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317일차 -------------------------
루나가 떠난 뒤, 나는 모든 부하들을 불러 던전을 재정비했다. 부하들을 모두 잃은 그레모리마저도 내 던전을 구경하고 싶다며 자기 던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모리는 내 던전의 구조를 보자마자 한 줄로 평을 내렸다.
"너 진짜 악랄하구나?"
입구부터 연속된 사거리로 헤메게 만드는 구조. 오른쪽으로 잘못 들어오면 바로 막다른 길. 그리고 천장의 격벽장치를 통해 통로에 가둬놓고 요격하거나 말려 죽이기.
그게 내 던전 전방의 기본 구조였다.
"다들 이렇게 하지 않냐?"
"하지. 그런데 이걸 고작 열흘정도만에 구축했다고는.... 하아, 진짜 천재맞네."
"김치워리어들이라면 이정도는 기본이지."
"그건 또 뭔 소리야."
효율과 성능을 추구하는 괴물이 거지같은 시스템과 운영진의 지원을 받았을 때 만들어지는 시너지일 뿐이다. 나는 라스촌 주민들을 모두 불러 던전 밖의 모험가들을 가리켰다.
"얘들아, 이런 놈들 본 적 있냐?"
"......<청사자> 길드네요. B급 모험가 길드로 이 근방에서 제법 유명세를 날리던 길드였어요."
모험가들의 시체를 살피던 릴리가 금방 답을 찾아냈다. 루나는 아무렇게나 시체를 쌓아두고 떠났고, 라스촌 사냥꾼들은 아주 능숙하게 모험가들에게서 장비와 물건들을 노획했다. 릴리는 그중 청색 사자의 얼굴이 각인된 명패를 발견해냈다.
"길드'였'? B급?"
"오로바스의 던전을 공격하러 들어갔다가 길드장이 죽고 그 세가 완전히 기울었어요. ...찾았다."
릴리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의 짐가방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내들었다.
"영지 내 던전의 존재에 대하여 시찰 요망. 던전 발견 시 사례 및 왕국에 발견자로 신고. 비르고 남작."
"아직까지도 계속 보내고있구만. 병사들을 직접 보낼 생각은 않고."
남작은 아직까지도 모험가나 용병을 구해 이 근방을 탐색하려고 들었다.
그레모리와의 전쟁이 없었다면 아마 이 모험가들을 상대로 집단전을 펼치지 않았을까. 새삼 루나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던전의 존재를 발각당했을까?"
"글쎄요. 확실한 건 이 청사자 길드가 여기서 몰살당했으니, 대대적인 정찰대가 올 것 같다는 거죠."
"그야 그렇지. 40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돌아오지를 않게 되었으니."
한 둘, 그리고 초짜 5명 정도라면 모를까, 이렇게 대대적으로 오는 40여명의 인간들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내가 남작이라면 바로 경각심을 가지고 정찰대, 아니 토벌대를 구성하여 파견할 것이다.
"어째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로 전쟁이군. 그래도 환영이다."
안그래도 비르고 남작령을 점령하려고 마음먹은 찰나에 잘 되었다. 어제까지의 전쟁이 마족간의 부족 전쟁이라면, 지금은 전형적인 인류와 마족의 전쟁이었다.
약탈자와 토벌대.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선공은 필승이다.
"인간들과 전쟁을 하려면 대부대가 필요하겠어. 족히 300명은 되어야겠지."
병력의 질을 높였으니 이제는 병력의 양을 신경쓸 차례. 나는 릴리의 허리를 휘감으며 사냥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남자 사냥꾼들은 라스촌에 남아서 시신들을 수습한다. 쓸만한 것은 다 챙기고 시신들은 구울들이 뒷처리 하도록. 그리고 행여나 적으로 들어오는 놈들이 있으면 알아서 처리해."
"예. 남자 사냥꾼들이라고 하시면...?"
"여자 사냥꾼들은 따로 할 일이 있다. 그레모리의 던전에서."
"저희요? 거길 왜요?"
"오크 대부대를 양산할 계획이거든."
내 짧은 말에도 사냥꾼들은 금방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흐흥, 네! 그럼 드디어...."
"아니, 니들은 아더랑."
"힝."
누가 라스촌 주민 아니랄까봐 생각하는 것도 뇌에 안드라스가 끼어있다. 하지만 반기는 이도 있는가 하면 왠지 꺼려하는 이도 있어보였다.
"선택권을 주마."
나는 던전 안쪽과 던전 바깥을 가리켰다.
"그레모리의 던전에 들어가서 아더랑 같이 알을 낳을 지, 아니면 라스촌에서 파수꾼으로 있을지는 너희들이 선택하도록 해라."
그레모리 왈. 강제로 교배하면 ★등급이 낮은 마물들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 진짜인지 아닌지 나야 모르지만, 그레모리는 자신의 경험을 통틀어 그렇다고 하더라.
"어쨌든 니들도 힘들게 낳는 거니까 내가 강요하는 건 좀 그렇고, 이것 만큼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마. 뭐 안에 들어간다고 더 챙겨주는 건 없고, 밖에서 일한다고 불이익 주는 것도 없으니까 자율적으로 선택을...."
