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26일차 -------------------------
괴물들은 내가 익히 알고있는 존재들과 너무나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들이었다.
'하피랑 되게 닮았는데'
하피가 여성형 말고 남성형이 존재한다면 필시 저런 모습이리라. 나와 부하들은 숨을 죽인 채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살폈다.
"누구 아는 사람?"
"......"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사냥꾼들이나 륜은 물론이거니와, 에일라도 처음 보는 듯 했다. 결국 우리 중에는 아무도 저 괴물들의 정체를 아는 이들이 없었다.
'새대가리 인간.'
딱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 위는 까마귀의 머리가 커진 형상이었지만, 그 아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날개도 없지?'
벌거벗은 인간들에 머리만 새대가리를 달고 있어서 혹시 가면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이 입에 달린 부리를 떼기 시작하면서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제 곧 인간들이 있을 땅이라스."
"대장이 돌아오는대로 습격하는 거라스."
"...저새끼들 말투가 왜 저래?"
미친 건가, 아니면 종특인가. 어미가 이상하다는 것만 빼면 새대가리들은 분명 정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 좀있다가 대장에게 고백할 거 라스."
"어차피 차이겠지만 응원할 거라스."
"지랄들한다."
"주인님, 듣겠어요…!"
륜이 오히려 내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나는 새대가리들이 말을 하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저것들 지금-"
"옵니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 아래길 맞은 편에서 지상에서 50cm 떨어져서 수평으로 날아오던 새대가리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등에는 아주 작은 날개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아니 진짜."
새대가리들은 하피와 똑같은 조류형 마물이었다. 하지만 하피가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팔과 다리만 형태가 다르다면, 저것들은 인간의 몸을 가진 대신 대가리가 새대가리였다.
"모두 모였라스?"
대장으로 추정되는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매는 가슴은 작았지만 허리부터 골반까지 내려가는 선이 S자를 그리며 잘록하게 들어가있었다.
머리는 새대가리였지만.
"대장, 우리 준비 끝났다라스."
"그럼 옮길 준비를 하라스. 마을에 있던 인간들은 이미 전부 죽였다라스."
"헙."
종마 사냥꾼 하나가 입을 막았다. 우리는 그에게 주의를 줬고, 새대가리 라스들이 우리쪽을 잠시 바라봤다가 다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생동물인 것 같라스."
"괜히 쫄았라스."
"배고프니까 빨리 움직여야하라스."
"아니, 진짜 저거 부리를 뽑아버리고 싶은데."
"쏠까요?"
륜이 활을 들었다. 종마 사냥꾼들도 조심스레 마을에서 노획한 활을 들었다.
"아냐. 맘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대가리에 화살을 꽂고 싶은데, 기다려보자."
"뒤를 쫓을 생각이십니까?"
"어."
인간들을 이미 다 죽였다. 배고프다. 그건 즉 마물로서 인간들을 학살하고 먹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다른 마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보자고. 뒤를 쫓아가서."
"혜안이십니다."
"궁수들은 언제든지 사격할 수 있도록 준비."
나 또한 손가락으로 문신을 비비며 신체를 강화할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임시 명명, <새대가라스>들의 뒤를 조심스레 쫓았다.
킁킁.
점점 가면 갈수록 머리를 아프게 하는 진한 피냄새가 코를 찔렀다. 처음 입을 막았던 사냥꾼 하나-하피들에게 처음 파정하여 셋이나 낳았던 그 남자가 내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인님. 이 앞에는 다른 화전촌이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1주일 전까지는 약 20명 정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즉 그 말은 그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나는 필시 무언가 사고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절대로 저들을 놀라게 하지 마라."
어떤 적과 싸우게 될 지는 모르지만 섣부르게 자극해서는 좋을게 없다.
잠시 뒤. 우리는 제법 높이가 되는 언덕 위에 누워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인간의 시체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콕콕콕 바닥으로 때리는 괴물들이 존재했다.
"심하군…."
에일라는 인상를 대번에 찌푸이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저들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지만, 인간들을 씹어 삼키는 걸 보며 나는 새대가라스들이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인 마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으드득, 으적!
새대가리들은 인간의 시체 앞에 쪼그려앉아, 머리를 박고 부리로 인간들을 뜯어삼키고 있었다. 그건 우리가 뒤를 쫓은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오."
멀리서 봐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살짝 찌푸렸고, 새대가라스들을 멀리서 내려다보며 그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등급이라도 알았으면-
....v.20, ★☆.
"오호."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알고자 했던 정보는 충분했다. 부리에 붉은 피를 머금은 새대가라스들은 여전히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에일라, 여기를 지켜라. 궁수들은 내가 내려가면서 바로 사격개시."
"주인님?"
