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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여대에 입학한 남자로 살아가는 법-56화 (56/79)

〈 56화 〉 검사 결과

* * *

지아는 나에게 몇 마디 말을 더 남기고 강의를 들으러 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섹스는 어쩔 수 없더라도 누군갈 정식으로 사귀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

‘섹스는 왜 어쩔 수 없는 건데.’

이거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데 남들까지 막을 명분은 없으니 허락해 주는 거 아니야?

그런 킹리적 갓심이 들었다.

뭐, 아무튼 사지절단 엔딩이나 납치감금통조림 엔딩이 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진짜 무서웠는데.’

지아가 그런 무섭고 싸늘한 표정을 지을 줄 안다는 게, 사실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는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그 눈동자, 다시 보게 될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아.’

초점이 풀린 공허한 지아의 눈동자를 만약 다음에 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가 내 제삿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지아를 다시 흑화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퀘스트가 생긴 기분.

‘아냐, 너무 또 심각하게 생각하진 말자. 그래도 원랜 착한 앤데.’

나는 애써 처음 만났을 때의 친절한 지아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와 섹스하면서 지었던 행복한 표정과 미소도 떠올렸다.

그래,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으슥한 골목을 벗어나 내가 보던 익숙한 캠퍼스의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하아, 뭔가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

창고 안에 갇혀 있었던 시간은 고작 한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체감 상 거의 하루이틀 정도는 있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찬란한 햇살.

드넓은 캠퍼스.

나를 보며 수군대는 여대생들.

‘내가 돌아왔다!’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저기, 강하늘 맞죠?”

“죄송한데 혹시 번호 좀….”

평소 같으면 얼굴을 붉히며 앗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자리를 떴겠지만.

“네, 안녕하세요! 그럼요. 폰 주세요. 찍어드릴게요.”

“엇, 고마워요. 연락할게요.”

멀어지는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신나서 속닥거렸다.

“야, 원래 길 가다 물어보면 잘 안 준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내가 맘에 들었다는 소리 아니야?”

“미쳤다. 잘해봐.”

“아, 개좋아.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자랑은 왜 하는데.”

지금의 나는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손수 찍어 주었다.

‘후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셔서 너무 신나버렸네. 진정 좀 해야겠다.’

일단 커피라도 마시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볼까.

어차피 오늘은 공강이다.

밖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 때쯤 들어가서 민서 누나랑 점심이나 먹어야지.

나는 캠퍼스 근처의 메타벅스에 들어가서 카페모카 한 잔을 시켰다.

“휘핑크림 올려드릴까요?”

“네, 많이요!”

“결제되셨고 준비되면 진동벨로 안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카페모카는 휘핑이지.

풍미 깊은 모카를 마시기 전 입으로 휘핑크림을 쇽쇽 베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고고곡고곡고객님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아메리카노시킨고객님 카페라떼 한 잔 나왔습니다~”

기다리면서 웹소설을 읽고 있는데, 카운터 쪽에서는 자꾸만 피식거리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뭐 회원 같은 거 하면 닉네임으로 불러준다던데.’

일부러 부르기 웃긴 닉네임으로 적어서 직원들의 수치심과 웃참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뭐, 이젠 직원들도 나름 즐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카페모카 한 잔 나왔습니다~”

진동벨이 울리자 나는 벌떡 일어나 진동벨을 반납하고 카페모카를 가지고 와 앉았다.

그리고 평소 습관대로 카페모카의 휘핑을 입으로 홉, 홉, 하고 베어먹었다.

“저거 봐, 저기. 개귀여워.”

“헐. 작고 귀여운 동물 같아….”

“…….”

이런 소리는 왜 이렇게 또 잘 들리는 거야.

생각해 보니 이 세계에 오고 나서부터, 평소 같으면 잘 안 들릴 만한 거리에 있는 소리들도 잘 들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력도 그러네.’

나는 구석탱이 자리에서 카운터 쪽에 있는 메뉴판의 글씨를 쳐다보았다.

‘다 읽혀.’

원래 시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안경은 안 쓰고 살았었는데, 지금은 나쁘지 않은 편을 넘어서서 엄청 좋아진 것 같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변했기도 하고, 다른 사건들이 워낙 많아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 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촉각, 성감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감각도 발달한 건가.

“야,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잖아.”

“너야말로 목소리 좀 낮춰. 다 들리겠다.”

“뭐래, 이 정도 거리에선 절대 안 들림.”

이런 대화를 필터링 없이 들어야 한다는 것 빼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홉, 홉.