"주인님."
여자 사냥꾼 하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언젠가 복상사한 안드라스의 위에서 나와 배를 맞췄던 그녀였다.
"안에서 하게 된다면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
"야. 어디서 감히 조건을 걸어...? 네가 뭔데?"
릴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목숨을 걸고 내게 조건을 운운한 것이 가당찮기는 했지만, 도대체 무슨 조건일까 궁금하여 물어보기는 했다.
"조건이 뭔데? 들어나 보자."
"조건인 동시에 간청이에요. 저희, 들어가서 하면 엄청나게 해대겠죠?"
"물론이지. 300명이잖아. 니들 네 명이서 다 낳는다고 해도 75번을 낳아야 해."
"그럼 첫 발만큼은 주인님께서 낳아주시면 안 될까요...?"
"......?"
너무나도 무서운 조건이었다. 여기서 더 아들이 늘어난다? 내 장남인 아더야 철저히 내가 허락하는 여인만 먹기야 하지만, 다른 아들놈들은 과연 그럴까? 굳이 여기서 더 내 아들을 낳게 할 이유가 있을까? 혹시 나를 뒷통수치며 하극상을 일으키려는 자식이 나올 수 있는게 아닐까?
'아니다. 던전 부하들을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이야.'
그레모리 왈, 던전의 부하들은 시스템적으로 주인에게 반기를 들 수 없다. 내가 포르네우스 던전의 탈출기를 이야기하니, 그건 포르네우스가 나를 처형하려고 마음먹었기에 가능했다고 얘기했다.
처형 대상은 더이상 던전의 부하가 아니니까. 물론 그 처형 직전에 트랄이 나를 구해줬지만.
'트랄 보고 싶네.'
트랄이 있다면.... 나는 우울한 생각을 집어치우고, 장밋빛 비래를 꿈꿨다. 나의 자식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 슬라임 드래곤을 타고 돌격하며 적을 유린하는 장면이라. 생각만해도 짜릿했다.
'그리고 딸이 나올 수도 있잖아?'
그레모리 왈, 성별은 완전히 랜덤이라고 하더라. 등급 자체는 전부 제각각일지 몰라도, 성별 만큼은 거의 무조건 5:5라고 했다. 메어리가 낮은 확률을 뚫고 인간으로 태어나 준 덕분에 오크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 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포르네우스 내부의 오크 부족은 전부 남자였다.
'일단 확인.'
<오크 x 인간> 오크 남자와 라스촌 사냥꾼 여자의 결합.
# 예상결과 - 릴리
인간(☆~☆☆. 20%)
하프오크(☆☆☆. 30%)
오크 (☆☆~☆☆☆. 50%)
내가 4성으로 진화한 이후로 확률 테이블이 완전히 뒤집혔다. 인간과 하는 행위에 있어서, 오크의 비중이 확연히 늘어났다. 심지어 진화하기 전에는 ☆이 높았던 인간이 오히려 더 확률이 낮은 상황이었다.
'그럼 아더는?'
<오크 x 인간> 오크 남자와 라스촌 사냥꾼 여자의 결합.
인간(☆. 20%)
하프오크(☆☆. 30%)
오크 (☆~☆☆. 50%)
아더와 라스촌 사냥꾼들의 합을 살펴보니 확률은 똑같았지만 이 한 개씩 적었다. 고로 고등급의 개체를 뽑으려면 내가 직접 씨를 뿌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얘들한테 300번을 싸라고? 무리지.'
나는 솔로몬이 아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할 남근들은 차고 넘친다.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내가 릴리 상대로 낳고, 아더의 형제들이 다시 또 쟤들을 상대로 알을 낳고, 그리고 쟤들이 낳은 자식들이 다른 여자 포로들을 상대로 알을 낳고...?'
세대가 넘어갈수록 태어나는 오크의 등급은 낮을지 몰라도, 수를 늘리기에는 최적의 구조다. 아더의 아들이 또 사냥꾼을 상대로 박는 등 괜히 개족보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효율만 따지면 내가 릴리와 사냥꾼들 모두에게 하루에 한 번씩 싸는 게 맞다.
'안 돼. 선객이 얼마나 많은데.'
륜, 라임, 에일라, 안드라스, 그레모리, 릴리, 거기에 루나까지. 지금 6~7발씩 하는 것도 조금 벅차다 싶은데 하루에 고정적으로 10발 넘게? 차라리 죽고 말지. 나는 솔로몬처럼 하루에 수 백마리의 마물을 찍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은 나보고 해달라.... 안 돼."
생각을 마친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부탁을 끊었다.
"그냥 순순히 갔으면 생각난 김에 들려서 한 번씩 넣어주려했더니 괘씸해서 안 되겠군. 니들은 아더랑 해라. 나는 릴리랑만 할 테니까."
솔직히 종마 사냥꾼 중에는 릴리가 제일 맛있었다. 다른 넷을 한꺼번에 먹는다고 해도, 릴리 한 명과 합을 맞추는 것만 못했다.
