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삼겹살
* * *
다인 선배를 따라 걸은 지 약 10분.
도착한 곳은 삼겹살 무한리필 집이었다.
“오, 저 삼겹살 무한리필 집 처음 와 봐요.”
“엉생 꽤 유명한데, 너 집밥만 먹고 자랐구나?”
“헉, 맞아요.”
다인 선배가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무한리필 집이라 고기의 질을 기대하고 오면 좀 실망하겠지만, 나름 가성비는 괜찮다구. 저렴하게 고기로 배 채우기는 좋아.”
“그, 선배. 무한리필 아니어도 저 그냥 고깃집 가도 돼요! 이번 주 용돈 많이 받아서….”
그러자 다인 선배는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괜찮아. 나 어차피 입맛 그렇게 안 비싸서, 고급 고깃집 가도 차이도 잘 몰라.”
딱 봐도 거짓말이다.
평범한 신입생이 용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 나도 오늘 아침에 민서 누나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받지 않았더라면 무한리필 집조차 속으로 얼만지 계산하며 왔어야 했을 거다.
다인 선배는 지금 내 주머니 사정을 다각도로 고려해 이 집을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너무 싼 집으로 가면 내가 뭐라고 할 걸 알고 있기에 적당히 가성비 좋으면서도 1인당 만 원 초반대로 끊을 수 있는 무한리필 집으로 온 것.
‘안 되겠어. 다음에는 진짜 비싼 곳으로 대접해야…. 아니, 벌써 나 다음을 생각하고 있네.’
은혜를 갚는다고 밥을 사는 거긴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내가 다인 선배와 밥 먹는 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아니, 이게 아니라.
너, 내 남자친구 해라.
라고 했던 다인 선배의 말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아냐, 아냐. 지금 나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때잖아.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길로 빠지려는 거야?’
게다가 철천지 원수도 뜯어말린다는 CC(Crowd Control)는 더더욱 생각해선 안 된다.
‘자꾸 지금 다인 선배가 나한테 잘해준 것 때문에 머리가 꽃밭이 돼가고 있어.’
나는 달아오르는 뇌를 차분히 식혔다.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 보자.
초면에 대뜸 자기 남자친구 하라고 말을 하다니.
얼마나 상대를 가볍게 보면 그런 말을 하겠는가?
‘분명 이론적으론 이게 맞는데….’
하지만 다인 선배의 행동들 때문에, 지금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내가 흐지부지 말을 흐렸는데도 상처받지 않고 쿨하게 다음을 기약했다.
자존감이 보통 높지 않고서야 저런 행동은 불가능하다.
‘후….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어서오세요! 두 분이세요?”
“네. 두 명이요.”
“자리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감삼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깃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여자였다.
‘하긴, 고깃집 알바 빡세다고 하던데 사장님 입장에선 힘 좋은 여자들을 우선으로 뽑긴 하겠다.’
자리에 앉으니 다인 선배가 자연스럽게 테이블 옆에서 수저를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수저를 받아 자리에 놓자 다인 선배는 이번엔 물컵을 척척 놓고 물을 따라 주려고 했다.
“엇, 물은 제가….”
“됐어, 됐어. 먼저 잡은 사람이 따르면 되지.”
다인 선배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물을 따라주었다.
“잠깐 있어 봐.”
다인 선배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화장실 가시나?’
다인 선배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선배는 각종 양념과 채소가 구비되어 있는 셀프 바에서 접시를 꺼내고 있었다.
‘헉.’
무한리필 집에서는 이런 거 다 셀프로 하는 거구나.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데다, 다인 선배랑 있어서 긴장해서 주변을 살필 여유도 없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선배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고 난 받기만 하다니, 이대론 절대 안 된다.
나는 황급히 따라 일어나 선배에게 갔다.
“그, 담은 그릇 저 주세요. 제가 갖다 놓을게요.”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자 다인 선배는 빙긋 웃으며 내게 된장과 상추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그래, 자. 갖다 놔 줘.”
“넵!”
세팅이 완료될 때쯤 불판도 어느 정도 달아올랐다.
다인 선배는 자연스럽게 집게를 들어 고기를 올렸다.
“저, 제가 구우면 안 돼요?”
“안 돼. 너 고기 구워 본 적 별로 없지?”
“네, 그렇긴 한데….”
“똑같은 고기도 잘 굽는 사람이 구워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거야. 내가 익은 건 바로 말해 줄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고기를 굽는 모습.
살짝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고기를 뒤집는 선배의 얼굴을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았다.
‘예쁘다….’
화장기가 없어도 충분히 뚜렷한 이목구비.
다인 선배의 얼굴은 예쁨과 잘생김 사이 그 어딘가… 에서 예쁨 쪽에 좀 더 가까이 있었다.
‘숏컷이 진짜 잘 어울린단 말야.’
귀가 살짝 드러나는 정도의, 기장감이 조금 있는 숏컷.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여성스러운 오묘한 조화로움이 있었다.
그렇게 선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고기를 굽던 선배가 문득 시선을 들자 눈을 딱 마주치고 말았다.
