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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65화 (65/800)

000655일차 -------------------------

그냥은 잘 수 없었다.

레벨을 올릴 수 있는 한정된 기회를 포기하기는 어려웠고, 나는 세 모녀를 소집했다.

하피(★)와 하피(★☆).

라임과 슬라인.

그리고 메어리.

나는 우선 구분을 위해 내 딸로 태어난 하피와 슬라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의 이름은 '하르퓨이어', '라인'이란다."

"하르퓨이어요...."

꾸륵.

딸들은 자신의 이름을 간직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라임은 손으로 라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하피는 울컥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

"왜 울어?"

"흑, 주인님이, 내 딸에게 이름을 붙여주셨어...! 흑!"

하피는 자신이 이름을 받지 못했더라도 내가 딸이라도 이름을 붙여준 것에 기뻐했다. 그렇다고 하피에게 별달리 이름을 붙여주기에는 그랬다.

하피는 하피다. 나는 하피가 하피 엔젤로 진화할 때를 위한 깜짝선물을 주기 전까지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꾸르르.

라임은 슬라홀이 된 이후로 상당히 의젓해졌고, 라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둘 다 마물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었으니, 대화가 제대로 통하는 건 메어리 뿐이었다.

"네가 큰언니야. 알겠어?"

"라인이는 남동생인지 여동생인지 모르는데요?"

"그거야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슬라홀로의 진화 조건은 내가 따로 챙겨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레벨을 올리는 것.

"너희 다섯은 오늘부터 슬라임 던전 뺑뺑이 도는 거다. 라임이 대장이야. 알겠지?"

꾸르르.

35레벨이 지나 3성이 된 라임은 슬라임 드래곤도 1:1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나는 다섯 명에게 슬라임 던전에서의 레벨링을 일임했다.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슬라홀 나오면 도망쳐라."

히든보스가 얼마나 흔하게 나올 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렴 레벨 50의 존재를 상대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울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그래. 하피, 너도 당분간 애들 낳지 마.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하면 얘기하고."

"애들 뭐라고 안 해. 그래도 내가 던전에서 제일 짬이 많은 하피인데 아무렴."

오히려 하피는 하피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2성이나 되는 하피 엔젤을 낳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6% 픽뚫을 했으니 존경을 받을 법도 하지.'

나도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비록 남의 씨였지만.

"그럼 다녀와라. 3번 다 돌고, 마석들은 라임이 챙겼다가 일단 가져와."

꾸르르?

라임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마석들은 다 녹여서 슬라임들 경험치로 만들지 않았어요?

"그래. 경험치로 만들건데, 일단 모아서 실험 좀 해보려고."

현재 내게는 중급 마석 1개를 제외하고 최하급이나 하급 마석이 전혀 없다. 이미 녹여서 슬라임들에게 모두 먹였기 때문이거니와, 이제는 마석 소환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석 소환을 할 이유가 생겼다.

"라인아."

꾸륵

"너도 나를 위해 실험을 좀 해줘야겠다."

라임은 여자 10명을 먹음으로써 완벽한 여성이 되었다. 그럼 라인도 그에 준하는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럼 잘 부탁한다."

꾸르륵

"다녀올게."

"아빠, 금방 다녀올게요~"

다섯 모녀는 내게 손을 흔들며 서브 던전으로 떠났다. 하피들은 날개를 붙이고 가고, 슬라임들은 서로를 안고 가고, 메어리 혼자 지팡이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떠났다.

"......."

메어리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이 있다. 나라도 붙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꾸륵.

라임이 메어리의 손을 붙잡았다. 메어리도 싱긋 웃으며 라임의 손을 맞잡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둘의 외형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잠시 뒤.

내가 륜을 마시는 동안, 다섯 모녀는 무사히 돌아왔다. 비록 전부 다 15레벨을 찍지는 못했지만, 제법 많은 양의 마석을 들고 왔다.

'이제 이걸로 마석 소환을 하면 돼.'

전력증강을 위해서.

정확히는 '슬라인의 먹이'를 위해서.

* * *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달릴 때마다 비에 젖은 진흙이 튀었지만, 말들은 비를 맞으며 흙길을 달렸다.

"이랴!"

우비를 쓴 여인은 직접 말을 몰았고, 그 뒤에 갑옷을 가볍게 착용한 기사들이 뒤를 따랐다. 고작 다섯 명 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남작령에서 남작을 따르는 정예 기사들이었다.

"정지!"

여인, 남작의 외침과 함께 일행은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넘실거리는 파괴된 화전촌 앞에 섰다. 기사들의 후미, 그에이 경의 뒤에 앉아있던 남자가 마을의 상태를 보자마자 절규하며 뛰어내렸다.

"아아악! 안 돼!"

