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창고에서
* * *
머리가 지끈거렸다.
‘끄응….’
나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나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깨어난 직후라 그런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떴다.
‘…?’
분명 눈을 떴는데 앞이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읍?”
놀라서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 역시 막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철컹, 철컹.
찰랑
두 팔과 다리 역시 뭔가에 단단히 묶여 있는 듯, 아무리 발버둥치려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힘껏 팔을 흔들려 할 때마다 철렁거리는 쇠사슬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으읍! 읍!”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시각을 차단당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팔다리도 어딘가에 묶여 있다니?
‘나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신을 잃기 전의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아, 그래!’
오늘 아침 9시까지 창고로 와 달라는 지아의 메시지를 받고 공강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왔었지.
굉장히 낡아 보이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고….
지아를 부르는 순간….
‘헉. 그러고 보니 지아는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도 지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지아도 지금 이렇게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는 걸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나와 지아 사이의 코톡이 무슨 범죄 집단에 유출되기라도 한 건가?
설마 인신매매는 아니겠지?
“으읍!!”
살려 줘요.
나, 공부 열심히 해서 한국여대 입학한 것밖에 잘못한 게 없는데.
아직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팔려 가서 장기를 해체당할 수는 없어.
지아도 얼마나 성실하고 착한 앤데, 나랑 약속만 아니었어도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때.
“아, 일어났어 하늘아?”
기적처럼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읍!”
지아야,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네. 역시 회복이 빠르다니까.”
“으읍…?”
그런데 지아의 목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뭔가 억양이 사라져 있다고 해야 할까? 무미건조해졌다고 해야 할까?
색채가 빠져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지아야, 풀려나 있는 거라면 나 좀 풀어줘.’
“으읍.”
저벅, 저벅.
발소리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하아….”
지아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읍?”
“하늘아….”
이윽고 차가운 손길이 내 머리 뒤에 묶인 매듭을 풀었다.
잠시 후 시야가 밝아졌….
“으읍?!”
나는 깜짝 놀라서 펄떡였다.
안대를 치우자마자 내 눈앞에 지아의 얼굴이 완전히 초근접 상태로 보이는 게 아닌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내 모습을 본 지아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지아야…?’
나를 바라보는 지아의 눈은, 생기를 잃고 텅 비어 있었다.
“으읍?”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너도 같이 잡혀온 거 아니었어?
지아의 얼굴을 들자,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창문을 통해 새어들어오는 햇살과, 거기에 비친 흩날리는 먼지들.
용도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 통들이 나뒹구는 선반.
구석에 쌓여 있는 오래된 매트리스.
‘…창고 안이잖아?’
어디론가 끌려온 게 아니라, 나는 정신을 잃은 창고 안에 그대로 있었던 거였다.
‘그럼 이 일은 대체 누가….’
나는 다시 지아를 올려다보았다.
지아는 내 곁에 쭈그려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묶여 있고, 지아는 자유로운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
그리고 고작 안대를 풀어줬을 뿐, 나머지 손과 발을 풀어줄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전혀 없어 보였다.
‘설마….’
순간 믿고 싶지 않은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쳐갔다.
‘아닐 거야.’
나는 애써 부정했다.
지아가?
지아가 나를 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때 지아의 손이 내 얼굴로 다가왔다.
“읍….”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스윽
차가운 손길이 내 뺨에 닿았다.
그리고, 내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부드러워… 하늘아. 내가 생각하던 촉감보다 훨씬.”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지아는 무표정으로 내 뺨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런데….”
지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뺨을 쓰다듬으려고 했을 뿐인데….”
지아의 얼굴이 살짝 가까워졌다.
뺨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무서워하는 거야, 하늘아?”
지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으읍….”
“읍…!”
아냐, 그런 게 아니야, 지아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내 말은 답답한 소리가 되어 흩어졌다.
“내가 싫어?”
뺨을 잡은 지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살짝 통증이 느껴졌다.
“으읍…. 읍!”
말이 안 통한다면, 몸짓으로라도 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는 하늘이가 좋은데…. 하늘이는 내가 싫어?”
“읍! 으읍….”
내가 열심히 고개를 젓자 지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돌아왔다.
‘휴우….’
뺨을 잡은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
‘갑자기 지아가 왜 이러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나는 지아를 올려다보았다.
항상 단정하던 긴 연갈색 생머리가 오늘따라 조금 헝클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지아가 입을 열었다.
“내가 더 먼저 좋아했는데.”
“난 널 지켜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지아는 잠깐 일어서더니, 자세를 바꾸어 내 옆구리 양옆에 발을 딛고 그 상태로 다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내 밑에 깔려 있는 매트리스가 푹신한지 확인하더니 아예 무릎을 대고 꿇어 앉은 뒤, 상체를 숙여 나와 마주보았다.
