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3화 (53/800)

000534일차 -------------------------

"거 더럽게 느리네. 어떻게 내가 뛰어오는 것보다 날아오는게 느리지?"

"그거야 아빠가 너무 빨리 달리니까 그러지."

내 어깨에 앉은 메어리가 고깔모자를 눌러쓰며 쿡쿡 웃었다. 내가 미리 정찰해둔 위치에 도착한 사람은 나와 메어리 둘 뿐이었다.

"히히, 아빠 몸은 그런데 되게 빠르네."

"야, 야. 배 건드리지마."

메어리는 발의 뒷꿈치로 내 배를 살살 문지르며 꺄르르 웃었다. 내가 업어서 데려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발에 피멍이 들었을 녀석이 은혜도 모르고 건방을 떠는게 살짝 언짢아졌다.

"내려."

"아 왜?"

"자리 주인 왔다."

2착. 륜.

어느덧 온전한 하이엘프가 된 륜은 내 전력질주에 맞춰 내 뒤에 수월하게 따라붙었다. 3성만 되더라도 내 속도를 금방 추월할 것 같았다.

풀썩.

륜은 말도 없이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내 어깨에 엉덩이를 붙였다. 메어리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륜을 노려봤지만, 륜은 아무렇지도 않게 절벽 아래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조금 있네요. 한...스물 여섯? 일곱?"

"30명 넘는다고 하더니 그새 줄었네. 구조단이 안돌아오니까 도망쳤구나."

쫄아서 도망갔다면 어쩔 수 없지. 이번 전투를 통해 위험도를 딱 알맞게 늘렸다면 좋았겠지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주인님, 어떻게 습격하실 거예요? 제가 화살을 쏠까요?"

"아빠! 나 화염마법 좀 쓸 수 있는데...."

"륜은 빗나가고 메어리는 눈에 띄니까 하지말자."

퍼드득.

하피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구울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슬라임들은 하피의 등에 올라타있거나 구울들이 안고 왔다.

'에일라를 두고 온 건 마음에 걸리지만....'

가고일이 던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전력적으로 문제도 없어.'

마물소환을 통해 소환된 ★★ 마물은 15레벨부터 시작하는 경력직인 덕분에, 아무 부담없이 가고일을 배치하고 왔다. 거기에 보험까지 들어뒀으니 아무 문제는 없을 터.

"슬슬 다 왔나?"

"하피들만 도착하면 끝이에요."

즉, 여기에는 서넛을 제외한 우리 던전의 모든 전력이 집결되어있다는 말이었다. 나, 륜, 메어리, 그리고 구울들과 슬라임들, 하피들.

"인간들은 다행히 마을로 기어들어갔군. 원래는 저기 다른 숙영지에 터를 잡고 있었거든."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하다가 다시 마을로 들어간 것 같은데요? 잠시만요."

륜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쫑긋 세운 귀로 잠시 집중을 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어요. 몇몇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아직 저희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도망치는 사람의 수가 많아?"

"아뇨? 둘, 아니 셋?"

"그럼 됐어. 그 정도는 놓쳐도 돼."

오히려 소문이 점점 더 퍼져나가는게 더 좋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수록, 우리 던전의 아이들도 점점 많은 먹이를 먹게 될 것이다.

"그럼 슬슬 야습을 해야지. 흐흐. 하피들 다 도착했지?"

"어. 하아, 하아."

하피들은 저마다 발에 빅슬라임이나 슬라임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평소보다 더 크기가 커진 상태였고, 하피 엔젤의 위에는 라임이 업혀 있었다.

"그럼 준비해. 드랍 간다."

"드랍이요?"

"그래."

나는 절벽의 끝에 섰다. 제법 높이가 상당했지만 마을 언덕까지 내려가기에는 충분한 비탈길이었고, 내 몸은 충분히 충격을 견뎌낼 만큼 단단했다.

"륜이랑 메어리는 그냥 저쪽에 내려가는 루트로 돌아서 와. 구울들 이끌고 같이. 알겠지?"

"주인님, 그래도 안전하게 가시는게...."

"종마 사냥꾼들한테 확인했잖아. 촌장보다 강한 놈들 없었어."

그러니까 이번 야습은 유린이며 학살이 될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들은 모두 죽어 마물들의 경험치가 될 것이며, 항복하는 자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후우, 후우."

나는 각도를 잘 조정했다. 내려가는 길에는 제법 굵기가 굵은 나무들이 있었지만, 저정도에 긁힌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직접 트랄이랑 실험까지 해봤으니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피들, 공습 준비."

한 번 숨을 고른 하피들이 슬라임들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거대한 슬라임들을 내려놓을 준비를 했고, 나는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며 내가 직접 잘라낸 나무 토막을 비탈길에 비스듬히 세웠다.