"내려가면서 덮친다."
인간 마을을 습격했을 때는 절벽을 몸으로 뒤뚱거리며 굴러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손가락의 위를 손으로 쓸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근력강화, 혈류가속.'
힘과 스피드. 나는 절벽을 타고 달려 내려갈 수 있는 자신감을 손에 넣었다.
노리는 건 대장이라 불린 여성형 새다가라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피융, 피융!
륜과 사냥꾼들의 사격이 내 머리 위를 스쳤다. 정확히 새대가라스의 등을 향해 쏘아진 화살은 두 개는 새대가라스를 맞췄고, 두 개는 애꿎은 땅에 꽂혔다.
"뭐냐라스!"
"적이라스!"
새대가라스 들은 금방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다. 하지만 그들이 급히 대가리를 돌렸을 때는 이미 내가 절벽을 타고 내려온 뒤였다.
"므어어어!"
짧은 기합과 함께 나는 나를 향해 부리를 들이미는 여성형 새대가라스의 부리를 두 주먹을 움켜쥐고 내리찍었다.
퍼-억!!
새대가라스의 부리가 산산조각 났다. 괴수는 자신의 부리가 설마 부서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퍽!
나는 바닥에 착지하는 반동을 실어 앞으로 크게 뛰었다. 나의 발길질은 새대가라스의 복부를 향했고, 새대가라스는 허리가 한 순간에 접혔다.
"커, 커헉."
"니들 비명은 라스라고 안하냐?"
나는 바닥에 쓰러진 대장 개체의 등을 짓밟았다. 다른 새대가르스들은 우물쭈물하며 인간들의 시체에서 부리를 떼어냈다.
"끄, 끄에에엑!!"
새대가라스들은 역시 새대가리답게 강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대장을 죽인 내 힘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콰득, 콰득.
그래서 냅다 정강이를 까버렸다. 머리는 조류라도 관절은 인간과 별반 다를게 없는 만큼, 금방 새대가라스들은 바닥에 두 팔을 딛고 엎어졌다.
"도망치라스!"
새대가라스 하나가 급히 몸을 돌려 마을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놈의 뒤에는 이미 바람의 화살이 뒤를 쫓아 날아갔다.
피융, 피융!
"따흑."
뒷통수에 바람구멍이 생긴 새대가라스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절명했다. 륜의 사격은 정확히 새대가라스를 꿰뚫었으며, 다른 종마 사냥꾼들도 제법 정확한 사격으로 그들을 저격했다.
파바박.
내게 정강이를 까여 바닥을 구르던 새대가라스가 무릎에 화살을 맞고 소리없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새대가라스가 비명을 지르기 전, 다리를 들어올려 목으로 추정되는 깃털 부위를 짓밟았다.
[안드라스] Lv. 13 ★☆
새대가라스, 아니 안드라스들은 그리 강한 마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정체불명의 마물이 있다는 것이 신경쓰였다.
새--액!
바람 화살 하나가 내 머리를 스치고 안드라스의 부리를 꿰뚫었다. 나를 향해 부리를 벌린 채 달려들려던 안드라스는 바로 바닥으로 엎어지며 절명했다. 그 놈들의 입에는 역한 피냄새와 내장의 진한 향이 물씬 풍겼다.
"이 괴물들...."
"주인님, 이건...."
"화전촌을 습격해서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은 거다."
정황이 그러했다. 20여명의 사람이 살던 화전촌은 안드라스들의 습격에 쑥대밭이 되었고,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 좀 강한 사냥꾼 없었냐?"
"...네, 여기는 진짜 밭을 개간해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종마 사냥꾼은 착잡한 얼굴로 마을의 주민들을 가리켰다. 집도 고작 7개 뿐이었고, 마을의 주변에는 아주 작은 텃밭들이 힘겹게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날벼락을 맞았군."
화전촌은 안드라스라는 마물들의 습격을 받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정보는 그러했다.
'얘들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려면 아까 그 길을 거꾸로 가야하는데.'
언덕 아래 길. 안드라스들이 하나둘 걸어왔던 그곳. 어쩌면 그 안에 안드라스들의 둥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륜아. 죽일 수 있겠냐?"
"물론이죠."
륜은 어느때보다도 열의를 보였다. 처음 사격을 할 때, 안드라스의 대가리에 바람 구멍을 만들었던 건 다름아닌 륜이었다.
"그래. 그럼 일단 작업 좀 하고 가자."
나는 안드라스들의 시체를 한군데로 모았다. 그리고 마을에 있던 삽을 꺼내 구덩이를 팠다.
"주인님, 지금 뭐하세요?"
"미끼."
나는 적당한 구덩이를 삽으로 파냈다.
