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28일차 -------------------------
서브 던전 보스룸 공략은 포기했다.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고, 나는 부하들을 이끌고 공동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좋은 날이기에, 나는 던전의 모든 부하들을 한가운데에 모았다.
"흠흠, 모두 주목!"
나는 침대 위에 올라서 좌중을 훑었다.
부하로 영입한 이들, 마석을 통해 소환한 이들, 부화를 통해 태어난 이들, 그리고 나의 아들딸까지 전부 41명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던전의 주인은 정원에 들어가지 않음에도 41이라는 수치는 살짝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무렴 1명 적은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이 자리에 모두를 모은 건 우리 던전이 드디어 D등급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아빠, 질문있어요."
메어리가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던전의 시스템에 가장 궁금해하는 메어리다웠다. 다른 부하가 그랬다면 바로 무시를 하고 내 말을 이었겠지만, 나는 메어리가 한 질문이니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냐?"
"던전 등급이 달라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요?"
"많은게 달라지지."
당장 만들 수 있는 시설도 늘어나고, 던전의 정원도 늘어나게 된다. 그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요?"
"직접 눈으로 봐야 알지. 나도 몰라. 나도 던전 주인이 된 건 처음이거든."
"처음이시라고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왜 던전을 키우려는지 얘기해주마."
나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던전의 노예병으로 살아온 내가 던전의 주인으로 되는 과정 전체를 설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에일라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다. 사실 바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에일라가 상당히 꺼려하는 눈치라서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목표는 이거다. '타도 포르네우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년에게 복수를 하는 거지."
"포르네우스가 30위의 던전 주인이라고 하셨죠?"
"안드라스는 63위 던전이었어요. 주인님이 일반 병사로 있었을 정도면 상당히 강력한 던전이었을텐데...."
"아, 나 근데 거기서도 일반병이긴 했지만 스펙은 간부급 이상이었거든?"
던전의 네임드인 부족장을 1:1로 잡았으니,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적절한 무기는 없지만 대신 문신의 힘이 생겼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내 개인의 힘은 대동소이 할 터.
"하지만 나 혼자서는 복수하기는 무리다. 애초에 내가 강했으면 포르네우스에게 바로 반역을 했겠지. 그러니까 너희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나는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톡까놓고 말해서 마왕의 던전을 전부 다 잡아먹을 거다!"
"와."
종마 사냥꾼들이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의외로 다른 이들은 별 감흥이 없는 듯 했다.
"그, 주인님께서는 마물 아니십니까? 그런데 마왕군과 척을 지신다고요?"
"마왕군은 어차피 솔로몬의 힘 아래에 부하로 들어간 놈들일 뿐이다! 그럼 우리가 솔로몬 이상으로 강해지면 되지."
"하지만 아빠는 솔로몬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럼 언젠가 저희도 솔로몬의 아래에 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흐흐, 모종의 커넥션이 있으니 걱정마라."
에스투에게 대놓고 반역을 시사했음에도 그녀는 오히려 내 반역을 종용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행동이 어떻게 흘러가든 눈을 감아주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오늘은 다함께 변화를 맞이하는 거다, 모두 카운트다운!"
이제 시간이 되었다. 나는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3!!"
아무도 따라하지 않았다.
"2!!!!"
역시 아무도 따라하지 않았다. 나는 머쓱해져서 손을 내렸다.
"니들 카운트 다운 모르냐?"
"네."
"......."
" <던전 등급 상승>
# E등급 -> D등급
# 예상 시간 : 00분 00초."
구구구.
나의 공허한 외침이 울림과 동시에, 던전 전체가 지진이 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천장에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하피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개를 머리 위로 올렸다. 나는 침대에서 번쩍 뛰어내렸다.
"모두 허리 숙여!!"
모든 부하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낮췄고, 나는 륜과 에일라에게 달려가 둘을 끌어안고 몸을 낮췄다.
구구구궁!
던전이 변하기 시작했다. 허름하고 낡은 벽과 천장이 리모델링이라도 한듯 반듯한 형태로 바뀌었다.
"주인님, 저기...!"
륜은 소환 시설을 가리켰다. 중급 마석에서 막대한 양의 보랏빛 마력이 뿜어져 나왔고, 그 마력은 던전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식으로 된다고?"
나는 기가차면서도 고마웠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허리를 반듯이 세웠다.
"주인님, 위험합니다!"
"아냐, 아냐. 괜찮아."