턱.

구울들이 입으로 파낸 홈에 내 발이 딱 맞게 들어갔다. 나는 앞뒤로 알맞게 들어간 발을 이리저리 움직인 뒤, 나무토막의 앞에 무게를 실었다.

"그럼 고으어어어억!!"

말을 할 새도 없이 중력과 무게에 이끌려 나무토막이 킥보드를 타는 것처럼 비탈길을 달렸다. 중력가속도에 내 무게까지 더해지니 나무토막은 삽시간에 바닥부터 갈려나갔다.

카가가가각!

나무가 갈려나가는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소동을 눈치챈 사냥꾼들이 하나 둘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툭, 툭툭툭.

하지만 이미 하늘에서는 슬라임들의 비가 내렸다. 하피들은 날개를 움직여 정확히 위치를 조정했고, 슬라임들은 제법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나무로 된 천장을 향해.

우지끈!!

빅슬라임의 거체가 천장에 거대한 구멍을 냈다. 놀란 사냥꾼 하나가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뭐, 뭐야?!"

"으어어어어어!!"

나는 괴성을 지르며 불이난 발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나무 토막의 끝이 나무 줄기를 친 순간, 나는 가속도와 반동을 이용해 하늘 높이 사지를 뻗었다.

언젠가 부족의 놈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덩치값 좀 하라고.

그래서 덩치값을 하기 위해, 야습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리는 수단을 선택했다.

"깔리는 놈은 미안하다아아아아!"

나는 가장 크기가 큰 집의 천장을 향해 팔다리를 모았다.

우장창창!!

나무로 된 집의 천장이 나와 함께 무너져내렸다. 팔다리가 따갑기는 했지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고, 내 몸은 곧 넓은 집의 바닥에 낙하했다.

쿠구구구궁!!

내가 생각해도 조금 심하다 싶은 진동이 크게 울렸다. 낙법을 취하기는 했어도 팔다리가 닿기 전에 먼저 배부터 닿아서 살짝 아팠다.

"크흐흡."

살짝 따갑기는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폭삭 무너내린 집의 한가운데에서 흙먼지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쯧."

서까래가 무너지면서 영 좋지 않은 곳을 덮쳤다. 천장의 으깨진 널판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침대 위를 덮치고 말았다.

"뭐...야...?"

두 남녀는 성기를 결합한 채 동시에 판자에 찔렸다. 남자는 검붉은 피를 왈칵 토해냈고, 아래에 깔린 여자는 그 피를 가슴으로 전부 받아내야했다.

"아, 아아악!!"

"거 시끄럽네."

나는 내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시야를 가리는 판자를 치웠다. 남자가 위에서 박아대는 덕분에 여자는 안전했다.

"쯧. 거 미안하다. 근데 이렇게 죽어도 복상사 아니냐."

나는 숨을 꺽꺽 쉬며 죽어가는 남자의 등에서 판자를 뽑아냈다. 싸구려를 썼는지 찢어진 결이 바르지 못했다.

"이거 영 못쓰-"

푹.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차가운 단검의 감촉이었고, 나는 등을 돌렸다.

"아, 어떻게...?!"

여자는 남자에게 깔린 와중에도 몸을 일으켜 내 옆구리를 단검으로 찔렀다. 하지만 내 옆구리에는 탄탄한 근육과 근육보다 단단한 피하지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으, 피."

단검에 찔린 덕분에 옆구리에는 살짝 긴 자상이 생겼지만 그리 깊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단검을 찌른 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커터칼에 손이 베이는 것보다 더 얕았다.

"너는 나와서 직접 보는게 낫겠다."

나는 여자를 깔아뭉게는 남자를 들어다가 바닥으로 밀었다. 여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도, 나는 여자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들리냐? 밖에 비명소리가?"

나는 여자를 잡고 문을 나섰다. 이미 문짝은 나가떨어졌고, 밖은 무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냥꾼들과 온갖 종류가 섞인 괴물들로 가득했다.

"이, 이건...!"

"니네 마을에서 우리 던전 쳐들어와서 말이야."

"던전?!"

여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했다.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냥꾼들을 가리켰다.

"봐봐라. 지금 어떻게 되는지."

으적, 으적.

빅슬라임들은 사람을 통째로 덮쳐 자신의 몸속에 가둔 뒤 먹어치우고 있었다. 사냥꾼은 빅슬라임의 몸 안에서 발버둥을 쳤지만, 곧 아무 힘 없이 바깥으로 내민 팔만 툭 하고 땅에 떨어졌다.

끄우어어!

