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32화 (32/800)

000322일차 -------------------------

파후우가 서브 던전에 들어간 그 시각.

하피는 열심히 던전의 뒷 통로와 강을 오다니며 물을 떠왔다.

"어.... 물 떠왔는데...."

물은 떠왔으나 정작 당사자가 없었다. 있는 자라고는 조금 강해보이는 엘프 한 명 뿐. 귀의 형태로 보아 하이 엘프가 분명했지만, 아직 '의식'을 치르지 않은 엘프로 보였다.

그리고 하피는 제법 눈치가 빠른 마물이었다.  던전의 주인인 오크는 이 어린 엘프를 상당히 아끼고 있었고, 자신이 눈밖에 나는 행동을 했다가는 고자질을 할 지도 몰랐다.

"너 뭐하는 거니?"

"아, 이거요?"

륜은 어느새 13개로 늘어난 나무잔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륜의 옆에는 라임이 배가 볼록해진 상태로 바닥에 누워 잔여물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명령하셨어요. 이거 다 채워오래요."

"......."

아무래도 하피의 고생은 제법 길어질 모양이었다. 하피는 서러움에 눈물을 글썽이며, 명령을 내린 당사자를 찾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어서 무리인데...."

"괜찮아요, 저도 같이 도와드릴게요!"

륜은 활짝 웃으며 나무잔을 들어올렸다.

"흑...!"

하피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륜은 하피가 떠온 나무잔을 임시로나마 땅에 박아넣은 뒤, 나무잔을 챙겨 함께 물을 길러 떠났다.

"......"

그리고 그 순간, 감옥 안에 갇혀있던 메이가 몸을 뒤척거리기 시작했다.

* * *

쿠웅!

슬라홀은 체액을 사방으로 뿌리며 나를 견제했다. 나는 아예 구울들을 보스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나 혼자 보스방으로 들어와 슬라홀을 상대했다.

퍼억!

내 발목을 감싸려는 팔을 발로 짓밟았다. 슬라홀은 길게 늘어진 팔이 밟히자마자 바로 밟힌 부분을 끊어내고 팔을 회수했다.

"귀찮게 하네, 정말."

벌써 뜯어낸 슬라홀의 점액만 하더라도 사방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슬라홀은 빠른 재생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재생능력을 무기로 사용할 만큼 머리가 잘 돌아갔다.

'저거 라임 다음 진화다.'

여성의 몸만을 본딴 마네킹에 가까운 형태. 어째서 이름이 슬라홀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일단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잘 알겠다.

꾸르륵.

슬라홀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슬라임 드래곤 대신 나온 이유가 나를 비웃기 위함이라면, 슬라홀은 생각을 잘못해도 상당히 잘못했다.

쿠-웅!

나는 발을 크게 굴러 전방으로 뛰었다. 슬라홀은 화들짝 놀라 나를 향해 체엑을 뿌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내가 더 빠르다. 나는 무게중심을 앞으로 실었고, 넘어질것처럼 달렸다.

꾸르르륵?!

슬라홀은 무작정 돌진하는 내 접근에 몸을 풍선처럼 부풀렸다. 피하기에는 늦었으니, 나를 튕겨내거나 받아내려는 생각인 듯 했다.

"멍청한 것."

받아낼 수 있으면 받아내 보던가. 나는 슬라홀에게 닿기 직전, 발을 크게 굴러 점프했다.

푸---욱!

내 머리가 슬라홀의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표면이 질긴 물풍선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고, 슬라홀은 제 뱃속에 들어온 나를 옳다꾸나 하면서 먹어치우려 했다.

나는 슬라홀의 안으로 다이빙을 했고, 슬라홀은 내 상체를 집어삼키며 나를 제 몸속으로 집어삼키려 했다.

쿵, 쿵쿵!

나는 슬라홀의 안에서 주먹을 휘둘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강한 진동만 울릴 뿐, 슬라홀은 나를 어느새 배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꾸르륵.

'멍청이.'

슬라홀은 무식하게 돌진한 나를 비웃었다. 나 또한 무방비하게 나를 집어삼킨 슬라홀을 비웃었다.

내게 날붙이는 없다. 하지만 슬라홀의 피부를 찢을 수단은 명백히 존재했다.

콰득!

나는 슬라홀의 표피를 손으로 모아 물어 뜯었다. 곧, 슬라홀의 표피에서 피처럼 붉은 체액이 흘러나왔다.

"거 육즙 잘 터지네."

내게는 칼날이 없을지언정, 칼날보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다. 내 날카로운 송곳니는 표피에 구멍을 뚫었고, 내 하복부를 집어삼키려던 슬라홀의 움직임이 멈췄다.

쯔어억!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슬라홀의 몸을 한움큼 뜯어냈다. 슬라홀의 동체가 크게 요동쳤고, 그것은 분명 고통스러워하는 신호였다.

'재생은 못한다.'

슬라홀은 나를 떼어내어 표피를 재생시키려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 내 스스로 만든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푹!

나는 뜯어낸 표피 사이로 두 손을 집어넣었다. 슬라홀의 질척거리는 체액이 두 손에 잡혔고, 나는 그 속을 헤집으며 더욱 팔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럼 이제-'

쯔어어어억!!

나는 슬라홀의 안에 밀어넣은 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렸다. 이미 찢어진 표피가 내 팔에 밀려 세로로 길게 찢어져 체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쥬륵.

나는 입가에 튄 슬라홀의 체액을 혀로 핥았다. 같은 3성이라도 레벨이 훨씬 높은 덕분인지, 슬라홀은 꾸덕한 푸딩같은 맛이 났다.

콰득, 꿀꺽.

