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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4화 (4/800)

00004던전의 노예 오크 -------------------------

던전 최심부, 포르네우스의 거처.

나와 트랄은 포르네우스의 앞에 손이 결박당한 채 무릎이 꿇렸다. 침대에 요염히 누운 포르네우스는 발가벗겨놓은 부족장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우리의 앞에서 근엄했던 부족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남창이었다.

"이건 뭐지?"

포르네우스는 우리가 구워먹었던 맷돼지 구이를 손에 빙빙 돌렸다. 육즙과 기름이 사방에 튀었지만, 포르네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것은 바베큐라고 하는-"

"시끄러, 돼지. 꿀꿀 거리지마. 너한테 안 물었어."

"......."

포르네우스는 내가 말하자마자 자신의 귀를 부족장에게 내밀었다. 부족장은 우물쭈물하면서도 혀를 꺼내어 포르네우스의 귀를 핥았다. 마치 더러운게 묻어서 귀를 핥아 닦아내는 것처럼.

미안하네, 형제여.

부족장은 눈으로 내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부족장이라는 자가 내 편을 들지 않는 것에 나는 살짝 울컥했지만, 부족장은 우리 부족을 책임지는 자로서 포르네우스에게 바짝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부족장이 밉보이면 부족 전체가 밉보이는 것이고, 모조리 살해당하거나 던전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럼 어디 그 멋진 오크가 말해볼까?"

"......이것은 바베큐라고 하는 것입니다. 날카롭게 갈아만든 고블린의 뼈에 적당히 잘라낸 맷돼지 고기를 쑤셔넣어, 장작불에 직화로 구워낸 음식입니다."

"그래? 흐음."

포르네우스는 잇자국이 나있는 맷돼지 구이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쿡쿡."

포르네우스는 알고 있을까. 저 잇자국이 내 것이며, 내가 맛있게 먹다가 자기 생각이 나서 입맛이 뚝 떨어져 버린 것이라는 걸. 그것도 모르고 이를 질겅이며 육즙을 빨아마시는 모습이 참 우스웠다.

"뭘 좋다고 웃어?"

찰싹!

포르네우스는 부족장의 뺨을 때렸다. 부족장은 벌게진 얼굴로 포르네우스에게 고개를 조아렸고, 내 미소는 딱딱히 굳었다.

"부하의 책임은 당연히 윗 사람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부족장은 담담히 포르네우스를 두둔했다. 맷돼지 고기를 먹다가 뱉은 포르네우스는 불에 탄 고블린의 뼈를 우리에게 겨누며 이죽거렸다.

"이런 맛있는 것을 감히 던전의 주인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지들끼리 처먹다니. 괘씸해, 지금 당장 죽여버러야겠어."

"포르네우스님...!"

부족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앞을 막아서며 무릎을 꿇었다. 포르네우스는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족장을 향해 살기를 흘렸으나, 부족장이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잠시 멈췄다.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것들입니다! 부디 가슴만큼 넓은 아량으로 이 철없는 전사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흐, 흐응. 그래. 내가 좀 아량이 넓기는 하지."

포르네우스는 고개를 치켜들며 자신의 가슴을 강조했다. 아래로 쳐진 가슴이 너무 커서 대가리가 세 개인 줄 알았다. 비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나는 부족장이 저렇게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에서 어그로를 끌만큼 미친 놈은 아니다.

"......."

나는 고개만 조아린 채 조용히 입을 닥치고 있었다. 그에 트랄이 눈치껏 고개를 숙이며 포르네우스에게 사과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던전의 주인께 진상할 것으로 허접스러운 것을 놓을 수 없는 바, 저희는 극상의 상태로 주인님께 바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호오. 그럼 이건 아니라는 말이지."

포르네우스는 고블린의 뼈에 갈비처럼 붙은 살점을 뜯어먹으며 히죽거렸다. 양념은 커녕 잡내도 제거하지 않을 걸 처먹다가 조리된 바베큐를 먹으니 눈이 돌아간 모양이었지만, 더럽다고 여기는 내게는 철저히 시선조차 주지 않고 없는 존재로 보고 있었다.

"그래? 후후후, 그럼 너는 성인식 전까지 이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네 옆에 있는 돼지는 그 날로 던전 밖으로 던져져서 고블린의 먹이가 될 것이니까."

젠장.

"그래. 맷돼지 보다 맛있으려면 좋은 재료를 써야겠지? 옆에 있는 저 오크 돼지는 어떠니? 깔깔깔! 내가 잡아 줄 수 있는데!"

역시 포르네우스는 잊지 않았다. 나는 울컥한 마음에 안보이게 입술을 깨물었지만, 트랄이 주먹을 부들부들 쥐는 것에 내가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너네 애들 재미있다? 후후, 이리와. 네가 오늘 얼마나 잘 세우는 지 봐서, 저것들에 대한 처분도 달리 할지도 모르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족장의 희생으로 풀려났다. 트랄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무구를 들고와 포르네우스를 다져버릴 기세였고, 나는 그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야. 나 내일 왕국군 요격하러 가야 돼. 너는 레시피 적어줄테니까 연습이나 하라고."

