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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91화 (91/800)

000918일차 -------------------------

에일라와 하서스는 상당히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제법 합이 잘 맞았다.

하서스가 앞에서 어그로를 끌고 안드라스와 드잡이질을 하는 동안, 에일라가 옆구리에서 치고나가며 철검을 찔러넣었다. 목덜미나 심장 등 약점을 찌르는 검기는 매섭기 짝이 없었다. 역시 5성 다웠다.

"26레벨이지만."

"주인님, 들으면 상처입을 거예요."

"들었을 걸? 그래도 얘기는 계속 해줘야 해. 그래야 자기 레벨 올라간 지 안다고."

레벨이라는 것은 결국 솔로몬의 시스템에 의한 지표였지만, 던전의 일원이 된 이들에게는 큰 의혹이 없어보였다.

"솔로몬 님께서 기준을 제시해주셨잖아. 나는 75, 너희 둘을 35 전후, 에일라는 26. 불만있으면 솔로몬님한테 가서 따져야지. 에일라야, 너 종마 사냥꾼들 상대로 이길 수 있냐?"

"......."

에일라는 얼굴을 붉히며 안드라스의 허벅지에 검을 찔러넣었다. 정곡이 찔렸는지 엄한 곳에 화풀이를 했고,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적의 수준도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잖아."

"그렇긴 하죠."

각자 객관적인 강함의 수준에 대해 확연히 알 수 있는 수치인 만큼, 하서스나 에일라도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며 안드라스와 싸웠다.

가령, 22레벨까지는 하서스가 맞상대를 할 수 있으니 1:1로 싸운다거나.

가령, 24레벨까지는 하서스가 맞상대가 안되니 에일라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가령, 26레벨부터는 하서스와 에일라가 힘을 합하여 전력으로 싸워야 승리를 점친다거나. 둘의 합은 점점 더 잘 맞아떨어졌고, 결국 28레벨의 안드라스들까지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그 합도 레벨적 한계에 봉착했다.

끼에에엑!!

미친 안드라스가 손톱을 세우고 팽이처럼 휠윈드를 돌기 시작했다.

하서스와 에일라가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고, 그들의 손톱과 검으로는 안드라스의 손톱 휠윈드를 막을 힘이 없었다.

"크윽?!"

크르륵....

하서스는 바닥에 넘어진 에일라의 앞에 서서 안드라스의 손톱 휠윈드를 막아냈다. 팔의 살점이 나가떨어졌지만, 덕분에 에일라는 무사할 수 있었다.

"주인님."

드디어 륜이 앞으로 나섰다.

20레벨 대의 둘이 상대하기 버거우니, 30레벨대인 륜이 나서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나는 륜이 침대에서 무리를 한 것도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륜아, 마음은 알겠는데 너 활 쏘지마라. 오늘은 그냥 구경하라고 데려온 거야."

"애들 맞출까봐 그러세요? 걱정마세요."

륜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활을 꺼내들었다. 이전보다 검은빛이 반짝이는 활은 2성 때보다 더 광택이 흘렀고, 륜은 정자세로 활을 들어올리며 시위를 당겼다.

'활은 더 강해졌지만, 과연 진화했다고 궁술이 달라질까?'

그리고 그런 내 걱정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검면으로 손톱을 튕겨내던 에일라는 크게 뒤로 물러서며 우리쪽을 향해 소리쳤다.

"쏘, 쏘지마라! 륜! 우리가 이길 수 있다!"

크르르륵!

바닥을 구르던 하서스도 손사레를 치며 지원을 거부했다. 둘은 명백히 륜의 궁술을 의심하고 있었다.

"좀 믿어봐요!"

하지만 륜은 자신감을 확실히 내비쳤다.

나는 그래도 딱 한 번만 믿어보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 그만큼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터.

"할 수 있어요!"

륜은 시위를 당긴 채 나를 빤히 바라보며 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선코스니까 설마 못 맞추지는 않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륜은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시위를 놓았다. 짧은 조준이었고, 그 사격 자세는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를 방불케했다.

파--앙!!

파공성과 함께 바람 화살이 안드라스를 꿰뚫었다. 륜의 화살은 정확히 안드라스의 약점을 꿰뚫었고, 안드라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벽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어때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잘 했죠?"

"...륜아."

나는 안드라스가 피를 흘리고 쓰러진 부위를 가리켰다.

"일부러 쏜 거냐?"

"......."

륜은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차라리 륜이 오발로 맞췄기를 바랐다. 일부러 저곳을 맞춰서 쐈다면 진화하면서 륜은 상당히 삐뚤어진 존재가 되었다는 방증이 되어버린다.

"어, 음, 약점이니까 쏴도 되지 않을까요?"

