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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06화 (106/800)

0010616일차 -------------------------

키에에엑!

낙타 괴물이 내 앞으로 가로막는다. 나는 주먹을 휘둘러 낙타 괴물의 대가리를 벽에 처박아버렸다.

쿵, 쿵쿵!

가고일이 날개를 펼치며 옆 통로에서 나타나 날아온다. 손톱을 휘두르려길래 다리를 휘둘러 걷어차 반으로 쪼개버렸다.

끼에엑!

고블린들은 내 돌진에 놀라 도망가버렸다. 나는 내 진격에 방해되는 놈들의 등을 밟고 터뜨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륜, 륜은 제대로 도망쳤을까? 혹시나 포털 앞에 강한 마물이 있어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닐까? 나는 초조했지만 침착하게 하나 둘 달려드는 그레모리의 부하들을 제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긴 통로의 끝.

화살 구멍이 숭숭 뚫린 시체의 밭 너머, 반짝이는 포탈이 한 눈에 들어왔다.

"으아아악!!"

나는 포털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마지막 남은 낙타 괴물이 손을 뻗어 내 발목을 붙잡으려 했고, 나는 어깨의 종유석을 낙타 괴물의 팔 관절에 집어던지는 걸로 간신히 뿌리쳤다.

쾅!

나는 포털을 굴러 빠져나갔다. 무지개빛이 나를 감싸며 나는 의식이 몽롱해졌고, 나는 앞으로 구르다가 턱에 걸려 멈춰섰다.

"아는 천장이다."

정말로 다행히, 나는 내 던전의 통로에 도착했다. 온몸의 긴장이 다 풀리는 순간이었다.

"주인님!!"

내 얼굴 위에 륜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는 힘겹지만 몸을 일으켜 숨을 골랐다. 침입과 탈출 인한 피로는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적 던전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마음은 가벼웠다.

"아버지."

"...그래."

아더는 나를 부축했고, 나는 아더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아더 혼자서는 버거워서 결국 륜과 라임이 모두 달려들고 나서야 나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댈 수 있었다.

"......무거워서 미안하다."

다들 힘겨워하는 얼굴이기에 내가 먼저 사과했다. 내가 무겁고 싶어서 무거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들어하는 셋의 얼굴을 보니 도의상 미안했다.

"아빠, 가서 쉬세요. 이제 저희가 막을게요."

메어리가 나무컵에 물을 들고와 내게 건넸다.

평범한 찬 물이었지만 륜의 꿀만큼 달콤했다. 열로 달아오른 몸이 조금은 식은 느낌이 들었고, 나는 숨을 크게 내뱉고 포털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직 못 간다. 그래도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까 집중해야지."

"그치만 상처가."

"상처는 금방 치유될 거다. 메어리, 혹시 치유 마법 쓸 줄 아냐?"

"네. 바로 쓸게요."

메어리가 내 어깨에 지팡이를 겨누며 마나를 일으켰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지팡이 끝에서 빛가루가 흘러나와 내 어깨의 상처에 내려앉았다.

"상처가 조금 깊어요."

"회복하고 침 좀 바르면 나아. 예전에는 이거보다 더한 상처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괜찮고 그랬어."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메어리야, 아직 전쟁 안 끝났다. 이제 초전이 끝난 거야. 긴장을 풀어선 안 돼."

부하들, 그리고 동시에 내게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정찰을 완료했지, 전쟁을 이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 전력의 판단이 끝났으니, 이 전쟁은 금방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다. 나는 로브를 여미고 부하들을 살폈다.

"하루 사이에 별 일 없었지?"

"네. 들어오는 족족 다 잡았어요. 여자 모험가들은 포로로 잡았는데, 다들 라스촌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기는 해요. 남자 모험가들은 다들 저항하길래 하서스들이 처리했구요."

"그런 건 괜찮다. 다들 무사하면 됐지. 여자 포로들은....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마라."

던전의 주인들이 서로 배울 건 배우며 전력을 늘려나간다면, 나는 그레모리 던전에서 좋은 걸 배웠다.

전문 산란장.

나는 단순히 하피들과 종마 사냥꾼들을 이용한 양계장 정도만 생각했지, 촉수 괴물을 이용한 전문적인 산란장을 만드는 건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런 부하가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일단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 역경을 이겨낼 차례다. 나는 이제 양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한 포털 너머를 가리켰다.

"자! 그럼 이제 우리가 공격을 할 차례다!"

"...네!"

내 선언에 부하들이 모두 무기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포털 너머로 달려가 그레모리의 무릎을 꿇릴 것처럼 성을 내고 있었다.

"잠깐만!!!"

나는 식겁하고 모두를 진정시켰다.

"...내일부터! 내일 공격 들어갈 거다!"

"예?"

