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답장
* * *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지아가 바쁜 줄로만 알았다.
강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지아도 강의 들을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나는 잠자코 강의실로 올라갔다.
나의 본분을 다하자는 결심을 한 만큼, 나는 강의 시간 동안 딴짓을 하지 않고 집중했다.
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까지 간단한 레포트를 한 장….
‘휴우. 집중을 하려니 들으면서 필기만 해도 피곤하네.’
나는 기지개를 켜며 필기구를 정리했다.
아무튼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
집에 가서 간단히 오늘 배운 내용들을 정리해 놓고 쉬다 푹 자면 된다.
게다가 내일은 공강이라 말 그대로 일정이 없는 완전 자유 시간!
원래 공강이라고 하면 월공강 혹은 금공강이 대세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중간에 한 번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루 나왔다가 다시 쉬고 리프레쉬를 하고 가니까 좋긴 좋아.’
그동안 월화수목금 아침마다 중, 고등학교를 어떻게 갔었는지 벌써부터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강의 시간 동안 일부러 무음 모드를 해 놓은 핸드폰을 켜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아]
[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음 모드로 해 놓은 게 무색하게도 여전히 메시지는 와 있지 않았다.
강의 때면 열심히 들으라고 응원해 주기도 하고, 자기 강의 먼저 끝났다며 같이 돌아가자고 하기도 했던 지아의 톡이 오늘은 단 하나도 안 온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까 오전에 강의 끝났을 때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어디 몸이 좀 안 좋은 건가?
‘시간표를 확인해 봐도….’
지아의 오후 강의는 나보다 조금 일찍 끝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강의 중이라서 톡을 못 하는 건 아니라는 뜻.
먼저 무슨 일 있냐고 얘기라도 해 볼까?
[하늘 : 지아야,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보내 놓고도 괜한 소리를 했나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
지아도 자기만의 생활이 있을 거고, 하던 연락을 하루 안 한다고 해서 꼭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귀찮아서 연락을 안 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 건데.
“어, 읽었다.”
그때 코톡 메시지창 옆의 1이 사라졌다.
“…….”
“근데 답이 없네.”
내가 톡을 보내면 거의 1분 안에 읽고 바로 답장하던 지아였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결국 답장은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철컥.
“하늘이 왔어?”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자 민서 누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누나는 내가 신발을 벗고 들어오자마자 나를 꼬옥 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고생했어, 하늘아. 오늘도 강의 잘 듣고 왔어?”
“으, 응…. 잘 듣고 왔지 뭐.”
나는 살짝 어색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누나의 포옹을 풀었다.
“흐음.”
그 모습을 본 민서 누나는 곧바로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오늘 무슨 일 있었구나.”
“아, 아냐. 별일 없었어.”
오전에야 잠깐 소동이 있었지만, 오후에는 실제로 별일이 없었다.
별일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뭐, 하늘이가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민서 누나는 살짝 토라진 듯 휙 돌아서 거실 쪽으로 갔다.
“금방 저녁 준비할 테니까 옷 갈아입고 천천히 내려와.”
“어, 응. 누나.”
…너무 숨기듯이 말했나.
하지만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친구에게 톡이 안 와서 고민이라고?
내 톡을 읽었는데 답장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고민이라고 말하기에 이 상황은 너무나도 흔해빠진 상황이 아닌가.
친구한테 톡이 안 오고, 종종 읽씹당하는 경우는 핸드폰이라는 문명을 접한 이래 누구든지 겪는 통상적인 일일 뿐이다.
‘친구한테 잠깐 톡 안 온다고 계속 신경쓰고 있다니, 이거 완전 애정 결핍 사회부적응자 같아 보일지도…?’
심지어 내가 톡을 보낸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코톡 하루 안 보냈다고 하루종일 신경 쓰고 있겠는가.
‘근데 왜 난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방에 올라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눈과 귀는 핸드폰에 가 있었다.
