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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90화 (90/800)

000908일차 -------------------------

라스어에 대한 충격도 잠시.

나는 두 안드라스를 어떻게 잡을까 잠시 고민했다. 당연히 나와 대화가 통하는 녀석들인 만큼, 일단 서브 던전이라도 부하나 포로로 영입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림> 서브 던전의 마물은 부하나 포로로 영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쯧."

진심으로 아쉬웠다. 새대가리 트월킹이 아닌 날개가 펄럭이는 트월킹을 볼 수도 있겠다 싶었건만, 시스템적으로 막혀있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결국 죽이거나 여기서 뒤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결국 죽여야하는 대상이라면 적의 정보를 알아야했다. 나는 보스룸에 들어온 순간부터 울려댄 적의 정보를 훑었다.

[아인 안드라스] <레비> ★★★ Lv.55

[아인 안드라스] <언즈> ★★★ Lv.55

둘은 레벨도 똑같고 종족도 똑같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을 어떻게 잘 구슬려 설득을 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알림> 서브 던전의 BOSS는 부하로 영입하거나 포로로 잡을 수 없습니다!!

시스템은 가차없었다. 굳이 강조는 하지 않아도 되건만, 두 번에 걸쳐서 알려오는 것이 살짝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두 안드라스는 죽여야할 대상이 되었고, 나는 주먹을 불끈 말아쥐었다.

"어떻게 죽여줄까?"

"그건 우리가 할 말이야!"

"자기야, 저거 잡고 난 뒤에...라스하자!"

방금, 아인 안드라스 하나가 플래그를 쎄게 박았다. 그리고 그 사망 플래그를 집행하는 자는 나. 두 안드라스는 몸을 떨어뜨리며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이전 안드라스들과는 확연히 다른, 마나가 뭉친 오러같은 손톱이었다.

'베이면 그냥 아픈 정도로 안 끝날 것 같은데.'

역시 내가 먼저 들어와서 확인해보기를 잘했다. 나는 손을 꽉 말아쥐며 두 안드라스에게 먼저 들어오라고 손을 까딱거렸다.

"내가 이기면, 너희들은 라스행이라스."

"저 변태돼지새끼가!!"

최고의 칭찬이며 도발이다. 나는 달려드는 두 마리의 안드라스, 레비-언즈를 상대로 로브를 걷어붙이고 손은 한 번 크게 털었다.

"오크 부족의 전사들에게는 규율이 있지!"

진정한 전사라면 상대가 어떤 존재이든, 싸움에 있어서 전력을 다한다.

"나는 외형이 여자라고 봐주거나 하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이든 마물이든, 상대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라면 목숨과 명예를 걸고 전력으로 싸워주는 게 인지상정.

"평등만세!"

나는 평등하게 양쪽에서 달려오는 두 안드라스의 배에 정권을 질러넣었다.

퍼억-!!

"커흑!"

검은 손톱으로 할퀴려고 하기 전부터, 가만히 있던 내가 앞으로 뛰어 둘의 배를 찔렀다. 안드라스들은 기침을 토하며 행동을 멈췄다. 왼쪽과 오른쪽, 어느쪽을 먼저 잡을까 잠시 고민했다.

'한 놈은 뱃살, 한 놈은 문신.'

레비? 언즈? 오늘부터 이 놈들은 뱃살과 문신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생긴 것도 아니건만. 나는 일단 순서대로 문신을 지적한 안드라스를 향해 뻗은 주먹을 살짝 당겨, 다시 정면으로 내질렀다.

콰--앙!!

문신은 기침을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짧은 거리였지만 연속된 주먹질에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끼에엑!!"

뱃살을 지적한 안드라스가 괴성을 지르며 손톱을 할퀴려들었다. 내가 문신을 공격한 사이, 뱃살은 고통을 견뎌내며 내 팔에 손톱을 박아넣으려 했다.

"어딜!"

나는 손가락을 교차하듯 문신을 쓸었다. 새끼손가락 위를 살짝 튕기며, 전신의 문신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광폭화.

내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나는 손톱이 닿기 직전 팔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뱃살도 나름 던전 보스라고, 완전히 피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푸슈---웃!!

팔 아래부분에 날카로운 자상이 세가닥 생겼다. 붉은 시야 속에서 짙은 핏방울이 튀었다. 뱃살은 내 팔에서 피를 본 것에 귀기를 흘리며 활짝 웃었다.

"크흐흐!"

그리고 나도 활짝 웃어줬다. 뱃살의 웃음이 굳어지기도 잠시. 나는 피가 흐르는 팔로 뱃살의 멱살을 향해 손을 뻗었고, 뒤로 고개를 내빼기 전에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커, 커흑?!"

뱃살은 내 손목을 움켜쥐고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방금전처럼 깊은 자상은 나지 않았지만, 손톱이 움푹 찔러들어온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따가울 뿐 아프지는 않다.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하자. 나는 뱃살의 멱살을 잡은 손을 그대로 바닥을 향해 메다꽂았다. 등에 난 날개가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뱃살은 켁켁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거 55레벨짜리가 덤비면 쓰나. 프후우."

