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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5화 (5/800)

00005던전의 노예 오크 -------------------------

콰득!

철퇴 한 번에 병사하나가 삽시간에 목숨을 잃었다. 정수리를 향해 내리찍힌 철퇴에 병사의 머리는 곤죽이 되었고, 배를 향해 검을 찌른 병사는 배에 튕겨나와 바닥에 깔렸다.

철퍽.

오크는 엎어진 병사가 도망치지 못하게 발로 가슴을 밟고 짓눌렀다. 육중한 무게가 병사의 위에 실려, 병사는 갈비뼈가 으깨지고 그게 폐부와 심장을 찔러 피를 토하고 절명했다.

"도망치지 마라! 활로를 뚫는다!"

에일라는 피를 토하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입구에서부터 전멸을 당하기 직전이라는 상황은 굴욕이 아닐 수 없었으나, 굴욕도 살아남아야만 굴욕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개죽음이었다. 다섯 명의 기사 중 하나는 배불뚝이 오크에게 일격에 절명했고, 다른 기사들의 상태도 과히 좋지 않았다.

"성체도 되지 못한 오크가 어떻게...!"

"이게 30위의 던전이라고?! 말도 안 돼?!"

기사들이 공포에 빠지자 혼란은 가중되었다. 병졸들은 입을 벌벌 떨며 마수들을 향해 창을 뻗었고, 그 흔들거리는 창날은 그 어떤 마수에게도 닿지 않았다.

키히힉!

마수들은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토벌대를 에워쌌다.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이백이 조금 넘던 토벌대는 어느새 절반도 남지 않았고,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있었다.

파후우.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래 끓는 소리가 섞인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죽어나갔고, 기사들은 몸에 상처를 입었다.

절그럭, 절그럭.

고블린들의 사이, 유독 몸집이 큰 오크는 철퇴를 바닥에 질질 끌며 인간들을 향해 다가갔다. 콧김을 내쉬며 철퇴를 들어올린 오크는 에일라를 향해 철퇴를 겨눴다.

"항복하라."

"...건방진 마물 따위가!"

에일라가 검을 빼어들었다. 주변에 있는 기사들이 에일라를 말리기 위해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미 에일라는 자리에서 뛰어올라 병사들의 어깨를 디디고 선두에 섰다.

"네놈이 이 무리의 수장이렸다! 네놈의 목을 베고 우리는 살아돌아갈 것이다!"

"아직 입구인데."

"닥쳐라, 이 놈!"

에일라는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작위를 받은 기사들 특유의 기술, 오러에 병사들이 눈을 빛냈다.

"나는 아리에스 변경백의 장녀이자 기사 에일라! 이런 곳에서 죽을 자가 아니다!"

"이런 곳에서 죽지는 않겠지."

오크는 철퇴를 어깨에 걸치며 빈정거렸다.

"대신 반항하면 죽을 때 까지 고문을 당할 거다."

"입 닥치지 못할까!"

에일라가 오크를 향해 달렸다. 검을 수평으로 뉘이고 돌진하는 자세는 마치 기병의 랜스 차징과 비슷했다.

"하앗--!"

에일라는 푸른 마력이 서린 검을 오크를 향해 찔러넣었다. 볼록한 배에 검이 움푹 꽂히고, 오크의 몸에서는 피분수가 터져나왔다.

"어...?"

그래야했다. 에일라의 검은 오크의 피부를 찌르지도 못했고, 어느새 오크는 검날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빠각-!

오크가 손아귀를 비틀었다. 왕자로부터 하사받은 명검이 한순간에 고철조각이 되었고, 에일라의 눈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런 말 도 안 되는-"

"돼."

빠--악

오크의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에일라의 머리를 때렸다. 해머로 내리찍히는 듯한 충격과 함께, 에일라는 의식이 희미해졌다.

"안...."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에일라는 바닥에 엎어졌다. 그저 마지막에 기억나는 것은 자신을 받치고 바닥에 뉘이며 내뱉은 오크의 말.

"포르네우스 같은 것."

오크는 무슨 말을 한 걸까. 에일라의 전신에 힘이 빠지고, 에일라는 쓰러졌다.

토벌대의 대장이 쓰러졌다.

뒷 일은 불보듯 뻔했다.

"으아아악!"

"죽고싶지 않, 크아악?!"

"살려, 살려줘어!"

키기기기긱.

마물들은 인간들을 유린했고, 오크는 철퇴를 바닥에 꽂고 주저앉았다.

그 뒤.

변경백이 보낸 토벌대는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 * *

"역시 내가 아끼는 것들이구나, 오호호! 왕국군의 토벌대를 이리도 쉽게 쓰러뜨리다니!"

포르네우스가 부족장을 향해 치하했다. 이번 전투의 총 책임자는 우리 부족장이었고, 부족장은 근엄한 얼굴로 포르네우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포르네우스 님의 은총을 받는 저희가 응당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더럽고 추한 인간 나부랭이들을 포르네우스 님의 존안에 담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호호, 말은 번지르르 하구나. 좋다, 어디 원하는 바를 말해보거라. 내 무엇이든 들어줄테니."

