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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77화 (7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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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건들을 가져오기 전, 인간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내가 인간들에게 동정이나 자비를 약간 느끼기는 했지만, 굳이 무덤까지 만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인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던전의 마물들을 위해 무덤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구울들의 레벨링과 식사.

던전 공사를 통해 마석을 수급하는 슬라임들과 달리, 구울들은 별달리 경험치를 수급할 공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죽여야 할 인간들, 또는 죽은 인간들이 있다면 나는 바로 슬라임과 구울들의 먹이로 주었다.

하지만 어제는 구울들이 없었다.

슬라임이나 구울은 커녕, 에일라와 종마 사냥꾼들만 있었다. 그들은 다른 마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닥 특별한 감각은 없었지만, 동족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상당한 동정을 느꼈다.

동족 살해.

하이 엘프인 륜이 다크 엘프로 타락하는 조건이기도 한 그것은 내가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될 금기처럼 느껴졌다. 슬라임은 동족 포식으로 빅슬라임이 되었던 건 이상하기는 하지만, 슬라임은 지성체가 아니었다.

-생각이 똑바로 박힌 놈들이면 어떻게 자기 동족을 죽이고 먹을 생각을 하냐?

즉, 동족을 살해하는 건 이 세계에서 종족을 불문하고 똑같이 적용되는 불문율이었다. 동족을 죽이거나 포식하는 건 지성이 없는 마물들이나 할 일이었다.

고로, 동족을 죽이면 안 된다. 적어도 동족을 직접적으로 죽이게 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그럼 동족이 안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가히 천재적 발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륜을 제외한 모든 원정대 구성원을 구울들로만 편성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우리가 물건들을 챙겨간 폐허.

무덤.

크르륵.

구울들은 벌써부터 군침을 삼켰다. 나는 구울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무덤을 가리켰다. 다행히 무덤은 어제 내가 땅을 다져놓은 상태 그대로였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로 그려놓은 내 표식이 묻어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와서 챙길 거라는 표시. 구울들은 이를 딱딱 부딪히며 고개를 투레질하듯 흔들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니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잘 없을 거다."

나는 땅을 한 번 구른 뒤, 구멍에서 벗어났다.

"직접 파서 먹어."

키에에엑!!

구울들이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내가 어제 반듯하게 놓아둔 상태 그대로 비스듬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더 명복을 빌었다.

"다시 태어나면 꼭 좋은 곳에서 좋은 존재로 태어나시오."

"음.... 이런 걸 두고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던 것 같던데요!"

"너 똑똑하구나?"

나는 정곡이 찔려서 뭐라 답을 할 수 없었고, 륜은 헤실거리며 볼을 긁적였다.

"저는 별로 신경 안 써요. 엘프들도 숲을 침입하는 인간들이 있으면, 그 인간들을 죽여서 들짐승들의 먹이로 던져놓으니까."

"생각보다 처리 방법이 과격한데."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가장 빠르고 간결한 이치죠. 늑대가 와서 먹고 갈 수도 있고, 까마귀가 와서 쪼고 갈 수도 있고, 마물이 어슬렁거리면서 시체를 물고 갈 수도 있고."

그거야 맞는 말이기는 했다. 엘프들로 따지면 인간 침입자에 대하여 굳이 장례를 치뤄줄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륜이 말한 부분 중 신경 쓰이는 부분에 대하여 짚었다.

"엘프의 숲에 마물이 나온다고?"

"근처에요. 저희가 숲 밖에 침입자들의 시체를 던져놓으면 가장 빨리 찾아오는 애들이 마물들이거든요. 놀 같은 늑대 애들. 고블린도 그렇고요."

"그러면 걔들 잡으려면 그쪽까지 넘어가야하나?"

"음...여기랑 완전 반대편이라서 어려우실 걸요?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면 큰일나요."

"우회로도 없는 모양이구만. 쩝. 엘프, 무서운 종족이구만."

숲의 요정들이 아니라 숲의 꼰대들이었다. 그러니까 160년동안 애를 키우면서 성적으로 이리도 순수하게 키우지. 160살. 나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이 살아온 존재였다. 이 세계의 삶으로 치면 족히 50배.

"륜아."

"네."

"엘프는 보통 몇 살까지 사냐?"

"음....1000살? 그것도 엄청 오래 사신 대장로분들이나 1000살이구요, 보통은 거의 600살이나 700살 즈음에서 생을 마감해요. 숲으로 돌아가죠."

인간이 100세 시대이니 나이에서 딱 곱하기 10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륜은 16세이고, 루나는 47세-

'아냐. 계산법이 다를 거다.'

그게 47세라면 엘프는 사기캐가 분명했다. 아직 구울들이 식사를 마치려면 한참동안 남았고, 나는 무덤 안쪽을 확인했다. 구울들은 열심히 살점을 뜯고 있었다.

"륜아."

"네."

"너 지금 전투 가능하지?"

"물론이죠."

"그래...."

