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717일차 -------------------------
부하들에게 아침 식사를 먹인 뒤, 나는 륜으로 목을 축이고 던전 부하들을 일괄적으로 합성과 진화를 거듭했다. 그레모리가 찬양하는 솔로몬의 마법과 시스템은 멀티 던전에서의 소환과 진화에도 융퉁성을 발휘했고, 나는 합성과 진화를 거듭하며 전력을 가다듬었다.
그리하여 현재.
3성짜리 슬라임 드래곤이 3마리.
기존에 자체 진화가 가능했던 놈들에 더하여, ★짜리들을 합성에 합성을 거듭하여 만들어진 빅슬라임이 6마리, 하이구울이 8마리가 되었다. 숫자가 맞지 않아 구울 한 마리(★)가 남기는 했지만, 메어리가 기지를 내어 금방 해결 되었다.
"아빠, 여기서 구울 소환해서 구울에게 먹이면 되잖아요. 레벨은 마석 쓰고."
"마석을 어디서 구한다니. 잠깐만, 제자야. 너 혹시 내 던전에 있는 마석 쓰려고 하는 건 아니지?"
그리하여, 하이 구울은 9마리가 되었다. 거기에 안드라스를 합성하고 남았던 하피들도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던 레벨이 전부 채워져, 하르퓨이어를 제외한 모든 하피가 하피엔젤이 되었다.
기존에 있던 부하들을 최대한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끝에, 우리 던전의 구조조정은 끝났다. 이번 전투를 통해 모든 마물 부하들이 ★★을 찍었다. 우리의 전력은 한층 더 강해졌다.
나, 아더. 오크 2.
륜. 엘프 1.
에일라, 메어리, 릴리, 그리고 사냥꾼 9명. 인간 12.
라임, 라인, 슬라임 드래곤 3, 빅슬라임 6. 슬라임 종 11.
하서스를 위시한 하이구울 9.
안드라스, 하르퓨이어, 그리고 하피엔젤 3. 조류 종 5.
나를 포함하면 마침 딱 40명의 인원으로 조정되었고, 급히 늘렸던 막사 정원도 이제 차고 넘쳤다. 거기에 그레모리의 던전은 또 별개의 던전으로 카운트 되니 금상첨화. 그레모리는 가장 먼저 내게 자신의 던전 상태를 공유했다.
<그레모리의 던전>
등급 : C급
위험도 : 124
정원 : 2 / 424
포로 : 0 / 0
"존나 미안해지는데."
"알은 또 낳으면 되는...건 아니네. 내가 더 낳지를 못하니."
그레모리가 포로 수감소로 대신 사용하던 촉수 괴물의 산란방은 모두 불타버렸다. 행방불명된 4성 낙타를 제외하고, 그레모리에게 남은 마물 부하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고블린들은?"
"다 살처분했어. 그 새끼들, 지들이 조카멜 필터스를 낭떠러지에 떨어뜨렸더라? 이거 건드려서 봤지."
그레모리가 손톱으로 제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갑자기 그레모리가 무서워졌다.
"걱정마. 세뇌 마법이나 정신 마법 같은 걸 얘기하는 거 아니야. 고블린들이 잔머리는 굴려도 지능이 딸려서 조금만 유도심문하면 걸려드니까. 하극상 일으키는 부하는 필요없어."
"그건 동감이다."
정작 우리 둘 다 솔로몬을 상대로 하극상을 벌이려고 하지만.
"그래서 질문. 너는 왜 던전 정원이 이렇게 넓냐? 나는 막사 네 개 끝까지 레벨 늘려서 50명 정원 겨우 넘겼는데."
"C급으로 오르면 던전 운영의 특성을 찍을 수 있어. 너 아직 D급이지? 그럼 모르겠다."
그레모리는 손가락을 수직으로 쭉 내렸다.
"층마다 막사 네 개까지 지을 수 있지?"
"어."
"너 우리 던전에 세 번째 통로 있잖아? 그 함정 막 있는 길. 거기 가봤어?"
"누가봐도 함정처럼 보여서 안밟고 천장으로 돌아갔지. 거기가 왜?"
"거기에 우리 초대형 막사가 있어. 부하들이 평소에 거기서 지내다가 필요하면 전부다 밧줄타고 올라와. 100명이 동시에 지낼 수 있는 초대형 막사가 네 개나 있지. 상당히 구리지만."
그레모리는 생각만으로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 이상의 병력들은 중앙 공동에서. 그리고 ★인 놈들은 지하에서 성장하는 거지. 나나 부하들은 거기를 똥통이라고 불러."
"똥덩어리들이라서?"
"그런 의미도 있고, 200명 넘는 부하들이 싸재끼는게 얼마나 많은 지 알아? 일종의 분뇨처리장이야. 거기."
"......."
그레모리의 부하 복지는 최악이었다. 동시에 부하들이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높이기에는 충분한 동기기도 했다.