다인 선배는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겁긴. 이거 익었다. 지금 먹으면 제일 맛있어.”
“감사합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고기를 집어 쌈장에 찍어 먹었다.
“맛있지?”
“네, 완전 맛있어요!”
거짓말이었다.
방금 선배의 눈웃음이 아른거려서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아, 나 진짜 자꾸 왜 이러는 거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고기, 고기, 고기!’
머릿속을 고기라는 단어로 채우자 이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맛있긴 맛있네.’
고기의 질이야 무한리필 수준이었지만, 잘 구우니 이게 또 맛이 있었다.
“앗 뜨거.”
“천천히 먹어, 천천히.”
“죄, 죄송해요. 선배 사드리려고 온 건데 제가 자꾸 집어먹어서….”
“됐어, 나도 먹고 있으니까 괜찮아.”
다인 선배는 집게로 바로바로 자신의 그릇으로 가져가서 쌈장에 찍어 먹었다.
“얼추 다 익었구만.”
선배는 집게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상추를 들더니, 밥과 고기, 쌈장을 올리고 싸서 한입에 넣었다.
“음, 누가 구웠는지 맛있네.”
“그러니까요. 고급 고깃집 온 것 같아요.”
“오호, 강하늘이 아첨할 줄도 알아?”
“하하…. 근데 진짜 맛있어요.”
다인 선배는 다시 상추를 집어들고 정성스레 쌈을 쌌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나에게 내밀었다.
“자, 아~ 해 봐.”
다인 선배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쌈을 내밀었다.
‘어…. 이거….’
쌈을 집고 있는 선배의 기다란 구릿빛 손가락이 내 입 가까이 다가왔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거의 연인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면 애초에 남녀 둘이서 고깃집에 왔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사이가 아닌 걸로 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손수 쌈까지 먹여주면….
“자, 아~”
이미 쌈은 내 입술에 닿았고, 나는 반자동적으로 입을 벌렸다.
“그렇지.”
쌈이 내 입으로 들어갔고, 다인 선배는 검지손가락으로 끝까지 내 입 안으로 쌈을 밀어넣었다.
“우음….”
검지가 쌈을 밀면서 순간 내 입 안까지 쑥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입을 다물다가 선배의 검지를 살짝 빨아버렸다.
‘헉.’
순간 당황해서 우물거리는 것도 잊었다.
하지만 선배는 그냥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가 빨았던 검지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한번 쓱 빨았다.
“우으음….”
일단 입안이 가득 차 있었기에 나는 쌈부터 우물거리며 먹었다.
“나는?”
“녜?”
아직 다 먹어가는 중이라 발음이 샜다.
“가는 게 있음 오는 게 있어야지.”
“아.”
애초에 이곳에 온 건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선배가 잘 먹어야 나도 마음이 편하지.
나는 허겁지겁 쌈을 싸서 다인 선배에게 내밀었다.
하웁.
다인 선배도 내 쌈을 받아먹었다.
“움, 맛있네. 소질 있어.”
“진짜요? 다행이다.”
선배는 정말 잘 먹었다.
어떻게 저 몸매를 유지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하늘아, 소주 한 잔 할래?”
“네에?”
“너 술 마셔본 적 아직 없어?”
“어…. 네에.”
“엠티 때 엄청 마실 텐데, 지금부터 배워놔야 하지 않겠어?”
“근데 이따 강의 하나 더 있어서….”
“푸흣. 농담이야, 농담. 아무리 나라도 월요일부터 낮술은 안 해. 술은 다음에 마시자.”
“네…. 네?”
다음에?
“슬슬 갈까?”
“어, 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카운터로 갔다.
“저, 이거 계산해 주세요.”
“네 잠시만요. 이만 칠천 원 결제 도와드릴게요.”
둘이 배 터지게 고기 먹고 삼만 원도 안 나오다니, 확실히 가성비는 좋다.
좀 더 비싼 걸 대접하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소화도 시킬 겸 체육관 구경이나 갈까?”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 * *
하늘과 다인이 나간 후, 카운터에 있던 직원들은 서로 속닥거렸다.
“방금 봤어요? 남자애 엄청 귀엽던데.”
“봤죠. 여기 여대 앞이라 남자 손님도 별로 없는데, 오랜만에 눈 호강이에요.”
“그러게요. 여자분은 가끔 오시는 분인데, 남친 데려왔나 봐요.”
“아까 쌈 서로 먹여주시던데….”
“그런 것도 봤어요?”
“하핫….”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데, 마침 카운터에 계산서가 하나 더 올려졌다.
탁.
“계산해주세요.”
“아, 넵!”
엄청난 저기압의 목소리!
‘뭐, 뭐지?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모자까지 푹 눌러쓴 손님은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었다.
직원들은 혹여나 클레임이라도 들어올까 친절하게 웃으며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 직원들은 다시 속닥거렸다.
“방금 그 손님…. 저분도 가끔 오시는 분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원래 되게 밝고 친절하신 손님이었어요.”
“무슨 일이 있으셨나 봐요.”
“저런….”
직원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손님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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