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524일차 -------------------------
날이 밝았다.
남작은 50명의 기병과 1000명의 보병으로 구성된 병력을 편성하였고, 기사 라마티오에게 지휘봉을 이양했다.
고작 오크 100명에게 도시가 점령당한 것도 굴욕이지만, 남작령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사들을 대부분 동원한 것도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던전의 존재가 확정된 이상, 그들은 자비야바를 탈환하는 군대인 동시에 던전까지 토벌하는 토벌대가 되어야 했다. 기동성은 의미가 없었고, 병력 대부분이 철제 한손검과 나무 방패를 든 보병이었다.
워낙 후방이라 영지전을 상정한 무기들이 많았지, 던전에서 나오는 마물들을 상대하기에 좋은 무기는 없었다. 남작에게서 지휘봉을 받은 기사 라마티오는 빠르게 병력을 이끌고 자비야바로 향했다.
"부관. 자네는 오크를 상대해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경."
"어지간하면 없는게 당연하지. 오크들이 주류를 이루는 마물도 아니니. 그런데 하나하나는 강해. 보통 중무장한 오크 하나에 병사 셋은 붙여야 상대가 가능하지. 부관, 살아온 경비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오크들의 무장 상태는?"
"눈을 두기 힘들 정도로 민망하게, 고간만 가리는 야만스러운 복장이라고 했습니다."
난민 중에는 살아 도망친 경비병들도 있었고, 그들은 곧장 적의 병력 구성을 제보했다. 오크의 양과 질을 판단하건데, 그들은 선봉대이자 버림패가 분명했다.
"장비도 열악한 존재들이야. 머리도 나쁘지. 그리고 우리 병사들의 수는 무려 천에 이른다네. 부관, 이것이 질 싸움인가?"
"아닙니다…."
부관은 뒷말을 흘렸다. 자신감에 넘치는 건 좋지만, 병력들 대부분이 훈련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농사를 짓다가 갓 동원된, 훈련조차 안 된 이들.
"걱정 마시게. 우리의 수는 압도적이야. 뭘 그리 걱정하는 겐가. 어서 가세."
기사 라마티오는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진군 속도를 더욱 빠르게 올렸다. 분명 병력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부관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오크는 아닌 것 같은데.'
오크들은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추방했다고 했다. 그럼 당연히 뭔가 노림수가 있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종기사인 부관은 따로 무언가 제 의견을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간절한 마음이 여신이 들어주신 걸까. 그들은 너무나도 무사히 자비야바에 도착했다.
"씨발."
기사 라마티오는 자비야바의 상태를 보자마자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냥 야만 오크라더니?"
오크들은 현재, 망루에 올라 토벌대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심지어 장비들은 토벌대와 거의 비슷한 장비를 입은 채.
"저것들 마왕군 맞아?!"
오크들은 인간들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갖춘 채 토벌대를 맞이했다.
***
"흐흐흐, 제대로 당황했군."
직접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망루의 오크들이 보내는 간단한 수신호를 통해, 나는 적 병력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적 기병 50. 병력은...대략 천? 정예병 같지는 않아."
"생각보다 상당히 많네."
기껏해야 오백 정도 끌고 올 줄 알았더니, 예상보다 더 많은 양의 병사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저 병력들이 추후에 적이 될 존재라면 지금 당장 싸워도 하등 문제 없다.
"잘 봐라."
나는 바닥에 넓게 펼쳐놓은 돗자리에 나뭇가지와 조약돌을 이용해 전장의 지도를 그렸다. 부하들은 대충이나마 우리 라스 베가스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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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적의 위치(★)는 우리의 북쪽이었다. 우리(☆)는 어느 쪽이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시 한 가운데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서쪽으로는 강(∬)이, 남쪽으로는 정문(△)이 있는 구조였다.
"아더, 적이 공성을 할 수있는 방법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 보아라."
"......간단하게는 남쪽의 정문을 공격, 장비가 있다면 사다리를 세워 북쪽의 목책을 넘어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강물을 거슬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 어느쪽이든 쉽지 않은 선택이지. 우리가 저들을 막을 수 있는 병력은 한정되어있고."
적에 대한 견제를 위해 망루에 30, 정문에 40, 강가에 20.
그리하여 공원에는 고작 10명도 채 남지 않았다. 적의 우두머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병력 배치도 실시간으로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아더야, 적이 고작 이런 수 미터 짜리 목책을 넘으려고 사다리를 가져왔겠느냐?"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도시를 되찾기 위해 경장으로 왔을 겁니다."
