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133화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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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10분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다. 오크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마법사를 마구 쑤실 뿐이었지만, 피지컬과 수로 마법사를 쾌락에 절여버렸다.

"주인님. 어쩌죠?"

"륜, 너는 어떠냐? 저게 너를 노렸는데."

"음…. 괘씸하기는 하지만 맞기 직전에 피했을 것 같기도 하고, 뭣보다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으니까 괜찮아요. 히히."

나는 기특한 마음에 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음같아서는 귀를 만지작거리고 싶었지만, 발정난 륜의 모습은 남들 앞에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네 분대는 계속 저거에다가 라스하는 거다. 라스 특화 부대."

자비야바에서 노획할 물건들 중 적당한 활이 있으면 전부 궁수들로 무장시킬 계획이지만, 당장은 인간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는게 중요했다.

퍽퍽퍽퍽.

오크들은 기절한 마법사를 상대로 무자비하게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나는 오크들의 박음질 소리를 그대로 둔 채 인간들에게 소리쳤다.

"저항하는 자는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내 으름장에 몇몇 남정네들이 기가 푹 죽었다. 소름끼치는 얼굴로 손을 등뒤로 옮기는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도 뻔했다.

"30분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정문을 열어주겠다. 떠나고 싶으면 이 도시에서 꺼져라! 우리가 너희를 추방한 이후에도 도시에서 나가지 않으면, 너희들의 운명은 단 하나 뿐이다."

퍽퍽퍽퍽.

"말 안해도 무슨 말인지 알겠지? 흐흐흐."

잠시 뒤.

671명 중 태반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크들의 감시를 받으며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떠나지 않은 30명 가량의 인간들을 훑었다. 대부분이 성인이기는 했지만 나이대는 정말로 다양했다.

"니들은 왜 안 떠나냐?"

"도시의 주민으로 남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소. ...우리는 더이상 다른 곳으로 떠날 힘이 없소."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씁쓸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죽일 거면 죽이시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지. 진짜로 떠나지 않을 생각이냐?"

"그렇소. 죽더라도 내 집에서 죽겠소이다."

남자의 말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도 대부분 같은 눈치였다. 이상하게 릴리와 동년배로 추정되는 여인들도 몇몇 있었다. 저들은 퍽퍽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나는 한 명을 잡아다가 물었고,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를 떠나도 어차피 홀몸으로 터 잡으려면 똑같은 걸요."

"아하. 그렇구만. 그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 라스 베가스의 새로운 주민들아."

내 명령에 30명의 인간이 우물쭈물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들에게 집들을 가리키며 공언했다.

"니들은 지금부터 자기 집 앞에 서있어라. 그 집은 건드리지 않을테니."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지."

나는 두 팔을 벌리며 마을 전체를 가리켰다.

"빈집은 우리 애들이 하나씩 자리잡을 거거든."

1가정 1주택.

나와 륜, 에일라가 가장 큰 저택을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라스군은 출생순서대로 각자 빈 집을 한 채씩 점령했다.

"지, 진짜로 저희들 집은 빼앗지 않으십니까?"

"자꾸 두 번 말하게 하네. 야, 지금 빈집이 차고 넘치거든?"

나는 우선 부하들에게 집부터 나누어줬다. 대부분의 집이 방 한 두칸 짜리였고, 오크들은 금방 인간들의 생활환경에 적응했다. 다들 어색하지만 훨씬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무렴 그레모리 던전 보다는 낫지.'

허름한 땅이나 똥통보다는 인간들이 살던 곳이 훨씬 나았다. 비록 30명 정도의 인간들이 마을을 떠나기를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죽이기에는 아쉬웠다.

그래서 30명의 인간들을 데리고 다니며 자비야바의 구조를 파악했다.

"식량 창고는 어디냐?"

"이쪽입니다…."

관청에서 조금 떨어진 강물 근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풍차 아래에 추수한 밀과 곡식들이 쌓여있었다. 그 외에도 도축장 근처에  육류저장고도 있었다. 안에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평소에 뭘 먹고 살길래 먹을게 밀밖에 없어?"

"가끔 빵을 구워먹는다거나…. 감자를 캐서 먹는다거나…."

"알았다. 더 말하지 마라."

중세 농노 수준의 식문화라니. 슬라임 점액으로 파티를 하는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즐거운 라스를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 요소였다.

"너희들 하피 알 구워먹어봤냐?"

"......예?"

"조만간 먹게 해주마. 기름 좀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빵 사이에 끼워먹으면 그만한 별미가 없어."

