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1일차 -------------------------
동굴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행이 긴장을 한 상태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굴 내부는 초반에 깔린 함정을 제외하면 일방통행에 가까웠다.
"뭔가...."
"쉿."
동굴 내부, 거대한 공동이 눈에 들어왔다. 문도 달려있지 않은 활짝 열린 공동은 자연 동굴에 가까웠으나, 일행은 공동 한 가운데에 놓인 알몸의 여인을 보고 경악했다.
"저런!"
"리처드! 위험해!"
리처드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일행도 하는 수 없이 리처드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리처드의 행동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심해...!"
공동 한 가운데에 놓인 금발의 여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몸에는 녹색의 슬라임 점액으로 덕지덕지했지만, 그 투명한 점액질 사이로 가슴이 훤히 비쳤다.
"크, 크흠!"
리처드는 괜히 부끄러워져 헛기침을 한 뒤, 주변을 경계했다. 역시 동굴은 슬라임 던전이 확실한 모양이었고, 여인은 슬라임에게 당한 것 같았다.
"그럼...?"
입구에 깔려있던 함정은 뭐지? 리처드가 기시감이 든 순간, 메리가 사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위험해! 여기 뭔가 살고 있어!"
메리가 가리킨 곳에는 슬라임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기 힘든 정체 불명의 목재 시설물이 놓여있었다. 하나는 흑마법사들이나 사용할 법한 제단 같은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반듯하게 잘려진 나무토막이 늘어진 평상이었다.
분명,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있다. 리처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인이 자리를 비웠던 건가...! 얘들아! 저 여인을 데리고 도망을-"
뚝.
순간, 리처드의 정수리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기분이 더럽고 찝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냄새가 역했다. 리처드는 천장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쿠흡.
어둠속에서 녹색의 덩어리가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슬라임인가? 리처드는 슬라임치고는 뭔가 동작이 뒤뚱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위험해!"
메리가 급히 소리쳤다. 특유의 기감 때문인지, 메리는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걸 직감하고 출구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도, 도망치자! 다들 도망쳐야-"
쿠웅--!!
동굴의 밖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에 녹색의 덩어리가 떨어졌다. 키가 족히 2m는 가까이 되어보이는 거대한 물체는 녹색의 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히익."
마을의 사냥꾼과 비교해도, 가끔 마을을 찾아와 난리를 치는 영주가의 망나니 옆 기사와 비교해도 단단해보이는 근육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탄탄한 가슴 근육 아래 뽈록 튀어나온 배만 아니었다면, 리처드는 마물이 아니라 전사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쿠후흡.
하지만 상대는 전사가 아니라 괴물이며, 마물이었다. 침입자를 상대로 함정을 놓은 지성까지 갖춘 괴물.
"으, 으아악!!"
잭은 비명을 지르며 도주했다. 어딘가 다른 출구가 없는지 찾느라 분주했다.
"젠장! 너 때문이야! 네가 이런 곳에 오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카이는 피눈물을 토하며 고함을 질렀다. 목검을 든 그의 손은 공포로 벌벌 떨고 있었다.
"젠장, 한심한 녀석들! 고작 한 마리 뿐이잖아! 메리!"
"...응, 별의 신이시여! 전사에게 축복을!"
메리의 영창과 함께 리처드의 몸에서 은빛의 기운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숨을 크게 골랐다.
"흥! 죽어라, 이 돼지같은 괴물아!"
리처드는 검을 높이 치켜들며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괴물은 제 팔뚝보다 작은 나무 막대를 들고 가만히 있다가, 리처드를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푸-욱!
리처드의 목검이 괴물의 배를 찔렀다. 목검은 마력이 서린 채로 튕겨져 산산조각났고, 리처드의 부서진 목검은 괴물의 옆구리로 튕겨나갔다.
씩.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괴물의 눈은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족...?!"
공포에 의한 착각일까. 리처드는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괴물은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으, 으아아악!!"
괴물은 리처드를 목만 잡고 하늘로 들어올렸다. 리처드는 괴물의 손을 향해 부서진 목검을 죽어라 휘둘렀지만, 그저 힘만 빠질 뿐이었다. 괴물은 나무 막대를 제 겨드랑이에 끼우고 리처드의 몸통을 움켜쥐었다.
"아, 안 돼!"
메리가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앞으로 내민 그 순간.
뚜둑!
리처드의 목이 180도 돌아갔다. 메리는 눈을 까뒤집고 절명한 리처드의 얼굴을 보고 지팡이를 놓아버렸다.
"하, 하으, 흐아아악?!"
마을에서 가장 강하다고 소문났던 청년이 죽어버렸다. 리처드를 일격에 죽인 괴물은 리처드를 바닥에 집어던지며, 리처드가 들고있던 부서진 목검을 들어올렸다.
