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프롤로그 -------------------------
단언컨대 나는 내 인생에서 운은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칠 때 2지 선다에서 찍은 번호는 모조리 오답. 덕분에 수능에서 점수가 깎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자대배치도 최전방. 이렇다 할 특기도 없이 완전 랜덤으로 굴려진 나는 최전방으로 보내졌고, 하필이면 그 시기는 핵실험이 난무하여 전쟁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인 시기였다.
직장을 구해 중고차를 뽑아도 불행히 얼마 안 가서 퍼질러지더라. 결국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폐차값이 더 싸게 쳐서 차는 제대로 몰아보지도 못하고 뚜벅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용하다는 무당한테 사주를 받았더니, 인생의 말년에 모든 운이 화수분처럼 터질거라고 하더라. 복채를 내면 그 운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하기에 그냥 튀었다.
그리고 오늘도 내 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하필이면 바빠서 처리하지 못한 일을 하려던 찰나, 휴가를 떠났다가 오후에 돌아온 과장이 나를 닥달하며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대리. 내가 시간을 안 준 것도 아니고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어? 내가 너를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 내가 시킨 일은 안해도 된다 그런 건 아니지? 응? 말해봐. 내가 내 업무 떠넘겼어?"
...쌍욕은 아니고, 과장 놈은 지난번에 한 번 크게 찔린 이후로 이런 식으로 꼽을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앵무새가 되어야했다.
"아닙니다."
과장의 업무는 아니다. 그저 과장이 라인을 타기 위해 금수저 사원의 일을 빼앗아다가 내게 떠넘긴 것일 뿐. 나는 언제나처럼 스스로의 불행을 한탄하며 홀로 캔맥주를 목속에 때려박았다.
"이 놈의 개같은 직장, 내가 돈만 많으면 때려친다. 시바…."
돈이 없으니 계속 다니고 있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편의점에 들려 내일을 위한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겼다. 그리고 왠지 심심해서 졸고 있던 아르바이트 생에게 부탁을 했다.
"저기요…. 번호 여섯 개만 불러주면 안 돼요? 그걸로 로또하게. 아핳하!!"
"...하아, 알겠습니다."
편의점 알바는 나를 진상 손님처럼 대하며 대충 번호 여섯 개를 끄적여줬다. 나는 지갑을 꺼냈고, 마침 지난번에 버스 막차를 놓쳐 택시을 타고 남은 5천원 지폐 한 장이 들어있었다.
"이 번호 똑같이 5장!"
"......5천원입니다."
알바는 내게 로또 종이를 집어던지듯 건넸다. 나는 한 번에 잡지 못하고 두 어번에 걸쳐서 손을 뻗어 잡았고, 나머지 물건을 계산하고 종이를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으흐흐!"
커피 한 잔 값이지만 안 마시면 어떤가. 5천원 지폐 한 장으로 과장 놈의 면상에 지폐다발을 집어던지는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아."
스마트폰을 꺼내자마자 갑자기 후회됐다.
"5천원 6장만 모으면 10연 가챠인데."
어차피 안 될 거 그냥 가챠나 지를 걸 그랬나. 나는 제자리에 서서 즐겨하던 스마트폰 게임을 켰다. 던전의 주인이 되어 몬스터를 소환해 던전을 지킨다는 전형적인 디펜스 게임이었고, 시류에 편승하여 잡몹 소환에도 가챠를 넣어놓은 쓰레기 똥망겜이었다.
"PVP도 없고 스토리 개판인 똥망겜이 가챠는 지랄…."
미소녀 게임도 아니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침 딱 10연 가챠를 할 수 있는 보석이 모여있었다.
지를까. 이주일 뒤면 한정 캐릭터 나온다고 존버하라고 하던데.
"몰라 시발 뽑고 뒤져."
버튼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3만원이 날아갔다. 나는 게임사의 개돼지가 되지는 않았으나, 한 달에 한 번은 월정액을 넣으며 소소하게 게임을 즐겼다. 거지같은 과장의 대머리는 반짝거리니까, 내가 보석으로 소환한 몬스터들의 별도 반짝거리는-
"에이, 시발.
일은 없었다. 전부 똥같은 별만 한 두개 반짝거리고 있었고, 그나마 제일 좋은 캐릭터는 3성짜리 <배불뚝이 오크>였다.
"거지같은 겜. 이딴 걸 돈 주고 팔아? 양심없네, 큭큭."
나는 게임을 강제로 꺼버렸다. 마침 소환이 끝나자마자 나는 내 방에 도착했고, 낡은 싸구려 침대에 옷도 벗지 않고 몸을 던지고 누웠다.
"운 존나 거지같네…."
열이 뻗쳐서 잠은 오지 않았다. 3만원이면 치킨을 시켜먹고도 만 원이 남는 돈이었는데, 고작 복부비만 오크 따위로 바뀌어버리다니.
"존나 운없다…."
나는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액땜했다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사주 같은 걸 보면 말년에 재물운이 생긴다는 말도 종종 하지 않는가.
"잠이나 자야지."