우둑.

나는 목덜미를 짓눌러 꺾어버렸다. 뱃살이었던 안드라스는 혀를 내민 채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렸다. 한 마리, 아주 손쉽게 보내버렸다.

"끼에에에엑!!"

문신은 괴성과 함께 눈에 핏발이 선 상태로 내게 다시 달려왔다. 파트너의 죽음에 혼란과 공포를 느끼고, 연이어 복수심에 가득차 분노를 내게 터뜨리려했다. 그래서 나는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놈을 팔 째로 부서버리기 위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다른 발을 휘둘러 걷어찼다.

퍼-억!

문신의 허리가 크게 꺾였다. 척추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안드라스는 눈을 까뒤집으며 게거품을 물었다. 나는 손톱이 닿기 전에 다리를 회수하였고, 다시 안드라스의 목을 잡고 바닥에 메치기로 집어던졌다.

퍽!

문신은 뱃살의 위로 떨어졌다. 하필이면 손톱을 세우고 있던 부분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문신의 배에 검은 손톱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끼에에엑....

두 마리의 아인 안드라스는 비명을 지르며 안개로 흩어졌다. 재가 되어 흩어진 뱃살과 문신은 제법 긴 검은 날개 두 쌍,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오, 씁."

전투 이후. 3분의 시간이 지나니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현기증이 일었다. 상처가 났음에도 상처를 무시하고 싸워서 그런지, 전투의 반동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 정도야 얼마 안 지나면 회복하기는 할텐데.

그래도 나름 종족이 오크라고, 종족 특유의 회복력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다시 로브를 소매자락까지 내렸다.

'방어구가 필요하기는 하겠어.'

아니면 예전처럼 철퇴같은 무기라던가. 고통이 점차 잦아든 나는 아인 안드라스들이 남기고 떠난 물건들을 살폈다. 검은 날개와 손톱. 슬라임 서브 던전이 슬라임 드래곤 자체가 재료 보상이었다면, 아무래도 안드라스는 날개와 발톱을 드랍하는 곳인 듯 했다.

일단 먼저 손톱부터. 나는 안드라스가 남기고 간 세 가닥의 발톱을 집어들었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검은 발톱은 제법 단단해보이는 발바닥에 붙어있었다. 나는 그걸 들고 바닥을 벅벅 긁었다.

"어우, 이거 거의 쟁기 수준인데?"

나무막대를 붙이거나 홈에 끼워 흙을 긁으면 척박한 땅을 개척하기에 딱 좋은 단단함이었다. 물론 농기구인 동시에 어엿한 무기였다. 아인 안드라스들이 전력으로 할퀴기는 했지만, 그 날카로움은 내 피부에 자상을 낼 정도였다.

"......."

나는 로브를 슬쩍 들어올려, 검은 발톱으로 내 배를 긁었다. 땅을 솎아내듯이 제법 강하게 긁었으나, 내 손톱으로 등을 긁는 시원함만 느껴졌다.

"젠장."

예전부터 그랬지만 유독 내 배는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단단하고 질겼다. 에일라의 원정대를 상대할 때는 그걸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냥 약점에 되어도 좋으니 사라지는게 훨씬 나았다.

'나 5성 되고도 이상태면 어쩌지.'

싸움꾼인 대전사 테크트리를 타면 뭔가 살이 빠지거나 하지 않을까. 나는 안드라스가 남긴 재료들을 주섬주섬 챙기-

"아. 스택."

나는 나의 진화 상태를 살폈다.

" <진화> [파후우 쿰처쿠 척]을 진화시킵니다.

[대전사]

1)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 75 / 90 )

2)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적을 1:1로 5개체 이상 쓰러뜨린다 ( 0 / 5 )

3) ★★★★★의 적을 3개체 이상 쓰러뜨린다. ( 1 / 3 ) "

"1스택 개꿀."

레벨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나보다 훨씬 레벨이 낮은 마물들을 잡았기 때문일테고, 애초에 레벨은 엇비슷한 던전이나 적이 생기기 전까지는 포기했다.

중요한 것은 3번째 조건. 나는 나보다 레벨은 낮지만 등급은 높았던 던전 보스, 안드라스(★★★★★)를 쓰러뜨렸다. 내가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그 스택이 하나 쌓였다.

"이거...."

머릿속으로 나쁜 생각이 들었다.

'스택을 각각 쌓으면 되잖아?"

2번과 3번을 꼭 같이 할 필요는 없다. 안드라스같은 저레벨의 고등급 개체가 더 있다면 잡기 편할 터.

"빨리 다른 던전으로 가는 문이 열렸으면 좋겠네."

안드라스 던전처럼 이 근처에 뭔가 새로운 던전이라도 열리면 좋으련만. 나는 아쉽지만 주변을 훑어 던전의 출구를 찾았다. 분명 어딘가 지름길이 있을텐데.