지아의 연갈색 머리 몇 가닥이 흘러내려 내 얼굴에 닿았다.
‘날…좋아했다고?’
지아가 말을 할수록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나는 하늘이가 다른 년이랑 떡치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해?”
그 말에 내 눈이 커졌다.
지아가 피식 웃었다.
“응? 하늘아. 난…. 이젠 더 이상 그런 꼴 볼 수 없어.”
“네가 그랬잖아. 나도 여자라는 걸 각인시키라고.”
지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내 가슴팍을 쓸었다.
“머리에. 그리고 몸에. 똑똑히 각인시키라고.”
“으읍…?”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년이랑 떡 치는 거’라니?
대체 뭘 봤길래….
‘아.’
설마.
최근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하면 그것밖엔 없었다.
“하늘아, 난 다인 선배처럼 키가 크지도,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것도, 피부가 멋진 구릿빛인 것도 아니야.”
설마 다인 선배와 라커룸에서 했던 걸 알고 있는 건가?
그럼 마지막에 부원들이 나가고 다시 돌아왔던 건 부원이 아니라….
‘지아였어…?’
아니, 애초에 다인 선배와 내가 거기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아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 지아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는 거.
그리고 난 어떻게든 지아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몸은커녕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노력할게. 그리고 보여줄게.”
지아는 천천히 내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나도 하늘이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다는 걸.”
내 맨살이 드러나자, 지아는 내 유두 주변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리고 곧 한쪽 유두를 혀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읍….”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혀가 내 젖꼭지를 살살 굴리듯 애무했다.
한손으로는 다른 쪽 유두를 잡고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자극했다.
‘저, 젖꼭지만 자극하는 건데도….’
유두라면 이전에 김수현 내과에 찾아갔을 때 한 번 만져진 적이 있었다.
손으로만 만졌을 때도 간질간질한 듯한 쾌감이 있었는데, 아예 혀로 자극하니 순간 찌릿한 느낌이 올라왔다.
“으읍….”
‘안 돼…. 이렇게 되면….’
이렇게 계속 자극을 받으면….
‘스위치가 켜지고 말아….’
유두에서 출발한 쾌감은 신경을 타고 몸 전체로 뻗어나갔고, 곧 그 쾌감에 반응하듯 자지에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내 자지는 바지 안에서 팽창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지아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치, 하늘아?”
지아는 그대로 내려가 내 벨트를 풀고, 바지와 팬티를 주욱 내렸다.
“실제로 보니 더 크고 예쁘네.”
지아는 마침내 드러난 내 자지를 잡고 귀두를 살살 문질렀다.
“읍….”
“하늘아, 이렇게 하는 게 좋아?”
지아의 손놀림은 솔직히 말하자면 서툰 편이었다.
정확히 어디가 기분이 좋은지 단박에 들켜 괴롭혀졌던 이전과 달리, 다소 투박하고 어색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어딘가에서 보고 배운 것처럼, 애무하는 과정이나 자극을 잘 주는 손 모양 같은 건 금방 찾아내 움직였다.
“으읍….”
“아니면 이렇게?”
지아는 내 자지를 짜내듯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악력을 줘 가면서 애무했다.
‘으윽…. 악력이 세서 자극이….’
그래, 맞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여자가 기본적으로 힘이 셌었지.
“읍…!”
순간 귀두를 순차적으로 쥐어짜며 자극하는 손가락에, 나는 아래쪽에 힘을 주며 살짝 다리를 비틀었다.
‘자극이…. 너무 세….’
천천히 구석구석 달아오르게끔 능숙하게 자극하는 게 아닌, 갑자기 센 자극을 몰아 줘버리자 마치 싼 직후에 자극받은 것처럼 눈앞이 하얘지면서 본능적으로 다리가 웅크려졌다.
철컹
하지만 단단히 묶여 있는 다리는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물고기처럼 허리를 펄떡이는 것밖에 없었다.
“이게 좋은 거야, 하늘아? 좋아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내 반응에 지아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으읍, 읍, 읍!”
철렁, 철컹, 철컹.
감당하기 힘든 자극에 몸부림을 쳤지만, 나는 묶인 채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찔꺽, 찔꺽.
흘러나온 쿠퍼액으로 뒤덮인 내 귀두에서는 쉴 새 없이 찔걱이는 소리가 났다.
“으읍….”
내 눈은 점점 뒤집혀갔다.
“하늘아, 내 손으로 기분 좋게 해줄게. 보내 줄게. 싸도 돼.”
찔걱, 찔걱, 찔걱, 찔걱, 찔걱.
한계를 모르고 계속해서 빨라지는 지아의 손과,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올라오는 절정에.
나는 경련하며 정액을 뿜어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