파후으.
거친 숨소리가 동공을 가득 메웠다. 괴물은 양손에 나무 막대를 들고 크게 뛰어올랐다.
"으, 으아아악! 왜 이렇게 빨라!"
그 속도는 두 청년이 도망치는 속도를 수 배 상회하는 속도. 리처드의 객기에 의해 공동에 따라온 청년들은 전부 괴물에 의해 잡혔다.
그들이 마지막에 본 것은 자신들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쳐지는 리처드의 부서진 목검이었다.
* * *
"쒸익, 쒸익."
오랜만에 술래잡기를 하니 더럽게 숨이 찼다. 바퀴벌레처럼 뛰어다니는 두 인간은 내게 협력하여 대항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를 버리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나는 사방을 뛰어다니며 두 명, 아니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고있는 여자 한 명 까지 세 명을 구석으로 몰아야했다. 남자 하나는 죽이고 여자는 기절시켰지만, 다른 놈이 부리나케 입구로 도망갔다.
"전방 라임!"
나는 라임을 전속력으로 집어던졌다. 물풍선이라도 라임도 엄연한 마물이며, 인간을 덮치는 본능같은 것이 존재한다.
콰득!
라임은 도망치던 청년의 뒷통수에 안착해 머리를 집어삼켰다. 청년은 라임을 뜯어내려 안간힘을 썼으나, 이미 동족 포식을 통해 7레벨-어쩌면 그 이상-으로 강해진 라임을 뜯어내지는 못했다.
'저건 저거대로 좋네.'
나는 라임을 야구공처럼 던져 청년의 뒷통수를 맞출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라임은 직접 안착해 머리부터 잡아먹는게 취향인 모양이다.
으적, 으저적.
그 광경은 아무리 3년간 던전에서 개처럼 구른 나조차도 메스꺼울 정도로 과격했다. 나는 라임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기절시킨 여인을 옷째로 줄기로 칭칭 휘감았다.
<승리> <리처드의 기사단> E급을 요격하였습니다!
# 전공 (1) 파후우 쿰처쿠, (2) 라임
# 보상 : 마물 소환서 1개
뿅!
내 눈앞에 핑크빛 연기와 함께 보물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무슨 원리로 내 바로 앞에 이런게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경을 쓰면 지는 거였다. 시스템의 원리를 따져봐야 무슨 쓸모가 있는가. 시스템을 잘 활용해야지.
그래. 시스템 활용. 나는 내가 토벌한 이 E급 기사단의 정보를 확인하고자 했다.
<정보열람> 리처드의 기사단
# 단장 : 리처드 (★★ Lv.15)
# 부하 : 메리 (★☆☆ Lv.13), 잭 (★ Lv.5), 카이 (★ Lv.5).
"뭐야. 여자만 3성이네?"
이 세계는 여성이 우월한 세계란 말인가? 어떻게 4명 중에 3성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고, 그게 시작하자마자 공포에 빠져 기절한 여자였다.
'생각해보니 별이랑 성별은 그닥 관계 없지.'
그리 많은 적을 본 건 아니지만, 내가 태생이 5성이고 트랄이 6성 아닌가. 성별을 따지기 전에 먼저 오크가 인간에게 우월한가 아닌가를 따져야 할 문제였다.
"쯧. 뭐 정보를 알아 볼 방법도 없이 죽어버렸으니."
약해도 너무 약했다. 아무리 튜토리얼 던전이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적들은 속된 말로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라임에게 잡히는 시점에서 말을 다했다.
'하지만 정보를 얻을 방법은 있다.'
하나, 마을 청년들의 소꿉놀이같은 기사단이 나타날 정도로 이 던전은 발견되기 쉬운 장소에 노출되어있다. 원래가 슬라임 던전이었다면, 그냥 귀찮아서 방치하고 있던 던전일 터.
둘, 아직 나는 메리를 죽이지는 않았다. 마침 에일라와 륜에 이어 포로 자리가 하나 남아있었고, 현재 메리는 '포로'가 된 상태다.
으적, 으적.
라임은 쩝쩝소리까지 내며 자신이 잡은 인간을 전부 먹어치웠다. 슬라임 드래곤을 먹어치우더니 이제 인간까지 흔적없이 먹어치운 모습에, 나는 도대체 슬라임의 체내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알림> '마물진화'가 해금되었습니다.
# 부하 마물을 다음 단계로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
# 부하 마물의 진화 루트를 선택하면 해당 진화에 필요로 하는 재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임아, 너냐?"
내게 부하 마물은 라임밖에 없었다. 내가 라임을 들어올리자 라임은 허둥지둥하며 반항했지만, 나는 개의치않고 라임을 꾹꾹 눌렀다.
