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627일차 -------------------------
"아 씨, 안 맞았어?"
나는 이번에도 투석 저격이 실패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더욱더 높아진 망루 위에 오른 륜의 수신호에 따르면, 옆에 있던 기사가 몸을 날려 적 대장으로 보이는 이를 구했다고 했다.
"그럼 다른 놈들 맞추면 되지. 얘들아, 실어라."
내 지시에 따라 부하 오크들이 가고일 흉상을 발사대에 실었다. 두꺼운 나무 판자 위에 두 발로 섰다.
"류---운!! 플랜 B로 바로 간다!!"
륜의 분대원이 망루에서 깃발을 펄럭였다. 륜은 망루의 틈으로 활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그저 륜의 사선에 돌덩어리를 날리면 끝이었다.
각도는 확장한 목책을 훌쩍 넘기는 60도보다 조금 더 낮게, 목책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정도.
전신의 무게를 싣는 파워는 유지.
바람의 영향은 거의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널 한번 뛰어보자!!"
나는 가고일 흉상 지렛대 위에 놓인 두꺼운 판자를 달렸다. 최대한 널빤지를 뒤로 당겨 돌덩어리가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오크들은 받침점에 해당하는 가고일 흉상을 멀리 떨어뜨렸다.
"아르키메데스 만세!!"
나는 받침점을 넘어가는 즉시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도움닫기를 하듯 두 발을 앞으로 내딛었고, 그대로 널빤지의 끝에 체조선수마냥 착지했다.
부---웅!!
사람 몸통만한 돌덩어리가 다시 목책 너머로 날아갔다. 그리고 넘어가자마자 륜이 바윗덩어리를 향해 바람 화살을 난사했다.
파바바박!
허공에서 돌덩어리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돌덩어리는 피했다면, 이번에는 돌조각의 비는 어떨까.
"죽었냐?!!"
오크는 깃발을 펄럭여 명중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죽였다는 신호가 이어지지 않았다.
"하긴, 이 정도로 끝났으면 진작에 끝났지."
아쉽기는 했지만 고작 돌덩어리 두 번 투석한 것 가지고 전투가 끝난다면, 지난 사흘간 내가 잠을 최대한 줄이고 마물들을 강화한게 너무나도 아쉬웠을 것이다.
"총원, 전투 준비!"
내 외침에 네임드급 부하들이 모두 빠르게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적의 토벌군이 1차와 거의 비슷한 숫자-아니 그 이상으로 온다는 걸 공중에서 확인 한 이후, 나는 던전의 입구를 막고 거의 모든 병력들을 동원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전력비는 세 배 정도.
그렇다. 1200을 상대로도 세 배.
현재, 분노의 군단 병력 수는 대략 450명.
"잠깐 정원 초과 될 정도로 꾸역꾸역 수를 채워넣었는데 아무렴 이정도는 되어야지."
양계장에서 식량 생산을 맡은 하피들을 제외하고, 분노의 군단은 상당한 양적 강화를 이루어냈다.
수비병의 역할을 맡은 오크의 수가 150.
공중병력인 하피 엔젤의 수가 100.
그리고 구울이나 슬라임 등의 마물, 그리고 인간까지 포함하면 약 50.
여기까지가 총합 300. 후방에서 보급을 맡은 하피들은 전투병력으로 카운트 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남은 빈 병력들이 무려 150.
"싸울 준비는 되었냐, 이 작은 라스들아!!"
"""라스!!"""
가죽 갑옷을 입은 새대가리 괴물들이 광장에서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전투의 주역은 네놈들이다! 이 도시가 왜 라스베가스인지, 너희들이 직접 두 눈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라스--!!"""
우렁찬 함성 소리가 라스베가스의 하늘을 울렸다.
150명의 유격군, 성인 안드라스. 그들은 아래로는 인간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고,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든 목창을 들고 있었다.
근접 보병, 오크.
창병, 안드라스.
공중 병력, 하피 엔젤.
종족별로 크게 역할을 부여한 가운데, 나는 세 번째 가고일 흉상을 발사대에 올렸다. 이전에 사용한 시소는 금방 부러졌고, 나는 그 받침점으로 쓴 흉상을 다음 투석을 위해 내 옆에 놓았다.
그리고 원거리 공성 병기, 나.
