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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84화 (84/800)

000847일차 -------------------------

륜과 잠시 늦은 저녁 식사시간을 가진 이후.

나는 겨우겨우 던전 점령에 대한 정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시스템은 고맙게도 내가 륜과 오붓하게 식사를 나누는 동안 정산을 기다려줬고, 나는 겨우 안드라스의 던전을 강탈한 것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쟁탈전> '파후우 쿰처쿠 척'이 '안드라스'의 던전을 강탈하였습니다.

# 휘하 던전으로 등록 - 별개의 던전으로 등록합니다. 부하를 파견하여 제 2의 던전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 서브 던전으로 흡수 - 던전의 정수를 차원석으로 모아 하나로 만듭니다. 본인의 던전 내부에 새로운 서브 던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안드라스'로 등록 - 기존의 모든 시설을 해당 던전에 재배치하여, 솔로몬 님의 63번째 던전으로 등록합니다.

"또 3개야?"

나의 진화가 3갈래이듯, 이번에도 안드라스 던전에 대한 내 권리는 크게 세 개로 나뉘었다. 진화를 어떻게 할 건지는 지금 큰 고민이 아니었지만, 이건 여러모로 고민이 되었다.

멀티 확장.

자원 파밍.

아니면 이사.

정답은 하나였다.

"서브 던전으로 흡수."

당장 필요한 것은 우리 던전의 마물들이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장소였다. 슬라임 서브 던전만으로는 역시 역부족이었고, 슬슬 2성 이상의 마물들이 경험치를 파밍할 장소가 필요했다.

멀티는 나중에 늘리면 될 일이고, 나는 솔로몬의 휘하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솔로몬님께서 주는 달달한 꿀만 빨고, 언젠가 에스투도 먹으러 가야지.'

솔로몬이 들으면 격노할만한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인류의 편에 서지 않고 인류 연합의 적이 된다면 솔로몬도 기뻐하리라.

구구구구!

내가 점령한 안드라스의 던전이 입구부터 와르르 무너졌다. 동시에 나와 륜이 번갈아가면서 경험치 파밍을 했던 안드라스들의 시체가 보라색 기운에 휩싸였다.

콰--앙!!

던전의 입구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안드라스의 던전과 연결되어있던 게이트는 맥없이 무너져내렸고, 안드라스의 던전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알림> '안드라스의 던전'을 서브 던전으로 흡수합니다.

# 보상 : 차원석-안드라스 1개.

내 눈앞에 영롱한 검은 빛의 돌이 생겼다. 나는 그걸 바로 내 로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륜아, 이제 너 3성으로 진화해도 레벨링 가능하겠다."

"안드라스들이 얼마나 나올까요?"

"그야 직접 설치해보면 알겠지. 666마리까지는 안 나올 걸?"

그리고 나는 눈앞에 새로운 창을 띄웠다.

<퀘스트> 안드라스 토벌 (666/ ???)

# XX마리 토벌 시 미부화 알 획득 가능

# 666마리 토벌 시 <안드라스> ★★★★★ <- 달성!

끼에에엑!

괴조의 비명소리와 함께 안드라스들의 시체에서 빛이 번쩍였다. 나는 팔로 눈을 가렸고, 안드라스들의 시체들은 빛무리가 되어 흩어져 하나로 모였다.

우우웅.

"와."

이걸 영롱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신비하다고 해야할까. 안드라스들의 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하나하나의 빛덩어리가 되어 뭉치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분명 '알'이었고, 나는 그 흑요석같은 알을 잡았다.

<안드라스의 알>

# 소환 시설에서 부화 가능.

# 부화 시 <안드라스> ★★★★★ 부화.

"아무래도 다시 태어나는 모양인데."

"얘가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딸이 태어날 지, 아니면 에일라처럼 환생할 지는 알을 까봐야 아는 일이다. 나는 알을 톡톡 건드려 상태를 확인했다. 알의 표면은 단단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모르니 내가 직접 챙기기로 했다.

"뒷처리 안 해서 다행이네."

륜의 경험치와 내 경험치를 위해 안드라스들을 모두 잡기는 했지만, 역시 우리 던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대가리들의 무덤을 만들기는 여러모로 힘들었다.

"나중에 구울들 동원해서 깃털 뽑아가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않아도 되겠다. 그치?"

"하피들 깃털 뽑으셨잖아요."

"그거야.... 그건 그렇네. 근데 마왕군에서 소환한 애들로 뽑은 거 아니냐."

"그래서 이제 안드라스 서브 던전을 만들어서 뽑으시려고요?"

"아무렴."

나는 순간 뭔가 이상을 직감했다. 서브 던전은 그러면 어떤 원리로 존재하는 거지? 하루에 세 번씩 들어가서 재료까지 들고 나오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솔로몬 님께서 뭔가 마법을 걸어놓으셨겠지.'

