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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11화 (111/800)

0011116일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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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만 나는 뜨거움에 대한 내성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포르네우스의 아래에 있을 때 살을 빼기 위한 일환으로 사우나를 만든 적이 있다. 그냥 돌로 된 방 안에 들어가 겉에 불을 지피고 방 안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기만 할 뿐이었지만, 분명 그런 열기는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르륵!

하지만 이건 좀.

스스로 생명을 잃는 것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분신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린게 아니었다. 촉수 괴물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격, '불'을 전신에 두르고 달려드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내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물며 내가 이런데, 그레모리는 오죽할까.

꺄아아아아아악!!

그레모리는 연신 비명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그에 따라 촉수들이 발광을 하듯 춤을 췄고, 나는 그럴수록 더 그레모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로브 겉면에 붙은 불꽃은 그레모리의 살갗에 직접 닿았고, 그레모리의 전신이 타들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질 터.

하지만 그레모리나 나나 고작 불꽃에 금방 타죽을 만큼 약하지 않다. 나는 오크 특유의 두꺼운 피부를 가지고 있고, 그레모리는 마나로 피부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 이 돼지새끼!!"

머리가 거의 반쯤 타들어간 그레모리가 울분이 섞인 눈으로 나를 죽이려들었다. 내 목을 움켜쥐고 손톱을 박아넣어 쥐어짜 죽이려했다. 나는 그레모리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레모리의 어깨를 꾹 잡아 눌렀다.

키이이이익!!

불꽃은 촉수 괴물의 위로 옮겨붙었다. 잔털같이 펼쳐진 돌기들은 불꽃을 전달하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고, 괴물은 촉수를 내 몸에 휘감아 나를 잡고 떨어뜨리려했다. 설령 불꽃을 통째로 휘감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나를 떨어뜨리려 하려는 속셈인 듯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나를 꺾을 수 없다.

지금은 나 혼자 근접전을 펼치고 있지만, 나는 나 혼자 공격을 들어온 게 아니다.

푸슝-! 파바박.

안드라스 발톱 화살이 내 목을 휘감으려는 촉수를 저격했다. 그리고 또다른 화살은 벽마다 위치해있는 여인들로 연결된 촉수를 끊어냈다. 그 중심에는 륜이 있었고, 메어리의 파어이볼도 거들었다.

키에에엑!

촉수 괴물은 몸이 급격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에너지원이나 다름없는 여인들과의 파이프라인이 끊어졌으니 당장 촉수를 복구해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메어리가 끊어진 촉수 가닥에 불화살을 날렸다.

지지직.

촉수의 끝에 불이 붙었다. 촉수 괴물은 끊어진 촉수를 빙빙 돌렸고, 그에 따라 불씨가 사방으로 퍼졌다. 방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레모리를 붙잡고 선언했다.

"아아, 이건 쥐불놀이라고 하는 거다."

"미친 개떡같은 소리 집어치워! 아아아악!"

그레모리는 피부가 벌겋게 익어가면서도 온몸을 비틀며 고통을 참아냈다. 마나를 보호막삼아 불길을 막고 있지만, 비단결같은 머리칼이 타들어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와 그레모리의 뜨거운 불장난은 이 정도로 끝날 수 없다.

"으오옥!"

나는 그레모리를 거의 접다시피 몸을 숙이게 만든 뒤, 로브 앞을 헤치며 그레모리를 내 로브 안으로 들였다. 로브 안쪽에는 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그레모리는 질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흐흐, 뜨겁지?! 죽겠지?!"

"너, 너까지 타 죽어, 이 등신아!"

"항복해라! 그러면 그만둬주겠다!"

나는 그레모리의 얼굴을 붙잡고 이마를 부딪혔다. 그레모리가 항복한다면 나도 힘을 빼고 물러서겠지만, 그레모리가 계속 싸우기를 바란다면 둘 다 불속에서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도박이었다.

둘다 설령 죽더라도 그레모리가 먼저 죽고, 나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터.

"너, 진짜 죽는다고!"

"흐흐! 항복할테냐, 아니면 타죽을테냐?!"

나는 그레모리의 뒷통수를 움켜쥐었다. 소매 끝에 붙은 불꽃이 그레모리의 등을 지졌다. 그레모리가 격렬히 저항하며 불을 끄려 하건 말건, 불꽃은 계속해서 나를 향해 날아왔다.

화륵, 화르륵!