세상에. 륜은 노리고 쏴버렸다. 나는 속으로 벽에 부리를 처박은 안드라스에게 애도를 표했다.

'우리 애가 좀 거칠어서 미안하다. 근데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씨는 이제 더 안뿌리고 가도 되지 않겠냐.'

륜이 쏜 바람 화살은 더욱 파괴력이 강해졌다. 범위 자체도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덕분에, 안드라스는 한 쪽 구슬을 완벽하게 잃었다. 안드라스는 구슬이 깨진 충격으로 기절했고, 하서스와 에일라가 조심스레 다가가 확인 사살을 했다.

꾸르륵.

그리고 라임이 앞으로 다가가 깃털과 마석을 회수했다. 안드라스의 사체는 어떻게 활용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륜아, 너 일부러 맞춰서 쏜 거야?"

"아, 아뇨. 그냥 마음이 급해서 아무렇게나 쏜 건데...."

륜은 시선을 피했다. 나는 검증을 위해 일행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 저거 한 번 노려봐."

약 100걸음 정도 되는 거리에 안드라스 한 마리가 가만히 멈춰서서 천장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쟤 쏴죽이면 돼요?"

"그래."

남자 안드라스를 잡았으니 그 다음은 여자 안드라스인게 당연했다. 멀리서봐도 그 몸매가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고, 가슴은 륜보다 훨씬 더 컸-

파---앙!!

바람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안드라스는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하서스와 에일라가 급히 달려가 안드라스를 확인 사살했다.

"......이게 일부러가 아니라고?"

나는 안드라스의 사체를 확인했다. 아까전에는 구슬 한 쪽을 잃었더니, 이번에는 가슴 한 쪽이 사라졌다. 륜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바람구멍을 가리켰다.

"심장을 쏜 거예요!"

"그, 그래. 심장을 날리긴 했지."

덧붙여서 유방이랑 같이.

나는 정말로 륜이 일부러 맞춰서 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세계의 악의가 섞인 사격술인지 테스트를 위해 몇 차례 테스트를 했다.

피융, 퓽퓽.

앞서 죽은 30레벨 두 마리부터 시작하여, 33레벨까지 무려 여덟 마리를 륜이 활로 사살했다.

그리고 우리는 륜에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격 위치를 지시했고, 륜은 명사수처럼 해당 위치에 바람 구멍을 만들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보세요! 제가 일부러 그런 곳에다가 쏘는 게 아니라니까요!"

륜 왈, 활 시위를 당기면 뭔가 붉은 점 같은 곳이 느껴지고 그곳을 조준하는 거라더라. 에일라는 그걸 두고 약점이라고 칭했다.

"일정 경지에 도달한 기사들에게서도 흔히 이야기가 나오는 내용입니다. 세상이 느리게 되는 가운데, 어떤 곳을 찌르거나 베면 상대가 쓰러질 지 훤히 보인다고 하더군요."

"네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

"...네! 이제 곧 경험하게 될 겁니다! 주인님 아래에서 강해져서요!"

에일라는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나름 고레벨의 적을 하서스와 함께 상대하면서 27레벨로 오르기는했다. 하서스는 22까지 올랐지만.

"그래서 륜아, 이제 그거 자유자재로 쓸 수 있냐?"

"조금 집중하면 바로바로 쏠 수 있어요."

륜은 드디어 조준사격을 터득했다. 겸사겸사 약점까지 파악하는 기술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위험한 사격이었다. 아무리 약점을 찌르기 좋다고는 해도, 그 저격 위치가 어찌 일부는 영 좋지 못한 곳들을 저격하는 건 여러모로 큰 문제가 있었다.

약점은 약점이긴 한데, 이왕이면 곱게 보내주는 건 어떨까.

"륜아, 너 약점 여러 개 있는데 일부러 거기다가 쏘는 건 아니지?"

"아닌데요. 주인님까지 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륜은 제자리에 멈춰섰다. 마침 반대편에는 34레벨의 남자로 추정되는 안드라스가 학다리로 서있었다.

"보세요. 제가 목에 바람구멍을 만들테니까."

륜은 활 시위를 당겼다. 줄이 당겨지는 소리에도 안드라스는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흥."

륜은 시위를 놓았고, 바람 화살은 직선 궤적을 그리며 안드라스의 목 정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일부러는 아니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리고 바람화살이 닿기 직전, 안드라스가 갑자기 땅을 구르며 뛰어올랐다.

끼요오오옷!!

두 팔을 벌리며 무릎을 치켜올리더라. 마치 자신이 진짜 학이라도 되는 양, 안드라스는 무려 1.5m나 뛰어올라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하지만, 그 바람에.

피융.