"그렇다. 그러면 아더야, 굳이 저 깊은 강을 헤엄쳐서 넘어오겠느냐?"
"...가능성은 있지 않겠습니까? 판자를 띄워 상륙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물살입니다. 화살받이를 앞에 내세우며 전진하면 넘어오지 못할 것도 없겠죠."
아더의 말대로 강물은 잔잔했다. 내가 만약 공성을 하는 입장이었다면, 야밤의 강물에 몸을 실어 물레방아가 있는 곳으로 상륙하기에 딱 좋은 물살이었다.
"그래. 하지만 그건 공성이 난해할 때의 이야기지. 하지만 지금처럼 병력 차이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면?"
"...정면입니까?"
"보통은 그렇지."
목책 너머에서 기병들이 정찰을 나서는 소리가 훤히 들렸다. 오크들에게는 애써 굳이 활을 낭비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덕분에 적들은 아주 손쉽게 망루의 오크들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륜, 적 병력이 지금 어느 쪽에 있지?"
"정문 반대편 목책 너머요."
"지휘관이 침착한 자라면 정문을 공성할테고, 성미가 급한 자라면 강물에 몸을 싣겠지. 흐흐, 어느쪽이든 괜찮다. 양에서 밀리는 건 질과 전술로 커버하면 돼."
그걸 위해 일부러 나의 던전 바로 앞, 라스촌으로 이어지는 포털까지 열었다. 주민들은 현재 관청에 모여있었고, 나는 수성전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나는 끝에 끈으로 둘둘 말린 북채를 들었다.
쿵쿵 쿵쿵 쿵쿵쿵!
북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행여나 병력들의 위치를 들킬까봐 문신을 키고 두드리지는 않았다. 그저 전투의 고양감을 끌어올리는 사기 진작용 고무였다.
쿵쿵 쿵쿵쿵!
우와아아!!
내 북소리에 화답하듯, 인간 무리들이 목책을 향해 함성을 발사했다. 소리를 내지르느라 상당히 목이 아파왔을 것이고, 나는 북을 더욱 강하게 두드렸다.
쿵쿵쿵쿵 쿵쿵쿵!
우와아아아아아!!!
나의 북소리와 인간들의 함성 소리는 어느새 기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비트를 넣었다.
"기다리신다!"
쿵쿵쿵쿵쿵!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끝!"
나는 그 이후로 북을 더이상 치지 않았다. 악에 받친 고함이 라스 베가스 전체를 울렸고, 나는 그들의 함성이 놀라워 박수를 쳤다.
"대단한 걸."
"주인님, 저희 사기 싸움에서 진 거 아닐까요?"
"하지만 나는 적의 목에 부상을 입혔지. 흐흐."
덤으로 분노, 고양 상태로 만들었다. 북소리가 끝나자마자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들은 오크들과의 사전 전투에서 소리 지르는 걸로 승리하여 상당히 들떠있는 듯 했다.
"자, 먼저 움직이게 만들기는 했는데 어떻게 움직이려나...?"
펄럭!!
강가쪽에서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천이 없어서 아무 이불이나 창대에 걸어 휘두르는 깃발은 적의 움직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강으로 온다고? 흐흐, 잘 됐군."
상당히 성질이 급한 놈들임이 틀림없다. 나는 허리춤에 잔뜩 매달아 놓은 양말을 하나 집어들었다. 빈집에서 털어온 양말은 신기에는 낡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쓰고 버리기'에는 최고의 물건이었다.
"강이 핏빛으로 물들겠구만."
시체가 둥둥 떠다니게 될 것이다. 나는 부하들을 이끌고 강가로 향했다.
구구구구!!
땅이 울리며 인간들이 진격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목책은 단순히 강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에서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기에, 마냥 들어올 수는 없었다. 고로, 오히려 강으로 오는 것이라면 대처하기가 쉬웠다.
"상륙하기 전에만 조져놓으면 된다 이말이야!"
나는 강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적의 선두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이 걸어다니기에는 목까지 잠길 정도로 깊었지만, 확실히 말을 타고 온다면 얘기는 달랐다.
"미친 놈들이 말을 타고 강을 거슬러와?!"
히히히힝---!!
물을 타고 내려오는 기병들의 속도는 거의 육지에서 달리는 속도를 방불케했다. 물살이 밀어주는 힘을 이용해 몸에 가속도를 붙이는 듯 했고, 벌써 우리가 서있는 강가에서 그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것들이 사람을 병신으로 보고!!"