기승전솔로몬이었지만, 나의 사고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범위 밖의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서브 던전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시스템의 혜택만 누리면 그만이다.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챙겨가느냐하는 문제가 있어."

나는 안드라스의 사체를 가리켰다. 일단 급하게 빼내오기는 했지만, 내가 필요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일단 들고 가자. 들고간 다음에, 구울들에게 들고 옮기게 하는 거야."

나는 안드라스를 들어올렸다. 이미 피가 많이 빠져나간 바람에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나는 날개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안드라스를 들고 던전을 떠났다.

"다음에도 던전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그 때도 서브 던전으로 만드시게요?"

"아니, 멀티 좀 늘리게."

그리고 그 때까지 던전을 충분히 확장시킬 것이다. 나는 륜과 함께 무너진 던전을 떠났다.

언젠가, 꼭 포르네우스의 던전도 나오기를. 나는 들뜬 마음으로 밤길을 걸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기는 했지만 륜의 눈은 밤길에도 빛났고,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약 30분.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니, 다행히 구울들은 아무 문제 없이 명령대로 마을을 초토화시켜놓았다.

명령대로...?

"하서스야."

크륵.

완장을 찬 하이 구울, 하서스의 입은 나무조각과 핏조각으로 섞여있었다. 나는 모든것이 사라져버린 폐허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 여기서 뭐했냐?"

크르륵.

하서스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임을 시작했다. 륜은 고개를 몇번 주억거리더니, 하서스의 말을 내게 번역했다.

"무덤에 있는 인간들은 전부 먹었고, 안드라스들은 주인님께서 숨기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서 굳이 먹어서 뼈만 남겼대요. 뼈는 모두 한 곳에 모아 깊게 묻었고, 집을 해체해서 장작을 쌓았다고 하는데요...?"

"장작?"

하서스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캠프파이어처럼 잡다하게 쌓인 통나무 조각들이 쌓여있었다. 해체되어 한 군데 모여있는게 꼭 아상블라주마냥 초현실적이었다.

"구울들이 예술 감각이 좀 있네."

집의 대들보와 기둥을 차곡차곡 쌓아, 그 안에 나무 판자들을 끼워놓은 형태는 무슨 예술 작품을 보는 듯 했다.

크르륵.

그리고 하서스는 내게 무언가를 가리켰다.

불.

화르륵 타고 있는 작은 불씨였다. 아무래도 화덕 안에 남아있던 작은 불씨를 살려놓은 듯 했다.

"이걸 나보고 태우라고?"

크륵.

"존나 멋지게 쌓아놨는데?"

크르륵?

집을 전부 뜯어내어 장작더미를 젠가처럼 만들어놓았는데, 굳이 불을 질러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하서스는 강력하게 불을 지를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밤에 불장난 하면 오줌싼다는데."

나는 불씨를 들고 마른 장작에 불을 붙였다. 해체된 집들은 장작이 되어 불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아주 난리가 나겠어."

"화전촌에서 불 피운 걸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야."

혹시나 이 불을 보고 누군가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저 잿더미가 된 땅만 확인할 뿐일 것이다.

잿더미 아래에 인간들과 마물들의 뼈무덤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할테니. 나는 하서스에게 안드라스를 건네고 구울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밤늦게까지 고생했다. 돌아가자."

도착하면 늦은 밤이 될 터. 나는 어깨에 륜을 올리고 던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포르네우스의 던전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던전을 만든 이후로 벌써 7일째.

나는 온전한 던전 하나를 점령했다.

* * *

그 시각, 레오 후작령.

기사, 그에이는 밤늦게 레오 후작령에 도착했다. 수도까지 가려면 굳이 들릴 필요는 없었지만, 그에이는 모험가 길드에 볼 일이 있었다.

딸랑딸랑.

마굿간에 말을 묶어둔 그에이는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쪽에 있던 모험가들이 어엿한 기사의 등장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여긴 왜 왔어? 기사 나으리가.'

'몰락 기사인가? 외투 상태를 보면 거지는 아닌데.'

'혹시 누가 사고 쳐서 결투 신청하러 온 거 아니야?'

다들 그에이의 방문 목적을 추론하는 가운데, 안경을 낀 접수원이 서류를 들고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기, 기사님? 모험가 길드에는 어쩐 일로...."

"아, 죄송합니다. 레이디. 저는 비르고 남작령의 기사, 그에이라고 합니다."

그에이는 로브를 살짝 벗어 갑옷에 박힌 문장을 보였다. 명백한 귀족가문의 기사, 그것도 귀족 출신의 기사를 상징하는 표식에 접수원은 화들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하하,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레이디. 저는 의뢰를 하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그에이는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의도부터 먼저 밝혔다. 기사가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한다는 말에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웠다.

"의뢰 말씀이십니까...?"

"예. 제 개인적인 의뢰는 아니고, 남작님께서 직접 의뢰하시는 겁니다."