"......미안하다, 형제여."

트랄은 분노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고블린 전기 구이의 레시피를 작성해 트랄에게 건네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도 할 힘이 없었다.

내게 있는 힘이라고는 오직 하나 뿐.

'내일 던전 들어오는 왕국군 놈들 다 뒤졌다.'

애먼 곳이지만, 나는 이 풀 곳 없는 울분을 던전에 들어오는 인간 놈들에게 풀기로 했다.

* * *

조디악 왕국, 아리에스 변경백의 영지에 하필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열렸다. 숱한 모험가들이 나서서 던전을 공략하려고 했지만, 그 던전은 마왕 솔로몬의 서른 번 째 던전이었다.

답파율은 고작 24%. 던전이 열린지 3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모험가들은 좀처럼 던전을 공략하지 못했다. 던전의 주인인 마족 포르네우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들어간 모험가들은 모조리 살해당하여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결국 아리에스 변경백은 장녀인 기사 에일라를 위시한 기사 다섯, 정예 장병 이백명이라는 대대적인 규모의 토벌군을 파견한다.

"반드시 던전을 공략하겠습니다, 아버님."

에일라 아리에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스스로의 실력으로 기사의 작위를 따낸 에일라는 영지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수행 기사 시절에는 30위보다 더 높은 등급의 던전도 탐험했던 경험이 있었다.

"꼭 살아서 오시게."

변경백은 딸의 승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자꾸만 딸을 보내면 영영 못 볼 것만 같은 노파심이 생겼다. 영애는 맞잡은 손을 다잡으며 걱정하는 부친을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객기를 부리지 않겠습니다. 행여나 위험하면 반드시 모두 살려서 귀환하겠습니다."

"영애...."

변경백의 옆에 있던 작은 소년이 공녀의 앞에 다가갔다. 훨씬 키가 큰 금발의 여기사는 소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고, 그제서야 둘의 눈높이가 맞았다.

"걱정마십시오, 왕자님.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이, 이주일 뒤에는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 때는!"

"예, 저희의 약혼식이지요."

여기사는 왕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비록 손에 입을 마추지는 않았으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로 소문난 에일라가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왕자에게 평생을 바치겠다는 서약이나 다름 없었다.

"아...."

소년 왕자는 얼굴을 붉혔고, 에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에 올랐다. 백작가의 모두가 토벌대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들은 던전을 돌파하여 금의환향 할 생각에 모두 꿈에 부풀어 있었다.

"가자! 마물들 따위,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호기롭게 외친 에일라의 자신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고, 기세는 금방이라도 던전의 마족 포르네우스의 목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던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파후우....

던전의 입구.

넓은 공터에 오크 한 마리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200이 조금 넘는 토벌대를 맞이했다. 손에는 뭉툭한 철퇴를 든 오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크들과는 달리, 배만 불룩 튀어나와있었다.

"단장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함정이다. 무조건 함정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보기 흉한 놈이 홀로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에일라는 부하 기사를 나무라며 공동을 살폈다. 위로는 가죽조끼를 하나 걸치고 있지만 상체가 워낙 커서 유두만 간신히 가리는 정도였고, 아래에는 맞는 바지가 없는 듯 거적데기를 칭칭 휘감아 앞섶을 가리고 있었다.

"정말 더러운 던전이군. 모험가들은 왜 저런 걸 눈앞에 두고도 살아돌아오지 못한 거지?"

파후우.

오크는 연거푸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가만히 서있었다. 에일라는 방심하지 않고 주변을 샅샅히 훑은 뒤, 함정이 없음을 깨닫고 병졸들에게 선언했다.

"자랑스러운 아리에스의 건아들이여! 누가 저 건방진 오크를 죽일 자가 없는가! 공적을 세우는 자, 내 친히 포상할 것이다!"

군인들은 나서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토벌대에 동원되어 들어온 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쳇."

"제가 나가겠습니다."

"오오, 스카우터 경. 부탁하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얼굴을 투구로 가린 기사 하나가 고삐를 당기며 오크를 향해 달렸다.

"가만히 서있다니, 이 멍청한-"

콰득.

스카우터 경은 일격에 곤죽이 되었다. 철퇴를 휘두른 오크는 말의 모가지를 잡고 질식시킨 뒤, 머리가 으깨진 스카우터 경의 시체를 뒤로 집어던졌다.

캬갸갸갹.

천장에 숨어있던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토벌대를 덮쳤다.

부히이익!!

오크는 스카우터 경의 시체를 신호로 삼아, 요격을 개시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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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수정했습니다. (레일라->에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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