목을 노리고 날아가던 바람화살이 또 영 좋지 못한 곳을 꿰뚫고 날아갔다. 안드라스의 고간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꿰뚫렸고, 안드라스는 학다리를 잡은 자세 그대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끼요오옷....

풀썩.

안드라스는 지지대가 망가진 허수아비처럼 발을 디디자마자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안드라스의 각력이 상당하다는 것 이상으로 깜짝 놀랐다.

"아니, 굳이, 왜...."

그냥 가만히 달려오리기라도 했으면 목만 꿰뚫리고 말았을텐데. 륜은 소태씹은 얼굴로 활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일부러 그런 거 아녜요."

그 누구도 아무 말도 안했다. 륜은 활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고, 잠시 통로에는 라임이 안드라스에게서 재료를 파밍하는 소리만 울렸다.

* * *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나는 던전의 등급 상승이 완료되는 시간을 확인했다.

"2시간 정도면 이제 보스룸 돌고 던전으로 돌아가면 되겠다."

"이번 보스는 어떤 존재입니까? 슬라임 던전은 슬라임 드래곤이었습니다만."

"아인 안드라스 두 마리. 아, 륜 말고는 본 적이 없구나."

던전에 잡아온 안드라스도 성인 안드라스지 아인은 아니었다. 성인과 아인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 만큼, 직접 보는게 빨랐다.

"이제 앞에 다섯 마리 나온다."

보스룸 바로 앞. 안드라스 다섯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던전에 진입했을 때와는 달리, 안드라스들은 전부 젖가슴을 흔들거리며 날뛰는 여성체들이었다.

"어우."

"주인님, 눈은 왜 돌리십니까?"

"저런 건 보기 좀 그렇지."

목 아래만 두고 본다면 모를까, 새대가리들이 약에 취한 것처럼 미쳐 날뛰는 모습은 분명 보기 좋지 않았다. 그에 륜이 앞으로 나섰다.

"륜아, 너 저격하다가 괜히 어그로 끄는-"

파바바바박!

륜이 조준도 없이 화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눈먼 화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수가 상당하니, 안드라스들의 몸 곳곳에 생채기가 났다.

끼에에에엑!!

하나의 안드라스가 심장이 날아간 뒤, 다른 안드라스들은 괴성을 지르며 화살을 피해 반대로 몸을 돌려 도주했다. 륜이 그 뒤를 쫓으려고 했지만, 나는 륜을 막아세웠다.

"전투 끝났다."

"네?"

"가보면 알아."

나는 일행을 데리고 보스룸의 앞으로 가는 문까지 다가갔다. 역시 내 예상대로 안드라스들은 던전 문앞에서 기차놀이를 하듯 서로의 등 뒤에 부리를 박은 채로 죽어있었다.

"......좀 그렇네요."

"애들이 머리가 좀 나쁘더라고."

"이거 이러다가 나중에는 타워 쉴드만 세우고 전진하면 다 잡겠습니다."

에일라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에일라의 생각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너 나중에 그렇게 한 번 해보자."

"하지만 어디서 타워쉴드를 구하겠습니까?"

"어디선가는 얻겠지.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보스룸부터 열자."

나는 보스룸의 문을 열기 전, 부하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로 들어오지 마라. 두 마리가 튀어나오는데, 레벨이 엄청 강하거든? 위험하니까 들어오지 마."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다. 적어도 레벨 50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할테니까, 앞으로 딱 25마리까지만 잡고 퇴각해."

보스는 굳이 잡지 않아도 서브 던전은 클리어할 수 있었다. 내가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메어리가 굳이 확인을 시켜줬다.

"내가 싸우는 거 봐봐.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끼이이익.

나는 철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그리고 첫번째 트라이와 마찬가지로, 침대 위에 두 마리의 아인 안드라스가 서로 몸을 밀착하며 끌어안고 있....

"아잉, 멋진 근육. 배가 볼품없는 건 그렇지만 라스하는 맛이 있겠어."

"저 오크, 침대에서는 어떨까? 우훗."

근육이 우락부락한 두 마리의 아인 안드라스, 남성체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끼이이익.

나는 다시 보스룸의 문을 닫았다. 예상과는 다른 광경에 정신적으로 큰 데미지를 입었고, 그건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주, 주인님. 아까 이미 클리어 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설마.... 아니시죠?"

"아니다."

륜이 오해를 받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문을 열었다.

"어머, 다시 열었네. 우훗, 어서 들어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오겠지만 나갈 때는...오호홋, 자기야. 누가 탑 할래?"

"우리보다 강하면 우리가 바텀이지. 우리보다 약하면 당연히 우리가 탑이고. 오홍홍."

"......."

그럼 안 들어갈란다. 나는 다시 철문을 닫았다.

"얘들아, 그냥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이 날.

처음으로 서브 던전의 보스 공략을 포기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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