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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27화 (12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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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딸이 태어났다. 딸이 태어난 것도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오크인 딸이 태어난 게 제일 당황스러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 오크는 없었으니까.

아니, 있기는 했다. 아주 극악의 확률로 태어나는 여자 오크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얼굴이나 몸매는 속된말로 빻은 오크였다.

그런데 랜슬롯은 다르다. 솔직히 피부만 녹색이지 그린 엘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다. 나는 그레모리에게 랜슬롯의 소개를 맡긴 뒤, 부하들과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예쁘냐?"

"...조금 질투날 정도로요."

"몸은 확실히 다부졌습니다. ...저보다 더."

탄탄한 복근이며 전신에 자잘한 근육까지 어디 PT와 요가를 병행하는 트레이너 선생님을 방불케했다. 저런 강사가 있다면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PT를 받으러 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

딸이지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메어리나 하르퓨이어에게도 그렇지만 욕정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모나 몸매는 정말 남들 주기 아깝다 싶을 정도로 빼어났다. 그런데 이번 랜슬롯은 조금 심했다.

"이러다가 랜슬롯 두고 문제 생기는 거 아닐까? 일단 부족 혈족상 막내이모나 다름없는 존재인데."

"주인님께서 오크신데 제일 잘 아시잖아요."

"나는 오크 중에서도 별종이라서 아는게 없어."

근 1년 가량은 부족 중에서도 배부른 놈이라고 곧 죽을 놈이라고 왕따를 당했고, 트랄과 함께 강해지기 전까지는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우리 부족은 조금 특이하기도 했고.

"괜찮겠지? 설마 이모를 건드리는 미친 놈들은 없겠지?"

"딸에 대한 걱정이 정말 장난아니시네요."

"너희들은 내가 옆에 항상 두고있지만 랜슬롯은 애들이랑 함께 다녀야하지 않냐."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뭐라 할 말은 없고."

랜슬롯을 과연 오크 무리와 함께 두는 건 올바른 선택일까. 하지만 나의 원대한 계획에 따르면 랜슬롯도 결국 한 명의 십인대장 역할을 해야했다. 더욱이 그 등급도 ★★★까지 올라가지 않는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남자들 틈에서 같이 지내는게 어떤지? 에일라야, 너는 기사로서 자랄 때 어떻게 자랐냐?"

"...저는 가문의 기사단장에게 따로 1:1로 교육을 받았습니다만."

"아. 그래, 너는 그랬지. 미안하다."

에일라의 기사 작위나 직업 타이틀은 으레 말하는 높으신 분들의 고액과외의 온상이나 다름없었다. 새벽마다 내 위에 올라타며 정을 탐해 환생각을 노리는 에일라의 모습을 볼 때마다 까먹지만, 에일라는 한 백작가의 장녀이자 한 때는 왕자의 약혼녀기도 했던 존재였다.

이제는 내 것이지만.

"그럼 일단 직접 물어봐야겠네. 부족 놈들 볼 겸 잠깐 그레모리 던전 다녀오자."

나는 부하들을 이끌고 포털을 통해 직접 그레모리 던전으로 넘어갔다. 아더를 위시한 형제들은 막내 여동생인 랜슬롯을 인도하며 사냥꾼들과 모험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전부 랜슬롯을 보며 감탄사를 흘릴 정도로 랜슬롯은 천외천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녹색 피부의 오크가 아니라 하얀 피부였다면 분명 많은 남자들을 홀렸을 법한 외모였다. 나는 랜슬롯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너 이제부터 오크들이랑 함께 지내야 하는데 괜찮겠냐?"

"무슨 문제 있겠어요?"

랜슬롯은 주먹을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혹시 누가 건드리면 아주 본때를 보여줄게요!"

"그래, 그 의지다. 혹시 나쁜 손 대는 놈들이 있으면 바로 막대기를 분질러버리렴. 메어리, 네가 랜슬롯을 잘 도와주려무나."

"네! 흐흐흥."

메어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랜슬롯에게 다가갔다. 배는 다르지만 어차피 다 똑같은 형제자매들이었다.

"랜슬롯? 되게 남자 이름 같네. 아빠, 앞으로도 계속 랜슬롯이라고 불러요?"

"그럼 이름 말고 뭐라고 불러?"

"사랑을 담아서 샬롯 어때요?"

"싫습니다, 메어리."

랜슬롯이 딱 잘라 거절했다. 랜슬롯은 웃으면서 타박을 놓았다.

"제 이름은 던전의 주인이신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이름입니다. 이름을 멋대로 바꾸는 건 상당한 실례입니다만."

"......동생이 상당히 까칠한데요?"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쓰는 분들은 좋아하지 않아서."