"어디 병력들 가까이 다가오게 하기만 해봐라."
병사들의 위에 가고일을 떨어뜨려줄테니. 나는 적 대장이 병력들을 빨리 움직여주기를 학수고대했다.
...안드라스만 갑자기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새로이 태어난 남자 안드라스 열 다섯이 하피들에게 쥐어짜여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다행히 메어리의 멋진 사정 관리 덕분에 무덤이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 * *
토벌군은 다리 너머에 진지를 구축했다. 요새화된 자비야바는 생각보다 더 단단해보였고, 무슨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책 안에서 던져대는 돌덩어리는 공성병기를 방불케했다.
한 번 호되게 당할 뻔한 남작은 진지를 구축한 뒤 정찰대를 구성하여 자비야바 전체를 둘러보게 하였다. 다행히 적은 수성만 할 뿐 요격을 하러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볼테면 보라는 양 정찰대를 향해 조롱을 해댔다.
- 인꼬삼!!!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정찰대들이 상당히 불쾌했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 덕분에 정보는 제법 많이 모였다. 기사 다섯과 사제, 남작이 모인 막사의 정중앙 테이블에는 자비야바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자비야바를 탈환한다는 가정하에 전략을 짜겠습니다."
지휘봉은 남작 본인이 가지고 있을 지라도, 전술적인 식견은 그에이가 훨씬 더 높았다. 그에 따라 전체적인 탈환 작전의 틀이나 세부 작전에 대한 입안은 그에이의 몫이었다.
"정찰병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적은 문을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정문 앞에는 기병이 전력질주 해야만 도하 가능한 해자가 만들어졌으며, 자비야바의 서쪽에 있는 강에도 참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정면으로 가면 분명 함정이 있을테고, 강을 도하하면 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군요."
남작은 자신의 전술적 식견에 따라 그에이의 설명에 살을 덧붙였다. 몸은 약해도 머리는 잘 돌아가는 만큼, 아카데미에서 교양으로 배운 군사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예. 그래서 이제 저희에게는 선택지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자비야바를 포위하여 말라죽이게 하는 것. 공성병기를 구축하고, 멀리서 안으로 쏴대는 것이 첫 번째 방법입니다만...."
그에이는 남작을 포함한 남작령 기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바로 말을 바꾸었다. 그에이가 남작령에서 나고 자란 이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지지만, 남작령을 터전으로 잡은 이들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저희는 저희 도시를 탈환하러 온 것이지, 마왕군의 요새를 박살내러 온 게 아니죠. 막말로 파괴공작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마법사를 불러 밖에다가 불을 지르면 끝이니까요."
"......흐음."
가만히 있던 사제 프란시스가 손으로 턱을 쓸었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듯 했고, 그에이는 그에게 예를 표하며 의견을 구했다.
"사제님, 뭔가 짚이는 것이라도?"
"적이 저희의 입장을 생각하고 도시를 점령했다고 생각해봤습니다. 자비야바는 적의 본진이 아닌 전진기지라고 생각한다면, 적의 본진은 어디까지나 던전이니까요."
기사 그에이가 전술적 식견에 따라 의견을 펼쳤다면, 사제 프란시스는 모험가로서의 주관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던전의 위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비야바에서 던전으로 이어지는 흔적은 없었죠.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대개 던전과 자비야바 사이를 잇는 고위 마법사가 있거나, 아니면 던전 인근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프란시스의 견해는 거의 진실에 가까웠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이 늘어났을 수 있다는 얘기죠."
"...미쳐버리겠군. 그에이 경, 어디 좋은 공격 루트 없는가?"
"있습니다. 다만."
그에이는 한 지점을 가리켰다.
"...야습을 해야만 효과가 있습니다."
* * *
밤이 되었다.
나는 북쪽의 망루에서 눈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횃불을 잔뜩 켜놓은 진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그게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것들 혹시 공성병기를 만든다거나, 충차를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도 아니면 땅꿀을 판다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메테오를 떨어뜨린다거나."
"주인님, 쟤들 그냥 인간이에요. 드래곤도 아닌데."
"혹시 모르지 않냐. 인간으로 변신한 드래곤이 '으헤헤 나 존나쎄에에에에'하면서 메테오 갈겨버릴지도. 이런 도시 하나 쯤은 일도 아닐 거 아니야."
