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624일차 -------------------------
첨벙! 첨벙!
기사 라마티오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강물을 빠져나왔다. 뒤따르던 기병들도 상태는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자신과 말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미친…!"
그들의 상태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기병들의 몸에는 곳곳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투구나 보호대가 돌멩이에 긁힌 이는 차라리 양반이었고, 온몸이 성한 이들이 하나 없었다.
"이런 젠장."
오판. 오크니까 당연히 맞서 싸울 거라고 생각했지, 비겁하게 돌멩이를 날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원래 오크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근접전만을 숭상한고하여,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 도하를 시도하여 기습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적은 오히려 자신들보다 지형적 이점을 더 잘 활용했다. 라마티오는 자신의 상식이 잘못되었나싶어 순간 아노미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토벌군을 이끄는 우두머리. 자신에게 외치듯 부하들에게 일갈했다.
"젠장, 정신 차려라!!"
라마티오를 보는 기병들의 눈은 험악했다. 기사만 믿고 따라왔는데 눈먼 돌에 얻어맞고 심지어 동료가 죽었다. 라마티오는 생각보다 많은 전력을 오판으로 깍아먹었다.
"적에 대한 판단을 수정한다. 상대는 오크가 아니다! 오크의 탈을 쓴 야만족이야!"
열 명의 기수가 확실히 죽었고, 다섯은 강물에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말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이를 제외하면 싸울 수 있는 전력은 고작 기병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우선 회군한다! 부상자 챙겨!"
그리고 깎인 전력은 비단 기병 뿐만 아니었다. 강물에 떠내려오는 돌맞은 시체들 중 일부는 보병들이었다. 헤엄을 칠줄 안다고 하여 기병들의 뒤를 이어 따라오게 했더니, 오크들이 던진 돌에 맞아 전멸하게 되었다.
그들의 수가 또 150.
그리고 남은 병사들은 자비야바 북쪽에서 목책을 빙 둘러 정문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라마티오는 기수를 돌려 기병들에게 소리쳤다.
"아군과 합류한다!!"
라마티오가 아래를 발로 차자, 말들이 발굽 소리를 내며 들판을 질주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오크들은 활을 쏘지 않았다. 애초에 활을 쏘지 못하는 듯 했다.
"라마티오 경?! 이 어찌?!"
팔백여 보병을 이끄는 부관이 사색이 되었다. 호기롭게 달려간 것 치고는 상당히 졸전이었던 만큼 라마티오는 면목이 서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병사들에게 사과할 수는 없었다.
"기병들은 여기서 대기! 보병들은 모여! 진군! 상대는 돌멩이 좀 던지는 게 전부다! 모두 방패를 머리 위로 들고 천천히 움직여라!"
자비야바 성의 성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별달리 충차가 필요 없었다. 장정 20정도가 하나로 모여 끝을 날카롭게 깎은 통나무를 수 차례 찌르면 열릴 수준이었다. 그리고 보고대로 '적'의 성문은 굳건했다.
"모두, 전진!"
위로는 방패를 들고, 통나무를 든 장정들이 전진했다. 그때까지도 적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망루에서 지켜보던 오크 열 정도가 돌팔매질을 했지만, 군집된 방패에 튕겨나가며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했다.
"공병! 파쇄준비!!"
"파쇄준비! 하나, 둘, 셋--!!"
공병부대 대장의 호령과 함께, 스무명의 장정들이 들고 온 통나무를 잡고 앞으로 내질렀다.
콰-----앙!!
우레같은 폭발소리와 함께, 성문이 반쯤 열렸다. 라마티오는 직접 성문을 열고 들어가 안의 오크들을 도륙할 생각에 환희에 차올랐다.
"라마티오 경!! 피하십시오!!"
"뭘?"
부관의 외침에 라마티오는 전방을 주시했다. 망루의 오크 놈들이 돌팔매를 하기에는 거리가 충분히 멀-
순간, 라마티오의 머리 위에 짙은 그림자가 생겼다. 라마티오는 본능적으로 말에서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다.
콰득!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라마티오의 볼에 뜨거운 무언가가 스쳤다. 그건 방금 전까지 자신이 타고있던 애마가 돌덩이에 깔려 토한 피였다. 돌덩이는 마치 부서진 가고일의 형상 같았다.
"이건...뭐...?"
"으아아아악!"
다시 하늘에서 그림자가 생겼다. 이번에는 조금 더 그림자가 넓은, 가고일의 날개 한 쪽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거, 설마?"
적은 가고일을 부수어 투석의 군수물자로 활용하고 있었다.
"미친 놈들 아니야, 이거?!"
* * *
30분 전.
상륙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기사는 기병들을 추스려 북쪽으로 후퇴했고, 우리는 핏빛 강을 떠내려 오는 인간들을 막대기로 건져다가 발가벗겼다.