"다른 안드라스 놈들이 보면 무조건 여기로 달려올 만한 미끼를 만드는 거지."
나는 부리가 부러진 안드라스를 집어들었다.
푹.
***
"이상하라스."
안드라스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서 인간들의 시체를 옮기던 안드라스가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그러는라스?"
"애들이 돌아오지 않는라스."
"마을을 덮치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라스."
안드라스 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우려를 표했다. 그들은 비탈길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동굴 입구에 이미 서버렸다.
"그렇게 걱정되면 돌아가서 살펴보고 오라스."
"주인님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라스."
"뭘?"
안드라스들의 뒤에 등에 날개가 달린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 모양의 잠옷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외형을 가진 여인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있었다.
"주, 주인님."
"뭘 안 돌아와?"
"그, 그게…."
안드라스들은 쭈볏거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까마귀 여인이 눈을 부라리자, 그들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어린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라스!"
"어린 아이들? 흠…. 걔들은 인간 먹는게 처음이던가?"
"그렇습니라스."
여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안드라스들에게서 인간의 시체를 넘겨받았다. 배에 피가 철철 흐르는 그들은 안드라스들에게 내장이 쪼아먹힌 것 같았다.
"애들 데리고 잘 돌아와. 한 번 인간 잘못 맛보면 눈 돌아갈 수 있으니."
"알겠라스."
"에휴, 괜히 어디 새면 안 된다?"
여인은 안드라스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도록 허락했다. 안드라스들은 고개를 조아린 뒤 몸을 돌렸다.
"주인님이 허락해주셔서 다행이라스."
"주인님도 안드라스니까 그런 거라스."
"애초에 우리 종족자체가 주인님 이름 아니냐라스?"
"그건 맞라스. 나도 빨리 진화해서 라스하고 끝나는 말투 떼버리고 싶은 거라스."
두 안드라스는 잡담을 하며 그들이 인간을 가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 마을에 놓인 충격적인 광격에 입이 쩍 벌어졌다.
"삐이이익?!"
"이게 무슨 날벼락이라스?!"
인간들을 먹는데 정신이 팔린 어린 안드라스들은 모두 바닥에 대가리가 꽂힌 채 늘어져있었다. 다리는 제각각 앞이나 뒤로 꺾여있었고, 전부 갈대마냥 온몸이 휘어져있었다.
"우웁!"
안드라스들은 그들의 주변에 흥건한 핏자국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인간들의 습격이라도 받은 걸까. 안드라스들은 어린 안드라스들의 곁으로 다급히 다가갔다.
"이건...화살?"
어린 안드라스들의 몸에는 화살 자국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혼란에 빠진 바로 옆 건물.
콰아아앙!
흙벽이 무너지며 로브를 입은 녹색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라스들은 깜짝 놀라며 주먹을 들어올렸으나, 괴물은 그들을 향해 두 팔을 펼치며 활짝 웃었다.
"어서오라스!"
"?!!?"
"이제 뒤지라스!"
콰앙!
괴물은 안드라스들의 대가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안드라스들은 그걸 막으려고 했지만, 녹빛의 기운이 서린 괴물의 주먹질 앞에 그들은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 사이에서 배가 불룩한 오크는 손을 털며 안드라스들을 비웃었다.
"라스 라스 거리는 거 안 쪽팔리냐?"
안드라스들은 억울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의식을 잃었다.
***
잠시 뒤.
나는 미끼들을 통해 건 도박에서 승리를 따냈다. 이상하리만치 약했던 안드라스들을 뒤로 한 채, 그들보다 조금 더 강한 안드라스들이 마을로 돌아왔었다.
아 안드라스. Lv.28. ★★☆.
아주 손쉽게 잡은 덕분에 상대의 특징은 잘 알 수 있었다. 그냥 1성은 안드라스, 그리고 진화를 거급할수록 안드라스라는 이름에 더 추가가 되는 존재들.
"야, 일어나봐."
나는 부리를 옆으로 놓고 기절한 안드라스를 발로 툭툭 건드려 깨웠다. 안드라스는 비몽사몽이었고, 나는 안드라스의 부리를 잡고 흔들었다.
"내가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거든. 대답해주지 않을래?"
"...뭐냐라스."
"내가 궁금한 건 이거라스."
나는 안드라스의 젖가슴을 짓밟았다. 머리는 괴물인 주제에, 몸통은 완벽한 여인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니들 대장인지 족장인지 제일 강한 놈 말이다, 여자냐?"
안드라스는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얼굴로 비웃었다.
"흥, 너같은 괴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출중한 미모를 가진 여성분이라스."
"그럼 잘 됐네."
나는 안드라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 먹으러 가면 되겠다."
새액.
바람 화살이 안드라스의 목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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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편이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