 가려지기는 했어도 소리는 들려오기 마련이었다. 도시 안쪽의 반응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고요했다.

"그에이 경, 이거 혹시 저쪽도 야습을 감행하려한다거나 그런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기회다."

그에이는 허리춤에 묶어둔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이미 다른 병사들에게도 주머니가 하나씩 묶여있었고, 그에이는 주머니속의 감촉을 다시금 확인했다. 물컹한듯 하면서도 단단한 물건은 손으로 누르면 뭉게질듯 했고, 그에이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꼼꼼하게 발라라. 나머지는 그 옆으로 붙이고."

그에이는 불안감을 접어두고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병사들은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을 얇게 펴발랐고, 곧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만큼 계획대로 목책에는 송진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이탈-"

푸드드득.

북쪽에서 흰 날개의 하피들이 하늘을 날아 자비야바로 돌아왔다. 별동대는 급히 몸을 숙여 침묵했다. 다행히 하피들은 멀찍이 떨어져있는 별동대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에이 경, 저것들 지금 본진에서 날아온 것 같은데요?"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었나.... 하지만 별 피해는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계속 진행한다."

그에이는 주머니 속 남은 송진을 전부 펴바른뒤, 발치에 놓인 흙을 한움큼 들어올려 송진의 위에 뿌렸다. 조금이라도 송진 냄새가 가라앉기를 기대하며, 별동대는 다시 낮은 포복으로 땅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제 본진으로 귀환!"

오크들의 사격 사거리 너머로 이동한 별동대는 곧장 몸을 일으켜 본진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그들은 본진의 혼란함에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탁탁탁탁.

병사들은 하나같이 강에 하반신을 묻어두고 있었다. 마치 하반신의 열기를 빼내기라도 해야한다는 듯, 눈으로만 봐도 그 수가 대략 오백 명이 훌쩍 넘어보였다.

"아니, 이게 무슨...."

"그에이 경! 위험합니다! 어서 임시 막사로 이동하십시오!"

"파이즈 경, 도대체 무슨 일을...?"

"오크들이 진지에 독을 풀었습니다!"

기사 파이즈의 얼굴은 흥분으로 잔뜩 붉어져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도 파이즈와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별동대의 몸에 짙게 베인 송진 냄새와는 다른, 밤꽃냄새가 진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독?"

"예, 세상에, 아니 글쎄, 적이...."

파이즈는 얼척이 없다면서도 붉어진 얼굴로 분노를 터뜨렸다. 그에이는 파이즈의 하반신으로 시선을 내렸다. 상반신은 철갑을 잘 챙겨입었으면서, 아래는 무엇이 불편한지 갑옷을 벗어놓았다.

"헙."

그에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파이즈의 바지 앞섶에는 텐트가 쳐져있었고, 왠지 모르게 바지 앞에서 불쾌하고 축축한 습기같은게 느껴졌다. 파이즈는 당황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 이건 오해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저, 적이 미약을 풀었습니다!"

"...미약? 독약이 아니고?"

그에이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피들을 통한 공습이 고작 미약이라니. 하지만 이런 쪽으로 역겨움을 일으키려한다면 효과는 굉장했다. 진지 전체가 진하고 역한 밤꽃냄새로 가득찼다.

"...욱."

그에이는 그만 구토를 할 뻔 했다. 강에 몸을 집어넣고 진정을 하려고 애쓰는 병사들은 양반이었다. 어떤 병사들은 남들 모르게 탁탁탁 소리를 내며 제 열기를 분출하려 했고, 어떤 병사들은 아예 물건을 밖으로 내놓고 밤공기에 열을 식히고 있었다.

"...남작 님은?"

"그, 그게."

파이즈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그에이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에 눈앞이 아뜩해졌다.

"서, 설마!"