‘하지만 휘핑은 못 참지.’

나는 그런 시선과 소곤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마저 휘핑크림을 먹고, 시원한 아이스 카페모카를 한 입 쪼옥 빨아마셨다.

“크으….”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다시 아까 읽던 웹소설을 켰다.

­띠링

‘깜짝이야.’

웹소설을 읽다 보니 띠링 소리가 들리면 상태창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서 순간 덜컥했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단순한 문자 알림이었다.

‘아까 번호 따 간 사람들 건가?’

아까는 기분이 좋아서 마구 줘버렸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후폭풍이 조금 두려워졌다.

­김수현 내과입니다.

“아.”

다행히 걱정하던 문자는 아니었다.

­신청하신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편하신 시간에 방문해 주세요.

‘그러고 보니….’

저번 주에 김수현 내과에서 그렇고 그런 검사를 했었던 게 기억났다.

내 민감한 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갔었던 병원.

검사 방법이 굉장히 민망했지만 어쩌랴.

다 의료 체계의 일환인 것을.

‘어차피 공강인데 점심 전에 한번 싹 갔다 올까?’

병원 갔다가 집 가서 밥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오케이. 이것만 마저 보고 간다.’

나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 귀에 공기팟을 끼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웹소설을 읽으면서 커피 한 모금을 다시 쭈욱 빨아들였다.

크으.

‘이게 섹스지.’

* * *

“강하늘 님 들어오세요~”

“네에!”

결국 왔다.

김수현 내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기가 없어서 빠르게 내 차례가 다가왔다.

사실 사람이 좀 있기를 바랐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막상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당신의 성감은 비정상입니다, 삐빅! 하면 속상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들어왔고.

“어서 와요. 결과 나오자마자 빨리 오셨네?”

김수현 선생님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젠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는 조심스럽게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여전히 병원 원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에 예쁘기까지 한 모습.

‘어떻게 ㅈ경… 아니 안경이 저렇게 잘 어울리지.’

커다란 눈, 또렷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목구비.

진한 눈썹.

알이 큰 동그리 안경은 그런 의사선생님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저렇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벗으면 더 예쁠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그렇게 날 빤히 쳐다봐요?”

“엇, 죄송합니다.”

이런.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뭔갈 보면서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고 계시길래 이쪽은 신경 안 쓰고 계신 줄 알았는데.

“괜찮아요. 자, 이게 저번에 했던 정액 검사 결과예요. 이리 와서 볼래요?”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막상 옆으로 가서 화면을 봐도 내 입장에선 뭐가 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여기. 성감을 수치화해서 나타낸 부분을 보면….”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마우스 커서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다.

“평범한 범주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한 상태인 건 확실해요. 게다가….”

마우스 커서가 다시 움직였다.

“이쪽 결과를 보면…. 보통 성감만 민감한 사람의 경우 전립선 쪽을 자극했을 때가 훨씬 더 이 수치가 높거든요. 하지만 하늘 씨의 경우에는 이쪽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요. 일반적인 방법으로 했을 때랑요.”

“그 말은…?”

“성적인 감각을 느끼는 수용체만 민감한 게 아니라 그냥 촉각 자체가 민감하다는 소리죠.”

“아하.”

“혹시.”

의사 선생님은 별안간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바닥 안쪽의 어느 부분을 스윽 문질렀다.

“하핫.”

순간 간지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하늘 씨, 혹시 시력이라거나, 청력. 그런 부분도 좋은 편이에요?”

“어, 네! 맞아요.”

김수현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일단 이건 그렇다 치고….”

그리고 다시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

“이쪽을 볼래요? 이전에 재장전 시간이 빠르다고 했던 거, 그 부분이거든요. 첫 정액 추출과 두 번째 추출 사이의 시간 간격을 보면…. 이 정도 간격에 정자가 이렇게 새로 생산되는 게 사실은….”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말이 안 돼요.”

“네?”

“말이 안 된다구요. 1차랑 2차 정자를 비교해 봤을 때 완전히 새로 생산된 애들이 이렇게 많을 수가 없어요. 전에 덜 나오거나 좀 적거나 하는 게 정상인데.”

“어, 그럼…. 저는…?”

나는 의사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상냥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의 눈 속에서 나는 순간 묘한 열망 같은 것을 발견했다.

‘위험해.’

순간 내 본능이 그렇게 외쳤다.

“하하,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감각이 좀 예민하고 회복이 빠르다. 이렇게 되는 거겠죠?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턱.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려는 나의 손목이 잡혔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악력이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추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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