"...너무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이미 저희는 다 죽은 목숨입니다."
륜과 에일라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불안감에 자꾸만 신경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입장으로서, 미지의 적을 상대한다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다.
"후우, 그래. 내가 걱정하면 안 되지. 미안하다."
내가 불안해하면 다른 병사들도 불안해한다. 지휘관은 확실한 중심을 잡고 명령을 내려야하는 사람이지, 결코 이리저리 상황에 따라 휘둘리는 존재가 되면 안 되었다.
"...작전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정을 넘기면 완성될 겁니다."
자정이 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목책 인근에서 몇 차례 투닥거리기는 했어도, 서로서로 거의 피해가 없다시피 아웅다웅 거린 셈이나 다름 없었다.
"다음에는 적의 진지에 세작을 심어놓아야겠어."
"좋은 방법 있으세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메어리같이 인간 부하를 침투시켜서 정보를 캐낸다거나, 아니면 수인족이나 흡혈종처럼 밤에 모습을 숨기기 좋은 놈들로 정찰을 한다거나."
병력의 다양성이 있으면 그걸 바탕으로 다양한 작전을 짤 수 있을텐데. 부하들의 양과 질은 확실히 늘려 56위와 63위 던전의 급은 확실히 갖춰졌다고는 하나, 종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륜, 에일라.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나는 가챠를 할 거다."
간간히 하던 일퀘 덕분에 마물 소환서, 그러니까 가챠를 위한 티켓은 거의 20개를 훌쩍 넘겼다. 륜과 에일라와 식사를 하는 것처럼 일퀘와 서브 던전 클리어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차곡차곡 던전의 저장고에 고이 모셔놓았다.
"주인님, 혹시 이번에도 고등급 여자애가 나오면 또 그러실 건가요?"
"당근빳따지. ...크흠, 당연한 말을."
"그럼 저희 분량이 점점 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가챠로 그런 존재가 나온다면 말이지.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 오크다. 구멍이 있다고 그냥 무조건 박아대는 그런 놈은 아니야."
"일단 한 입 맛은 보실 거잖아요."
"그거야 당연하지."
뷔페에 가서도 맛있는 음식은 한 입씩이라도 맛을 보아야 본전을 뽑지 않겠는가.
"군단장님."
망루 아래에서 아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륜과 에일라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잽싸게 돌리고 망루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
"작전을 결행할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래? 흐흐흐. 그럼 시작하자. 원래 이런 장난은 밤에 해야 제맛이지. 안드라스!"
"예, 주인님."
지붕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드라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안드라스의 뒤로 수많은 하피 엔젤들이 유리병을 들고 씩 웃고 있었다. 유리병에는 붉은 점액이 잔뜩 들어있었고,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마개가 입구를 막고있었다.
"다들 사용 방법은 잘 알고 있겠지?"
"물론. 날아서, 툭. 후후후."
안드라스 종 조차 사용하기 쉽게 만든 물건이다. 내가 굳이 투석기를 이용해 날아서 떨어지는 것들에 대해 주의를 줬건만, 불행히 적들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그러면 잘 부탁한다. 안드라스군, 전부 비상 준비!!"
나는 깃발을 전방으로 들었다. 하피 엔젤들은 흰 날개를 제외하고, 전신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인간들의 티셔츠와 팬츠에 검은 깃털을 붙여 만든 암행복이었다.
휘이잉-
약한 바람이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의 방향이 남쪽인 것을 확인한 뒤, 깃발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비상!"
하피 엔젤들이 유리병을 든 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의 허리에는 끈에 단단히 동여매어진 작은 나무통 또한 들려있었다.
퍼드드득.
안드라스를 따라 하늘로 날아오른 하피 엔젤들은 상당히 높은 고도까지 올라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하피 엔젤들에 가려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한다면, 결코 하피 엔젤들이 공습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리라.
"흐흐, 비르고 남작이라."
나는 물병용 유리병의 마개를 열었다. 말캉말캉한 슬라임의 점액이 한가득 들어있는 가운데, 아주 미미하지만 고소한 기름 냄새가 유리병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늘에서 선물이 떨어지면 아주 기분 좋아서 죽을텐데 어쩌시려나."
나는 우리 던전의 특산물을 선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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