여전히 자잘한 떨림은 계속되고 있지만, 공동이 울리던 것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바닥을 손으로 쓸었고, 그 촉감은 이전보다 훨씬 맨들맨들하고 보드라웠다.
'비포장도로라도 된 것 같네.'
이전에는 그저 진흙으로 된 흙길이었다면, 지금은 던전 전체가 오랫동안 다져진 보드라운 흙길이 되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스크린이 떠올랐다.
<알림> 던전의 등급이 올라갔습니다!
# 던전 등급 : E -> D
# 등급 상승 보상 : 마물소환서 2개, 마물강화권 5개, 중급 마석 5개.
"어우, 대박 터졌네."
내 눈앞에 나무로 된 보물상자가 나타났다. 이전에는 그냥 허름한 보급상자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이른바 미믹이라도 나올 법한 전통적인 디자인이 되었다.
"음.... 무슨 원리일까요?"
"궁금하면 나중에 솔로몬 만날 수 있을만큼 강해지거라, 메어리야."
나는 상자에서 던전 등급 상승에따른 보상을 꺼냈다. 오늘까지 계속 마려워왔던 가챠를 참았던 만큼, 마침 딱 10개의 마물소환서가 생겼다.
"거기에 마물강화권도 6개니까...."
나는 부하들을 쭉 둘러봤다. 구울들은 아직 멀었지만, 슬라임(★)들은 어느덧 만렙에 이른 놈들도 있었다.
'일단 아끼자.'
섣불리 사용하면 분명 헛되게 사용하게 될 지 모른다. 시스템의 허점을 생각해보면 분명 D등급에서는 강화권이 주로 사용될만한 사용처가 있을 것이다.
'중급 마석 5개도 마찬가지.'
"라임아, 일단 이거 다 모아둬라."
라임은 보상으로 나온 물건들을 제 몸속에 집어넣었다. 중급 마석을 넣을 때는 여러모로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당연히 내 허락도 없이 마석을 먹어치우는 미친 짓은 벌이지 않았다.
"일단 임무 하달!"
나는 부하들을 구분하여 짝을 지었다.
네임드 한 명, 슬라임 하나, 구울 하나, 하피 하나. 부족하거나 중복되는 곳에는 종마 사냥꾼을 투입하는 식으로 만들었고, 41명의 부하들을 총 10개의 분대로 나누었다.
"그럼 지금부터 던전이 어떻게 변했는지 탐색하고 온다. 각자 지정한 위치로 오다니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오도록! 특히 아더, 너는 당장 밖에 나가서 사냥꾼들을 안심시켜라!"
"예!"
내 지시와 함께 부하들이 전부 빠르게 흩어졌다. 나는 지성이 있는 네임드들에게 각자 위치를 맡겼고, 2개 분대를 다시 1팀으로 묶어 교차 검증을 하도록 지시했다.
다행히 다들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던전의 앞구역은 3개 팀이 확인을, 그리고 던전의 뒷구역은 2개 팀이 확인을 했다.
'설마 등급이 올라갔다고 크게 바뀐 건 없겠지.'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기를.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공동 한가운데에서 던전의 변화를 살폈다.
"후, 역시 바뀐 건 하나도 없네."
"대, 대단하라스."
갑자기 포로 감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에 라스를 붙이는 걸 보아하니, 감옥에 가둬놓은 안드라스가 눈을 반짝이며 무릎까지 꿇고 있었다.
"던전이 이렇게 변하는 모습은 처음본다라스! 당신이 내 주인님을 이긴 건 잘 알고있다라스! 부디 나를 부하로 들여달라스!"
"...그, 끝에 라스는 좀 안 하면 안되겠냐."
"이건 저주라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스...."
안드라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저주라는 말에 잠깐 솔깃했고, 무언가 내막이 있음을 직감했다.
"저주에 관해서는 나중에 들을란다."
"왜, 왜 그러냐라스! 나는 어떤 저주인지 알고 있다라스!"
"아니, 너 진화시켜주고 나서 듣게."
안드라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역시 다른 던전 출신의 마물답게, 내가 진화를 시켜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금방 깨달은 듯 했다.
"충성을 다하겠다라스. 원하면 알까지 낳겠다라스."
"또 벽에다가 몸 박고 허리 흔들면서?"
"......."
안드라스는 침묵했다. 그리고 게슴츠레 눈을 뜨며 몸을 베베 꼬았다.
"주, 주인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스."
"너, 꼭 진화시켜야겠구나."