"속옷만 남기고 모조리 챙겨."
짱돌에 맞아 움푹 패인 가죽도 손상된 부분을 잘라내면 쓸모가 있을 터. 죽은 인간들은 미관상 보기 상당히 꺼려졌으나, 어차피 구울들은 인간들이 어떻게 포장되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강가로 떠내려 온 시신들의 수습은 끝났다. 대부분 물에 젖은 검과 방패가 대부분이었고, 옷은 전부 낡아서 강가에서 불태워버렸다.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오크들이 도시에 불지를 줄 알겠지?"
"그럼 어떻게 되나요? 적들의 마음이 급해질까요?"
"글쎄. 일단 병력부터 수습하겠지."
상대를 병신으로 알고 무작정 달려들었으니 병신같이 당하는 거다. 물론 고작 오크 100마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토벌군은 자신들이 공성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해야 했다.
이제 어디로 올 것인가. 나는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고, 마침 포털이 반짝이며 원군이 도착했다.
쿵, 쿠웅.
한 마리의 가고일이 날개를 펼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나 그레모리나 둘 다 소환이 가능했던 마물로, 서브던전에서 얻은 하급 마석으로 되는대로 가고일을 소환해서 포털로 이곳까지 보내도록 했다.
Lv.1.
등급은 전부 ★이나 ★★으로 개판이었다. 일반병을 상대로도 힘겹게 이기거나 개발릴게 분명했지만, 가고일은 우리의 전투원이 아니었다.
"엇차!"
나는 멀뚱멀뚱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가고일의 핵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마석이 박살난 가고일은 전신의 색이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고, 곧 큰 덩어리의 돌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후우."
나는 제일 큰 돌덩어리를 들어 다른 돌덩어리를 깨부쉈다. 조각난 덩어리들은 작은 돌멩이가 되었고, 양말이나 천조각에 넣기 딱 좋은 크기가 되었다. 나는 가고일의 잔해에서 적당한 돌멩이를 집어 허리끈에 묶어둔 양말에 집어넣었다.
"이거 꼭 룩이 콘도.... 크흠."
전투를 위해 도구를 들고다닐 뿐이다. 그리고 내가 돌멩이를 채운 순간, 망루의 오크들이 깃발을 흔들며 적의 위치를 급히 알렸다.
"흐흐, 본대랑 합류하셨구만."
상륙작전이 물건너갔으니 보병들과 합류하는 선택이라. 그럼 당연히 정문을 깨부술 생각일 터. 나는 망루에 있던 부하들까지 모두 정문으로 이동시켰다. 관청을 지키는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하면, 사실상 이제부터는 전면전이었다.
"군단장님! 적들이 정문앞에 집결했습니다!"
"그래,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콧수염 기사가 빽빽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나는 미리 쌓아둔 가고일의 돌무덤에서 적당한 돌덩이를 집어들었다. 제법 묵직한 것이 30kg은 훌쩍 넘을 듯 했다.
"후우, 후우."
부하들이 타원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나는 망루 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오크의 신호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륜이 망루에서 적의 위치를 두 눈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각도는 69도, 파워는 풀파워.
"돌탱 간드아아아!"
나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 돌덩이를 두손으로 들고 앞으로 내달렸다. 세번의 도움닫기 이후에, 하늘을 향해 발사.
"뒈져라, 콧수염!!"
나는 돌덩이를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동시에 적의 공병들이 정문을 충차로 두드렸다.
우지끈!
문짝이 거의 반쯤 열렸다 싶을 정도로 쉽게 열렸다. 하지만 대장을, 그것도 기사를 잃는다면 적은 오합지졸에 불과할 터.
"맞았냐?!"
"피했어요! 땅 굴러서!"
"젠장!"
나는 바로 몸을 돌려 다른 돌덩이를 집어들었다. 더럽게 무거웠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어디!!"
"왼쪽으로 3걸음이요!!"
나는 륜이 말하는 대로 발사각을 조정했다. 아까보다는 더 가벼우니, 각도는 그대로 한 채 힘을 살짝 뺐다.
"더블 파이어!!"
가고일의 하반신이 빙그르르 돌며 하늘을 날았다. 밖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죽었냐?!"
"옆에있던 병사들이 깔렸어요! 본인은 또 피했고!"
"바퀴벌레같은 놈이!"
생각은 짧아서 병력들을 꼴아박는 놈이 피하는 건 또 더럽게 잘 피한다. 나는 화딱지가 났지만, 애초에 이런 조잡한 투석으로 적 대장을 저격하는 건 사싱상 요행이었다. 그나마 륜이 위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맨땅에 꽂았을 정도.
"군단장님, 저희는-"
"니들은 힘 없어서 안 돼! 으어어!"
나는 돌무덤에서 또다른 가고일 조각을 집어들었다. 가고일의 목없는 토르소는 딱 잡기 적당한 무게와 형태였고, 나는 정문의 정면에 섰다. 이번에는 조준 사격이 필요없었다.