쫑긋.

길드 내의 모든 모험가들의 시선이 그에이가 꺼내는 물건에 꽂혔다. 양피지를 담은 듯한 길쭉한 나무통에는 비르고 남작 가문의 문장이 찍힌 밀랍 봉인이 박혀있었다.

"......."

접수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나무통을 받았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재질, 그리고 비르고 남작의 직인이 찍힌 문장은 분명 가짜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길드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실례지만 안내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아름다운 레이디."

접수원은 얼굴을 붉히며 그에이를 안내했다. 그에이는 사람 좋은 얼굴로 그 뒤를 따랐고, 모험가들은 한참동안 그의 뒤를 눈에 담았다.

돈냄새.

모험가들은 그에이가 흘린 돈냄새를 맡았다.

* * *

제법 긴 행군이었다.

우리는 이른 새벽부터 밖에 나가 달이 중천에 걸린 시기가 되어서야 던전에 돌아왔다. 아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인 듯 했고, 던전의 입구에는 사냥꾼들이 우리를 반겼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더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하루종일 일을 했는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오늘 무슨 일 있었냐?"

"아뇨, 별 일은 없었습니다. ...에일라 어머님의 훈련을 받다보니."

"아."

나는 주변을 훑었다. 에일라는 이곳에 없었지만, 임시 목책 안에 통나무집이 두어개 생긴게 눈에 띄었다. 구울들이 전부 빠져나갔으니, 아마 아더가 사냥꾼들과 함께 열심히 집을 만들었으리라.

"고생했다."

"아닙니다, 아버님이야말로 먼길 다녀오시느라 욕보셨습니다."

아더는 내게서 뭔가 들 것이 있나 눈으로 살피다가, 하서스가 등에 업은 안드라스를 보고흠칫 놀랐다.

"...새 어머님?"

"죽었다. 시체야."

아더는 식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구울이나 안드라스의 시체나 똑같은 죽은 자건만, 구울은 살아있으니 그 거부감이 덜했던 모양이다. 나는 주변을 훑었다.

"오셨어요...?"

"그래."

릴리는 잠결에 일어난 듯 수척한 얼굴이었고, 다른 사냥꾼들도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냥꾼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없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안드라스들은?"

"그, 그것이...."

아더의 얼굴에 난감함과 당황, 그리고 쑥스렁룸이 묻어났다. 아더는 분명히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고, 나는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두려워졌다.

"무슨 일 있었냐?"

"...예."

"습격받았어? 안드라스들이 죽었냐?"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닌데."

아더는 한숨을 내쉬며 안쪽을 가리켰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하면 안 되냐?"

"...죽었습니다."

"??"

아더는 나무 판자로 이어놓은 욕구 해우소의 문을 열었다. 밤에 내가 끼워놓으라고 했던 것처럼, 안드라스(女)는 대가리만 동굴에 끼워 놓은 채 엉덩이를 흔들며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저건 완전히 절여졌군.'

소리는 듣지 못할텐데도 사람들의 소란을 느끼고 빨리 박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옆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무언가가 있지도 않았다.

"......죽은게 설마."

"예."

아더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녁 즈음, 남자 안드라스가 죽었습니다."

"왜?"

습격도 없었고, 죽을만한 이유도 없었다. 낮에는 슬라임들을 이용해 점액을 다시 녹인 다음 던전 안 막사에 집어넣었으니, 죽을 만한 이유도 없었을-

"에이, 설마."

나는 륜을 내려놓고 막사를 향해 뛰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하피들이 기거하는 막사.

"......."

완장을 찬 하피가 내 등장에 깜짝 놀랐다. 하피는 또 배가 볼록해져 있었다.

"비켜봐."

"그, 그게...."

나는 어물쩍거리는 하피를 옆으로 비켜세운뒤, 막사의 문을 열었다.

"......."

그 안에는 이집트 관속에서나 볼법한 자세로  남자 안드라스가 편안히 누워있었다. 진하게 눈을 감은 그는 입이 부리였지만 은은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와."

그리고 나는 모든 하피들이 배가 불러있는 것을 보고 경탄했다.

하피부터 하피엔젤까지.

" <수확> 하피종에 뿌려진 안드라스의 씨가 열매로 익어가는 중.

# 수확대상 : 하피 6개체

# 수확시기 : 개체 별 상이 "

"......."

하르퓨이어를 제외한 모든 하피들이 임신했다. 나는 안드라스를 향해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안드라스(남).

인간 사냥꾼 넷과 하피 여섯. 도합 열 명의 여성을 상대로 24시간 동안 쥐어짜인 그는 여섯 개의 알을 남기고 이승을 하직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함과 경의를 표하며 던전 밖에 떨어진 곳에 진실된 마음으로 내가 직접 무덤을 만들었다.

사인.

복상사.

============================ 작품 후기 ============================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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