그에이는 남작의 막사로 달려갔다. 진한 밤꽃냄새 아래에 알싸하게 퍼지는 혈향은 분명 마물이 아닌 인간의 것이었다. 그에이는 막사 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눈앞이 하얘졌다.

막사 주변에는 병사들의 시신이 늘어져있었다. 하나같이 심장이나 목 같은 급소에 칼이 찔린 병사들의 얼굴에는 광기가 남아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늙은 기사가 그에이를 보고 착잡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들어가시면 위험하오."

"경이 찌르신 겁니까?"

"아니."

노기사는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깨끗한 검이었고, 그에이는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졌음에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물컹.

한 발자국을 내딛으니, 부서진 나무컵 안에 붉고 물컹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이는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려 점액을 짓밟았다. 이제 완벽하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으어어!!"

갑자기 바지를 벗은 병사 하나가 막사로 돌진했다. 그에이와 노기사는 검을 빼어들었지만, 병사는 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피하여 자신의 단검으로 막사의 천을 찢고 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런 젠장!"

"주군!!"

그에이와 노기사는 급히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서걱.

"하아, 하아, 하아...!!"

전신이 잔뜩 달아오른 채, 숨을 헐떡이며 병사의 고간을 향해 검을 찌른 비르고 남작이 서있었다. 남작의 얼굴은 절정에 다다른 여인 마냥 홍조가 벌겋게 피어있었다.

"드, 들어오지, 마아...! 흐, 흐윽!"

남작은 울먹이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노기사는 익숙한 손길로 병사에게서 칼을 빼내었고, 아랫도리가 잘려나간 부하를 양물과 함께 막사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에이 또한 남작에게서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렸다.

"그, 그에이 경, 잘왔어요, 저, 지금 몸이 이상해요...!"

"마왕군의 간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그에이 경이 저를 달래주세요, 제발요...! 저 지금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에요...!"

"저도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만, 부디 진정하여 주십시오."

남작은 울먹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에이는 까딱 잘못하다가는 코가 꿰일 것 같은 상황이라,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임신 공격이다.'

관계를 맺는 순간, 자신은 남작의 부군이 되어야 한다. 수도의 그 멋진 저택을 포기하고, 이 허접하고 거지같은 남작령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에이는 당장의 성욕보다 권력과 출세를 선택했다. 그래서 몸을 돌려 막사를 빠져나가려했다.

쿵.

그에이의 몸이 누군가의 등과 부딪혔다. 입구에는 오랫동안 비르고 가문에서 일한 노기사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경!"

"미안하오, 하지만 남작님께서 저리 고통받으시는 걸 내 두 눈으로 볼 수 없다오. ...오늘 일은 내 평생 빚으로 생각하고, 철저히 함구하리다."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 흐어억?!"

등 뒤에서 뜨거운 손길이 그에이의 가슴을 감싸안았다.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다가온 남작은 그에이의 동에 가슴과 비부를 비비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여신이시여!"

퍽.

그에이는 몸을 돌려 남작의 뒷통수를 수도로 내리쳤다. 남작은 그에이의 품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그에이는 남작을 질질 끌어다가 간이 침대 위에 사지를 묶었다.

"...경, 오늘 일은 평생 비밀로 함구하셔야 합니다."

"미안하오. 그에이 경."

노기사는 순순히 사과했다. 노기사가 그에이를 사지로 집어넣은 것도 잘못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연히 작위를 가진 귀족의 뒷목을 후려친 건 아무리 그에이라도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할 터.

그러니 둘은 서로 입에 지퍼를 채우며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이는 아주 빠른 손길로 남작을 침대에 묶었고, 검집을 들어 막사를 사주 경계했다.

"...이상하게 발정난 미친 놈들이 넘쳐나는 군요."

"죽이지는 마시게."

두 기사는 주군에게 마수를 뻗는 무뢰배들을 검집으로 두드려 팼다.

소요가 잦아들기까지는 무려 반나절.