주로 나의 시각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근데 지금은 보류. 정원이 꽉 찼거든. 아, 근데 너희 던전은 어떻게 정원을 늘렸냐?"
"우리 던전에는 정원이 없다라스. 주인님은 화단 자체를 만드실 생각이 없으셨라스."
"......."
진화시키면 조금은 똑똑해지길 바랄 뿐. 나는 안드라스를 부하로 영입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지금은 정원 초과니까 추후에-, 하나 둘 돌아오는 분대원들의 정보를 하나로 취합했다.
륜 왈.
"던전 통로 구조는 그대로였어요! 그런데 오돌토돌했던 곳이나 바닥은 잘 닦여서 훨씬 다니기 편했어요."
리모델링 공사 비용 개꿀.
아더 왈.
"던전 입구도 큰 변화는 없었다고 합니다. 지진은 던전 내부에서만 일어났고, 밖에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아, 그, 입구가 무너져내렸던 곳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변했습니다. 시간이 되돌아가듯 원래대로 원상복구되었다고 하던게 릴리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원상복구 비용 개꿀.
라임 왈.
"라임이 말로는 천장의 환풍구도 그대로 있다고 해요. 환풍구쪽도 자기가 만들어 놓았던 때랑 크게 달라진 곳이 없었대요."
시스템도 라임의 가라 공사는 차마 손을 대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애초에 환풍구 자체가 시스템의 외적 요인이거나.
메어리 왈.
"던전 뒷 통로도 잘 닦여있던 걸요? 진짜 벽을 깎았던 작업을 했던게 무색할 정도로 바닥과 벽이 반듯하게 잘 다져져 있었어요. 심지어 강으로 내려가던 비탈길 마저도. 이럴 줄 알았으면 던전 등급 올라가기 전에 비탈길 다 만들어 두는 건데."
그건 좀 아쉽다. 현재 딱 절반 정도이니, 나머지 절반의 길은 슬라임들이 먹어치운 오돌토돌한 길이 될 게 뻔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일라 왈.
"던전의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했습니다."
"뭐...라고...!"
진심으로 놀랐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라니. 나는 에일라에게 다시 한 번 더 물었고, 에일라를 데리고 해당 위치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차원문을 설치했던 곳의 반대편 통로에 떡하니 자리잡은 계단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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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나는 침이 꿀꺽 삼켜졌고, 부하들은 내 뒤에서 지하 던전의 존재에 대해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뭔가가 올라오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 엄청 찝찝한 거 아니냐."
갑자기 지하에서 바알이 튀어나오면 우리는 전멸이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것 아닌가. 나는 내가 던전 등급을 올려놓고도 저 아래가 빈집인지 아니면 슬라임들이 넘쳐나는지 긴가민가 했다.
"...안 되겠다, 아더! 구울들 데리고 통나무 가져와. 일단 여기 막아야겠다."
"폐쇄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일단 해야할 거 하고."
내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경계를 선 동안, 다른 부하들이 황급히 통나무를 가져왔다. 나는 통나무를 기둥처럼 세워 가로로 늘여뜰였고, 빈 곳에 슬라임 드래곤의 체액을 덕지덕지 처발랐다.
"후우."
약 30분 가까이 이루어진 작업끝에 통로를 폐쇄하는데 성공했다. 땀이 뻘뻘 흘렀지만 그래도 마음의 안정이 되었다.
"주인님, 굳이 폐쇄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혹시나 애들이 호기심 넘쳐서 들어갈 수 있잖아."
나는 라임의 뒤에 숨은 라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어영부영 뒷걸음질치는 메어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니들 특히 조심해라. 알겠지?"
"네...."
꾸륵.
둘은 제발 저린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나는 공동을 가리키며 마물들을 이끌었다.
"그러면 다들 공동으로 돌아가자. 리모델링 기념으로 한 판 해야지."
"뭘 말씀하시는 거예요?"
"뭐냐니. 이런 기쁜 날에 그걸 안 할 수 없지."
나는 직접 슬라임 드래곤의 체액 덩어리를 집어들고 공동을 가리켰다.
"축제다."
모든 일은 일단 내일로 미루자.
"오늘 창고 다 푼다! 슬라임 드래곤 점액으로 먹고 마시고 죽자!"
"어, 주인님? 그거 먹으면 몸이...."
"그래!"
나는 점액을 한 덩어리 치켜들며 소리쳤다.
"적셔!!"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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