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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100화 (100/800)

0010014일차 -------------------------

"일단 적 병력의 구성을 짚자. 메어리, 기록 끝났니?"

"네. 고블린은 ★ 수준이구요, 가고일은 아무래도 ★★ 개체인 것 같아요. 그, 낙타? 아빠가 말한 그 낙타 괴물들은 전부 상이했어요. ★부터 ★★★까지. 나머지 한 두 마리 특이한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주력은 아니었어요. 어쩌다가 하나가 나오는 그런 급조한 전력? 아무래도 고블린, 가고일, 그리고 낙타 괴물이 적의 주요 전력인 것 같아요."

"안드라스 같은 놈이군. 던전의 메인 마물인게 틀림없어."

낙타를 닮은 괴물. 그레모리가 직접 타고 다녔던 개체는 완전히 낙타의 모습을 닮아있었지만, 등급이 낮은 개체는 분명 2족 보행을 하는 형태였다.

"뭐 특이한 점은 없었어?"

"등에 혹이 달려있는 갯수? 고등급의 개체일수록 등에 혹이 늘어났어요. 딱 별의 갯수만큼. 그것말고는 따로 없었어요."

"한 눈에 보기는 쉽지만 정면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이건가. 끙."

하이구울들도 레벨이 제법 높아졌지만, 역시 3성짜리 낙타 괴물들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럴 때면 항상 나나 륜, 라임이 직접 나서야 처리가 가능했다.

'그렇다고 내가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륜이나 라임 선에서는 힘들지 않게 상대가 가능했지만, 3성 낙타가 두 마리나 동시에 달려들면 둘 다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낙타들은 전부 수컷이었고, 행여나 륜이나 라임이 잡히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자명했다.

"그것 말고는 위험한 거 없지?"

"네. 그레모리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는 하지만, 그레모리 말고는 넘어온 적들의 전력은 파악이 끝났어요."

"그럼 됐다."

부하들이 위험하다면 자연히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군 전력은 현재 강해지기는 했지만 적의 던전을 공략하러 가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그레모리 던전을 정찰할 최소 인원을 놔두고, 나머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슬라임들은 각 통로 천장에서 대기. 던전에 들어오는 모험가들을 상대한다. 각 개체별로 이길 수 있겠다 싶으면 사거리로 모여서 다함께 기습해라."

"구울들은 입구쪽 사거리에서 대기. 사냥감이 들어온 순간 바로 공동으로 들어와서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공동에 들어온 순간 위에서 덮치도록."

"하피들은.... 어휴, 됐다. 몸조리 잘 해. 막사는 위험하니까 일단 내가 돌아올 때 까지는 침대에서 지내고, 다른 부하들은 하피들 다치지 않도록 공동에서 안전하게 지켜라."

"에일라, 메어리, 하르퓨이어, 라인은 던전을 지켜라. 행여나 밖에서 모험가가 오면 너희가 대응해. 죽여도 좋고, 포로로 살려도 좋아. 에일라, 메어리 너희 둘에게 맡기마."

대충 부하들에 대한 지시가 완료되었다. 몇몇 부하들은 불만은 조금 있어보이기는 했지만-자기들도 따라가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과감히 30레벨 이하로는 커트했다-군말없이 따랐다.

그리고 내가 철검을 빼들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 메어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아빠, 아더는요?"

"...걔는, 하아."

아더 이야기에 나는 절로 골치가 아파왔다. 아더가 잘못하지는 않았지만, 아더는 명백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니, 잘못이 있다. 나를 닮아서 잘생겼다는 것.

"...부인들이나 잘 챙기라고 해."

"아빠. 부인들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요? 따지고 보면 자는 사이에 당한 건데."

"지가 책임지겠다고 하잖냐. 냅둬."

현재, 라스촌의 주민들인 아더와 여자 사냥꾼들은 안드라스의 검은 깃털로 만든 깃털 요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릴리는 졸지에 아더와 함께 그들의 수발을 들게 되었고, 다른 네 명의 여자 사냥꾼들은 배가 볼록해진 상태였다.

"아들놈만 아니었으면 개 쌍욕을 퍼붓는 건데."

내가 열심히 낙타들과 씨름을 하는 동안, 네 여자 사냥꾼들은 결국 아더를 덮쳤다. 아무리 강한 오크라고 하더라도 레벨에서 밀리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고, 결국 무장이 해제된 아더는 자신에게 있는 성검으로 네 사냥꾼들을 도륙했다.

"근데 아빠.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라스촌 사람들은 부하나 포로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시스템의 백업도 없지 않아요?"

"그래. 그렇지. 근데 다른 방법이 있을 줄 누가 알았냐."

