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던전의 노예 오크 -------------------------
나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오크.
기억을 유지하여 이세계에 환생한 나는 녹색 피부에 돼지같은 외형을 지닌 전형적인 마물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세계의 오크는 인류의 하나로 통하는 종족이었다.
"형제여! 오늘은 붉은 늑대의 용기에 대해 배워보세!"
문제가 있다면 다른 놈들은 모두 '형제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전형적인 전사계 오크들이고, 나는 쯔구루 야겜에서 여캐를 능욕하는 전형적인 배불뚝이 마족이라는 것.
종족은 분명 같은 오크지만 분명 뭔가 유전적 레벨의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족 중에서 나만 이렇게 통통할리가 없다.
뚱뚱한게 아니다.
통통한 거다.
그래도 내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갓 태어난 오크가 성체가 되기 전까지 3년이라는 성장 시간이 존재한다. 나는 지금 비록 소아 비만이지만, 뱃살이 쭉쭉 빠지고 멋드러진 식스팩을 갖춘 사막의 전사가 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그런 존재가 되어야 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망플래그를 하나 쎄게 박고 태어났으므로.
"뭐야, 이 못생긴 돼지 새끼는? 야, 내 눈을 버리게 한 죄야. 죽여."
"포르네우스 님! 이 아이는 태어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부디 자비를!"
난 내가 속한 우리 군단의 30번째 던전을 다스리는 마족, 포르네우스에게 비만으로 태어났다고 밉보였다.
"그래? 오크가 3년이면 성체가 되었지? 그러면 3년 뒤에 보자. 그 때도 돼지 새끼면 내가 죽일 거야. 잊지마. 나 기억했다."
던전의 대장이 미관이 좋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죽이려들었다.
다행히 포르네우스(여)는 심각한 얼빠라서 심미성을 많이 따졌고, 지구였으면 어디 체육관 관장으로 이름을 날렸을 법한 몸매의 부족장을 총애했다.
"형제만 알고 있거라. 포르네우스 님께서는 진심으로 형제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부족장은 내게 목숨을 걸고 포르네우스의 진심을 알렸다. 누가 마왕군 최강의 또라이년이 아니랄까봐 진짜로 내가 성인이 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에서도 억울하게 살해당했는데, 또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내가 돼지처럼 퍼먹어서 배가 볼록해진 거라면 모를까, 태어날 때부터 비만으로 태어난 것을 가지고 보기 흉하다며 살해당할 수는 없었다.
도망칠까?
던전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당장은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체 오크도 아닌 어린 오크가 살아남기에는 이 세계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세계 곳곳이 마왕군과 인류 연합이 싸우는 전장이며, 우리 던전은 최전방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전장이 될 수 있는 곳에 위치해있었다.
그렇다고 도망이 성공할 리도 만무. 나를 죽이려고 달력의 날짜를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미친 년은 내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옳다꾸나 하고 나를 죽이러 올 것이 자명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오크의 평균 수명이 40년이라고 하니, 나는 전생에 더 살지 못했던 삶까지 더해 딱 백 년만이라도 살고 싶었다. 한 번 죽어보니 살아가는 욕구는 강해졌고, 다행히 내게는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살을 빼자.
마왕군 특급전사단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포르네우스가 봤을 때 '이 정도면 인정이지'하고 넘어갈만큼의 육체미를 가꾸어야 했다.
이계에 환생하자마자 이게 무슨 꼴인가 싶기도 했지만, 불행히도 이 세계는 지식과 정보가 힘이 되는 세계가 아니라 마력과 전투력이 힘이 되는 판타지 세계였다.
나는 오크 잡몹이었고, 포르네우스는 서열 30위의 고위급 마족이다. 마왕 솔로몬에게 30번째 던전을 하사받은 진짜 네임드.
그래서 살아남기위해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뱃살이 빠지길 바라며.
* * *
마침 3년이라는 시간은 '그 운동법'과 딱 맞아떨어졌다.
심각한 부작용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 부작용은 감내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운동법을 통해 세계관 최강자가 될 수만 있다면, 포르네우스를 발 아래에 깔고 참교육을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운동, 첫 번째.
"형제여, 아침부터 무엇을 하는 것인가?"
"아아, 이것은 '팔굽혀펴기'라고 하는 것이다. 흉부 전반의 근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운동이지."
팔을 굽힘과 동시에 뱃살이 먼저 땅에 닿았지만, 그래도 한 달 정도 지나자 배는 땅에 닿지 않게 되었다.
그 운동, 두 번째.
"형제여, 누워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아, 이것은 '윗몸일으키기'라고 하는 것이다. 복근과 함께 전신의 지구력을 단련하는 운동이지."
