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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16화 (116/800)

0011617일차 -------------------------

그레모리와의 쟁탈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하룻밤 광란의 라스 파티를 벌인 뒤,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지쳐서 잠든 그레모리를 깨웠다.

"뭐야.... 아침부터 짜증나게."

"일해야지."

"이 시간부터? 더럽게 부지런하네. 흐아암."

비록 오늘 아침의 일과는 생략했지만, 앞으로도 나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레모리는 그레모리대로 던전을 운영하고, 나는 진화한 부하들을 다시 강화시키는 일상의 반복.

달라질 게 있다면 부하들의 구성.

3성까지 진화 가능한 슬라임들은 슬라임 드래곤이 되며 이제 단독으로 슬라임 서브 던전을 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휘하 나머지 슬라임들은 빅슬라임으로 진화 가능한 놈들은 서로 '합성'을 통해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마물 합성은 크게 두 종류가 있어."

그레모리는 비서처럼 내 옆을 따라다니며 던전의 여러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줬다. 쟁탈전의 결과 내 승리로 인식이 되어, 나는 그레모리의 던전 시설을 내 것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손 올려봐. 바로 인식 되지?"

"신기하네. 그럼 너도 내 시설 사용가능한가?"

"아니. 네 표현, 그러니까 멀티 던전은 상위 던전에 종속되어있어. 얘기했잖아? 내 건 네 것. 하지만 네 것이 내 것은 아니지."

"대충 이해했다."

내가 그레모리 소환 시설의 마정석에 손을 올리니, 금방 마정석이 내 손에 반응하였다. 보라색 마력이 반짝이며 소환 시설의 정보가 떠올랐다. 그레모리의 소환 시설은 의외로 고작 Lv.1이었다.

"하나는 네가 말했던 것처럼 안드라스를 재탄생시킨 경우. 상대 던전에 쟁탈전을 넣었을 때 임무가 하나 발생하거든? 상대 던전의 주요 마물을 몇 개체 이상 학살하라. 일정 개체 이상이면 그 마물을 낳는 알이 생겨."

"안드라스 알처럼?"

"그래. 그런데 그건 좀 특이한 케이스야. 세상 어디에 혼자서 같은 종족을 666마리나 낳는 경우가 있겠어? 안드라스처럼 처음부터 셀프 환생을 목적으로 계속 낳기를 반복한다면 모를까."

"그건 그렇지."

그레모리는 내게 자신이 내 던전을 공격하려던 순간부터 안드라스 던전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확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던전 공격에 대한 서브 퀘스트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슬라임 666마리 학살.

그게 내 던전의 퀘스트 과제였다.

"주력을 슬라임으로 쓰는 오크는 또 처음보네."

"슬라임으로 세계를 재패하는 거, 제법 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참나, 그럼 마왕님이나 바알님이 슬라임이겠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전자라면 몰라도 후자라면 상당히 그럴듯하지 않을까.

"나 지금 있는 던전이 옛날에 바알이 쓰던 던전이라던데? 버려진 거."

"어느 멍청이가 죽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다니? 바알님, 던전 주인들에게는 거의 신과같은 존재인 거 몰라? 나니까 넘어가지 너 다른 놈들 앞에서 그 얘기를 했으면 바로 모가지 날아갔어. 누가 그래?"

"...여기 살림 차릴 때 시스템이 알려주던데."

"마왕님의 시스템이라.... 끙, 무서운 걸 알아버렸네. 바알 님이 실은 던전을 버리셨다니. 한 번 발렸다는 얘기잖아. 아아, 좆됐어. 이거 바깥에 알려지는 순간 나도 죽을 거야...."

그레모리는 좌절했다. 생각보다 바알의 위엄은 상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알려준 당사자는 그런 부분에 있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에스투 얘기는 하지 말자.'

괜히 관리자가 직접 개입을 했다고 말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거나 따지고 들 수 있을터. 나는 교묘히 진실을 왜곡했다.

"그냥 던전 파내다보니까 흔적들이 나오더라고. 그러다가 1층 완전히 개발하고 나니까 지하 1층으로 가는 문이 열렸거든? 그러면서 뜨더라. 옛 바알이 남기고 간 던전. 뭐 이런 식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뭐라 말하기가 좀 그러네. 알았어. 그렇다고 칠게. 그럼 지금부터 네 주력인 슬라임 부대를 강화시킬 좋은 방법을 알려줄게."

마물 합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레모리는 내게 두 마리의 슬라임을 불러올 것을 부탁했다.

15레벨을 꽉꽉 채운 ★ 슬라임 두 마리.

제물의 관 앞에 놓인 두 마리는 운명을 직감한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제물의 관이 있으면 소환진에서 합성을 할 수 있거든? 근데 아까 말했던 '알'이 있는 경우랑 지금은 달라. 전자가 확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끝까지 키워서 ★만 강제로 늘리는 거지. 한 번 눌러봐."