랜슬롯은 팔을 들어올렸다. 팔 전체에 힘줄이 돋아나고 알통이 단단하게 솟아올랐고, 랜슬롯은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자고로 오크라면 힘 아니겠습니까?"

"난 인간인데."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면 전부 다 오크죠. 저희는 오크 부족의 존재가 아닙니까?"

"그건 아닌데."

나는 랜슬롯의 전형적인 오크적 호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분명히 말했다.

"우리 부족은 구성원 간의 사랑이 넘치는 라스 부족이야."

"......그게 뭡니까? 녹색 늑대? 아니면 하얀 깃털? 라스는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제 지식에는 없습니다만."

"검은 까마귀 부족이라는 거지."

안드라스의 라스니까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랜슬롯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근육을 더욱 과시했다.

"아버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제가 한 번 여러 기구들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이럴 때도 저희의 근육은 손실되고 있습니다."

"나 운동 안한지 지금 꽤 됐는데. 아무래도 운동 귀신이 너한테 붙은 모양이구나."

아무래도 3년동안 대머리 훈련법을 안했더니 그 부작용이 정자로 튀어나간 모양이다. 랜슬롯이 체력 단련에 신경을 쓰는 건 여러모로 기쁘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체력 단련보다 실전이 더 중요했다.

"스쿼트 조질 시간 없다. 그럴 시간에 인간들 조지러 가야해."

"앗! 그렇군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인간들과의 전쟁도 큰 훈련이 되겠죠.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무래도 나와 릴리가 낳은 막내 오크의 호전성은 다른 형제들을 합한 것 보다 훨씬 높은 듯 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마법사를 무시하는 기질은 조금 고칠 필요가 있어보였다.

"랜슬롯, 네게 명령을 내리마."

"명령하시죠! 무엇입니까?!"

"너는 오늘부터 메어리의 곁을 따라다니며 돕도록 해라."

"......예?"

랜슬롯의 표정은 경악과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메어리는 잘 걸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랜슬롯과 팔짱을 꼈다. 탄탄한 이두박근이 메어리의 큰 가슴 사이로 깊게 파묻혔다.

"이 아빠도 주술사를 겸하고 있단다. 힘법이지. 마법사를 무시한 죄로 마법사의 옆에서 시중을 들어라. 분대장 역할은 겸하고."

"......힝."

"그건 륜 거야. 애교 부려도 소용없어."

"...그럼 전장에서 활약으로 제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잘못했으면 그 당사자에게 사과를 해야지 다른 걸로 죗값을 치르면 무슨 소용이 있냐? 메어리랑 그레모리에게 사과해라."

내 질책에 랜슬롯은 두 마법사 사제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마법사분들을 모욕하여 죄송했습니다."

"별 거 아냐. 그럴 수 있지."

메어리는 랜슬롯의 등을 토닥이며 일으켜세웠다. 그레모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오히려 나는 마법사 혐오가 오크들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걸. 오크들 마법 내성만 믿고 몸 험하게 굴리잖아? 근거리에서 서로 맞서 싸우는 걸 최고라고 생각하는 뇌근."

그레모리가 가진 인식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크들의 이미지였다. 전투의 명예를 숭상하는 이들. 그게 포르네우스 던전에 있었던 우리 부족의 이미지기도 했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원정은 꽤나 중요한 의미다."

과연 내 씨로부터 태어난 2세대, 3세대 오크들은 과연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전쟁광일 것인가, 아니면 라스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색정광일 것인가.

"아더. 10분을 주마. 전 오크들을 이끌고 각 분대별로 도열해라. 분대장은 앞으로, 나머지 분대원은 그 뒤에 2열로."

"...알겠습니다!"

아더는 형제들을 이끌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방금 합류한 랜슬롯도 급히 아더를 따라 분대원들을 인솔하러 떠났다. 나는 그레모리로부터 인원 구성을 파악했다.

"수는?"

"90."

"20명 정도가 남나? 상관없어. 그건 륜과 에일라의 별동대로 편성하면 되니."

1명당 10명. 마침 그 수도 딱 맞게 떨어졌다. 일반 오크병 90명, 아더와 형제들로 구성된 십인대장 7명, 엘프 1명, 공주 기사 1명, 그리고 대장인 비만 오크 1명.

정확히 100명이서 도시 하나를 정복하고 여차하면 남작령까지 정복할 계획이었다.

* * *

그 시각, 비르고 남작령.

"청사자 길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왜 아직까지도 길드원들이 돌아오지 않았냐고 따지고 있으며, 이것은 위험도를 잘못 측정한 사기 계약이 아니냐 하는...."

쨍그랑!

사기컵이 벽에 부딪혀 깨졌다. 컵을 집어던진 비르고 남작은 귓불까지 벌게져서 씩씩거렸다.

"지들이 약한 걸 가지고 왜 우리한테 난리야! 뭐? 사기 계약? 개소리하지 말라고 해!"