"바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어, 아니야."

하루동안 적진에 있었는데 사람이 아무렴 쉬어야하지 않겠는가.

"아버지, 만약 그레모리가 역으로 공격을 해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럼 그때는 당연히 응대하는 거지. 륜, 라임. 다친 곳 없지? 그럼 너희가 주축이 되어 상대해라. 그레모리 본체나 분신이 넘어오는게 아니면 상대하기는 편할 거야."

그리고 본체든 분신이든 분명 촉수 괴물에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괴물일지는 모르지만 그냥 뱃속에다가 알을 까고 낳게하는 놈이 아닐까.

'직접 보지 못한게 좀 그러네.'

그레모리가 촉수 괴물로부터 어떤 식으로 빠져나올 지는 나중에 잡아놓고 알아보면 될 터. 일단 나는 그레모리의 던전에 역공을 하러 갈 생각은 없으니, 이제 선택은 그레모리의 몫이었다.

다시 공격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기지를 방어할 것인가.

암묵적 휴전이 될 지 아니면 전투가 이어질지는 그레모리의 선택에 달렸지만, 난 어느쪽이든 환영이었다.

적이 넘어오면 응전, 아니면 휴식.

"주인님, 언제 공격을 하러 가나요?"

"내일. 안드라스가 깨어나는 순간."

"안드라스요? 일부러 데려가려고 하루 기다리시는 건가요?"

"아니지."

나는 부하들의 오해를 정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전력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아니겠냐. 내일, 안드라스가 태어난 뒤에 강화할 수 있는 건 모두 강화해서 들어간다."

그러니 그 때까지는 대기. 나는 통로에서 다시 휴식을 취하며 그레모리의 선택을 기다렸다.

* * *

"아, 스카 트올로지가 그레모리 쪽으로 갔구나...."

쟁탈전을 관전하던 서큐버스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 관리를 하면서 파견을 하기는 했지만, 관장 촉수 괴물 <스카 트올로지>는 여러모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마물 중 하나였다.

"마왕님 직계만 아니었어도 누가 분명 죽였을텐데."

서큐버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저런 추잡하고 더러운 놈이 마왕의 씨앗으로부터 직접 태어난 '1세대'의 마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서큐버스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서큐버스는 자신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그렇게 자기 칭찬을 하고 있니?"

"ㅅ...에스투님?"

서큐버스의 옆에 검은 정장 차림의 여인, 에스투가 나타났다. 그녀는 서큐버스가 수정을 통해 염탐하고 있는 전쟁의 상황을 보다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진짜 저거는...아휴, 더럽네 정말."

"에스투님이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되잖아요."

"내 배 아파 낳은 알이기는 해도 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

서큐버스는 할 말은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에스투는 서큐버스와 어깨동무를 하며 전장을 가리켰다.

"얘, 너는 누가 이길 것 같니?"

"그레모리가 이기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름난 원소술사인데."

"그래? 그럼 난...이 오크."

서큐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레모리 빼고도 전력비가 2:8밖에 안 되는데요?"

"괜찮아. 너 내기할래? 네가 이기면...마왕님 침대 하루 빌려준다."

"진짜요?! 흠흠, 드디어 저도 마왕님의 은총을 받는 건가요. 호호."

서큐버스는 게슴츠레 웃으며 꿈에 부풀었다. 에스투는 서큐버스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서큐버스를 비웃었다.

"너 내기 지면 어쩔 거야?"

"에이, 설마 지겠어요?"

"너 만약에 지면...음...."

에스투는 수정 너머에서 포털 앞에 대기를 하고 있는 돼지 오크를 가리켰다.

"쟤 밑에서 깔려서 일하는 거다?"

"이런 ㅆ...."

서큐버스는 그만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 * *

시간이 되었다.

그레모리는 정찰용 고블린들만 몇 마리 보냈을 뿐 주력 병력들을 보내지 않았다. 내게 분신을 능욕당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분신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아주 편안하고도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언제 적이 나타나나 전전긍긍하며 초조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도 끝.

우리는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게 되었다.

<알림> 마물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 합성 대상 : [안드라스] ★★★★★

코쿤이 열리고, 검은 드레스같은 날개옷을 입은 여인이 눈을 떴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살짝 쳐진 눈꼬리. 합성이라는 의미 그대로 전체적으로 합쳐진듯 하면서도 그 얼굴은 중심이 되었던 하피를 닮아있었다.

내가 하서스 이후로 처음으로 소환한 여성형 마물.

<안드라스> ★★★★★

레벨 : 24 / 100

종족 : 안드라스

나이 : 32세

성별 : 여성

등급 : N++++

출생 : 쿰처쿠의 던전

소속 : 쿰처쿠의 던전

직업 : 시조 안드라스

하피는 안드라스 종의 정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정말 긴 시간이었어, 주인."

