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41일차 -------------------------
위로는 륜을, 아래로는 에일라를 맛 본 나는 내가 만족할 때 까지 둘을 먹었다.
"흐아아...."
륜의 아래는 내가 빨아마신 잇자국이 가득했고,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다. 하지만 팔은 여전히 줄기에 의해 묶여있기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하아, 흐아...."
륜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성행위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순수한 엘프는 내가 빨아시는 동안 더럽다느니, 불결하다느니 온갖 소리를 지껄였다. 하지만 이제는 지쳐 쓰러져있다. 나는 륜을 에일라와 함께 침대에 고이 눕혔다.
'하나는 5성까지 성장 가능한 1성이고, 하나는 4성이지만 언제 깨어날 지 모른다.'
부하로 만드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정말 좋을텐데.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이미 30분을 훌쩍 넘겼고, 소환 시설은 아주 멋드러지게 동공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냥 돼지우리인데?'
나무 울타리에 대나무처럼 가는 나무 줄기가 바닥에 놓여 마법진같은 것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운데 놓인 슬라임 드래곤의 마석은 내 손이 닿을 높이 즈음에 놓여 사이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건출> 소환 시설 Lv.0 이 건설되었습니다!
# 소환 시설 Lv.0이 건설됨에 따라 부하 마물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건축 완료 보상 : 마물소환서 1개.
"역시 기본 가챠."
양피지의 형태로 부하 마물을 소환하는 거라면 숱한 가챠게임을 해온 나로서는 익숙하지만, 선뜻 마물을 소환하는데 손이 가지 않았다.
'나 개똥손인데.'
당장 환생 가챠마저도 거하게 실패했다.
던전의 주인이어야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세계에서 다른 마족의 노예 병사로 태어났고, 심지어 오크로-그것도 아무리 운동해도 빠지지 않는 비만 오크로 환생했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내가 5성까지는 성장이 가능한 것 같다는 것.
파후우 쿰처쿠(★★★☆☆)의 나머지 별 두 개가 내가 두 번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한다면, 나는 분명히 5성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일단 그래도 첫 가챠니까 마음 편하게 마물을 소환하자. 어떤 마물이 소환될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 던전을 개조할 인력은 절실했다.
'어쩌면 적을 쓰러뜨릴 부하들이 될지도 모르고.'
가챠.
가챠의 시간이다.
나는 마물 소환서를 펼쳤다. 양피지 안에는 기가학적인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나는 바로 <부하 소환>을 눌렀다. 다행히 소환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소환은 무사히 진행되었다.
<부하 소환> 던전을 지킬 부하들을 소환합니다.
# 일반 소환
# 마석 소환
# 인연 소환
"......프렌드까지 있어야 하나?"
뭔가 소환법의 이름이 요상한 것들이 보이는데. 나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눌렀고, 그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일반소환> 마물소환서를 사용해 부하를 소환합니다.
# ★ 35%
# ★☆ 30%
# ★☆☆ 20%
# ★★ 10%
# ★★☆ 4%
# ★★★ 1%
# 현재 마물소환서 1개. 총 1회 소환 시도 가능.
"이 시발 똥망겜 보소?"
가챠 운도 거지같은 것이 어떻게 최대로 성장 가능한 별의 갯수까지 제한한단 말인가? 이 시스템을 만든 이는 분명 악의가 넘치는 존재인게 틀림없다.
어찌 왕후장상, 아니 5성 6성의 씨가 따로있다는 말인가! 나는 몹시 화가났지만, 그래도 함부로 내 마물소환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일단 보류.'
다른 소환법을 알아보고 나서 소환해도 늦지 않다. 아직까지 입구에 설치해둔 함정이 발동되지는 않았으니,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른 소환법을 확인했다.
<마석소환> 마석을 소모하여 부하를 소환합니다.
# 슬라임 0 / 5 (최하)
# 현재 소환 가능 마물 1종.
"라임아. 너 최하급 마석 다섯 개나 처먹는 마물이랜다."
라임은 답이 없었다. 어느새 슬라임 드래곤을 전부 먹어치운 라임은 다른 슬라임들의 잔해를 먹어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데자뷰를 느꼈고, 부리나케 달려가 라임을 뜯어말렸다.
"야! 너 마석 처먹었냐?!"
까드득, 까득!
라임의 입에는 최하급 마석이 벌써 절반이나 녹아내리고 있었다. 먹이를 입에 가득 문 햄스터처럼, 라임은 체내에 최하급 마석을 무려 여덟 개나 넣고 입으로 마석을 녹여내리고 있었다.
"뱉어! 뱉으라고!"
나는 라임을 쥐어짜냈다. 라임은 괴로워하면서 몸을 비틀었고, 결국 최하급 마석들이 라임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미안하다. 근데 설마 저게 필요할 줄 알았겠냐."
최하급 마석은 길가에 지나가는 돌멩이만도 못한 것들이다. 마도구의 소재로도 가공할 수 없는, 던전의 어린 마물들이 구슬치기에서나 쓰이는 게 최하급 마석이었다.
"넌 그냥 슬라임 잔해를 먹어라. 마석은 안 돼, 임마. 이걸로 네 동료들 만들어낼 거다."
라임은 축 늘어진 채 슬라임들의 잔해를 먹어치웠다. 나는 급히 던전을 돌아다니며 내가 으깼던 슬라임들의 코어를 모두 수거했고, 하나같이 전부 최하급 마석이었다.
고작 40개.
던전 내부의 슬라임이 70여마리가 있었다는 걸 상기해보면, 나머지 30여개가 라임에 의해 잡아먹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6마리 분은 하겠지, 그래도 4성인데."