시스템에 의한 임신이 아니라, 진짜 임신이었다. 덕분에 나를 바라보는 륜과 에일라의 표정이 여러모로 대단해졌다.

"원래 오크는 그렇게 임신과 출산이 빠른 건가요? 아니면 던전의 영향? 아더에게 솔로몬의 시스템이 일을 한 걸까요?"

"낸들아냐. 벌써부터 배 부른 거 봐서는 얼마 안 가서 낳겠지. 이참에 원탁의 기사단이나 만들어보지 뭐. 메어리야, 네가 멀린하면 되겠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조카들 잘 보살피라고. 쯧. 애 낳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할아버지 되게 생겼네. 끙."

나는 내 무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몸을 풀었다. 노획한 허리띠 옆에는 철검이, 그리고 등에는 끝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어진 나무 지팡이가 걸려있었다. 이걸로 무장은 충분했다.

"던전을 잘 부탁한다. 륜아, 그럼 가자."

나는 륜에게 팔을 내밀었다. 륜은 예전처럼 내 어깨에 걸터앉...지는 못했고, 대신 내 옆구리에 딱 달라붙어 몸을 밀착했다. 메어리가 삐딱한 얼굴로 나와 륜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면 위험하지 않아요? 떨어져서 가시는게 낫지 않겠어요?"

"여차하면 내가 공격을 쳐내는게 빠르거든."

내가 륜을 옆에 끌어안고 반대쪽 손에 든 검으로 보호하는 형태. 흡사 륜을 인질로 삼은 모습이나 다름없었지만, 내가 륜을 보호하면서 륜이 사격을 하기에는 딱 적당한 자세였다.

"륜 엄마가 뒤에서 사격하면 되잖아요?"

"...메어리, 그건 어려운 일이야. 나한테는."

륜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쓰게 웃었다. 륜을 괜히 떨어뜨려놓았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내 옆에 딱 붙여놓는게 안전했다.

륜도, 나도.

륜을 후방에 배치하니 내 몸에 바람구멍이 꿰뚫릴 것 같아서 낸 고육지책이었다. 륜도 나름 마음에 들어하고, 나도 나름 만족하는 자세였다. 결국 메어리가 포기를 했다.

"조심하세요. 적 던전이 어떨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 내가 이래보여도 조심성 하나는 기깔나는 사람이다. 에일라, 너도 던전을 잘 지켜다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에일라는 고개를 숙이며 자책했다. 아직 에일라의 레벨은 2성의 최대 레벨인 35에도 이르지 못했다. 메어리와 마찬가지로 가장 적극적으로 침투하기를 바랐지만, 에일라는 그 최소 기준인 3성 낙타를 1:1로 이기지 못했다.

3성 낙타를 1:1로 쓰러뜨린 건 우리 던전에서 나를 포함해 고작 세 명이었다.

"걱정마라. 너도 언젠가 강해져서 제 몫을 하는 날이 올테니."

"...예. 아무쪼록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륜, 주인님을 부탁한다. ...너도."

에일라의 시선이 륜의 검은 날개옷 아래를 훑었다. 나와 륜은 에일라를 향해 씩 웃었고, 우리는 공동에서 몸을 돌려 걸어가 포탈의 앞에 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포탈에서 나오는 적은 없었다.

우우웅!

붉은 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짙게 반짝이고 있었다. 시스템이 알려주는 시각은 불과 3분이 채 남지 않았고,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륜과 이야기를 나눴다.

"륜아. 잊지마라. 포탈 열리고 바로 뭘 해야하는지."

"네. 그런데 진짜로 될까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나는 륜의 어깨를 두어번 크게 주물렀다. 륜을 보호하듯 올려진 손은 서서히 아래를 향해 내려갔고, 륜은 내 나쁜 손길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주인님. 왜 그레모리랑 싸우려고 결심하신 거예요?"

"여자여서."

"...진짜 그런 이유예요?"

"당연하지."

나는 륜의 가슴을 조물딱거리며 륜에게 씩 웃었다.

"근데 남자였어도, 성별이 없었어도 싸웠을 거다. 내 던전이 '안드라스' 던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상, 앞으로 이런 일은 자주 있을 거거든."

그레모리는 안드라스 던전을 공략하려다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기존에 안드라스 던전을 공략하려고 무언가 수작을 부렸던 건지, 아니면 우리 던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안드라스나 차원석이 뭔가 영향을 미친 건지는 모른다.

결국 알려면 직접 잡아서 정보를 캐내어야 할 일.

"안드라스 때는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정보를 얻지 못했잖냐. 그러니까 이제 저걸 잡아서 정보를 얻는 거지. 괜찮아. 안드라스가 63위였고 저게 56위거든? 상대가 나와 똑같은 오크라도 싸웠을 거다."