<마물진화> 라임 (★☆☆☆)의 진화가 가능합니다.
# 진화 조건 :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Lv 15 / 15)
# 진화 루트 : 빅슬라임 (★★☆☆), 슬라인(★★☆☆)
"1성은 그냥 레벨만 다 올리면 끝이야? 쉽네. 너 이제 2성이다, 라임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라임을 찔렀지만 라임은 싫어했다. 뭐지, 반항기인가.
<빅슬라임> 일반 슬라임보다 더 큰 슬라임. 동굴 내부를 확장시켜나간다.
# 진화 조건 : 1)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Lv. 15 /15)
2) 슬라임을 50개체 먹는다. ( 50 / 50 )
# 진화 결과 : 빅슬라임 (★★☆☆ Lv.15 / 35)
# 다음 진화 : 슬라임 드래곤
"그래서 슬라임 드래곤이 니들 대가리였구나."
2성짜리들이 어째 크기가 크다싶더라니. 하도 한 방에 터져나가는 바람에 눈치도 못챘다.
"그럼 슬라인이라는건...?"
<슬라인> 인간의 형상을 갖춘 슬라임. 일반 슬라임과 별 차이는 없다.
# 진화 조건 : 1)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Lv. 15 /15)
2) 인간을 먹는다. ( 1 / 4 )
# 진화 결과 : 슬라인 (★★☆☆ Lv.15 / 35)
# 다음 진화 : ???
"쿱."
이건 인간 빳다지.
'이왕 박을 거라면 인간형 슬라임에 박아야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던전의 왕이 될 거, 살 때 살더라도 여러곳에 싸봐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터.
나는 라임에게 다른 청년들을 먹어치우라 지시했고, 기절한 메리의 옷을 벗겼다. 시골 처녀 답게 큼직한 가슴이 움켜쥐기 일품이다.
"으흐흐."
포르네우스의 던전을 탈출하자마자 셋이나 먹다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전희는 필요없다. 슬라임의 체액을 적당히 묻혀 음부를 향해 밀어넣으려던 순간.
"흐으.... 어.... 나 살아있...."
륜이 깨어났다. 륜은 몽롱한 얼굴로 메리에게 박으려던 나를 보았고,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흐, 흐아앙?!"
륜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사방을 훑었다. 자신에게 내가 했던 일은 생각도 못하는 지, 주변을 훑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자, 잡아먹지 말아주세요오!!"
륜의 시선은 내 뒤를 향해 있었다. 마침 라임이 바닥에 엎어진 청년을 먹어치우느라 안달이 나있던 상태였다.
"제, 제발요...!"
"......."
쟤는 아직도 내가 자길 잡아먹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얼척이 없었지만, 동시에 뭔가 아랫배가 쿡쿡 쑤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나는 입을 쭉 벌리고, 메리의 어깨에 이를 박아넣었다.
"히익?!"
쯔저적.
메리의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내 입에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고, 륜은 겁먹은 토끼마냥 발발 떨고 있었다.
"흐흐, 네가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했으니, 나는 다른 먹잇감을 가져왔다.
"......흑!"
나는 기절한 메리를 잡고 륜의 앞에 들고가 흔들었다. 핏방울이 륜의 얼굴에 튀었지만, 륜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메리를 외면했다.
"이 년이 네 대신 희생하는 거라고. 응? 뭐 하고 싶은 말 없냐?"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흑!"
륜은 고개를 돌린 채 흐느꼈다. 륜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직감한 나는 륜의 머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럼 네가 앞으로 내 부하가 되어라. 너 대신, 너 말고 다른 먹잇감을 잡아오는 게다. 어떠냐?"
라임이 그러했듯, 목숨을 협박하는 것으로 부하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륜은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렸고,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복종> [륜](★☆☆☆☆)이 생명을 구걸합니다.
무자비한 포식자에게 제 몸과 다른 이들의 생명을 바칠 각오를 마친 어린 엘프는 포식자가 주는 공포와 쾌락에 굴복했습니다. 어린 엘프는 포식자가 죽이지 않겠다는 자비와 함께, 다시금 자신에게 잊지못할 쾌락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됐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륜의 귀를 쓰다듬었다.
"좋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부하다."
"...네, 흐끅!"
<영입> [륜](★☆☆☆☆)을 부하로 영입했습니다.
"그, 그러면 저는 이제 안 잡아먹히는-"
툭.
나는 륜의 뒷덜미를 쳐서 기절시켰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륜의 뒷목을 쳤고, 륜은 배신감이 가득한 눈동자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던 건 마저 해야지."
먹어보지도 못하고 라임에게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메리를 온전히 바닥에 눕힌 뒤, 자세를 잡았다.
찌걱.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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