조금만 상체를 들어올려도 뱃살이 허벅지에 닿아 윗몸 일으키기가 아니라 크런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한 달 정도 지나자 등이 땅에서 떨어질 정도는 되었다.
그 운동, 세 번째와 네 번째.
"형제여. 왜 아까전에는 기마같은 자세로 스스로를 고문했던 건가?"
"아아, 그것은 , 파후우, '스쿼트'라고 하는, 후우, 것이다. 아무런 기구 없이, 쿠흠! 하체를 단련할 수 있는 것이지."
말하면서 설명하려니 몹시나 숨이 찼다. 내 옆에서 달리는 놈이나 나나 체력 조건은 비슷했지만, 나는 뛸 때 마다 출렁거리는 뱃살 때문에 숨이 금방 차올랐다.
그 운동.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드 100회.
런닝 10km.
나는 살을 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대머리 선생의 훈련 방법을 하루도 빠짐없이 실행했다. 다행히 우리 부족원들은 포르네우스의 일에 대해 알고있었고, 중세 판타지에서 현대식 체력 단련을 하는 내 기행을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고 응원했다.
"형제여, 후우, 그대의 의지는 우리 중 그 누구보다 강하다네."
"그 의지 뱃살 줄이는 데 쓸 수 있냐?"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겠나?"
"그럼 의미 없네."
나와 함께 던전의 동굴을 따라 달리는 오크는 나와 같은 날 태어난 동족이다. 그는 다른 오크들과 달리 내가 하는 운동법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어느 순간부터 내 운동을 따라하며 나와 함께 단련을 시작했다.
"체력은 확실히 붙는 느낌이군."
"효과를 볼 때 까지, 후우, 계속한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나는 훈련을 빼먹지 않았다. 간혹 부족 전체가 요격에 동원되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런닝만 빼고 나머지를 했고,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단련을 해왔다.
그리고 1년 반.
나는 강해졌다.
태어난 지 고작 1년 반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오크였으나 그 체구 만큼은 어지간한 성인 오크에 뒤지지 않았고, 나는 내 도끼에 새겨놓은 붉은 핏자국만 무려 스무 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모험자를 격퇴하여 악명을 떨쳤다.
물론 어린 오크 중에서 돋보일 정도로 강하다는 말이었으며, 포르네우스와 맞서 싸우면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강해졌고, 부족장은 나를 두고 우리 부족의 자랑스러운 유망주라고 했다.
그런데.
"......왜 뱃살은 그대로인 거지?"
내 사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지고 두꺼워졌으나, 유둑 복부 만큼은 단련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더 뽈록해졌다.
단련의 효과가 있기는 했다. 보기에는 임신이라도 한 것 처럼 D자형의 몸이었지만, 그 배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식칼 정도는 들어오다 막을 정도로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그럼 뭐하나. 사지는 몰라도 당장 복부의 형태가 전혀 예쁘지 않았고, 분명 포르네우스에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어 이계에서 슈바인학센이 될 운명이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1년 반.
차라리 포르네우스보다 강해진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나는 강해지지 못했다.
"형제여…! 나는 그대에게 무한한 감사를 하고 있다네!"
오히려 나와 함께 운동을 하던 내 요람 동기가 엄청 강해졌더라. 놈은 찰랑거리던 머리가 M자로 벗겨졌지만, 그 반짝거리는 녹색의 피부야말로 그가 강자가 된 진정한 증거였다.
"그대가 가르쳐 준 운동법 덕분에, 나 또한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다네!"
그는 강해졌다. 세계관 최강자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해졌고, 적어도 우리 부족 내에서는 부족장마저도 한 수 접어줄만큼 강해졌다.
"잘 들어라. 너희는 너무나도 강해졌으나, 그 힘을 과시하면 분명 불똥이 튈 터.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 까지는 내 울타리 속에서 허리를 숙이고 힘을 기르도록 하라."
부족장은 정말 다행히 넓은 포용력으로 우리의 강함을 인정했다. 특히 내 동기 놈과 1:1로 싸워서 시원하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장은 내심 그를 차기 부족장-아니 그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며 그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다.
"앞으로 1년 반 동안 잘 부탁하네, 형제여!"
"어, 나도."
내가 가르쳐준 운동법에 세계 최강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놈에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가 개발한 것도 아니고 동기 놈이 옆에서 함께 해준 덕분에 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련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질시와 고마움을 느꼈지만, 그다지 신경은 쓰지 않았다. 동기 놈이 부족장이 되면 포르네우스의 마수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실드쳐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으므로.
그리고 다시 1년 반이 지났다.
나는 더 강해졌고, 드디어 '이름'을 받는 성인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파후우=쿰처쿠.
그것이 주술을 통해 내게 내려진 이름.
그렇다.
"부히익…."
나는 강해져있었고, 근육돼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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