나는 그레모리가 시키는 대로 마물 합성을 눌렀다. 서로의 스크린은 볼 수 없었지만, 같은 시스템을 공유하는 이상 패널은 똑같았다.

<마물합성> 2개체 이상의 마물을 합성하여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냅니다.

# 합성대상 : 슬라임 ★★

# 합성조건

1) 슬라임 2개체 모두 ★이상.

2) 슬라임 2개체 모두 15레벨 이상.

"조건만 귀찮게 붙고 딱히 다른 건 없는데?"

"그게 전자랑 후자의 차이야. 후자가 보통이고 전자는 정말 특별한 경우. 너야 안드라스를 가장 먼저 합성을 했으니까 잘 와닿지 않겠지만, 원래는 그냥 이런 식으로 만렙들을 합성시키는게 기본이라고."

"잠깐만 있어봐. 그럼 대충 이런식이냐?"

나는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모식도를 그렸다.

"15렙 1성 슬라임 두 마리 합치면 15렙 2성 슬라임. 빅슬라임 아니고. 맞냐?"

"응, 진화는 안 돼. 최대 레벨 때문에 그러지? 진화를 해야만 가능해."

"그럼 합성해서 ★★이 된 15렙 슬라임은 빅슬라임으로 진화 조건을 갖춰야만이 최대 레벨이 확장된다는 거네. 음.... 아쉽구만, 100렙 최강 슬라임은 불가능한 건가."

"강화권을 쓰면 되잖아. 성장시키는 건 오지게 힘들겠지만."

"그레모리 똑똑해."

"칭찬이겠지만 그건 당연한 거라 별 감흥이 없네."

역시 헷갈리는 부분을 짚어주는 쪽집게 과외 선생이 있으니 부하 양성 계획도 수월해졌다. 그리고 내가 직접 실습에 나서기 전, 불안한 마음에 먼저 물었다.

"얘들 합성하는데 뭐 일주일 걸리냐?"

"아니. 고등급일수록 시간이 걸리지. 1성이 2성으로 합성하면...30분?"

"합성 가즈아아아!"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바로 슬라임을 소환진 위에 집어던졌다. 누가 주 인격이 되는가에 대한 판단은 라임이 했다.

"라임아. 속이 노란 슬라임이랑 검은 슬라임이랑 누가 더 일을 잘하냐."

꾸르륵.

"라임이 어차피 둘다 일 못한다는데요."

라임이 말하고 륜이 통역했다. 나는 망설임없이 버튼을 눌렀다. 곧 두 마리의 슬라임들은 하나로 합쳐졌고, 번데기가 탈피를 하기 전처럼 껍질이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마물합성>

# 합성 결과 : 슬라임, ★★

# 예상 시각 : 30분

30분 동안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레모리에게 또다른 질문을 했다.

"쟁탈전."

"윽."

자신이 패배한 쟁탈전에 대한 화제를 굳이 꺼낸 것에 싫은 기색이 역력했...?

"야, 너 지금 분신으로 또 아더랑 하고 있냐?"

"...본체는 여기 있잖아!"

"아까는 일찍도 일어난다고 신경질내던게."

"시끄러워. 됐으니까 뭐가 궁금하다는 거야. 빨리 얘기해."

"얘기했잖냐. 쟁탈전이나 얘기해보라고."

나는 바지를 벗었다. 30분이면 뭐든 떡을 치고도 남을 시간. 그러니까 떡을 치기 위한 예열 작업을 할 때였다.

"시간은 효율적으로 쓰는 거지. 다들 아침 먹자."

"히힛."

륜이 제일 먼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레모리는 벙찐 얼굴로 내 물건 앞에 무릎을 꿇는 륜, 그리고 에일라를 번갈아 가리켰다.

"...아침?"

"어, 아침. 그러고보니 너는 먹은 적 없지?"

"주인님 꺼 맛있어요! 배도 부르고!"

"진한 커스터드 크림 같은 맛입니다."

"...세상에. 뭐, 좋아."

륜과 에일라가 혀를 놀리는 소리와 함께, 그레모리의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 * *

우선 이것부터 얘기할게. 마왕님, 그러니까 솔로몬 님께서는 기존의 마법 체계와는 확연히 다른 마법을 구사하셔. 그리고 그 권능은 가히 우리 일반 마족들은 범접할 수 없는 꼭대기에 계시지.

너도 어느정도 느꼈을 거 아냐? 알이라는 형태로 태어나게 하여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시간 마법.

차원석이라는 형태로 던전을 소형화시켜 원령이 무한히 떠도는 서브 던전을 만들어내는 공간 마법.

마족과 마물들이 가진 한계를 합성과 강화, 그리고 환생이라는 형태로 무한히 성장할 수 있게 해주신 영혼마법.

그리고 우리같은 무지렁이들도 그러한 권능을 간접적으로나마 이용해주실 수 있게 해주신 '시스템'.