저녁이 준비되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지아의 코코아톡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셀카를 많이 찍어 보지 않은 듯, 지아의 셀카 표정은 살짝 어색했다.
각도 역시 어설프게 내려다보는 각도였고, 필터도 씌우지 않아 색감이 칙칙해 보였다.
‘지아답네.’
솔직하고 성실한, 조금 서툰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좀 더 잘 찍으면 훨씬 잘 나올 것 같은데. 실물을 담질 못했잖아.’
실제로 지아는 사진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예쁜 편이었다.
화장도 짙지 않고 머리도 수수한 생머리를 하고 있어서 그렇지, 작정하고 꾸미면 지금보다 훨씬 미인이 될 상이었다.
‘본판 자체가 살아있다니까.’
무엇보다, 지아는 목소리가 좋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약간의 허스키함이 섞인 중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한편 배경 사진은 한국여대 도서관을 직접 찍어 올린 것 같았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살짝 중세풍이라고 할까, 중후한 느낌이 살아 있는 건물이라 멋있다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느낌이 또 색달랐다.
‘건물 사진은 또 잘 찍네.’
그렇게 프로필 사진을 한 바퀴 감상하고 나왔지만, 여전히 메시지는 묵묵부답이었다.
“후….”
어느새 나는 내가 지아의 답장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선톡도 자주 오고, 내가 연락하면 바로 답도 칼같이 오던 때에는 느껴본 적 없던 기분.
‘아직 학기 초인데, 이렇게 벌써 소중한 친구 한 명을 잃는 걸까?’
꽃이 지니 봄인 줄 알았다고 하던가.
사실 그렇게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나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아닐까.
괜히 그동안의 일이 후회가 되었다.
나도 먼저 연락 좀 자주 할 걸.
중, 고등학교 때까지는 반 친구들과 굳이 매일 코톡을 하지 않아도 인맥 유지가 쉬웠다.
그냥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교실에 가면 매일 마주치는 게 친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대학에 와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시간표가 겹치지 않으면 굳이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으며, 강의가 끝나면 다음 강의실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모여서 떠들고 친해질 공간도 따로 없었다.
나는 대학교 인증을 해야 가입할 수 있는 학생 커뮤니티 ‘애니타임’, 이하 ‘애타’ 어플을 켰다.
[대학교 인간관계 현타 옴]
연락 잘 안 하는 스타일인데 먼저 톡 안 보내다 보니 이제는 과에서 갠톡 주고받는 사람도 없음
┗나도 그럼 ㅋㅋ ㅠ
┗결국 끝까지 연락하는 애들은 고등학교 친구들밖에 없음
┗이러다 보면 과실도 안 가게 되고 자연스레 아싸 되는 듯
┗난 아싸 체질이라 혼자 다니는 게 편하긴 한데 가끔씩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더라
‘역시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만약 지아에게 답장이 온다면, 앞으로는 나도 먼저 연락을 조금씩 보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민서 누나가 준비해 준 저녁을 먹고, 욕실에 받아 놓은 따뜻한 물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일단 천천히 몸을 풀고, 심신을 안정시킨 후 푹 자고 일어나자.’
오늘은 너무 정신력을 많이 소모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내일 생각해야지.
그리고 그때 욕실 입구에서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하늘아.”
“누, 누나?”
돌아보니 민서 누나가 달랑 수건 한 장을 걸친 채 욕실에 난입하고 있었다.
“씻겨 줄게, 앉아 봐.”
민서 누나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조금 진지해 보였기에, 나는 별말 없이 일어나 조그만 욕실 의자에 앉았다.
민서 누나는 말없이 내 뒤에 앉아, 바디 워시를 내 몸에 발라 주기 시작했다.
“…….”
전처럼 대놓고 가슴을 문지른다든가 하는 대신 누나는 내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 주었다.
“하늘아.”
“으응?”