꿈에서 과장의 머리채를 움켜쥐는 꿈이나 나오기를.
그리고 다음 날 저녁.
나는 무심코 같은 번호로 5장을 산 로또가 2등 다섯 개로 당첨되는 기적을 맛보았다.
"박 과장이 가발충 새끼!"
나는 품안의 로또 한 장을 끌어안고 신에게 감사했다. 비록 로또 1등이 아닐지언정, 2등이 다섯 개면 얼추 3억 정도 되더라.
"내가 회사 때려치고 이직한다, 스벌."
과장의 머리를 움켜쥐고 가발을 벗겨낸 다음 사표와 함께 면상에 집어던지리라. 그리고 딱 3개월만 놀고, 다른 직장을 구해 일을 계속하면서 당첨금은 재테크를 자본금으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으아아! 지금까지 불행은 오늘을 위한 거였다고! 환영한다!!"
2등은 농협 지점만 가도 된다고 하니 월요일 날 바로 연차를 내고 회사를 떠날 것이다. 나는 행복한 꿈을 꾸며 월요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인생 말년에 행운이 몰려있는 사주라는 말이 틀린말이 아니었다.
푹.
의식이 흐려지고 시야가 깜깜해졌다. 설마 내 마지막 행운이 로또 2등 다섯 장이 될 줄이야.
***
"개같은 편의점 알바놈."
인상이 더러울 때부터 알아봤어야했는데.
"그래도 그 놈 바로 살인죄로 걸려서 감옥갔다. 너 뉴스 나오고 아주 난리였어."
"그게 지금 죽은 사람한테 할 말입니까?"
"그렇긴 하지? 미안. 큭큭."
저승사자라는 놈이 비꼬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다. 자기도 남의 밑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이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다니.
"거 죽은 것도 억울한데 자꾸 사람 놀리기 있습니까?'
"놀리다니? 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그래도 가기 전에 한 번 크게 효도했다고 생각해. 너 죽기 전까지 손에 쥐고있었던 로또, 소방관이 발견해서 네 부모님께 드렸더라."
"그건 참 불행 중 다행이네요. 나 참. 살아서 못하던 효도를 죽어서 하게 됐네."
"그래. 그러면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저승사자는 태블릿 하나를 내게 건넸다. 태블릿에는 보기만 해도 머리아파 보이는 계약서가 있었다.
"뭡니까?"
"환생 기밀 엄수 서약서. 기억을 가지고 환생하는 대신, 다른 세계로 환생하면서 환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서약이지."
"그게 끝이에요?"
"응, 끝이야."
계약서는 몹시 단촐했다. 비밀 지켜라. 끝. 이름만 적으면 다른 세계로 환생하는 셈이었고, 나는 당연히 미심쩍은 계약에 대해 질문했다.
"왜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는 겁니까?"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은 불쌍한 영혼에 대한 일종의 구제 정책이다 이거지. 원래 세계에서 부활은 못하는 대신, 다른 세계에서 못 다한 삶을 마저 누려보라 이거지."
"수명이 정해져 있습니까?"
"아니? 사고로 죽든 호상이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하면 되지. 그래서 안 할 거냐?"
저승사자는 태블릿을 빼앗으려고 했고, 나는 태블릿을 내쪽으로 잡아당겨 계약서의 빈 공간을 가리켰다.
"억울하게 죽었는데 좀 얹어주시면 안 됩니까?"
"야. 환생만 하더라도 엄청 좋은 거야. 어디서 더 얹어달라고 그래?"
"거 불쌍하지도 않아요? 저승사자는 인류애도 없습니까?"
"인류애고 나발이고 그딴 거 쓰면 내가 시말서 써요, 이 놈아."
쓸데없는 지식이 늘었다. 샐러리맨 나와는 달리, 저승사자는 공무원이었다.
"쯧. 융통성 없기는."
"융통성이고 나발이고 메뉴얼 따라서 일하는 거지. 내가 따로 주지는 못하고, 이건 순전히 네 운빨이라고."
저승사자는 태블릿의 화면을 바꿨다. 내가 들고 있음에도 화면이 알아서 바뀌는 게, 그냥 형태만 태블릿이고 실상은 초능력 같은 것이 분명했다.
"환생 가챠다. 태어나는 세계도 랜덤, 환생할 종족도 랜덤, 주어지는 재능이나 능력도 랜덤. 이러면 이해하기 쉽지?"
"아 씨. 나 마지막에 가챠 폭사했는데요?"
"하지만 로또는 당첨 아니였냐. 그냥 서명하고 돌려. 다시 살아나는 것만 해도 어디냐."
"한 방이면 끝입니까?"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는 이제 원찬스 밖에 없었다.
"덧붙여서 이거 안 하면 기억 완전히 소거되어서 심판대에 오른다. 영화봤지? 너 지옥갈 수도 있-"
가챠!
나는 버튼을 눌렀다.
태블릿에서 엄청난 양의 빛이 터져나왔고, 내 의식은 캄캄해졌다.
어떤 존재로 태어날 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생 보다는 훨씬 좋으리라.
"부히익."
나는 오크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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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