"올라올 때 던전 내에 흐르는 강에 몸 씻고 올라오도록 하면 냄새도 빠지지. 후후."
"여러모로 굉장하네."
타인의 던전 운영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그건 민폐겠지만, 이제 그레모리의 던전은 내 동맹이라는 이름의 멀티 던전이다. 고로 내가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하들 복지에 좀 신경쓰자. 똥통에서 굴러서 올라오는 애들이니까 우리 부하들한테도 개발리지."
"그건 네가 미친듯이 날뛰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서 너희 부하들 우리 부하 한 명이라도 중상 입힌 적 있냐?"
"씨발놈 비겁하게 사실로 뼈때리네."
그레모리는 할 말이 없는지 욕을 하며 궁시렁거렸다. 실제로 우리 던전의 부하들은 전위의 방패병으로 나선 구울들을 제외하면 크게 다친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나 너 중상 입혔어!"
"응, 다 회복했음. 그리고 안 죽고 다 회복했지. 끝."
가장 많이 다친 자가 있다고 하면 나. 하지만 메어리의 회복 마법은 상당히 뛰어났고, 노출된 부분에 있던 화상도 말끔히 치료되었다. 오크 특유의 재생력과 회복력은 트롤만큼은 아니더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애초에 그런 회복력이 없었다면 그레모리, 그리고 뒤이어 광란의 라스 파티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화상환자가 병상에 누워야지 어딜 라임의 위에 누워 에일라를 기승위시키겠는가.
"너 병력 구성보니까 딱 느낌 오더라. 낙타 괴물들이랑 가고일 물량으로 몰아치면서 고블린을 짤 넣는 타입이지? 물량으로 몰아치는 타입. 마법 머리는 잘 돌아가는 애가 병력 지휘는 아주 개판이야, 개판. 그러니까 내 다섯 배는 넘는 부하들 데리고도 발리지."
"윽."
연이은 내 팩트 폭격에 그레모리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상당히 삐친 것 같은 얼굴이지만, 저러면서도 분신으로는 아더와 열심히 쿵짝을 맞추고 있을 것이다.
"됐다. 너 일단 몸 잘 추스려. 던전에 관해서 네가 아는 건 나보다 많아도 운영하는 건 나보다 못한 것 같으니."
"뭐야, 너. 혹시 던전 주인 하다가 쫓겨난 놈이야? 그래서 다시 기회를 잡기라도 했나?"
"경영 천재라니까."
무려 관리자가 직접 인증까지 박았다. 나는 멀티 던전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할 지 나중에 고민하기로 했다.
"메어리."
"네, 이거 찾으시는 거죠?"
메어리는 불에 잔뜩 그을린 로브를 내게 건냈다. 내가 진화하면서 자동으로 생겨난 로브는 전신에 불을 질렀어도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었다. 진하게 남아있던 안드라스들의 피가 불길에 다 빠져나간 듯, 로브는 푸석거리기까지 하며 빳빳해졌다.
파-악!
나는 모포를 털듯 로브를 한 번 크게 털어내어 다시 걸쳤다. 메어리는 여전히 진화에 따라 생성되는 물건들의 실존에 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해결해줄만한 이가....
"야, 그레모리야. 진화하면 생기는 물건들의 정체는 뭐냐?"
"그거? 솔로몬 님이 미래의 장비들을 가져오도록 해주시는 거야. 빡빡한 진화 조건을 채워서 나중에 미래에 성장한 자신의 힘을 시공간마법으로 미리 땡겨오는 거지."
"올."
"...그게 가능해요?"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고, 메어리는 눈썹이 일그러지며 허탈해했다. 나는 메어리의 머리에 손을 올려 톡톡 다독였다.
"따지고보면 너도 몇 초만에 이 나이대로 태어난 거 아니냐."
"...그렇네요. 예, 솔로몬 님 대단해-"
메어리는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있지만 진짜로 솔로몬의 마법, 시스템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 방법이 있다. 방법이 있으니까 나도 하극상을 꿈꾸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로브를 여미고 팔을 옆으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륜이 귀신같이 제자리에서 점프해 내 어깨에 올라탔다.
"흐흥."
"나 하나만 물어보자. 너 어디서 이런 하이 엘프를 얻은 거야? 마물 소환으로?"
"주웠는데."
"......주인님, 주웠다니요."
내 말에 륜이 발뒷꿈치로 내 배를 쿡쿡 찔렀다. 그러면서도 엉덩이를 좌우로 비틀며 내 어깨 위에서 시위를 벌였다. 나는 륜의 발바닥을 잡고 간질이며 반격했다.
"네가 나보고 놀라서 자빠진 거 내가 주워온 거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조금 부끄러우니까 정정해주시겠어요? 귀여운 엘프를 데리고 살려고 잡아온 거라고."
"그렇긴 하네. 틀린 말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라. 너 처음 잡혀왔을 때 했던 말은 내가 네 명예를 생각해서 말하지 않으마."
"그걸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고싶어 하게되잖아요!"