“원래 인간 관계라는 거, 그거 생각처럼 안 될 때가 많다?”
“으응….”
누나는 부드럽게 내 몸을 쓸어내렸다.
“공부만 하던 하늘이가 처음으로 더 넓은 물로 나선 거잖아? 분명 생각대로 안 되는 일도 많을 거고, 마음 아픈 일도 많이 생길 거야.”
민서 누나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상처들도, 아물고 나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야. 그건 그 누구도, 누나도 도와줄 수 없어. 오로지 하늘이가 해내야 하는 일인 거야.”
나는 가만히 누나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이야기를 들었다.
쏴아아아
몸 구석구석을 씻고 나서 샤워기를 대자거품이 따뜻한 물에 씻겨 내려갔다.
“그래도 누나는 믿어. 하늘이가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그리고 하늘이가 힘낼 수 있도록 항상 옆에서 지켜봐줄 거야. 그러니까 하늘이도 자신을 좀 더 믿어. 알겠지?”
쏴아
거품은 모두 씻겨져 내려갔고, 누나는 내 머리를 수건으로 문질러 말려 주었다.
“…고마워 누나.”
“어이구, 하늘이 울어?”
“…조금.”
솔직히 감동이었다.
눈물도 찔끔 났다.
민서 누나는 나를 다시 한 번 꼭 안아 주었다.
누나의 품은 따뜻했다.
‘그래, 결국 내가 이겨내야 하는 거야.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풀죽어 있을 것도 없는 일이잖아?’
오늘 연락을 안 받으면 내일 다시 보내 보면 된다.
나에게 실망했다면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사과하면 된다.
왠지 누나의 말에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치유된 마음으로 내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그때.
코톡!
코코아톡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집어들어 화면을 켰다.
[지아]
[새로운 메시지(1)]
지아에게 온 메시지였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리니 오는구나!’
화났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그리고 다시 전처럼 친하게 지내는 거야.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메시지를 열었다.
[지아 : 하늘아, 혹시 내일 아침에 학교로 나와줄 수 있어?]
‘학교…? 갑자기?’
난 내일 공강이다.
지아도 내 시간표를 가지고 있으니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테고.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늘 : 응, 알겠어. 어디서 볼까?]
[지아 : 아침 9시, 체육 창고로 와 줘. 내가 코코아맵 위치 보내줄게.]
[하늘 : 알았어. 내일 보자 지아야!]
[지아 : 응, 고마워. 하늘아.]
[지아 : 위치를 전송했습니다. 코코아맵에서 확인하세요.]
눌러 보니 예상과는 달리 체육관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였다.
저 정도면 안 쓰는 창고 아닌가?
‘암튼 가보면 알겠지.’
나는 코톡을 끄고 상쾌한 기분으로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웹소설이나 좀 보다 잘까.’
일이 잘 해결된 것 같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 * *
“이 근처인가?”
길치인 나는 코코아맵 실시간 위치를 켜고 지아가 찍어준 곳을 찾아갔다.
“생각보다 으슥한데.”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잘 안 다니고.
좀 더 샛길을 따라 들어가니 드디어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9시 다 돼 가는데 아직 안 왔나 보네.’
조금 기다리지 뭐, 하고 창고 문앞에 서 있으니 마침 코톡이 울렸다.
[지아 : 하늘아, 창고 안으로 들어올래?]
[하늘 : 창고 안으로? 일단 알겠어.]
학교 창고인데 마음대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일단 지아의 말을 듣기로 했다.
끼이이이이
상당히 오래된 문인지, 여는데만 해도 끼익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기름칠을 좀 해둬야 할 듯싶었다.
안은 어둑어둑했고, 묵은 먼지가 날리는 모습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비쳐 보였다.
“지아야?”
아무도 없어 보이는 창고 안쪽에 대고 지아를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디 있”
투웅.
머리 뒤쪽에 둔탁한 충격을 받은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