그 수는 50. 모든 기병들을 전부 끌고 온 듯 했고, 선두에는 콧수염을 흩날리는 중년의 기사가 창을 들고 서있었다. 그가 이끄는 기병은 땅을 박차고 달려 비스듬히 강가로 상륙할 기세였다.
"으하하하! 내가 이 땅에서만 살아온게 수십년이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늙은 기사가 호기롭게 외쳤다. 나는 허리띠에 묶어둔 양말의 발목에 묶은 가죽끈을 빙빙 휘둘렀다. 기사는 내 행동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저, 정지!!"
"늦었어, 이 새끼들아!! 전부 투석 준비!!"
양말에는 사람의 주먹 두 개 만큼 묵직한 돌덩어리들이 들어있었다. 어떤 것은 돌덩어리가 통째로, 그리고 어떤 것은 파편이 된 돌조각들로. 양말뿐만 아니라 낡은 헝겁이나 천쪼가리에 안드라스의 깃털을 실처럼 묶은 투석구들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오크들의 허리띠에 묶여있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도 이걸로 선빵쳤다 이거야!"
붕붕붕붕---
오크들이 동시에 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위협적인 소리가 울리며 돌덩이에는 가속도가 붙었고, 오크들은 내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저, 전지---인!! 전속력으로 달려---!!"
기사는 생각보다 판단이 빨랐다. 물살을 거스르거나 정면으로 돌격할 수 없으니, 오히려 아래로 떠내려간다는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피해는 입을 수 밖에. 나는 다리를 앞으로 내딛으며 손을 뒤로 넘겼다.
"투석-----!!"
나는 전방을 향해 끈을 놓았다. 라스 베가스 주민들을 시켜 만든 매듭 덕분에 끈이 중간에 떨어지지는 않았고, 돌이 든 양말은 정확히 기사의 투구를 향해 날아갔다.
"윽!!"
기사는 황급히 머리를 숙이며 돌팔매질을 피했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던 경장의 기병 하나가 가죽 흉갑에 돌덩이를 얻어맞았다.
"커흑!"
기병은 가슴을 잡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 투석을 맞았음에도 고삐를 놓치 않은 건 칭찬할만한 일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날아가는 짱돌은 하나가 아니다.
파바바박!
족히 스물이 넘는 오크가 마구잡이로 돌팔매를 던졌다. 하나를 던지고 나면 바로 허리에 묶어둔 끈을 풀어 두 번째 투석을 시도했다. 어줍잖게 활을 쓰느니, 차라리 이런 식으로 던지는 편이 훨씬 적중률이 높았다.
첨벙, 첨벙! 퍼억! 히히힝!!
물에 떨어지는 소리, 사람에게 맞는 소리, 말이 맞는 소리까지 정말 다양하게 울렸다. 가죽갑옷 덕분에 타격은 완화되겠지만, 작정하고 죽이려고 던지는 투석구를 완전히 피하기는 무리였다.
쏴아아아--
하지만 말들 또한 생존 본능에 따라 빠르게 물살을 따라 우리가 지키고 선 방어선을 가로질러갔다. 망루에 서있던 오크들이 강가를 따라 돌을 던졌지만 기사는 기병들과 함께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후미에 뒤쳐져있던 기병들 고작 열 명 정도만이 머리나 가슴에 돌멩이를 얻어맞고 강물에 두둥실 떠내려갔다.
"아오, 씁."
그걸 피할 줄이야. 끈이 끊어질까봐 일부러 힘을 빼고 적당히 던졌더니 너무 피하기가 쉬웠나보다. 나는 스스로에게 반성하며, 강가로 흘러들어오는 기병들의 시체를 회수했다.
"씁. 륜아, 혹시 떠내려가던 놈들 몇이나 있더냐?"
"일곱 명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쳇. 그럼 일단 살았다 치고, 진짜 열 명밖에 안 되네."
기습 치고는 너무 적게 죽였다. 못해도 절반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절반이 내가 돌팔매질로 급소를 맞춘 놈들이었다.
푸욱!
나는 약탈한 단검을 들어 기병들의 심장에 꽂았다. 기병들은 강물과 함께 피를 왈칵 토했고, 다른 오크들도 나를 따라 기병들을 확인사살했다.
"쳇, 진짜 아쉽...응?"
으아아아악!!
멀리서 인간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강가 너머를 확인해보니, 기병들의 퇴각을 보고 황급히 강 너머로 도망치려는 인간들의 비명이었다.
"뭐야, 뒤에도 더 있었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돌팔매가 충분히 남아있었다. 나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돌을 던져---!!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강을 향해 수 십개의 돌팔매가 호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초전, 토벌군의 강가 상륙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라스군의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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