화전촌에서 약탈한 물자들로 온갖 실험을 해본 결과, 그게 제일 맛있었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먹어치워버렸지만.

식자재의 확보는 끝. 목책 밖의 밭에서 캐는 곡식과 채소가 주식이었고, 농사를 계속 짓지 않으면 자급자족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는 주민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나.

"무기고는?"

"경비대원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저희는 모릅니다."

"그래? 거 아쉽구만."

저항하던 경비들은 모조리 도륙하고 장비를 전부 벗긴 뒤 슬라임 드래곤의 먹이로 던졌다.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한 경비병은 장비만 반듯하게 반납하고 도시를 함께 빠져나갔다.

"에일라, 분대원들을 데리고 경비초소를 찾아라. 그리고 거기 있는 장비들로 분대장부터 시작해서, 아직 장비를 갖추지 못한 오크들에게 입혀라."

"예. 금방 해결하겠습니다."

에일라는 제법 경비대장다운 가죽갑옷을 입고 고개를 숙였다. 원래 경비대장은 내가 피떡으로 만들며 사람이 찌그러져버렸고, 대신 에일라는 다른 왜소한 체격의 병사에게서 갑옷을 빼앗아 입었다.

에일라 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 나처럼 덩치가 큰 오크들은 보호장구만 갖춘 상반신 누드차림이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훨씬 상태가 잘 갖춰지고 있었다.

에일라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할 시설을 물었다.

"그럼 혹시 포목점은 있냐? 방적이 도시 주요 특색산업이라며."

"...있기야 한데."

중년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내 몸을 재단했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바로 륜을 잡아당겼다.

"얘랑 아까 여기사 평소에 입을만한 옷."

"아. ...여인 분들의 옷이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

언제까지 슬라임들로 빨아서 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화에 따라 만들어지는 옷이 아무리 튼튼하다고는 해도, 일상 생활부터 전투-심지어 침대 위까지 같은 복장이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럼 너희들 중에 혹시 방직공이나 그쪽으로 일하던 사람 있냐? 하나 만들어야 할 게 있는데."

"...제가 조합장이었습니다만."

"...?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네. 그런데 왜 안 도망갔냐?"

"제 평생의 기술이 담긴 시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불태우면 저도 그 안에서 같이 타죽겠지만요."

장인 정신으로 남아있던건가 싶었다. 나는 잘됐다 싶은 마음에 품안에서 깃털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걸로 옷 좀 만들 수 있겠냐?"

"털실에다가 깃털을 엮는 식이라면야...... 제법 재질은 좋아보이긴 합니다만, 이정도 양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적어도 드레스 한 벌 짜내려면 이런 깃털 수 백 장은 더 필요할 겁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오늘부터 안드라스들 다 뒤졌다. 나는 노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는 오늘부터 우리 군단의 의류 제작에 공헌한다. 이 깃털을 이용해서 옷을 만드는 거다. 뒤에 있는 주민들도 마찬가지. 원래 생업이 뭐든 간에 너희들은 오늘부터 의류업에 종사한다. 반론은 받지 않아."

"...명령입니까?"

"물론. 마족 도시의 주민이 된 순간부터 이 정도는 감안했어야지. 흐흐. 별 거 아냐. 그래. 내가 지시하는 양까지 만들고, 그 이상으로 만들면…."

나는 깃털을 흔들며 노인의 앞에 흔들었다.

"우리 인간 부하들이 너를 대표로 데리고 가서 다른 도시에 팔 것이다."

"예?"

노인은 당황했다. 나는 노인의 품에 깃털을 끼웠다.

"그냥 만들고 입기만 하면 아깝잖느냐. 재료가 충분하고 많이 만들면 비싸게 팔 수 있을 터. 혹시 상품 가치가 없나?"

"아, 아닙니다! 고급 드레스를 만들어도 되고, 장식품으로 만들어도 잘 팔릴 겁니다. 깃털을 넣어 쿠션이나 이불로 만들어도 되고요. 그...하지만 오크 분들이 어찌 인간 연합에 물건 판매를…?"

"인간이고 마족이고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돈이 되고 우리 군단에 도움이 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는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라스다."

"예?"

"정정. 섹스다."

"...예?"

노인의 표정이 핼쓱해졌다. 그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경악이 내려앉았다.

"인간이든 오크든 엘프든, 설령 그 어떤 종족이라도 이 도시에서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도시가 될 거다. 뭐...물론 그건 도시 주민들 한정이고 적이나 포로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지."

나는 마을 광장을 가리켰다. 마침 분수대에 임시로 만들어진 탁자에는 마법사가 올려져 오크들에게 박히고 있었다.