당장 솔로몬 님께 마석만 바치면 부하를 보내주시는 것 처럼, 솔로몬 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정말로 많아. 솔로몬 님이 마왕군을 결성하시면서 인류 연합과 전면전을 펼치게 되었지만, 어차피 마족들은 투쟁으로 살아가는 종족이잖아? 좋은 거지.

그리고 솔로몬 님께서는 알다시피 72개의 던전을 만드셨어. 각각의 주인들에게 시스템을 부여했지. 네가 어떻게 시스템을 얻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건 마왕님이나 10위권 내의 고위 마법사들이나 알 수 있겠지.

아 씨, 튀었잖아. 츄릅. ...맛은 있네. 이야기 끝나고 나도 좀 먹자.

뭐? 주인님으로 모실 거 아니면 먹으면 안 된다고? 뭐 이런 텃세가 다있어? 어차피 아래로 받으나 위로 받으나 똑같은, 하아, 됐다. 화대는 그걸로 받을 게. 어떻게 받든 내 맘 아니야. 그렇지?

흠흠, 던전을 만드신 이유는 당연히 인류 연합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야. 조금 더 많은 병력들을 빠르게 뽑아내기 위해, 마왕님은 자신의 권력과 권능과 부하들을 나눠주셨어. 그리고 아낌없이 주시는 마왕님의 은총을 가만히 앉아서 빨아먹어대는 기생충들을 제거하기 위해 쟁탈전을 도입하셨지.

응, 그래.

안드라스 같은 애들이 그렇잖아? 인류 연합과 전혀 싸울 생각없이 자기 진화와 환생에만 몰두하는 애들. 마왕님의 덕분에 수십, 수백년의 시간을 당겨썼으면 그만큼 마왕군에 공헌을 해야지. 못해도 어느 마을이라도 뒤집어 놓는다거나 말이야.

마왕님의 시스템은 결국에는 얼마나 인류와의 전쟁에 기여하는 가에 대한 보상이야. 그리고 전선에서 활약하는 존재일수록 그 보상도 더 많아지지. 당장 나만하더라도 그래. 평범한 원소술사였던 내가 어떻게 마왕님 기준 ★★★★이라는, 어...그러니까 예전 서클 단위로 치면 7서클?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겠니?

뭐? 갑자기 별이랑 서클의 상관관계를 알려달라고? 잠깐만. 어, 마왕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시길, 10레벨 마다 분명 1서클씩 올라간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쟁탈전 설명하려다가 지금 갑자기 왜 이런 쪽으로 빠지는 거야.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결국에는 고위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그만큼 보상도 많은 거지. 책임도 많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안주하지 말고 매일 매일 열심히 일하라는 마왕님의 뜻인 거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마왕님이 제일 예뻐하시는 마족들이 어떤 애들인지 알아?

말하지 않아도 혼자서 열심히 하는 애들이야. 뭐? 그렇게 열심히 해서 마왕군에 반역하면 어떻게 되냐고?

...인류 연합과 편을 먹는게 아니면 오히려 기뻐하실 걸? 나보다 더 강한 존재가 태어나다니, 마계의 흥복이다! 축배를 들어라! 새로운 마왕의 탄생을 경배하라! 이러실 거야. 지금의 마왕님도 이전의 마왕을 상대로 1:1로 싸워서 마왕의 자리에 오르셨거든.

응. 맞아. 쟁탈전이라는게 있기 전부터 마족은 서로 싸워서 이기는 걸로 제 힘을 과시하는게 종족 특성이야. 나도 한 명의 마법사로서 언젠가 솔로몬 님을 마법으로 꺾는 걸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강해야 말이지.

쟁탈전의 순위라는 건 그래서 누가 더 솔로몬 님의 힘에 가깝냐는 지표이기도 해. 당장 바알 님만 하더라도 마왕님의 오른팔이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뭐겠니? 마왕님의 오른팔 만큼의 전력은 하니까 1위 자리에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다들 쟁탈전에 목숨을 걸어. 자기가 그만큼 강하다는 객관적인 지표 아니겠니. 물론 그 형태가 던전과 던전의 싸움이라는 것에 불만을 가진 놈들도 있기는 해. 너도 오크니까 알 거 아냐? 신성한 1:1 싸움에 부하들 동원하지 말라거나, 마족이라면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거나.

자.

이걸로 얘기 끝.

뭐? 대충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고?

그럼 나한테 왜 얘기하라고 했어?"

교차검증?

어이없네. 누구는 혀에 단내나게 말하도록 만들어놓고 자기는 여자들 입에 단거 쭉쭉 넣어준다 이거지?

야, 나 목말라. 안 넣어주면 더 말 안 할래. 아 목마르다! 목이 마르다아아아!!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눈 감으라고? 흐흐, 그래. 아--앙

* * *

"아아, 이것은 골든 샤워라고 하는 것이다."

쏴아아-

혼났다.

나는 목이 마르다고 해서 물을 줬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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