셋, 둘, 하나-
공병들이 합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나 또한 그 리듬에 맞춰 뒤로 물러섰다.
우지끈!!
성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돌덩이를 머리 뒤로 넘겼다.
"라스 베가스에 온 걸 환영한다, 이 작은 인간들아!!"
나는 성문을 향해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내 투석에 맞추어 다른 오크들도 빙빙 돌리던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우아아악!!"
방패를 세우며 달려오는 병사들이 내가 던진 돌덩이를 미쳐 파악하지 못했다. 우지끈 소리와 함게 돌덩이가 병사들을 방패 째로 깔아뭉겠고, 나는 다시 돌무덤에서 돌덩이를 집어들었다.
"적의 무릎을 맞춰! 방패로 막지 못하게! 아무렇게나 던지지 마!"
"형제들이여, 발가락을 노려라! 새끼발가락을 돌멩이로 으깨버려!"
"얼굴, 얼굴을 빻아버리라고!!"
오크들은 분대장들의 호령에 따라 적 병사들의 노출된 부위를 노렸다. 나는 밀집된 적들을 향해 돌덩이를 날렸다. 투석기가 없으면 내가 투석기가 되면 될 일. 제법 많은 수의 적을 돌덩이로 죽였다 싶은 순간, 적 병사들이 좌우로 흩어졌다.
"온다!!"
구구구.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성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폭은 아주 좁지만, 족히 말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오기 딱 좋은 위치였다.
"우오오오오!!"
보병들이 정문을 뚫고,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말발굽으로 우리를 깔아뭉겔 것처럼 달려왔다. 그 선두에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콧수염 기사가 있었다. 원래 말이 내 투석에 깔려 죽어서 그런지, 다른 말을 빼앗아 타고 온 듯 했다.
"내 크리스티나의 원수!! 죽어라, 이 괴물놈!"
콧수염 기사는 긴창을 정면으로 세우며 나를 노렸다. 그 뒤로 수많은 기병들이 뒤를 따랐따. 하지만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에일라!!"
내 신호와 함께, 에일라가 바닥에 검을 꽂았다. 그와 동시에, 기병들이 달려오려는 바닥이 훅 꺼졌다.
끄와아아앙!
흙길의 아래, 땅에 구멍을 파놓은 슬라임 드래곤들이 입을 쩍 벌리며 울부짖었다. 반달 모양으로 땅이 훅 꺼졌고, 뒤따르던 기병들이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땅 아래로 고꾸라졌다.
"우오오오!"
콧수염 기사는 기합과 함께 멋진 승마술을 보였다. 고삐를 움켜쥐고 다리로 말을 재촉해, 구멍에 빠지기 전에 높이 뛰어오르게 하며 창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 창끝에는 당연히 내가 있었다.
"죽어라---!!"
콧수염 기사는 벌게진 얼굴로 내게 작살처럼 창을 찔렀다. 창날이 내 심장을 찔러오기 전, 내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창날에 비친 내 얼굴의 문신은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짱돌 좀 던지니까 핫바지로 보이냐?"
접근전이라면 환영이다. 나는 허리춤에서 내가 그를 위해 준비해둔 무기-빵을 집어들었다.
"어!!"
나는 벽돌처럼 딱딱한 빵을 들고, 전력으로 장창을 후려쳤다. 창날과 창대가 딱딱한 빵껍질의 표면과 부딪혔고, 콧수염 기사는 창대를 놓쳤다. 나는 창날이 박힌 빵을 회수해 어깨 뒤로 넘겼다.
"이게 안면빵이다!!"
나는 높이 뛰어올라, 콧수염 기사의 인중에 벽돌처럼 딱딱한 빵을 처박았다.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이가 부러졌다. 콧수염에는 피가 튀었고, 기사는 눈을 까뒤집은 채 말에서 떨어졌다.
철푸덕.
기사는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피묻은 빵을 기사의 얼굴 위에 던졌다.
퍼--억.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랬지만, 저 빵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딱딱했으니 문제없다. 나는 허리띠의 끈을 풀어 투석구를 모두 땅에 떨어뜨렸다.
"전군----!"
철컥.
나는 등뒤에 메어둔 한손도끼 두 자루를 각각 양손에 쥐었다. 원래라면 철퇴를 사용했겠지만, 나는 던전을 탈출하던 순간부터 쌍도끼를 쓰는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복창해라!"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벅찬 숨을 골라쉬며 인간들을 향해 소리질렀다.
"엔 타로 트라-----알!!"
"랏....엔타로 트랄!!"
이 새끼들.
라스 삼창 하는 줄 알았구나.
"내가 맨날 라스만 하는 줄 아냐!!"
나는 구덩이에 빠진 기병들을 향해 점프해 쌍도끼를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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