퍽, 퍽퍽.

륜의 분대원 뿐만 아니라, 다른 분대의 오크들도 임무를 마치고 마법사를 한 번씩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옷과 무장은 원시부족 수준에서 크게 발전하여, 경비대의 복장과 무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엿한 병사가 된 오크는 광장 한 가운데에 놓인 포로 마법사만 철저히 건드릴 뿐, 주민이 되기를 선택한 인간들에 대해서는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내가 주민들을 데리고 자비야바를 시찰하며 순찰 중이던 오크들과 마주칠 때도, 오크들은 빈 집에서 물자를 챙겨 창고에 저장하는 임무에 충실히 임할 뿐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부인 여인들이 퍼시발과 가레스에게 눈길을 주더라. 누구 자식인지는 몰라도 잘생긴 외모로 과부들의 마음을 훔치는 건 도사였다.

"크흠흠. 아무튼 나는 나의 아군에 대해서는 너그러워도, 나를 죽이거나 나의 것을 빼앗으려는 적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는 자다. 마왕군이나 인류 연합간의 싸움은 상관없다. 내가 관심있는 건…."

나는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로 밀어넣고, 륜을 끌어안으며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예쁜 여자와 함께 먹고 자는 것 뿐이다."

"...정말 오크같지 않으신 분입니다."

"보면 알잖냐."

나는 아랫배를 두드렸다.

"아 참. 혹시 남는 옷 중에 내가 입을 만한 옷 없냐? 보통 살이 뒤룩뒤룩 찐 귀족들 사이즈면 나도 허름하게 입을 수 있을텐데."

"...그런 건 없습니다."

"쳇."

진심으로 아쉬웠다. 나는 주민들을 이끌고 돌아다니며 마을 시설을 다시금 확인했다. 단칸으로 된 통나무집만 거의 300채에 이르렀고, 2층 집이나 벽돌 집은 관청을 중심으로 50여채 정도가 있었다.

"그럼 오늘은 쉬어라. 뭐...밤사이에 도망가도 상관은 없는데, 어디 불지르려고 한다거나 우리 군단에 피해를 끼치면 바로 죽일 거다. 튈 거면 '저 마을을 떠나겠습니다!'하고 신고하고 가. 괜히 짜증나게 하지말고."

내 말이 끝나자 노인은 진심으로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정말로 이게 끝입니까? 뭐 인간들의 시체를 불태워 구워먹는다거나, 아니면 집단으로 능욕한 뒤 간살한다거나, 노예로 부리며 죽을 때까지 일하게 한다거나. 사실은 흑마법사를 불러서 저희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서 고위 마족을 부르는 의식을 한다거나 하시진 않으십니까?"

"민간인들 대상으로는 안 하지. 물론 반역을 저지르면 그에 준하는 짓은 하게 되겠지만. 왜? 하고 싶어? 마침 흑마법사도 부를 예정인데 그렇게 해줄까?"

"아, 아닙니다. ...그, 내일부터 해야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노인의 뒤를 졸졸졸 따라오는 주민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들은 모두 나와 노인을 따라다니며 내 말의 진의를 살피고 있었다.

"오늘 밤이면 물자가 도착할 거다. 그걸로 일하면 돼. 아참. 노파심에 말하는데…."

나는 먼저 으름장을 놓았다.

"오크들이랑 하고 싶은 놈들은 따로 집에 초대해서 해도 된다? 크흐흐."

"......."

여인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대부분 마물과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가득해보였다. 하지만.

"......."

몇몇 나이 좀 들어보이는 여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지나가는 오크들을 눈으로 흘겼다. 녹색 피부라는 걸 제외하면, 그들은 전부 근육질의 전사들이었다.

"니들이 아직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를 그냥 마족으로 생각하지마라. 내 군단은 말이다."

나는 주민들을 향해 사납게 웃었다.

"그냥 너희들 도시 털러온 야만족 같은 거야."

도시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면 점령군이 될 것이며, 도시를 지킬 수 없다면....

'사람들까지 싹다 털고 가는 거지.'

꼭 라스 베가스가 이곳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옷을 만드는 이들은 꼭 있어야 했다. 나는 여분의 안드라스의 깃털을 들어 하늘에 비췄다. 햇빛에 비친 안드라스의 깃털은 반투명하게 물들었다.

"우리 군단 컬러는 오늘부터 검정이다."

속살이 비치는, 검정.

"주인님, 그걸로 뭘 만드시려는 거예요?"

"네 팬티."

"......."

검정 시스루 팬티는 중대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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