메어리가 쏜 불화살은 내 주변에 타오르는 불꽃을 스치듯 날아갔다. 덕분에 불길은 더욱 거세졌고, 나는 그럴수록 더 강하게 그레모리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레모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항복하여 살 것인가.

아니면 죽어서 재가 될 것인가.

내 막무가내식 협상의 근간은 단 하나.

'그레모리는 절대 죽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히는 사람이다. 시스템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레모리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그녀의 본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레모리는 죽고 싶지 않아 한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거다! 으하하! 너 죽고 나 살자!"

그리고 그레모리 또한 내 의지를 읽어낸 듯, 혼란과 체념과 고통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졌어! 졌다고! 그러니까 제발!"

드디어.

<굴복> 그레모리는 오크의 광기어린 뜨거운 허그에 더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의 패배는 인정하면서도 도저히 이런 광인을 상대로 주종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자존심이 일말 남아있습니다.

주종관계라. 시스템은 일단 진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레모리는 남들의 위에 서는 존재지, 죽어도 내 아래나 다른 이들의 아래에 깔리려는 존재는 아닌 듯 했다.

사락.

나는 로브를 벗어던졌다. 촉수 괴물의 위로 던져진 로브는 불타는 겉면만 활활 타오르며 촉수 괴물의 표면을 바싹하게 구워버렸다.

키에엑....

그리고 그레모리를 감싸고 있던 촉수 돌기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갔다. 예상대로 촉수 괴물은 그레모리의 음부와 뒷구멍에 앵커처럼 촉수를 박아넣었고, 뜨거워진 그레모리의 몸에 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그레모리를 뽑아들며 촉수 괴물의 위에서 일어났다.

푸쉬이이-

광폭화로 인한 신체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고작 3분도 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천년만년처럼 길었다. 나는 그레모리를 붙잡고 촉수 괴물에게서 높이 뛰어올랐다.

"으아아아악!"

포물선을 그리듯 나는 내 부하들을 향해 점프했다. 내 바지와 그레모리의 옷에 붙은 불길을 손으로 쳐냈고, 도저히 잡을 수 없겠다 싶어 불타는 옷자락을 움켜쥐고 찢어버렸다.

나도, 그레모리도 벌겋게 익은 나신이 되었다. 그레모리의 머리칼은 거의 단발에 가깝게 타올랐다.

쿵!

나는 등부터 떨어졌다. 그레모리는 내 몸을 쿠션삼아 그 위에 떨어졌다. 직접 바닥에 떨어진 것은 나건만, 그레모리는 몸이 불타는 고통 때문에 혼절하고 말았다.

꾸르륵!

슬라임 드래곤들이 내 위에 체액을 토해냈다. 차가운 점액은 금방 표면이 익었고, 점액 사이사이로 증기가 뿜어져나왔다. 나는 얼굴은 덮은 점액을 한 입 베어먹었다.

"흐아."

살 것 같았다. 광폭화를 통한 감각의 폭주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짓이었다. 그레모리의 항복이 10초 정도만 늦었어도, 나는 노출된 겉이 바싹 익고 안쪽은 땀에 의해 쪄져 촉촉하게 익었을 것이다.

전기에 의해 구워진 건 아니지만, 어차피 불을 직접 몸에 두르고 공격을 나선건 마찬가지다. 나는 탈력감에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야, 이겼다."

"......."

륜이, 에일라가, 라임이, 안드라스가, 그리고 내 몸에 불을 지르게 만든 메어리가 복잡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기도 했다.

"오냐, 혼은 나중에 날 테니까 일단 마저 할 건 하자."

나는 나와 그레모리가 눕혀진 장소를 가리켰다. 아직 촉수 괴물은 전신에 불이 붙어 발광을 하고 있었다.

구구구.

던전 전체가 울리다시피 거대한 지진이 울렸다. 촉수 괴물은 전신의 촉수를 허공에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날뛰었고, 천장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거 잡아야지."

"...예, 주인님께서는 쉬십시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에일라가 가장 먼저 의욕을 보이며 검을 빼들었다. 하지만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에일라를 제지했다. 기절한 그레모리는 아더에게 집어던지고, 우리가 서있는 통로를 가리켰다.

"에일라. 쟤가 지금 스스로 불을 끌 수 있어 보이냐?"

"......전혀 그래 보이지 않습니다."

촉수 괴물은 남녀를 판단하는 지능은 가지고 있지만 제 몸에 붙은 불을 끄는 지성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나는 부하들에게 통로를 가리켰고, 눈치 빠른 에일라가 바로 명령을 내렸다.

"후퇴---!!"

