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투위치 (2)
* * *
민서 누나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자 채팅창의 민심은 폭발했다.
야,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ㅁㅊ 긴서 남친 있었음?
남친이라니? 나만 이해 못함?
븅신아 정액!
아
ㅅㅂ
민서 누나는 쿡쿡, 웃더니 손끝에 묻은 하얀 액체를 혀로 쓱 핥아 먹었다.
미친!!!!
먹었어
핥았어
야 저거 정액 아닌 듯
정액이면 저렇게 맛있게 먹을 리가 없어
왜? 니들 정액 먹어봄?
맛 어떤데?
나도 먹어 보고 싶다
그 말에 한 전문가가 등판했다.
[좃문가] : 아아, 내가 설명하지. 정액은 기본적으로 정력이 강할수록, 호르몬이 강할수록 여자 입장에선 ‘맛있다’고 느껴진다. 또한 먹은 음식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지. 다만 함정은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95퍼센트 이상의 남자 정액은 맛이 없다는 것. 고로 저건 정액이 아니거나, 긴서 남친이 정력으로 최소 상위 5프로 안에 들어간다는 소리다. 이상.
와, ㅅㅂ 별 ㅈ문가가 다 있네
‘찐’ 등판
아아, 내가 설명하지 ㅇㅈㄹ ㅋㅋ
꼭 남친 한 번도 못 사귀어 본 아다년들이 저렇게 잘 알더라
ㅆㅂ 광역딜 자제좀
아야
“와, 되게 잘 알고 있네.”
민서 누나는 그 채팅을 쭈욱 읽었다.
“그래서, 방금 내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ㅈㄹ하지마 제발
저거 정액 절대 아님
코코빰임
폭갈이스웨트임
팔로우 취소함
빰빠바바밤!!!
그때 민서 누나의 방송에 커다란 후원 팡파레가 울렸다.
[1,000,000원 후원 퀘스트!!!]
[열려라 진실의 문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뭐야, 진실의 문? 갑자기?”
민서 누나의 눈이 커졌다.
ㅁㅊ
저걸 진짜로 하는 새끼가 있어?
나 처음 봄
큰손 떴다….
저거 그냥 개그로 넣어 둔 건 줄 알았는데 하는 사람이 있네
‘저건 뭐지?’
후원 퀘스트?
나는 재빨리 창을 내려 방송 정보란에 쓰여 있는 후원 퀘스트 항목을 살폈다.
후원 퀘스트 : 스트리머가 퀘스트를 수락하고 수행할 경우 금액을 받을 수 있음.
웬만하면 하지 마셈. 그냥 하지 마. 너네도 안 보고 싶잖아.
그리고 겜 중에는 안 받음.
10,000원 : 귀여운 척 1번
50,000원 : 애교 대사 1번
…
100,000원 : 5분 간 냥체 사용
200,000원 : 제로2 춤 3분 추기
…
1,000,000원 : 열려라 진실의 문, 질문에 Y/N 형식으로 반드시 진실만을 대답해야 함.
‘이런 것도 있구나.’
예를 들어 내가 5만 원을 내고 애교 한 번 해 달라고 하면 민서 누나의 애교를 볼 수 있는 건가.
‘…끌리는데?’
물론 스트리머가 수락을 할 경우의 얘기겠지만, 보통 이런 게 오면 스트리머들은 분위기 봐서라도 대부분 수락하니까.
갑자기 오늘 아침에 받은 용돈에서 5만 원을 투자하고 싶어졌다.
[질문 : 긴서 남친 있음?]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질문에 그냥 예/아니오로 대답만 하면 100만 원이 바로 들어오는 거잖아.
‘근데 누나 남친… 없지 아마?’
그냥 없으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사실 남친이 없다고 누나가 직접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데이트 가는 것도 못 봤고.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없을 거야….’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누나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뭐야. 나 왜 집중하고 있지.’
누나한테 남친이 있든 없든 사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친동생 입장에서 누나가 남친이 생기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순간 내가 느낀 감정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아냐, 아냐. 진정하자. 방송이나 보자고.’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곧 메시지가 떴다.
후원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민서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니, 나 남친 없음. 됐지?”
빰빠바바밤!!!!
후원 퀘스트 성공!
1,000,000원을 받았습니다!
“아, 후원 퀘스트 감사합니다. 사리사욕 채우는데 잘 쓸게요~”
민서 누나가 웃었다.
‘와, 백만 원 받고 저렇게 간단한 리액션이라니.’
역시 돈을 보는 눈이 다르다.
이게 머기업인가.
주식도 잘하고, 레오레도 챌린저에, 팔로워 10만 게임 방송 스트리머.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최고다.
저런 누나가 내 친누나라니.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뭔가 화면 속에서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멀게 느껴지는 동시에 더 대단해 보였고.
생각해 보면 윤서 누나도 그랬다.
각종 체육 대회를 서로 다른 종목으로 휩쓸고, 그걸 전문적으로 가르치기까지 하는 만능 체육인.
물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민서 누나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최고.
선명한 복근과 적당한,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고.
빰빠바바바밤!!!!
그때 다시 한 번 팡파레가 울렸다.
[1,000,000원 후원 퀘스트!!!]
[열려라 진실의 문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질문 : 그럼 방금 먹은 거 정1액임?]
와 질문 도라따
남친이 없는데 만약 정액 먹었다에 예스가 나온다면?