"주인님...."
릴리는 감동받은 얼굴로 내게 안겼다. 아더의 어머니이자 라스촌의 실질적 우두머리인 만큼, 지금 이 순간은 릴리의 면을 세워줄 때였다.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존재들 따위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너랑도 많이 못 해. 한 번 파종하고 나면 낳을 때까지 못하는 거 알지?"
"그래도 감지덕지죠. 대신 낳으면...."
"바로바로 싸줄게. 할 수 있으면. 아더! 촌장인 네가 책임져라. 최소한 너 혼자 50명은 낳아야 할 거다."
나도 그만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한다. 나는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분량을 아더에게 떠넘겼다.
"......."
아더는 사색이 되어 네 사냥꾼들의 시선을 피했다. 사냥꾼들은 나에 대한 아쉬운 시선을 거두고 아더를 사방에서 에워싸며 깔깔거렸다.
"어머, 그러면 릴리가 우리 시어머니 되는 거예요? 꺄르륵. 릴리 이제 할머니네?"
"이것들이?"
"진정해라."
나는 릴리의 가슴을 붙잡으며 릴리의 화를 달래었다. 사냥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헤실거렸다. 시체에서 물건을 노획하여 정리할 바에는 아더와 침대에서 뒹굴겠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아더. 고생해라. 300명 채우기 전에는 훈련은 없다. 지원군은 곧 만들어서 보내주마."
"예...."
아더는 넋이 나간 상태로 대답하며 네 사냥꾼들에게 끌려갔다. 여자 사냥꾼들이 아더를 챙기고 떠난 뒤, 남자 사냥꾼들에게서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다.
"...주인님, 저희는 그러면 저걸 다 치워야 하는 겁니까?"
"그렇지?"
"......."
사냥꾼들의 표정에서 미약한 짜증이 일었다. 무슨 감정인지 나또한 대번에 알기에,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좋은 자극제를 투여했다.
"하이구울들이 지원을 할 거다. 힘쓰는 거는 구울들 시켜. 대신 챙길 거는 다 챙겨라. 다 끝나면 평소처럼 지내도 좋다."
"......빨리 끝내면 빨리 쉴 수 있습니까?"
"나는 지금부터 여기서 작업을 해야하거든."
"꺅!"
나는 릴리의 엉덩이를 손으로 쳤다.
"라스촌 촌장님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 일 하신다. 어떻게, 볼텐가?"
"주인님?"
"릴리는 누구꺼?"
"물론 주인님 것이죠! 흐흐흐, 저희들에게 과시하실 생각이시라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저희가 감히 어찌 주인님의 여자를 탐하겠습니까!"
사냥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릴리를 향해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휘유, 촌장님 몸보신 하시겠네. 흐흐흐."
"며칠 전부터 주인님 주인님 부르더니 오늘 계타셨어."
"닥쳐, 이 변태새끼들! 하면서 딸치면 죽여버릴 거야!"
릴리는 자신을 상대로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사냥꾼들에게 욕과함께 침을 뱉었다. 사냥꾼들은 식겁을 하면서도 실실 웃었다.
"와! 딸치지 말고 구경하자! 주인님께서도 허락하셨어!"
"진짜 봐도 됩니까? 농담 안하고?"
"물론. 릴리야, 솔직히 말해라. 싫다고 하면 안 할게. 따로 어디 조용한 곳 원하면 던전 안으로 들어가주마."
"......몰라요."
릴리는 부끄러워하며 앙탈을 부렸다. 따로 싫다는 말은 없었다.
"주인님, 촌장님이랑 낳은 자제분들로 기사단 만들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오크든 인간이든 주인님의 자제분들이면 분명 어지간한 기사들은 쌈싸먹을 것 같은데."
"그건 무슨 병신같은 생각이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이다. 이참에 한 번 진짜로 해봐?"
자식들로 축구단을 만들자는 말도 있는데 기사단이라고 다를쏘냐. 300오크를 다루려면 당연히 십장 정도는 되어야 할 지휘개체들이 필요했고, 그런 개체는 당연히 고등급의 개체일수록 더 효과가 좋았다.
'하물며 내 자식들이라면?'
남녀에 상관없이 내가 낳는 아들딸로 기사단을 만든다면 어떨까. 나는 릴리를 던전의 입구 통로에 놓고 로브를 벗었다.
"하루에 한 명씩 여기서 낳으면 되겠지?"
"...매일 이시간에요?"
나의 하루 일과에 릴리와의 알낳기가 추가되는 날이었다. 나는 이 날 사냥꾼들의 앞에 릴리가 나의 것임을 확실히 보였고, 릴리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며 자신이 온전히 나의 것임을 밝혔다.
던전의 부하들은 나를 배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안심하고 릴리의 안에 파정했다.
원 샷 원 킬.
이 날, 릴리는 둘째를 가졌다.
============================ 작품 후기 ============================
본격 아더와 종마 기사단 발족 준비중
주요 임무는 포로 심문 및 능욕인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