"흐응, 그러시구나. 그런데 사실 여자여서 더 좋은 거죠?"

"당연하지. 륜아. 잘 들어라. 앞으로 어떤 던전 주인이 나오든...."

파아앗.

붉은 빛이 녹색 빛으로 변했다. 나는 철검을 들어올리며 크게 심호흡했다.

"일단 여성체면 내가 먼저 먹고 나서 죽일지 말지 판단할 거다. 무조건 생포하는 거야. 알겠지?"

"네, 네. 그럼 주인님."

륜은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포탈을 향해 활을 들어올렸다.

"제가 그레모리 잡아서 바치면 뭐해주실 거예요?"

"...음, 글쎄. 크림파이?"

륜은 황당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가, 전방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파바방.

바람 화살이 포탈 너머로 날아갔다. 그리고 륜은 나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고작 크림 파이...."

"......직접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아무래도 은어는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륜을 희롱하던 손을 떼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격'에 집중할 때였다.

"들어가자."

우리는 포탈 너머로 발을 크게 내딛었다.

* * *

<그 시각, 그레모리의 던전 심처.>

쿰처쿠의 던전을 안드라스의 던전으로 착각하고 공격을 시도했던 그레모리는 예상 외의 전력과 존재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젠장, 할파스 새끼, 나를 속였어!!"

그레모리는 벽을 쾅쾅 발로 차며 성을 냈다. 그녀의 부하들은 주인의 분노에 다리를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

"새대가리들만 있다며! 일자형 던전이라며! 근데 왠 돼지 새끼가 진을 치고 있냐고!!"

38위 마조(魔鳥) 할파스로부터 전해들은 정보에 따르면, 안드라스의 던전에는 자신의 저주가 서린 하급 이하 마물들 밖에 없다고 했다.

"안드라스만 낳아서 본인은 약할 거라고? 애초에 안드라스가 없잖아!!"

할파스의 정보는 시작부터 틀려먹었다. 그 정보에 따라 마음놓고 안드라스의 던전을 침공한 그레모리는 여러모로 부끄러웠다.

"나보다 낮은 순위의 던전에 승부를 먼저 걸었다가 무승부라도 났다는 걸 알면.... 으으, 쪽팔려서 못 살아."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63위의 던전에 승부를 걸어넣고 심처에 도달하기는 커녕 던전의 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돼지 새끼는 어떻게 하이 엘프를 부하로 손에 넣은 거지?'

부하들의 눈으로 본 적의 구성은 조잡하면서도 다양했다. 심지어 인간들마저 노예병으로 부리고 있었다. 전력적으로 그레모리의 병사들보다 훨씬 약했지만, 던전 주인이 직접 나서서 싸워대니 부하들로는 이길 수 없었다.

"으으, 내가 직접 갈 수도 없잖아...."

솔로몬은 던전 쟁탈전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상위 던전의 주인이 하위 던전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유린하는 건 시스템적으로 막아놓았다.

직접 입구를 찾아서 들어가는게 아닌 이상, 안드라스보다 순위가 높은 그레모리는 포탈을 통해 적의 던전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 돼지 새끼가 직접 넘어 올 리도 없고."

그래서 적 던전의 주인을 잡으려면 직접 그 위치를 찾거나, 오크가 역방향 포탈로 직접 넘어왔을 때 죽이는 것이 아니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으으, 짜증나. 오기만 하면 바로 죽여버릴 수 있는데."

그레모리는 손에 든 마법서를 꽉 움켜쥐었다. 자신을 상대로 음란한 모욕을 한 돼지의 목을 조르는 듯 손등에 힘줄이 생겼다.

'설마 바로 오지는 않겠지.'

미친 자가 아니라면 그 정도 상식은 있을 것이다. 공수가 전환되는 단 하루, 퇴각도 불가능한 일방향 포탈로 적진에 넘어온다니. 그건 누가봐도 미친 짓이었다.

"근데 미친 놈 맞잖아?"

미친 놈이 맞으니까 어쩌면 진짜로 넘어올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입구에 고블린들을 배치했다. 언제 넘어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후우, 목욕이나 좀 해야겠어. 너무 열을 올렸더니 열이 다 나네."

그리고 그레모리가 욕탕으로 발을 옮기려던 시점.

<알림> 포탈의 방향이 변했습니다.

<경고>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역시 미친 놈이었어."

그레모리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법서를 펼쳤다. 그레모리를 중심으로 붉은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어떤 놈을 정찰대로 보냈을까? 후후후."

그레모리는 고블린과 시야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출렁, 출렁.

"꺄아아악!!"

녹색의 거대한 물건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77편으로 이용권만 얻어서 보내려 했던 작품이 어느새 100화까지...;;

아무튼 100화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비만 오크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라스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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