그렇게 믿기로 했다. 부하 슬라임 6마리 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 못하면, 나는 라임을 포르네우스 던전에서 부족의 못난 어른들이 즐겨하던 슬라임 딸딸이를 하는데나 쓰게 될 것이다.
'최하급 마석은 사실상 달리 사용할 곳이 없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여분은 남겨두자. 나는 슬라임 하나를 소환할 수 있는 개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35개의 최하급 마석을 전부 한 곳에 몰아뒀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게 두 개 있어.'
하나는 소환법. 나는 문제의 '인연 소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인연 소환> 현재 사용 불가.
"불가하면 왜 띄워놨대, 사람 기대하게시리. 젠장."
퉤. 나는 스크린을 향해 한 번 침을 뱉은 뒤, 다른 것을 확인했다. 바로 내가 건축을 완료한 시설.
<소환 시설> 부하를 소환하는 마법진.
# 현재 레벨 : Lv.0
# 1일 소환 한계 : 0 / 10
# 시설 레벨 상승 조건 : 마물 10회 소환.
"아오...."
갑자기 라임이 미워졌다.
마물소환서에 의한 소환이 1회, 최하급 마석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소환할 수 있는 슬라임을 카운트 했을 때 8회.
딱 1번이 모자랐다.
"......아니지."
마석이라면 저기 있지않은가.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 편하게 슬라임들을 포식하고 있는 저 순진무구한 마물이.
'보통 이런 게임에서는 부하 제물로 바치면 그만큼 재화가 떨어지지 않나?'
재료템이라거나, 경험치 서적이라거나, 마석이라거나, 마석이라거나. 나는 그걸 최후의 선택지로 남겨둔 채, 일단 원하던 목적을 수행하고자 했다.
'던전을 개조하려면 일단 슬라임들이라도 만들어야-'
채앵!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렸다. 나는 하던 것을 멈춘 뒤, 나무토막으로 다듬어놓았던 것을 손에 들어올렸다.
침입자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오는 이는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들어오고 있는 자들은 함정을 '파괴'하면서 들어오는 이들이니까. 나는 에일라와 륜을 침대 옆으로 밀어놓은 뒤,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누가 오든, 설령 엘프 무리, 혹은 포르네우스의 추적부대라도,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다 죽인다.'
* * *
비르고 남작령의 작은 산골 마을.
가호가 고작 스물 남짓한 작은 마을에는 허영심으로 가득찬 청년들이 오늘도 소꿉장난 같은 모험을 하느라 분주했다. 조잡한 목검과 동물 가죽을 엮은 방어구는 제법 그럴듯 해 보이기는 했지만, 나름 '용사'의 티를 내고는 있었다.
"자, 가자! 오늘은 꼭 던전을 공략한다!"
청년들의 선두에서 목검을 높이 치켜든 금발의 청년, 리처드는 밝은 미소로 일행들을 다독였다. 리처드를 포함한 청년은 셋, 그리고 지팡이를 든 채 꾸물거리는 갈색 단발의 여인 한 명. 그 넷이 마을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리처드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리처드! 이 이상은 위험해! 여기부터는 마물이 나온다고!"
"그래. 어른들 허락 없으면 안 된다니까?"
다른 두 청년은 리처드를 진정시켰고, 리처드는 그에 목검을 휘두르며 성질을 부렸다.
"잭! 카이! 너희들은 너무 겁이 많아! 그치, 메리?"
"...응."
지팡이른 든 여인, 메리는 볼에 홍조를 띄며 리처드에 동조했다. 다른 두 청년의 표정은 썩어들어갔지만, 리처드는 메리를 힘입어 제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다.
"동굴 입구만 살짝 보고 오자고, 어? 지난 번에 뭐가 있는지 봤잖아?"
"슬라임 한 마리가 있었지."
"그래, 슬라임! 대 조디악 왕국의 청년들이 고작 슬라임 하나를 못 잡겠냐? 걱정마. 주먹으로도 때려잡는게 슬라임이라고!"
리처드는 주먹을 불근 쥐며 앞장섰고, 셋은 리처드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미리 체크해둔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이전에 발견한 슬라임 던전-
"뭐, 뭐야...?"
입구가 막혀있었다. 분명 지난번에 표시를 하고 갔는데, 그 표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리처드, 저기."
메리는 리처드가 서있던 곳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깎아지른 절벽의 아래, 덩굴 줄기가 발처럼 내려와있는 곳은 분명 무언가가 드나든 흔적이 역력한 동굴의 입구였다.
"던전이다!"
리처드는 아무 생각없이 던전을 향해 달렸고, 두 청년은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를 봤다.
"리처드, 같이 가!"
메리는 얼굴을 붉히며 리처드의 뒤를 따랐고, 두 청년은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메리의 뒤를 따랐다.
"이거 봐! 여기 슬라임의 흔적이-"
찌짖.
리처드의 어깨에 무언가가 걸렸다. 벽에 박힌 나뭇가지는 리처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튕겨져 그의 볼을 스쳤다.
"아야..!"
리처드의 볼에 선혈이 생겼다. 일행은 침묵에 감싸였다.
"...함정이 있다는 건 안에 뭔가가 있다는 거지?"
"리처드. 돌아가자. 장로님께 말씀 드리고...."
"안 돼! 그랬다간 또 영지병들이 올 거야!"
리처드는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으며 목검을 움켜쥐었다.
"...정찰만 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이면 우리가 쓰러뜨리자!"
"뭐? 만약에 감당할 수 없으면?"
"도망치는 거지. 걱정마, 우리 비르고 영지에 하급 이상의 마물이 나오는 거 본 적 있어?"
리처드의 눈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절망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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