포르네우스는 은근한 눈빛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쓸었다. 침실로 유혹하는 손짓이었지만, 부족장은 흔들림없는 얼굴로 손을 뻗었다. 나를 향해.

"이번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1등 공신이옵니다."

"......너, 건방지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포르네우스는 나를 보자마자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부족장과 미리 얘기한대로 고개를 바싹 조아렸고, 부족장은 그 어느때보다도 긴장한 얼굴로 입을 놀렸다.

"이번 전투의 모든 작전 입안과 전투는 이 어린 오크가 지휘한 것입니다. 포르네우스 님, 부디...."

"응, 그래. 전공을 세워서 살아남으려고 한 거야? 생각은 참 기특해. 건방져서 죽여버리고 싶지만."

포르네우스는 손가락을 튕겨 부족장의 목에 채찍을 휘감았다. 번개가 튀기며 부족장의 몸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졌고, 포르네우스는 채찍을 잡아당겨 부족장의 목을 움켜쥐었다.

"좋아. 인간 200에 기사 다섯을 죽인 공로를 인정하여, 딱 한 번 기회를 주지. 그래. 더군다나 인간 여기사까지 포로로 삼았잖아? 오호호! 그럼 아주 재미있는 내기를 하나 해보자고."

포르네우스가 부족장의 탄탄한 복근을 만지며 입술을 핥았다. 포르네우스의 입가에는 내 레시피에 따라 트랄이 만든 멧돼지 구이의 육즙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네 부족의 어린 것들이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겠지? 한 시간 안에 나를 가버리게 하면 저 두 놈을 살려줄까 생각은 해볼게. 어디 한 번-꺄악?!"

부족장은 포르네우스를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던전의 군단장을 허락도 없이 몸을 붙잡고 침대에 내던지는 그의 행동에 모든 던전의 마물들이 경악했다. 내 옆에 부복한 트랄 또한 고개를 떨구었다.

"형제여...."

"우리 부족의 목숨이 부족장의 아랫도리에 달렸군."

부족장이 포르네우스를 상대로 침대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가 전부 죽는다. 하지만 나는 부족장을 믿고 있다.

"그럼 우리 승리다."

"엑, 자, 잠깐! 누가 거길 만져도 된다는, 꺄아악!!"

하루에 스쿼트 천 개씩 조지라고 말한 결실이 오늘에서야 드러났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일단은.

* * *

세 시간 뒤.

"하아, 하아. 좋아. 너희들은 부족장 덕분에 산 줄 알아. 흐으...."

포르네우스는 침대에 누워 나와 트랄에게 겨눠진 마력의 단두대를 해제했다. 부족장은 아직도 포르네우스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었고, 포르네우스는 나른한 얼굴로 우리에게 손짓하여 일으켜세웠다.

"너희 부족은 살려줄게. 트랄이라고 했던가? 우후후, 그 쪽도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포르네우스가 트랄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입술을 핥았다. 누가봐도 다음 침대에 올라갈 타자는 트랄이었고, 트랄은 진심으로 두려워하며 몸을 떨었다.

"후우."

부족장은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침대라는 전장에서 포르네우스를 상대할 또다른 전우가 생기는 것을 기꺼워하는 것이다. 허리는 여전히 흔들고 있었지만.

"그리고 너.... 등 돌려. 똑같은 부족인데 보기 흉한.... 아니, 다시 이쪽을 봐. 뒤는 더 못 봐주겠네."

사람을 멋대로 360도 돌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지만, 나는 포르네우스가 손만 까딱 해도 죽는 목숨이었다. 그저 침대 위에서 연전연승을 하고 있는 부족장에게 몰래 현대의 테크닉을 알려주어 포르네우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래. 네가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한 건 알겠어. 하지만 그래도 3년이라는 시간을 줬는데도 아직도 그런 더러운 몸뚱아리인 건 용서가 안 되네."

"이건...!"

나는 울컥한 마음에 따지려고 들었지만, 포르네우스가 그보다 빠르게 내 목을 옥죄는 밧줄을 만들어 나를 허공에 띄었다.

"커, 커흑...!"

"에이씨, 더럽게 무거워서 마력도 더 나가잖아. 이대로 죽이면...꺄응...."

퍽퍽퍽.

부족장은 내가 괴로워할수록 더욱 빠르고 강하게 허리를 튕겼다. 나를 살려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고, 다행히 침대위의 송사에 포르네우스는 내 목에 휘감긴 밧줄을 해제했다.

"크허, 허으, 후윽...!"

"너는 진짜 네 부족장 덕분에 산 줄 알아.... 하아. 전공을 봐서 당장은 죽이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포르네우스가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 손뼉을 쳤다. 벽에서 마력이 일렁거리더니 허상이 생겨났고, 그곳에는 입에 마개가 씌워진 채 끊임없이 몸을 흔들며 저항하고 있는 인간 여자가 보였다.

에일 뭐시기. 내가 때려잡아 기절시킨 여자였다.

"이 여자에게서 정보를 캐내. 고작 토벌대가 이걸로 끝일 리는 없잖아? 제법 그럴싸한 정보를 얻어내면 살려줄게. 시간은...."

포르네우스가 모래시계를 가리켰다.

"하루. 내일이면 성인식이지? 호호."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딱 하루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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