"......."

약 1시간.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결국 나는 서브 던전을 달려온 길을 그대로 돌아나와야했다.

* * *

던전 등급이 올라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

나는 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었고, 서브 던전을 두 번 돌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던전 주요 네임드 인사들이 다 모였구만."

기절했었지만 어느새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륜(Lv.35).

아더를 열심히 가르치고 목책을 정리하다가 합류한 에일라(Lv.25).

내가 지시한대로 던전을 뚫어놓던 라임(Lv.35).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서스(Lv.19).

소위 '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다 모였고, 나는 그들과 함께 안드라스의 서브 던전에 들어와 던전의 구조와 나오는 적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레벨링이 쉽도록 내가 발견한 법칙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20레벨 남자 안드라스가 나와. 그리고 그 다음에는 20레벨 여자 안드라스가 나오지."

남녀가 번갈아가면서 등장.

"그리고 한 쌍이 지나가면 다음 안드라스는 레벨이 2씩 오르게 되어있어."

20레벨 한 쌍, 22레벨 한 쌍, 그리고 그 다음에는 24레벨 한 쌍.

"륜아, 그러면 7번째로 나오는 남녀 한 쌍의 안드라스는 레벨이 몇 일까?"

"음...20에서 시작하니까 6번째가 30이면 7번째는 32?"

"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31이더라?"

나는 벽에 안드라스의 발톱으로 글자를 새겼다.

한쌍의 적을 웨이브라고 판단하면, 1~6웨이브는 20레벨부터 30레벨까지 2레벨씩 오르지만 7~10웨이브까지는 31레벨부터 34레벨까지 1씩 오르는 형태였다.

어떻게 확인했냐고? 여성형 안드라스들을 전부 만지며 확인했다. 무엇을 만졌는지는 비밀.

"즉, 던전이 점점 깊어질수록 상대의 난이도도 올라간다는 얘기지."

난이도 문제야 나는 전혀 상관 없었지만, 다른 부하들에게 쩔을 해줘야 하는 네임드들에게는 여러모로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았다.

"여기까지가 딱 20마리. 그리고 보스방 직전에 있던 애들은 5마리가 나와."

"걔들은 레벨이 몇이에요?"

"...몰라."

죄다 남자 안드라스가 나와서 확인할 생각도 안했다.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인 안드라스로 진화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아마 그들은 전부 35레벨 언저리일 것이다.

"진화 못했으니까 아마 35레벨 다섯마리? 그걸로 끝. 던전 내부에는 전부 25마리가 끝이더라고."

"끼에엑...."

이야기를 하면서 걷던 도중에 안드라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병든 닭처럼 혀를 옆으로 내밀며 흙벽에 등을 문지르는 모습은 가히 정상이 아니었다.

"하서스야, 다녀와라."

크륵.

하서스는 바로 앞으로 걸어나와 안드라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드라스는 멍하니 하서스를 바라보다가 하서스가 명백한 적이라는 걸 인지하고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라스!!"

"......."

하서스를 상대로 라스를 외치다니, 제대로 정신이 나간 놈이 틀림없다. 하서스와 안드라스는 팔을 투닥거리며 서로 마구잡이로 할퀴었고, 결국 하서스가 먼저 안드라스의 목덜미에 손톱을 박아넣으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크르르.

"역시 비슷한 레벨을 상대하는 건 시간이 걸리네."

"그럼 제 차례군요."

에일라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사냥꾼들의 마을에서 노획한 철검이었지만, 에일라는 그걸 예전부터 사용한 애병처럼 능숙하게 다루었다.

다음 안드라스.

"케륵, 케륵, 케륵."

여성형 안드라스였지만 벽에 대자로 붙어 이마를 벽에 문지르고 있었다. 흙먼지가 떨어져 나오며 몸에 흙이 묻었지만 안드라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베고오겠습니다."

서걱. 에일라는 너무나도 쉽게 20레벨 안드라스를 일격에 베어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고, 에일라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하찮은 것을 베어버렸습니다."

"레벨이 낮다고 하찮으면 에일라, 저랑 라임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러면 어차피 주인님 앞에서는 다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리는데."

륜의 일침에 에일라는 얼굴을 붉혔다. 나는 새삼 에일라가 내게 붙잡혔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에일라 아리에스, 생각보다 자기 실력을 상당히 과시하는 타입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이제 서서히 실력을 늘려나가면 되지."

하나하나 레벨에 맞춰 죽여나가면 된다. 우리는 각자의 레벨에 맞추어, 하서스와 에일라에게 최대한 많은 안드라스들을 상대하도록 했다.

"후후, 또 하찮은 것을."

크르륵.

"하서스가 간신히 이겨놓고 허세 부리지 말라는데요."

"...그건 륜 네 생각인가, 아니면 하서스의 진심인가?"

크르륵.

하서스는 억울한 듯 벽에 머리를 쿵쿵 찍었다.

============================ 작품 후기 ============================

개명당한 보스들에게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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