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창고에서 (4)
* * *
뷰르르릇
“헤…헤윽….”
살려줘….
이래서야 나를 망가뜨리려고 착정하는 거랑, 내가 아무도 안 사귀고 있다는 것에 기뻐서 허리를 흔드는 거랑 차이가 점점 없어지잖아.
“아, 맞다. 이거 풀어줘야지.”
지아의 만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졌다.
‘저런 미소, 지아한테서 본 적이 지금까지 있긴 했던가?’
지아는 일어나면서도 질을 조이면서 마지막까지 정액을 짜냈다.
“히끅….”
안 그래도 좁은 질이 조이기까지 하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자극이 된다.
나는 그걸 오늘 깨달았다.
뭐, 깨닫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철컥
철컹
지아가 잠금장치를 조작하자 내 손목과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던 구속구가 드디어 풀렸다.
“후우….”
풀리긴 했는데, 문제는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뭐, 어차피 조금 쉬면 금방 회복되니까 천천히 기다릴까.’
지아도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지아는 일어나서 아까 벗어두었던 옷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아, 다리 저려….”
한 자세로 오래 있었어서 그런지 한 걸음도 제대로 못 가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하늘아, 나 다리 좀 주물러 줘.”
“내, 내가?”
“응…. 이런 건 남자가 주물러 줘야 빨리 낫는댔어.”
“…그래?”
금시초문이다.
모처럼 휴식을 하려던 나는 어느새 노동력을 착취당해 지아의 종아리를 주무르게 되었다.
주물주물.
지아의 종아리는 부드러웠다.
“으음, 거기 뒤쪽이야. 응 거기! 아, 윽. 아프면서 시원해.”
종아리를 주무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아의 전체적인 다리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 예쁘다….”
앗,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렸다.
그 말에 지아가 홱 돌아보았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방, 방금 한 말 진심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당연하지.”
지아의 몸매는 그야말로 슬렌더의 정석이라고 할 만했다.
손에 딱 들어올 정도의 가슴 크기, 11자 라인이 보일락말락하는 복근, 그리고 비율 좋고 곡선 딱 알맞게 떨어지는 다리까지.
평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니는 편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벗은 모습을 보니 다시금 감탄이 나왔다.
‘몸매 좋은 모범생이라니…. 이거 완전….’
나는 아랫도리가 다시 풀충전되기 전에 얼른 생각을 그만두었다.
‘후, 방심하면 자꾸 야한 생각이 든다니까.’
여자 종아리 좀 만지고 있다고 벌써 사고 회로가 그쪽으로 가버리다니, 내 뇌는 이 정도면 정말 구제불능이 아닐까.
“…더.”
지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더 칭찬해줘….”
지아는 시선을 살짝 피하며 뺨을 붉혔다.
그 모습이 순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종아리를 꽉 쥘 뻔했다.
“음, 일단 다리가 예쁜 것뿐 아니라 비율도 좋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장점들을 최대한 적나라하지 않게, 순화시켜서 하나씩 말해주었다.
내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지아는 자신의 뺨을 잡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
“또, 또?”
“음, 내가 처음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아 넌 목소리가 참 좋다고.”
솔직히 섹스하는 도중, 나에게 계속 말을 거는 섹시한 중저음 목소리 때문에 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하늘아, 기분 좋아?
하늘아, 네 정액이 내 자궁에 곧바로 뿌려져 닿고 있어.
특히 저때는 지아가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였으니.
본능에 몸을 맡긴 중저음의 목소리?
오우야.
못 참거든.
“그 말도 진짜였구나….”
지아는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기뻐했다.
“큼큼. 하늘아, 그 위에도 좀 저린 거 같아.”
지아는 괜히 목을 가다듬고는 내게 슬쩍 부탁했다.
이쯤이면 저린 게 풀렸을 법도 하지만, 나는 순순히 지아의 허벅지 쪽으로 올라가며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아, 시원해.”
지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솔직히 처음 지아가 날 묶어 놓고 공허한 눈동자로 내려다볼 때는 좀 무섭긴 했다.
내가 알던 지아가 아닌 것 같아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여서.
하지만 지아와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지하철에서 성희롱당하는 걸 막아줬을 때, 날 걱정해주고 지켜주려 했을 때.
그때의 모습이 한 장면씩 떠오르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그렇게 착하던 애가 이렇게 된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주물주물.
나는 정성스럽게 허벅지를 주물러 주었다.
‘진짜 부드럽다.’
그냥 꾹꾹 주물러 주는 건데도 손끝에서 살결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구석구석, 적당한 힘으로.
때로는 꾹꾹 누르고, 때로는 누른 채로 손끝으로 원을 그리면서.
그렇게 마사지를 하면서 점점 올라가자, 이제는 거의 엉덩이 부근까지 와버렸다.
꿀꺽.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마사지에 집중했다.
‘진짜 라인이…. 미쳤잖아….’
지아는 슬렌더형 몸매면서도 골반이 잘 발달되어 있어, 허벅지 사이에 공간이 떡 벌어져 있었다.
엉덩이 역시 탄탄하고 탱탱해 보여서 무의식적으로 한 움큼 쥐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소위 말하는 코박죽을 하고 싶어지는 라인이라고 할까.