잡아먹는다고 하니까 진짜로 잡아먹는 줄 알고 겁을 먹고 지렸었지. 불과 2주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나 간다. 그레모리, 너 우리 애들이랑 있으면서 여러 가지 알려줘라. 특히 메어리한테."
"...? 어디가는데."
"우리 던전."
나는 륜과 함께 통로 너머, 포털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혹시나 우리 던전에 침입자 들어왔을 수도 있잖냐."
* * *
잠시 뒤.
나는 륜과 포털을 통해 우리의 던전으로 돌아왔다. 길쭉하게 이어진 통로의 끝에는 벼랑으로 꺾도록 길이 막혀있었다. 나는 원래 사거리였던 통로의 앞에 멈춰섰다.
툭.
나는 손가락을 깊게 찔러넣었다. 임시로 다져놓은 흙벽은 금방 구멍이 뚫렸다. 굳이 라임을 데려와서 뚫을 이유도 없었고, 내가 발로 툭툭 건드리자 벽은 금방 무너져내렸다.
"이것도 발견 못하는 놈을 부관으로 데리고 있으니 나한테 개발리지."
"없다고 바로 무시하시네요."
"56위를 잡았는데 너무 쉽게 잡았잖아."
"주인님은 그렇게 다치셨잖아요. 위험천만했다고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다시는 못해먹을 짓이지만."
나는 가벽을 허물고 나의 침실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라스촌 주민들까지 모두 긁어모았던 만큼 던전에는 내가 만들어놓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륜아, 뭐 안에 사람 있냐?"
"...공동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륜은 귀를 쫑긋 세우며 활을 꺼내들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한 눈치였다. 공동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공동 너머에는?
"조금만 더 가보자."
나는 성큼성큼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레모리의 병력들을 때려잡으며 이가 다 빠진 철검은 뭐든지 때리기 좋은 철몽둥이가 되었다. 누구든 걸리면 홈런을 날리듯 휘두르리라.
"주인님, 너무 빠른 것 같은데요...."
"내가 내 집 왔는데 도둑놈처럼 걸으니 기분 나빠서."
집을 비운 사이 든 도둑놈은 때려잡아야 하는 거지, 내가 도둑을 걱정하며 조심스레 나아갈 일은 아니었다. 내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자, 륜은 아예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선행했다.
"제가 앞에 설게요. 주인님, 어제 싸우실 때 많이 고생하셨으니까."
"고생은 침대에서 더 많이 했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부하 좀 믿어주실래요? 저도 나름 강해졌다고요."
륜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륜은 크게 성장했다. 현재 륜의 레벨은 42. 내 던전에 들어온 만큼 굳이 귀를 만지지 않아도 부하의 레벨 정도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해지면 뭐하냐. 4성 찍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그래도 주인님, 아무것도 모르던 꼬마 엘프가 여기까지 금방 성장했잖아요? 이게 다 주인님 덕분이에요. 히힛."
"오냐. 그래."
우리는 공동에 도착했다. 다행히 공동은 우리가 떠나던 그 날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침입자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공동에는.
"......킁킁."
"왜요?"
"어디서 과일 냄새나는데."
"...혹시 주인님, 공동으로 저 따로 부르신게.... 후훗, 그런 거라면 진작에 말씀하시지."
륜은 치마의 양 끝을 잡으며 슬쩍 들어올렸다. 하지만 나는 철몽둥이로 다시 치맛자락을 내렸다.
"아냐. 네 냄새 아냐. 그래, 좀 더 물 많고 달콤한 이 냄새는 메론향...."
앗.
나는 바로 앞으로 달렸다. 냄새, 아니 이 향기는 입구로 달려갈 수록 더 진하게 내 코를 찔렀다. 륜은 내 뒤를 따라 다니며 우리 던전의 입구, 라스촌의 기척을 주시했다.
"어머."
륜도 눈치를 챘다. 나는 던전의 입구에 막아놓은 가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얇은 가벽이 박살이 난 뒤,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전방을 향해 앞구르기를 하며 철몽둥이를 휘둘렀다. 행여나 가벽 앞에서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다면 후려치기 위해.
하지만 내 철몽둥이는 허공을 가로질렀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
쿵쿵쿵!
익숙한 장소의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드라스(男)을 위해 만들어놓은 번뇌 해우소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목책은 다시 세워져 있었다.
쿵쿵쿵쿵!
그곳에는 상반신이 구멍에 들어간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바보같은 엘프가 있엇다. 자세히 보니 엘프는 무리하게 상체를 밀어넣었다가 가슴이 낀 것 같았다.
귀를 보지 않아도 나는 엘프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먹어본 맛과 냄새였기에. 엘프는 내 기척을 느꼈는지 기뻐하듯 발로 땅을 굴렀다.
쿵쿵쿵쿵쿵!!!
엘프는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다리를 거칠게 휘두르며 가랑이를 좌우로 쭉 벌렸다. 마치 잡아서 빼달라는 듯이.
루나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