"남작님, 부디 체통을...."

"체통이 문제가 아니잖아! 한낱 용병 나부랭이들이 감히 왕국의 귀족을 깔봤어! 귀족 모독죄로 다스려도 시원찮을 판이라고!"

"......."

집사는 남작의 히스테리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이었다. 무려 40명이나 되는 길드원을 파견했음에도 감감무소식이 되어버린 청사자 길드는 본격적으로 비르고 남작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남작이 던전의 존재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남작은 사실 마왕군과 내통한 인류의 배반자다!

"으으, 고작 유언비어 때문에 내가 이 꼴이라니...."

비르고 남작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화전촌 하나가 불에 탄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자신이 마왕의 끄나풀이 아니냐는 내통설까지 나뒹굴었다.

"집사장, 지난 번에 강을 타고 흘러온 그 마물은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까?"

"예. 며칠을 굻었는데도 물만 마시며 버티고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가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냥 안 먹는 것 같았습니다."

"......기사 이상의 마물이 왜 하필 우리 영지에. 하아."

말과 비슷하게 생긴, 하지만 등에 이상한 혹이 네 개 나있는 마물을 생포한 남작령은 던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물은 영지의 최강이라고 할 기사보다 아주 약한 수준의 괴물이었다.

남작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지에 던전이 있다.

엘프의 숲 인근에 마물의 던전이 있다.

"......하지만 이건 기회가 될 수 있어."

인류 연합을 위해 공헌하는 귀족으로서 명예를 떨칠 수 있으리라. 남작은 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토벌대를 구성하겠습니다. 길드에 정식으로 공문을 접수해주세요. 남작령에서 던전 토벌을 위한 용사와 모험가들을 모집한다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 비르고 남작은 던전을 털어먹을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었다.

* * *

약 30분 뒤.

나는 임시 판자로 엮은 단상의 위에 올랐다. 오크 부대는 태어난 날짜는 하룻씩 차이가 나더라도 종족 특성 답게 전쟁 준비 하나만큼은 철저했다. 그들은 저마다 지급된 무기와 복장을 갖춘 상태로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했다.

"아아. 크흠. 쿱."

나는 목을 가다듬고 전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라--------------스!!!"

우렁찬 내 포효가 공동을 가득 메웠다. 오크들은 식겁을 하며 몸을 숙였고, 나는 다시 한 번 더 97명의 오크들에게 포효를 내질렀다.

"라-------스!!!"

이번에는 좀 더 작게. 여전히 부하 오크들은 내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박자와 리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쿵쿵짝. 쿵쿵짝.

발을 두 번 구르고 손뼉을 한 번. 어디서 여왕의 락스피릿이 들려오는 듯한 박자와 함께, 오크들 또한 서서히 내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하며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손뼉을 치는 타이밍에 맞춰 소리를 질렀다.

쿵 쿵 라스!

쿵 쿵 라스!

눈치빠른 아더가 내 선창에 후창했다. 그리고 모든 오크들 또한 라스를 외치며 더 크게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박자로 구르던 발짓도 서서히 하나로 맞아들어가기 시작하고, 어느덧 내 부하들은 하나의 박자로 라스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싶은 순간, 나는 동작을 멈췄다. 부하들은 자세를 멈추고 내 말을 기다렸다. 역시 다들 어느정도 눈치가 있었다.

"모두 잘 들어라, 라스로 태어난 이 작은 오크들아."

모든 오크들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으며 상태를 살폈다. 다들 조각같은 얼굴과 다부진 체격이었고, 그 누구도 뚱뚱한 비만 오크는 없었다. 나는 내 씨를 뿌려 낳은 오크들 사이에서도 나 혼자만이 비만이었다. 하지만 비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너희는 나로부터 태어났고, 이제 태어난 이유와 너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전쟁에 나설 것이다. 두렵다면 도망쳐도 좋다. 살아있는 것이 곧 승리다. 하지만 형제가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면, 목숨을 걸고 도울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나는 연설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부하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했다.

"우리의 시작은 고작 이 작은 던전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끝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새로운 마왕성의 주인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마왕의 자리를 찬탈하고 마왕의 자리를 꿰찰 초석이다! 그러니 죽지마라!"

나는 숨을 고르고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 <분노(Wrath)의 군단>은 세계를 재패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시스템이, 에스투가, 그리고 솔로몬이 듣고있기를.

"나는 반드시 마왕성을, 마왕의 자리를, 그리고 마왕을 따먹을 것이다! 라스------!!!"

"""""라스으으으으!!"""""

분노의 군단.

우리의 창은 언제나 화가 나있으며, 우리의 피는 언제나 끓고 있으리.

모든 것은 라스를 위해.

============================ 작품 후기 ============================

라스. 발음에 주의.

Wr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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