부하들은 방진을 구성한 상태 그대로 통로를 향해 빠져나갔다. 나는 륜과 에일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었다.

끼에에에엑!

촉수 괴물은 촉수를 가늘고 길게 뻗으며 사방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워낙 그 팔이 짧아 통로는 커녕 아직 빠져나가지도 못한 우리에게 닿지도 않았다.

"륜. 내가 원래는 그냥 이대로 빠져나가려 했거든?"

나는 떨리는 눈으로 우리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다른 이들도 그러했지만, 특히 다크 엘프는 두려움에 빠진 눈으로 내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죽고 싶다고 말했지만, 불타 죽는 건 싫어--!!

구하기에는 늦었다. 구할 사람도 없고, 구하러 가는 즉시 촉수 괴물의 촉수에 휘감겨 저승길 길동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두면 전부 다 불타 죽고말 것이다.

"륜."

"......."

륜은 눈을 질끈 감으며 활을 들어올렸다.

"주인님."

"어."

"...나중에 잘 수습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줘도 될까요?"

"물론."

그 정도는 얼마든지. 내 허락을 받은 륜은 가장 먼저 다크 엘프를 향해 활을 들어올렸다. 그들 모두 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살 생각은...."

륜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촉수 괴물에 의해 당한 여인들은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번 생을 약간이나마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

"...미안해요."

륜은 굳은 얼굴로 시위를 당겼다. 비록 타락했지만 한 때는 동족이었던 다크 엘프부터 조준하는 건 륜이 상당한 의지를 다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륜은 굳은 얼굴로 잡아당긴 줄을 놓았다. 비장한 각오에 나까지 절로 숙연해졌다.

"편안히 보내드릴게요...!"

피융-

륜의 화살은 허공을 가로질렀다. 다크 엘프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푹.

륜의 화살은 다크 엘프의 귓불을 스쳤다.

"......."

"......."

파바바박.

결국 사냥꾼들과 륜이 합심하여 여인들을 저격했고, 여인들은 편안히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 * *

그레모리, 기절.

촉수괴물, 소사(燒死).

★ 4개의 낙타 괴물은 포털을 통해 돌아오지 않았다. 슬라임 드래곤으로 천장에 통로를 만들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주인의 패배를 직감했는지 아니면 내가 설마하겠거니 하고 만든 조잡한 함정에 빠졌는지 함흥차사였다.

결국 남는 시간동안 우리는 그레모리 던전을 하나하나 살폈다. 우리가 들어온 포털과 거울상처럼 마주해있던 길에는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다. 그레모리의 던전 구조는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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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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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통로(▽)는 인간 세계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입구 밖에는 인간들의 시체와 두개골이 즐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맞은편, 포털(△)을 통해 그레모리 던전에 들어왔다.

가운데 통로에는 병력들이, 그리고 좌우로는 촉수 괴물이 있는 함정과 지하로 꺼지는 함정이. 그레모리는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레모리의 던전은 내 던전보다 훨씬 넓고 컸다. 실제로는 저 세 배 정도 크기가 아닐까.

'어쨌든 이제 내 집이지.'

나는 침대 위에 결박시켜놓은 그레모리의 뺨을 툭툭 쳤다. 불에 그을려 단발이 된 그레모리도 상당히 예뻤다. 열때문에 몸이 한 번 익은게, 촉수 괴물에 의해 더럽혀진 몸이 소독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야. 정신 차려라."

"......아."

그레모리는 금방 눈을 떴다. 그리고 나를 한 번 몽롱하게 바라보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인생 시발, 이딴 놈한테 그런 식으로 지고...."

"흐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면 그만 아니냐."

"그건 그렇네."

자기도 통제가 되지 않는 부하를 들일 정도로 그레모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싸우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내게 불만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레모리도 그에 준하는 짓을 저질렀다.

"포털 기습 설치, 3지 선다 함정, 촉수 합체. 몸에 불지르고 덤빈 나도 그렇지만 너도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잖냐."

"그러네. 결국에는 네 광기가 더 강했다는 거니까. ...인정해. 죽여. 내 패배야."

"...? 왜 죽여?"

벌써부터 생을 포기하는 그레모리의 모습에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레모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서, 설마! 나를 능욕하고 죽일 셈이야?!"

"죽이진 않을 거다, 능욕은 할 거지만."

나는 그레모리의 위에 올라타며 얼굴을 붙잡았다.

"지금부터 불꽃 라스다!"

============================ 작품 후기 ============================

라스 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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