남자는 '던전'의 존재를 가장 먼저 성에 알린 사냥꾼이었다. 자식이 돌아오지 않아 일생일대의 도박을 벌였더니, 마을은 풍비박산이 난 채 사람의 흔적은 일절 없었다.

"그에이 경."

남작은 비를 맞으며 굳은 얼굴로 물었다.

"마물들의 발자국은 어디로?"

"그, 그게...."

그에이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성으로 돌아온 사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린 비로 인해 바닥은 흙탕물로 질척거리고 있었다.

즉 마을을 습격한 마물들의 흔적은 지워지고 있었고, 그 흔적은 이제 더는 남지 않았다.

"젠장, 한 명만 되돌리고 뒤를 쫓았어야지."

"아니면 다같이 가서 퇴치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오던가."

다른 기사들은 그에이 경의 판단을 나무랐다. 그에이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분을 삭힐 수 밖에 없었다.

비.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그에이는 마물들의 흔적을 빠르게 발견하고 직접 길을 안내하는 영예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영예는 커녕 불명예와 모욕을 당하고 있고, 그에이는 그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에이 경. 마지막으로 마물들의 흔적이 어디로 났는지 기억하십니까?"

"......이쪽입니다."

그에이는 마을의 공터로부터 길게 이어진 수풀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곳에도 발자국은 없었고, 이미 지워져있었다.

"......."

남작은 침묵했다. 화전촌이 이렇게까지 초토화되어있을 법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물들이 습격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정과 분석을 종합해보면, '던전'에서 마물들이 직접 나와 마을을 덮쳤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게 필요했다.

"......일단 철수한다."

"예?"

"철수해서, 그 다음에 계획을 짠다. 기사들은 영지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이곳의 상황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하라."

남작은 고삐를 잡아당겨 기수를 돌렸다. 더이상 추격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어찌 흔적을 찾을 방법도 없었다.

"날씨가 괜찮아지는대로 이 일대를 샅샅히 수색할 것이다. 그에이 경!"

"예!"

"자책하지마라.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남작은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굵은 빗방울이 남작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땅에 터를 잡은 마물들이 잘못이니."

그리고 남작은 자신의 영지에 마물들이 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우리는 '숨어있던 마물들'을 퇴치하는 거다. 알겠느냐?"

"남작님, 설마...?"

"......던전의 존재를 숨겨야한다. 그리고."

남작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우리 남작령의 재산이 되어야 해. 절대로 중앙 놈들의 흙발이 이 땅에 닿게 할 수는 없다. 알겠느냐?"

"예!"

기사들은 결연한 목소리로 남작에 답했다. 하지만 그에이는 선뜻 당당하게 답하지는 않았다.

"예......."

그에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주변을 훑었다. 지금은 많이 지워졌지만, 낮에 분명히 확인했던 마물들의 흔적은 그에이의 눈에 역력했다.

'만약 진짜로 던전이 있다면.'

이곳도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닌가?

어둠이 짙어지듯, 그에이의 시름도 깊어졌다.

* * *

비는 던전의 근처에까지 이르렀다. 움막을 친 인간들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각자의 위치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추워...."

진흙도 바르지 않은 임시 움막은 바람이 술술 들어오며 인간들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불이라도 지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에게는 불을 피울 수 있는 기구도 없었다.

권한도 없었다.

도망치지 않고 마물과의 교미를 통해 살아남게 된 순간부터, 그들은 노예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리고 이게 노예들이 겪는 비참함이었다.

"......야, 너 어떻게 좀 해봐."

여자 노예 하나가 릴리를 향해 표독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다른 이들은 찢어진 옷이나 헐벗은 상태였지만, 릴리는 나름 로브라도 한 벌 챙겨 입고 있었다.

"오크한테 가랑이 벌려서 그렇게 챙겨입으니까 좋냐?"

"응, 좋아."

릴리는 뻔뻔했다. 노예 중 그 누구도 릴리의 편이 아니었지만, 릴리는 동굴 안쪽의 돼지 오크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위세를 부렸다.

"너희들 조심해. 내가 들어가서 입만 뻥긋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그러는 거야?"

"흥, 어떻게 안에 씨라도 받으셨나?"

모멸적인 언사였지만 릴리는 침묵했다. 다른 여자 포로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혐오와 경악으로 물들었고, 릴리는 독기를 품고 으르렁거렸다.

"...너희들은 다를 것 같아? 내가 제일 먼저 했을 뿐이야. 이 머저리들아."

"도, 도망쳐야해...! 마물의 씨앗이 뿌려질 거라고!"

"박힌 거는 그냥 조용히 입 닥치고 있으면 되잖아! 근데 마물을 임신했다가는, 히익!"

"......신전에서 조사를 나오면 금방 알게 되겠지."

조루남이 영혼없이 입을 열었다. 지루남과 달리 오늘만 8발 가까이 싸질렀고, 그 대부분은 하피 엔젤과 다른 하피들의 속으로 들어갔다.