남작을 범하려들던 발정난 병사 10명이 죽은 것을 제외하면, 적어도 겉으로는 사상자는 거의 없었다.

* * *

"아직 이대로 끝나면 섭섭하지. 흐흐."

나는 망루에서 소요가 진정되어 가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작전을 준비했다. 첫번째 작전이 적들을 발정나게 하는 것이라면, 두번째 작전은 진심으로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

'하지만 그건 해가 밝아야 가능한 일이야.'

나는 그레모리의 던전에서 열심히 생산 활동에 열을 내고 있을 라스촌의 주민들을 불렀다. 릴리를 포함한 인간 사냥꾼 다섯, 그리고 종마 사냥꾼 다섯. 나는 그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릴 계획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게 좋은 작전이 있다. 라스군의 승리와 전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지.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너희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나는 사냥꾼들에게 내 작전을 알렸다.

"세상에...."

"진심으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

다들 릴리의 눈치를 보는 듯 하면서도 고민에 빠졌고, 나 또한 막상 말은 꺼내기는 했지만 무조건 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윽박을 지르기도 난감했다. 라스촌의 주민들은 한 때는 포로였을 지 몰라도, 지금은 엄연한 나의 부하였다. 심지어 여자 사냥꾼들은 명목상 내 며느리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 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들에게 선택지를 줬다. 지금 내가 요구하는 작전은 명백히 그들에게 있어서는 도박이며 수치이며 중죄였다. 인간이면서 사실상 인류 연합을 저버리게 되는, 영영 우리 분노의 군단-라스단의 일원으로 살아가겠다고 세상에 공언하는 셈이었다.

"할게요."

릴리가 가장 먼저 나섰다. 그에 다른 이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전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나는 고마운 동시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한다고 한 이상 철저하게 할 거다. 이전처럼 배려같은 건 없어."

"괜찮아요. 군단에, 주인님께 도움이 된다면, 이 한 몸 쯤이야 얼마든지 바칠 수 있어요."

"좋다. 그럼 릴리는 나랑 하고, 너희들은 적어도 순서 정도는 초이스 하게 해주마. 지금 바로 논의해."

릴리를 제외한 다른 네 사냥꾼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주도권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릴리는 난감한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릴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두드렸다.

"너는 내 것이다."

".......혹시나 했어요."

"설마 그럴 리가."

진심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러는 척을 하는 것인데. 내가 릴리와 어떤 식으로 하게 될 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루남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군단장님,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걱정마라. 이쪽이 채찍이라면 너희는 당근이니. 아무렴 내가 너희들 생각을 못했을까봐."

이쪽이 적의 분노를 일으키는 주역이라면, 남자 사냥꾼들은 적의 질투를 일으키는 작전의 중핵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이쪽은 여자 사냥꾼들보다 선택지가 더 넓었다.

"흐흐, 그러면 어디 원하는 대로 말해보거라."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하피, 하피 엔젤, 안드라스 성인. 누구랑 할래?"

* * *

소요는 잦아들었고, 병사들은 새로운 진지로 몸을 옮겨 잠깐이나마 눈을 붙였다. 사제 프란시스는 투구를 쓴 채 병사들의 상황을 주시했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진정하기는 했지만, 알음알음 해갈하지 못한 불만이 쌓여있었다.

"......."

오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틀린 걸까, 아니면 오크에게 이런 미친 짓을 시키는 자가 있는 걸까. 프란시스는 누구보다도 전사답고 사내다웠던 '그'를 떠올렸다.

"한 명이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건가."

편견과 선입견이 깨어졌다. 프란시스는 새로운 진리를 터득했다. 그리고 개안했다.

"당신이 틀렸소."

프란시스는 끝이 뭉툭한 철퇴를 들어올렸다. 그에게서 빼앗은 철퇴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되었고, 오크들을 때려잡는 여신의 신벌이 되리라.

"역시 좋은 마족은 죽은 마족 뿐이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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