나는 등 뒤의 구울들을 가리켰다. 구울이건 하이구울이건 할 것 없이, 전부 식사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럼 쟤들 놔두고 우리끼리 오붓하게 다녀올까?"

"어딜요?"

"던전."

"......?"

나는 안드라스의 시체로부터 길게 이어진 발자국을 가리켰다. 륜은 그 흔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발자국이 있네요?"

"그래. 우리 던전에 포로로 잡힌 놈들이 남기고 간 족적이지."

비가 한 번 와서 꿉꿉해진 진흙길이었기에, 안드라스들의 발자국은 명백히 땅에 남아있었다.

"하서스야."

크르륵.

하서스는 땅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하서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 식사 다 끝나면 여기 뒷정리하고 대기하고 있어라."

크르륵.

하서스는 손까지 털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꼭 '저희는 두고 가시려고 하시는 겁니까?'하는 제스쳐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자기들은 이렇게 맛있는 거 먹는데 주인님을 바쁘게 할 수는 없다고 하는데요."

"진짜였어? 세상에."

역시 하서스는 전생에 충직한 기사였던게 틀림없다. 나는 괜히 찡해서 코가 시큰거렸지만, 하서스의 임무는 열심히 식사하는 것이었다.

"그냥 먹거라. 그리고 시간남으면 이것도 먹고."

나는 땅바닥에 새대가리를 처박고 죽은 안드라스들을 가리켰다. 그들의 배에는 내가 어제 피로 적어놓은 경고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거 먹기는 좀 그러냐?"

크르르.

하서스는 한참동안 안드라스들을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영 못 먹을 것 같다고 하는데요."

"똑같은 시체인데 그걸 가리네."

크르륵.

"자기들은 인간 말고 다른 건 못 먹는데요."

"인간이랑 똑같이 생겼는데도?"

크르르륵.

"생긴 건 똑같아도 인간이랑 엄연히 다른 존재 아니냐고 묻는데요. 직접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굳이 먹고 싶다고는 안 해요."

"음...."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나는 따질 생각이 없었다. 오크에게는 오크의 식성이 있고, 구울에게는 구울의 식성이 있다. 나는 그걸 존중해야했다.

"그럼 마저 먹고, 혹시 한 입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된다."

크르륵.

하서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땅으로 고개를 박았다. 나는 구울 무리와 안드라스들을 뒤로한 채, 륜을 내 어깨에 올리고 발자국을 쫓았다.

"륜아,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니?"

"음.... 조금 더 가야할 것 같아요. 여기는 지금 아무것도 없어요."

나와 륜은 발자국을 따라 계속 걸었다. 발자국은 계속 이어져 있었지만, 이어져 있기만 할 뿐 별다른 적은 나오지 않았다.

"주인님, 여기."

"그래. 어제 발견했던 곳이지."

처음 안드라스들을 발견했던 그 장소. 우리가 몸을 숨겼던 언덕이 저 위에 있었다. 그건 우리가 길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방증이었다.

"이대로 계속 가보자."

"주인님. 그런데...."

륜은 활을 들고 머뭇거렸다. 언제든지 적을 발견하면 쏘도록 지시를 내렸지만, 륜은 상당히 겁을 먹고 있었다.

"혹시나 적이 강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적의 기준을 얘기해줄게."

마침 륜이 이해하기 적당한 기준이 하나 있다.

"적이 루나보다 강하면 튀고, 적이 루나만큼 강하면 나 혼자 어떻게든 비벼보고, 적이 루나보다 약하면 다 죽인다."

"아.... 명쾌하네요!"

륜은 싱글벙글 웃으며 길의 반대편을 향해 활을 들어올렸다.

"주인님?"

"그래."

우리가 내려가는 내리막길 맞은편.

1자형 길에서 우측으로 꺾는 세 갈래 길 너머에는 우리가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안드라스들이 인간들을 포로로 잡고 어디론가로 끌고가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어...그런데 그냥 쏴도 돼요?"

"왜."

"인간이 맞을 수 도 있잖아요."

"륜아. 너 자신 없니?"

내 도발에 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륜을 응원했고, 륜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활의 시위를 당겼다.

새----액!

바람 화살은 허공을 가로질러 안드라스 무리를 향해 날아가-

퍽.

인질이었던 인간의 배에 꽂혔다. 륜은 내 위에서 몸을 떨었다.

"......."

"륜아."

"네."

"경험치 먹었으니까 됐다."

"힝...."

륜은 울상을 지으며 뛰어내렸고, 나는 손가락을 교차하듯 쓸며 전신의 활력을 일깨웠다. 사용해야하는 것은 <혈류가속>.

"저, 적습이라스!"

"조심하라스!"

안드라스들은 아직 어디서 화살이 날아간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륜에게 오른쪽을 가리키고 왼쪽으로 뛰었다.

"믿는다."

"네...!"

설마 오른쪽으로 쏘게 했는데 왼쪽으로 날아오지는 않겠지. 나는 왼쪽길을 따라 달렸고, 륜은 나뭇가지 위로 뛰어올라 활 시위를 당겼다.