"마물과 통정한 존재. 분명 화형당할거다."

"그래서 어쩌라고! 평생 숨어살면 되잖아! 나, 나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밖에 구울이 저러고 있는데? 쟤들 어떻게 사람 뜯어먹었는 지 못 봤냐?"

크르륵.

붉은 구울이 움막안의 소란에 잠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포로들 모두가 구울에게 업혀 던전까지 끌려왔지만, 그래도 생리적인 혐오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 잠깐만요. 그.... 던전의 주인을 만나게 해주세요."

크륵?

릴리가 피부가 붉은 구울-하서스를 불러세웠다. 하서스는 몸을 돌려 몸을 숙였고, 릴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하서스에게 간청했다.

"제발요. 이대로 있다가는 다들 얼어죽을 거예요."

크르륵.

하서스는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괴물이지만 의사가 분명히 통하는 존재였고, 릴리는 고개를 떨구며 입술을 깨물었다.

"큭, 머저리. 괴물 씨받이가 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미쳐도 단단히 미쳤, 크흑! 아...추워."

인간들은 추위에 괴로워했고, 하서스는 그걸 잠시동안 지켜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릴리는 침묵했고, 그들은 괜히 힘만 뺐다가 추위에 다시 떨어야했다.

저벅, 저벅.

무거운 발소리가 움막의 주변에 울렸다. 거친 숨소리도 들렸다.

쿵.

구울들의 발자국 소리와 다른 무거운 발소리가 움막의 앞에 멈췄다.

"춥냐?"

그곳에는 녹색의 괴물이 있었다.

* * *

갑자기 인간들에게 엄청 미안했다. 군번이 꼬여서 재수없게 전역하기 한 달 직전에 혹한기를 뛴 경험을 하고도, 시설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밤의 추위에 떨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던전 내부는 따뜻했다. 동굴이 길게 원형으로 이어져있음에도 <던전>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내부의 기온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특히 침실 주변은 따스하기 그지 없어 벌거벗고 자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륜도 침실에서는 옷을 입지 않았다. 이제는 에일라도 함께 포함되지만.

'근데 얘들 안으로 들이면 또 정원 초과되는데.'

부하로 들이면 무조건 정원초과. 그렇다고 포로로 들이자니 그건 그거대로 꺼려졌다.

한 번 포로가 된 존재를 포로에서 풀어주는 시스템은 둘 중 하나였다.

'죽이거나 아니면 부하로 만들거나.'

밤에만 감옥에 집어넣고, 낮에는 풀어주어 밖에서 일하도록 하는 편의주의적 시스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된다면 상당히 찝찝했다.

"......에이, 쓰벌."

밤에는 움직일 일이 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인간 송장을 구울들에게 치우게 하는 것 보다는, 정원 외의 노동력을 조금이라도 이용하는 게 더 나았다.

"일단 오늘은 동굴에서 자라."

명백한 정원 초과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몸 좀 무겁고 말지 뭐.'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간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쭈뼛거리며 내 뒤를 따랐고, 내 옆에는 릴리가 내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함께 걸으려하고 있었다. 나는 하서스와 구울들에게 인간들을 가리켰다.

"잡아다가 거기 있지? 오늘 막사 망가졌던 곳. 거기다가 집어넣어."

크르륵.

구울들이 하나 둘 인간들을 잡고 던전 내부로 들어갔다. 하나 둘 들어가기 무섭게 던전 내부의 정원이 초과되며 모두의 움직임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쯧."

빨리 던전 정원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던전의 등급 자체를 늘려야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던전 등급 상승>

# E등급 -> D등급

1) 위험도 50 달성 ( 52 / 50 )

2) ★★★ 부하 3인 이상 확보 ( 2 / 3 )

3) 소환 시설 Lv.2 달성 ( O / O )

"......?"

뭐야 왜 위험도 올랐지. 나는 위험도가 이전보다 30이나 오를 이유를 찾다가, 금방 이유를 찾아냈다.

"루나."

나는 나보다 등급도 레벨도 높은 루나를 내 분신으로 격퇴했다.

"......."

다음번에 만나면 얼굴부터 복부까지 하얀 꿀로 샤워를 하도록 만들어주리라. 나는 엘프의 숲을 향해 절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감사를 표한 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까지 걸어가 벌러덩 누웠다.

새근, 새근.

내 침대에는 륜과 에일라가 자고 있었다. 둘은 상당히 지쳐보였고,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정원초과의 피로도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건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밖에 재워야겠다 다짐하며, 둘의 잠을 깨우지 않는 선에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 작품 후기 ============================

64화에 강을 흘러가던 건 주인공의 씨가 아니라 루나의 꿀입니다. 강이 오염되어서 집단 임신하거나 그런 일은 아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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