나는 슬라홀의 체액을 통해 갈증을 해소했고, 슬라홀은 나를 끊임없이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슬라홀의 안에서 팔을 휘젓다가 조금 다른 촉감의 덩어리를 찾아냈다.

꾸륵?!

슬라홀은 그 어느때보다도 크게 요동쳤다. 몸속의 체액을 빠르게 움직여 덩어리를 잡은 내 손을 떼어내려 했으나, 나는 덩어리를 움켜쥐고 가슴팍으로 잡아당겼다.

"크으윽?!"

50레벨 주제에 체내에서만큼은 체액의 흐름이 어지간한 홍수의 물살보다도 거셌다. 지지할 기반이 없던 나는 한 순간 덩어리를 놓칠 뻔 했다.

꾸륵, 꾸르륵!

슬라홀은 체액을 빠르게 순환시키며 내 손에서 덩어리를 지키려했다. 나는 가까스로 내 앞까지 당기는데 성공했지만, 슬라홀 또한 체액으로 덩어리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이런 썅!"

약점을 잡았는데 놓칠 수 없다. 나는 내가 찢어놓은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진흙속에 얼굴을 처박은 것 마냥 찝찝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나, 내 입은 목적을 달성했다.

콰득.

나는 슬라홀의 덩어리를 씹었다. 빼낼 수 없다면, 먹어치우는 수밖에.

으적, 으적!

슬라홀은 내 입으로 체액을 흘려넣으며 덩어리를 빼내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 체액까지 전부 집어삼키며 덩어리를 먹어치웠다.

콰득!

덩어리를 반쯤 먹어치우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넣은 순간, 홍수가 난 것 처럼 요동치던 슬라홀의 체액이 움직임을 멈췄다.

꾸르륵....

슬라홀은 바람빠진 풍선마냥 힘을 잃었고,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덩어리를 입에 물고 슬라홀을 빠져나왔다.

"퉤."

딱딱하게 굳은 젤리같은 느낌이었지만 맛은 시큼했다. 빨리 입을 헹구고 싶었다.

<업적> '서브 던전-슬라임'의 히든 보스를 클리어하였습니다!

# 진화루트 - '슬라홀' 개방

# 보상 : 마물소환권 1개, 중급마석 1개.

"재주는 내가 부렸는데 꿀은 라임이 빠네."

안되겠다. 가서 하얀 꿀을 빨게 만들어야겠다.

'그래도 덕분에 이런 서브 던전도 발견했으니 챙겨주기는 해야지.'

나는 라임의 진화 테크트리를 찾았다. 슬라임의 진화 계통은 슬라임 때부터 진화가 구분되는 모양이었고, 슬라인인 라임은 오직 슬라홀로만 진화가 가능했다.

<슬라홀> 슬라인이 조금 더 인간의 모습을 갖춘 상태. 먹이가 얼마나 있든 블랙홀처럼 먹어치운다. 가장 많이 먹은 먹이의 형태를 선호한다.

# 진화 조건

1)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00 / 35)

2) 특정 종족을 10개체 먹어치운다. (0 / 10)

"......?"

빅슬라임을 50개체 먹어치우는 조건이 아니었던가? 아, 그건 슬라임 드래곤으로의 진화조건이었나? 잠시 헷갈린 나는 슬라홀의 진화 정보가 나타난 스크린을 눈앞에 두고  제법 긴 시간을 고민했다.

특정 종족. 형태를 선호.

인간을 먹으면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는 말.

'그럼 하피 먹이면 날개 달린 슬라임이 되는 건가?'

하피의 쓰임새가 하나는 늘어났다. 실제로 가능한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도를 해봐도 나쁘지는 않을 터.

'낳게 해서 먹이는 건 조금 그러니까 차원석 생기기를 바래야지.'

서브 던전의 종류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하피가 주로 나오는 서브 던전이 나온다면, 라임을 투입해 전부 먹어치우게 하면 될 일이다.

아니면 다른 종족을 먹어치우거나. 엘프라던가, 엘프라던가, 엘프라던가.

"욕심 진짜 끝이 없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나는 내 앞에 떨어진 마물소환권 1개와 중급 마석을 하서스에게 챙기도록 명령을 내렸다.

크르륵?

하서스는 이걸 왜 자신에게 주냐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중요한 물건이지만, 나는 따로 챙겨야 할 물건이 있었다.

"난 저거 챙겨야지."

나는 슬라홀의 체액을 어느정도 밖으로 쏟아낸 뒤, 표피를 잘 묶어 내 등에 둘러멨다.

"식량 개꿀."

언제까지 륜에게 내 하얀 꿀을 먹일 수 없는 노릇. 식탐이 많은 아이에게는 간식이 필요했다.

나는 구울들과 함께 서브 던전을 빠져나갔고, 마침 륜은 하피와 함께 나무잔에 물을 길어왔다.

"주인님! 저녁 먹어요!"

"그래. 저녁이다."

나는 슬라홀을 식량창고로 쓰려던 저장고 Lv.1에 쏟아넣었다. 그리고 비어있던 나무잔으로 슬라홀의 체액을 한 잔 꽉 채웠다.

"저녁 먹자. ...응? 왜 그렇게 실망한 얼굴이야?"

"아무것도 아녜요...."

륜은 분명 실망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릎을 비비며, 시선은 슬라홀의 체액으로 가득한 내 몸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리고 륜에게 심드렁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저녁은 알아서 먹어라."

나는 서브 던전을 공략한 결산을 해야했다. 그리고 덤으로 륜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자 했다.

"히힛...."

아니나다를까.

륜은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내 몸에 묻은 슬라홀의 체액부터 혀로 핥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