ㅋㅋㄹㅃㅃ
ㄴㅇㄱ
상상도 못한 정체
야, 무슨 질문에 2백을 태우냐
돈 많은 건 개부럽다
근데 어차피 정액 아닐 거 뻔하잖아 돈만 날린 거 아님?
ㄹㅇ
모두가 민서 누나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쿵!
매칭되었습니다.
레오레 매칭 알림과 함께 누나의 화면이 바뀌었다.
“아차~ 게임 중에는 퀘스트 안 받습니다. 까비!”
민서 누나는 매칭이 되자 캠 크기를 줄이고 캐릭터 선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야 백만 원을 날려?
노코멘트 한 거 보니까 진짜 정액인 거 아니야?
솔직히 걍 다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임?
ㅁㅊ
야 조용해 봐 긴서 모스트 밴 당했다고
긴서 꺼무위키 논란 탭 추가될듯
남친도 아닌 남자를 집에 들였다?
솔직히 능력자다. 부럽다
ㅇㅈ
하루만 긴서로 살고싶다
난 평생
사람들의 의심은 증폭됐지만, 다행히 우려하던 방향으로 민심이 기울지는 않는 듯했다.
꺼무위키에 따르면 이 세계에선 여자가 남자를 따먹는 게 하나의 업적 비슷한 걸로 여겨지는 모양이었으니까.
물론 여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순정파도 많다고는 하는데.
‘와, 근데 누나 게임 진짜 잘하네.’
민서 누나는 시작하자마자 탑으로 가더니 ‘렝냥’ 캐릭으로 1렙 솔킬을 따버렸다.
와 저 1렙 킬각은 ㄹㅇ
저거 안 당하려면 초반 경험치 버려야 됨
말도안된다 렝냥이 너프해라
장인 캐릭이라 긴서가 잘하는거지 니가 해봐라 저게 되나
레오레라면 나도 피시방에서 예전에 몇 판 해 본 적이 있어서 대충 볼 줄은 알았다.
딱 봐도 현란한 컨트롤과 디테일이 있는 것 같았다.
“도착했어요 학생.”
“감사합니다.”
감탄하면서 보고 있자니, 어느새 학교 앞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민서 누나 방송은 다음에 또 보고, 일단 나도 본분을 다해야지.
민서 누나나 윤서 누나처럼 어엿한 성인으로서 밥벌이를 하려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졸업하는 게 나에겐 일순위다.
“와, 역시 택시.”
8시 38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다.
택시 기사님이 좀 엑셀을 밟은 것도 있기는 한데….
아무튼 빨리 왔으면 된 거지.
나는 여유롭게 화장실에 들렀다가 강의실로 향했다.
“저기 봐. 하늘이다.”
“아, 그 신입생?”
“실물이 더 귀여워.”
실물…?
설마 내 사진이 어느샌가 떠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가서 번호 따 볼까.”
“너 말고도 벌써 수십 명이 시도했을 걸.”
“그래도….”
사실 저번 주부터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슬슬 이런 수군거림에도 적응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자들이 나를 한번씩 쳐다보고 가는 것도.
일부는 내 얼굴이나 신체 부위를 빤히 쳐다보고 가는 것도.
뭐, 남자라곤 나밖에 없으니 별 수 있나.
‘내가 선택한 여대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지아가 반겨 주었다.
“하늘아, 어서 와!”
그리고 자기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역시 성실한 지아. 택시 타고 온 나보다 빨리 왔네.’
자리에 앉자 지아가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학교는 좀 다닐만 해?”
“응,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지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주, 주말엔 잘 지냈어?”
“어? 응. 잘 지냈…지?”
나는 순간 주말에 있었던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말았다.
주짓수 도장에서 돌림빵을 당하고, 집에 가서는 윤서 누나와 메챠쿠챠 섹스를 했었지.
“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냐 아무것도.”
내가 얼굴을 붉히자 지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곧 나머지 학생들도 들어와 자리에 앉았고,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강하늘.”
“넵!”
“오호, 오늘은 정신 잘 잡았네.”
그 말에 다른 학생들이 키득댔다.
“고영희.”
“네.”
“…성유진.”
“성유진 없어?”
교수님이 결석 처리를 하려는 순간, 뒷문이 벌컥 열렸다.
“네.”
“오케이, 봐준다. 다음….”
성유진은 구석의 빈 자리로 가서 앉았다.
‘쟤 나랑 미시경제원론에서 같은 조였지.’
생각보다 학교에서 많이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마주칠 때마다 살짝 움찔하곤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가 바뀌었다는 걸 처음 깨닫게 해 준 녀석이었으니까.
강의는 생각보다 지루했다.
졸지 않기 위해 눈꺼풀에 힘을 꽉 주었고, 가슴 크기가 강조되어 보이는 교수님의 옷매무새를 가끔 슬쩍 보았다.
웅
그때 핸드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재빨리 무음으로 바꾸고 확인해 보니 다인 선배에게 온 코톡이었다.
[다인 : 이번 주에 밥 사 준다고 했지? 오늘 점심 어때?]
[하늘 : 어, 좋아요. 근처에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다인 : 이따 같이 골라보자]
[하늘 : 넵]
간단하게 답을 하고 폰을 다시 책상에 내려놓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응?’
지아가 내 폰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아, 누구야?”
* * *