"적습이라스!"

안드라스 셋이 손톱을 세우며 내게 달려들었다. 셋다 아랫도리에 달랑거리는 뭔가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근력을 강화해 첫번째 안드라스의 부리를 움켜쥐었다.

콰득!

안드라스의 부리는 박살이 났다. 손아귀 힘 만으로 박살이 날 정도로 안드라스는 약했고, 나는 안드라스의 배를 걷어차며 안드라스를 폴더처럼 접었다.

'1성이네.'

안드라스의 등에는 날개가 없었다. 나는 바로 부리를 부순 조각을 들고 안드라스를 걷어찼다.

"용서할 수 없는 거라스!"

"말이 길다!"

나는 부리 조각을 어깨 뒤로 넘기며 전방을 향해 내던졌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안드라스는 화들짝 놀라서 오른쪽으로 피했다.

퍼벅.

바람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안드라스에게 꽂혔다. 두 발의 화살 중 하나는 안드라스의 심장에 꽂혔고, 다른 하나는 안드라스의 영 좋지 못한 곳에 꽂혔다.

"따흐흑."

안드라스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안드라스를 걷어찬 뒤, 마지막 남은 안드라스를 향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끼야악!!"

아랫도리는 제일 튼실한 놈이 비명소리는 제일 높았다. 나는 안드라스의 등을 밟듯 바닥에 착지하며 안드라스의 부리를 땅에 박았다.

"자, 밥먹자. 구구구구구."

나는 안드라스의 등을 수차례 밟았다 떼며 안드라스를 짓눌렀다. 안드라스는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반항했지만, 그닥 효과는 없었다. 나는 안드라스의 등을 밟고 바닥에 박힌 부리를 밖으로 빼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말하라스!"

"니네 대장 예쁘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우신 분이라스!"

안드라스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소리를 질렀고, 나는 안드라스의 뒷통수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럼 그 얼굴 좀 보게 소개 좀 해줘. 자, 앞으로 가자."

"자, 잠깐만 기다리라스! 설마?!"

"그래. 네가 길잡이를 좀 해줘야겠다. 예쁘다며? 보러가지도 못 해? 혹시 엄청 못 생긴 거 아니냐?"

"그, 그럴 리가 없다라스!"

안드라스는 격하게 안드라스의 미모를 찬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불만스러웠다.

'존나 예쁜 새겠지.'

부리가 아주 아름다울게 틀림없다. 나는 안드라스의 목덜미를 살살 어루만지며 길 앞을 가리켰다.

"이제 안내해라."

"주인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라스...."

"그러니까 내기 한 번 해보자니까? 내가 너를 데리고 던전에 들어갔을 때, 네 주인이 너를 구해주는 지 안 구해주는 지."

안드라스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앞을 향해 걸어갈 것 처럼 보였다.

"...주인님께서는 나를 꼭 구해주실 거라스. 나는 주인님께서 직접 낳아주신 마물이라스."

"헐."

안드라스.

꼭 잡아야겠다. 나는 입에 흐른 군침을 꿀꺽 삼키고 안드라스를 앞으로 밀었다.

"그래. 어디 한 번 확인해보자. 근데 그거 아냐?"

나는 안드라스의 귀에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알은 또 낳으면 되는 거라스."

안드라스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과연 안드라스 모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드라스를 인질로 삼아 던전으로 향했다.

약탈의 시간이다.

* * *

"읏, 흐읏, 하아...!"

검은 깃털옷의 여인은 신음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좌우로 쫙 벌린 다리의 사이에서는 검은색의 알이 여인에게서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여인은 소매를 걷고 자신이 낳은 알을 직접 들어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한 광택에 여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3성!"

여인은 확신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낳지 못한 알이었고, 이제 체력을 회복한 이후 부화만 시키면 될 일.

"하아, 하아. 솔로몬 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많이 낳으시는 거지.... 하아."

여인은 그저 솔로몬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을 품안에 품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역시 인간이 씨를 뿌리는 게 제일 좋.... 응?

솔로몬의 시스템이 경고를 울렸다. 여인은 마법진에서 흘러온 안개가 문구를 그리는 것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림> 침입자 발생.

"...흥, 또 인간들인가? 하, 짜증나네...."

<경고> 상대가 '쟁탈전'을 선언하였습니다!

"어...?"

여인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나한테 싸움 걸 마족은 없는데...?"

여인은 검은 광택의 알을 끌어안으며 입술을 달달 떨었다.

"다, 다들 모여! 모여라ㅅ...모여랏!"

당황해서 옛 습관까지 나올 정도로, 여인-안드라스는 공포에 떨었다.

"목숨 걸고 막아!!"

던전 내 모든 안드라스들이 뛰쳐나갔다.

============================ 작품 후기 ============================

포르네우스가 주인공을 태어난 순간에 죽였어야

이 괴물이 지상에 안 풀려났을텐데 말이죠.

3년이나 유예기간을 주다니, 포르네우스가 나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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