구울들은 몸에 화살이 꽂힌 채로 화살을 쏜 이들을 긴 팔로 습격했다. 산 채로 먹는 것보다 죽은 시체를 먹는 걸 좋아하는 구울들은 보이는 사람을 모두 일단 죽이고 보고 있었다.

오호호호!

하피들은 날개를 자유롭게 펄럭이며 사냥꾼들을 농락했다. 사냥꾼들은 급히 활 시위를 겨누며 하피들을 견제했지만, 역으로 자신의 배에 날아든 화살에 픽 쓰러졌다.

"오, 맞춤."

륜의 화살이 사냥꾼의 활을 부순 걸로도 모자라 사냥꾼의 허벅지에 박혔다. 하피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진 사냥꾼을 뒤에서 덮쳐 하늘로 들어올렸다.

"주인님! 저기!"

륜이 비명을 지르며 활을 들어올렸다. 우리가 습격을 자행한 반대 방향으로, 사냥꾼 하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냥 보내줄까?'

살려두면 화근이 되겠지만 경험치들을 몰고 올 것이다.

"그냥 살-"

퍽--!!

도망치던 사냥꾼의 등 뒤에 붉은 불꽃의 화살이 꽂혔다. 사냥꾼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아, 아쉽다. 머리를 노렸는데."

메어리는 입맛을 다시며 안타까워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게 갓 태어난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진짜 메이가 다시 태어난 건가?'

메이의 일부를 이어받고 다시 태어난 존재.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주인님, 도망치는 놈들은 이제 없는데요."

륜이 활 시위를 당기며 주변을 가리켰다. 이미 죽은 사냥꾼들도 있고, 공포에 질려 활을 놓고 제자리에서 발광하는 자들도 있었다.

'다 레벨 낮네.'

대부분이 ★이며, 간혹 ★★이 눈에 들어왔다. 레벨은 전부 20레벨 이하였지만, 그 덕분에 마물들이 아주 손쉽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럼 선택해라."

나는 목을 쥔 여자를 마을 공터 한 가운데에 놓았다.

"여기서 그냥 죽겠느냐, 아니면 우리 던전의 노예가 되겠느냐?"

"......괴물의 부하가 될 것 같아?! 차라리 죽여!"

"륜아."

피융.

화살이 여자의 미간에 꽂혔다. 여자는 죽여달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얼굴 그대로 옆으로 털썩 넘어졌다.

"어, 으어어...."

사냥꾼들 중 일부의 바지가 축축하게 물들어갔다. 죽이라고 해서 죽였건만, 설마 진짜로 죽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건지 몇몇이 진짜로 지려버렸다.

"쯧."

저러면 먹어치우기 힘들텐데. 본보기의 효과가 너무 좋아도 탈이었다. 나는 하피의 발톱에 의해 등이 눌리는 남자의 목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남자는 침을 꼴깍 삼키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 노예가 되겠냐, 아니면 죽겠냐?"

"......생각할 시간을-"

피융.

생각할 시간도 없이, 륜의 화살이 이번에는 허벅지에 꽂혔다.

"아아악!"

허벅지에 화살이 박힌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나는 그의 턱을 붙잡고 몸을 멈춰세운다음,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며 물었다.

"대답 안하냐?"

"하겠습니다! 노예, 노예 할테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남자는 생명을 구걸했다. 나는 그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한 명 한 명 하려니까 귀찮군. 이지선다다. 죽겠다는 사람은 저쪽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이리로 와라.

그 누구도 죽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죽은 10명을 제외하고 나는 그들을 찬찬히 살폈다.

<복종> 가차없이 죽이는 괴물의 무자비함에 공포에 질렸습니다. 하지만 괴물들에게 잡혀도 살아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탈출할 기회를 엿볼 것입니다.

메이가 내게 잡혀 그 굴욕을 맛보았음에도 도망치려고 했듯이, 사냥꾼들은 모두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려는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게 당연하기도 했다.

"남자가 여섯, 여자가 여덟...."

인원 수는 맞지 않지만 아무렴 어떠랴. 나는 아직까지 라임을 업고 있는 하피 엔젤을 내려오게했다. 하피 엔젤의 발톱 아래에는 큼지막한 풍선 같은 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여기다 끼얹어버려."

하피 엔젤은 기다렸다는 듯 풍선을 찢었다. 그와 동시에 얇은 피막이 터지며,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슬라홀의 체액'이 사람들을 뒤덮었다.

후두두둑.

노예들은 슬라홀의 체액을 뒤집어썼다.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듯 했지만, 슬라홀의 체액은 효과가 아주 빠르게 나타나는 미약이었다.

"지금부터 던전까지 가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거든?"

나는 몸을 뒤척거리는 인간들에게 던전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도착할 때 까지 참으면 놓아줄게."

단언컨대 아무도 없으리라.

============================ 작품 후기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