껍질을 열고 일어난 하피, 이제는 안드라스라고 불러야할 여인은 손을 가슴위에 올리며 살포시 인사했다. 손톱이 날카로운 것을 제외하면 내가 죽였던 안드라스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많이 기다렸지?"

"어. 설마 7일이나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후후, 아무렴 5성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그게 쉬운 일일까. 그래도 덕분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안드라스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비록 말투는 여전히 평어였지만 그 행동은 기사가 작위를 부여받는 듯 했다. 솔로몬의 던전에서 태어났던 하피는 우리 던전에서 새로운 존재로 환생한만큼, 나에 대한 충성심이 이전보다 강해졌다.

내 덕으로 새롭게 태어날수록, 부하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일어나라."

"그래, 주인. 뭘 하면 될까? 진화 기념으로 어떻게 여기서 할래? 다른 애들 봐도 좋은데. 후훗."

"지금 전쟁중이다."

"...전쟁? 무슨 소리야?"

나는 간략히 상황을 전했다.

"그레모리라는 걸 상대로 이제 공격을 나가야 해. 너는...맨 앞에서 싸우기는 애매하겠어."

5성이 되기는 했지만 레벨 자체는 엄청 낮다. 네 명의 레벨을 합산하고 평균을 낸 것 같은 미묘한 수치였다. 혹 세 개 짜리 낙타 괴물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레벨.

"너는 2군행이야."

"2군?"

"그래. 선봉이 아니라는 얘기지."

나는 내 뒤의 부하들을 가리켰다. 이미 나는 부하들을 크게 3개 분대로 편성했고, 그들 중 진화가 가능한 이들은 모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얘들아! 새치기 하지 말고 기다려라! 하나 하나 다 해줄테니까!"

7일간의 서브 던전 뺑뺑이, 정문으로 침입하는 모험가들, 그리고 그레모리 던전의 부하들과의 전투는 부하들을 정예병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개중에는 다음 단계로 진화가 가능해진 놈들도 있었다.

"너는 소환진 위로 올라가! 다음은 대기! 선 넘어오면 진화 제일 마지막으로 순번 미룬다!"

나는 공장의 프레스기계를 찍듯, 기계적으로 진화 버튼을 연타했다.

타다다다다닥.

소환진에는 연신 하얀 빛이 번쩍거렸다.

* * *

절정에 빠진 상태로 간신히 촉수 괴물로부터 분신을 구해낸, 아니 사실상 분신을 죽여버린 그레모리는 전열을 재정비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밴시들 좀 뽑아둘 걸…."

상대 전력 구성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양방향 포털이 열린 하루의 시간 동안 적은 예상외로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내 몸만 성했어도.... 젠장."

그레모리는 침실에 누워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촉수 괴물의 산란장에 있던 여인들처럼, 그레모리 또한 촉수 괴물의 씨를 잉태하고 말았다.

덕분에 현재, 그레모리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다. 행여나 돼지 오크가 다시 공격해 들어오면 그레모리가 이전처럼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태.

'하지만 아직까지 공격을 하지는 않았어.'

상처가 깊은 걸까?

전력을 가다듬는 걸까?

그도 아니면 그레모리 군의 힘을 보고 겁을 먹은 걸까.

"어느쪽이든 나로서는 시간만 더 벌기만 하면...."

그레모리는 제 안에 뿌려진 씨가 열매로 싹터 태어나는 시각을 확인했다. 앞으로 6시간. 6시간 뒤면 촉수 괴물의 새끼들을 마구잡이로 산란할 것이며, 그들은 모두 새로운 전력이 되어 돼지 오크의 던전을 공략하는 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얼마든지 와라.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아.'

또다시 던전에 개미굴을 파놓는 짓은 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레모리는 임산부처럼 볼록한 배를 잡고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고블린들과 공유된 시야 너머로 포털이 반짝이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후후, 그래, 어디 한 번 와 봐!"

포털의 처음부터 시작하여 심처까지 고블린들과 조카멜들, 그리고 마석을 통해 급히 소환한 마물들이 입구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돼지 오크가 뚫어놓은 길에도 병력들이 빠짐없이 배치되었다.

정원의 한계까지,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전력을 만들어냈다. 창고까지 비웠고, 촉수 괴물에 대한 사용료로 남겨둔 마석까지 써버렸다.

번쩍.

포털이 빛을 뿜어냈고, 그레모리는 전 병력을 향해 소리쳤다.

"진군! 적을 죽-"

꾸오아아아아앙!!

그레모리의 병사들이 무기를 들어올린 순간.

포털 너머에서 고개를 내민 세 마리의 슬라임 드래곤이 꾸오앙하고 울부짖었다.

============================ 작품 후기 ============================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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