“지, 지아야. 이쯤이면 다 한 것 같은데.”
결국 허벅지 사이에 드러난 매끈한 보지를 봐버린 나는 재빨리 말했다.
지아의 보지에 끈적한 액체가 맺혀 있는 게 보였다.
“하늘아.”
그리고 동시에 지아가 말했다.
똑.
보지에 맺혔던 액체가 허벅지를 주무르던 내 손에 톡 떨어졌다.
위를 올려다 보니, 지아는 상기된 얼굴로 날 마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안해, 못 참겠어.”
그렇게 말한 지아는 다시 나를 덮쳤다.
부드러운 살이 맞부대끼며 온기를 나눴다.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하자.”
지아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손길이 내 몸 구석구석을 쓸었다.
지아는 섹스하는 내내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하듯, 자신과 닿는 표면적을 최대한 넓히려 했다.
그리고 가끔은 나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무 좋아, 하늘아….”
나는 그런 지아를 꼭 안아주었다.
* * *
“지아야, 너 생각보다 체력이 좋구나.”
“그야 나도 매일 운동하니까.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거든.”
“오….”
“왜, 운동 안 할 거 같이 생겼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들어 보니 지아는 매일 밤마다 야깅을 나가 공원 코스를 1시간 정도 뛴다고 했다.
따로 헬스장을 다니지는 않지만 집에서 맨몸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저 군살 없는 완벽한 슬렌더 몸매는 역시 공짜로 얻은 게 아닌 것 같았다.
“읏차, 그럼….”
지아는 상쾌한 얼굴로 일어나서 벗어 놓은 옷 주머니에 있던 조그만 물병 같은 걸 하나 꺼냈다.
‘저건…?’
뭐지? 목이 마를 때를 대비했다기에는 병이 너무 작은데.
지아는 작은 병의 뚜껑을 따더니, 안에 있던 액체를 내 허벅지 쪽에, 정확히는 섹스를 하면서 새어나와 엉망으로 퍼져 있는 정액에 흘렸다.
“어?”
마시는 게 아니었어?
대체 이걸로 뭘….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액이…. 사라지고 있어?”
액체는 정액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빠르게 반응하더니, 순식간에 정액을 전부 투명하게 만들었다.
치이익.
그리고 잠시 후 불판에 고기 굽는 소리를 내며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뭐지? 이 최첨단 기술은?’
정액에 물을 뿌리면 간편하게 치울 수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는데, 이렇게 소량의 물로 아예 깔끔하게 승화시켜버리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건 전혀 몰랐다.
이 세계의 여자들은 대체 얼마나 섹스에 진심인 거냐고.
이런 엄청난 기술을 아무렇지 않게 상용화시키다니.
“아, 하늘이는 아직 이런 거 본 적 없구나.”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가락에 액체를 덜어서 보지 안에 쓱 넣었다.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지 밖으로 정액이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방금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으리라.
“정액 승화제라고, 약국 가면 팔아. 좀 비싸긴 한데.”
“…얼만데?”
“한 병에 오만 원.”
“아니, 너무 비싸잖아!”
“의료 보험 적용이 안 된대.”
“저런….”
용량을 보니 섹스 몇 번 하면 다 쓰겠구만….
‘아, 설마 민서 누나도 저걸 썼던 건가?’
정신 없는 섹스 이후에 너무 빠르고 완벽하게, 그것도 시트도 안 갈고 정액을 치웠다 했더니.
저런 비법이 있었던 거구만.
한 병에 오만 원이라고는 하나, 우리 누나의 경제력이라면 집안에 이미 쌓아 두고 있을지도.
아무튼 우리는 옷을 마저 입고 매트리스를 간단히 정리했다.
지아는 나를 묶어 뒀던 구속구를 가져온 배낭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거 또 쓰게?”
“글쎄. 봐서?”
봐서.
그 단어 한 마디에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아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일단 가져온 거니까 다시 가져가야지. 비싸게 주고 산 거기도 하고.”
“…이건 또 얼만데?”
“다 해서 이십만 원?”
“비싸네.”
“최고급이라니까. 하늘이 너 움직여도 안 아프게 하려고 까다롭게 골랐지.”
“…눈물나게 고맙네.”
“그치?”
지아는 킥킥대며 웃었다.
“하늘아.”
“응?”
“너,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CC할 계획은 없다고 했지?”
“어, 응. 그랬지.”
돌아본 지아의 표정은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그래, 이 주제가 드디어 나왔구나.
지아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 이상, 피해갈 수는 없는 주제였다.
지아는 결심한 듯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좋아. 그럼 나도 하늘이 너의 학업을 위해 사귀는 건 포기할게.”
의외였다.
으슥한 곳으로 불러 뒤통수를 갈길 정도였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대신.”
그럼 그렇지.
나는 지아의 입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꿀꺽.
지아는 잔뜩 긴장한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다른 년들도 절대 못 가져.”
아.
“학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하늘이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혹여나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지켜줄게.”
지아는 내 허리를 감싸며 흐흐 웃었다.
“알겠지, 하늘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